<소설가의 인생책> 김의경 소설가와 [청소부 매뉴얼] 함께 읽기

D-29
글쎄요... 가족은 아니지만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업무상 한동안 협업을 해야하는 사람이 있었는데요, 중간에 소개하는 이가 그 사람하고 함께 일한 사람치고 욕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면서 성격 장난 아니니 상처받지 말라고 당부까지 했더랬습니다. 만나봤더니 왜 그런지 알겠더군요. 충분히 불편함을 느낄만했는데, 전 오히려 생각을 복잡하게 하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불쾌할만큼 제 생각이 분명하고 가능한 선을 명확하게 제시하는, 소위 단호박 중에 단호박이었는데, 일단 제 감정과 상관없이 언행에 신뢰가 가더군요. 업무상의 만남이라 가능한 감정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예상보다 나쁘지 않은 경험이었습니다.
가족이라면 힘들지 모르지만 협업을 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단호박이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오히려 신뢰가 갈 것 같아요.
42편이 아니라 총 43편이네요. 정정합니다.
에인절 빨래방 그때 나는 젊은 애 엄마였으며 목요일 아침이면 기저귀를 빨러 갔다. 할머니는 내가 사는 아파트 바로 위층 4C에 살았다. 어느 날 아침 빨래방에서 할머니는 내게 집 열쇠를 주면서, 언젠가 목요일에 자기가 보이지 않으면 죽은 줄 알고 시신을 거두어달라고 부탁했다. ▶얼마나 서글픈 부탁인지…. 혼자 사는 이들의 고독사가 여실히 드러난다. 그는 마침내 내 손을 응시하게 만들었다. 내가 내 손을 응시하는 것을 알아채고 그는 이빨을 드러내고 싱긋 웃었다. 그때 처음으로 우리 두 사람의 눈이 거울 속에서 마주쳤다. 그 위로 ‘세탁기에 너무 많이 넣지 마시오’라는 게시문이 보였다. ▶움직임과 눈빛, 시선 하나하나 이미지가 그려지는 묘사가 좋았다.
10대 나이의 멕시코인 새색시들도 에인절 빨래방을 이용한다. 타월, 짧은 분홍색 잠옷. ‘Thursday’라는 문구가 새겨진 비키니 팬티. 그들의 남편들이 입는 푸른 작업복은 호주머니에 스크립트체로 이름이 새겨져 있다. 나는 거울을 쳐다보며 건조기 창에 그 이름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다 그들을 확인하기를 좋아한다. Tina, Corky, Junior. ▶나라면 건조기 안은 푸른빛 분홍빛이 서로 이리저리 힘겨루기했다. 정도의 소박한 한 줄로 끝났을 텐데 섬세한 표현이 건조기가 돌아가는 순간을 상상하게 만든다. 눈을 약간 모들뜨고 보면 선명한 보라색과 오렌지색, 빨강색과 분홍색의 인디언 옷들이 건조기 안에서 회오리치면서 서로 번져 보이는데, 나는 그게 좋다. ▶회오리치면서 번져 보인다는 것은 잠깐 본 것이 아니다. 오래 응시한 시간이 엿보였다.
거울에는 들어오지 않는 한 젊은 여자가 창가에 앉아 있었다. 나의 고인 눈물을 통해 보이는 그녀의 머리카락이 굽이쳤다. 머리숱이 적은 보티첼리. 나는 게시문들을 하나하나 읽어보았다. “주여, 제게 용기를 주소서.” “한 번도 쓰지 않은 새 아기 침대 팝니다—아기를 사산했음.” ▶첫 문장을 읽고는 끝 문장을 전혀 예측할 수 없었기에 아주 매력적인 문단이라 생각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고 가슴을 철컹 내려앉게 하는 읽는 이에게 큰 내면의 움직임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헤밍웨이의 세상에서 가장 짧은 소설 '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팝니다: 아기 신발, 단 한 번도 신지 않았음)'. 오마주 한 것일까? 실제 루시아 벌린의 경험담이었을까?
처음 그믐 독서모임 참여해 봅니다.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밑줄 그은 문장과 생각을 메모해보았습니다. 덕분에 정말 오랜만에 단편소설을 읽게되어 기분이 좋습니다 ^^
바이올렛님 반갑습니다. 감상을 공유해주셔서 감사해요. 건조기 안에서 회오리치면서 번져 보이는 색색의 옷들처럼 인디언들, 멕시코인들, 여행자들과 같은 빨래방을 오가는 다양한 사람들은 서로의 삶에 잠시나마 스쳐 지나가며 삶을 공유합니다. 등장인물이 (서로의 삶에 깊이 개입하지는 않지만) 자신을 스쳐지나가는 사람과 나누는 대화에 어쩌면 독자는 더 귀기울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헤밍웨이의 소설에도 비슷한 문장이 나오는군요. 저는 자전적 소설을 쓴 루시아벌린의 경험담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헤밍웨이의 소설을 읽었을 수도 있겠네요. 저도 최근에는 장편을 주로 읽었는데 매일 단편소설을 읽으니 소설 속 장면들이 선명하게 다가오면서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입니다.
질문에 답변을 드리자면 저는 외조부님이에요. 본인의 자식들에겐 엄하고 곁을 잘 내어주지 않는 분이셨고, 아내에게도 완고한 분이셨어요. 사업수완도 없으셨던 분이어서 하시는 일마다 실패하셨는데, 첫손녀인 제게는 너무 다정하고 늘 행복한 분이셨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특히 조부님의 서재에서 함께 간식 먹고 책읽던 시간이 3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떠오르니까요.
새벽서가님 반갑습니다. 자식들에겐 엄하셨지만 첫손녀에게는 다정한 할아버지셨네요. 조부님이 손녀와 함께 간식을 먹으며 책을 읽어주셨다니 30년이 지났어도 떠오를 만한 귀한 경험이네요.
제가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치르는 날 돌아가셔서 시험이 끝나고서야 그 사실을 알려주셔고 하늘이 무너지는것 같은 경험을 했었는데 시간이 오래 지나고나니 좋았던 추억만 남았네요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추천이 매력적으로 다가와서 사 놓고 책 꽂이에 꽂혀있던 책입니다. 바로 손에 잡지 않으면 새로운 책은 계속 보충되니 계속 밀리는 것 같습니다. 모임 덕분에 드디어 읽게 되네요. 무리하지 않고 매일매일 조금씩 꾸준히 읽어보겠습니다.
양리님 반갑습니다. 저도 신간에 밀려서 읽지 못한 책이 너무 많습니다. 이번 기회에 책장에 손끝의 온기를 불어넣어주세요. 저도 하루 20쪽씩 거북이처럼 천천히 완주해보겠습니다.
답1 : 아버지는 사람을 잘 믿는 낭만주의자였습니다. 차갑기만 한 세상은 한 번도 그를 따뜻하게 품어주지 않았습니다. 가끔, 사람을 믿기 보다 셈을 좀 할 줄 알았다면 그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만약 그랬다면 나는 그의 셈법을 경멸하진 않았을까. 구멍낸 살림을 채우는 건 늘 셈 빠르고 바지런한 어머니 몫이었습니다. 학비와 용돈으로 그녀의 수고로 벌어들인 돈을 낭비하면서도 그녀가 명확하고 빈틈없는 셈법을 보란 듯 드러낼 때마다 저는 일부러 모른척 하곤 했습니다. 세상에 늘 얻어터지면서도 옅게 웃던 아버지는 멀리 떠났고 명석하기 그지 없던 어머니는 이제 집을 옮겼습니다. 그 대상이 누구든 삶이란 자세히 들여다보면 참으로 애틋하고 시립니다만 내 가족에게 만큼은 같은 잣대를 적용하지 않는 건 어떤 이유에서 일까요.
정말 그렇네요. 가족에게만은 같은 잣대를 적용하기 어렵습니다. 자식으로서 겉으로 보이는 결과 이외의 것들을 봐왔기에 아버지를 그저 비난할 수만은 없는 것 아닐까요.
* 에인절 빨래방 p12 '어떻게 발견했는지는 나도 모른다' 아미티지 할머니는 아마도 그녀 뿐 아니라 월, 화, 수, 금, 토, 일요일에 규칙적으로 만나는 이웃들에게 집 열쇠를 쥐어주며 부탁하였을까요? 할머니의 시신을 발견한 건물 관리인은 월요일 아침에 만나는 이웃이었을 것 같습니다. p20 '인디언 노인이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는 걸 언제 깨달았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누군가를 존재를 기억할 때는 그때가 언제였는지 보다 그에 대한 기억 자체가 중요하지 싶습니다.
월화수목금토일에 만나는 사람들에게 같은 부탁을 한걸까요? 거기까지는 생각해보지는 못했는데 그랬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런 모습을 상상하니 코끝이 찡하네요.
<에인절 빨래방>을 읽으면서 사람의 관계라는 게 만남과 죽음의 꼬리물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주변에서도 흔하지는 않지만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구요.
내가 어렸을 때는 성냥을 보지 못하고 엄마 엄지손가락에서 불꽃이 나와 담배에 불을 붙이는 줄 알았다. >> 정말 어린 아이의 눈높이로 표현한 이 문장이 너무 사랑스럽다. 어쩜 저런 상상으로 글을 썼을까?
사실은 나무 책상에 머리를 갖다 대기도 하는데, 그건 나무 소리를 듣기 위해서다. 정말 소리가 난다. 아직 살아 있는 나무인 것처럼,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듯이. >> 바닷가 조개나 소라를 주워다 귀를 기울여 본 적 있지만 나무의 소리를 들어본 적은 없었는데... 나무에 귀를 대고 무슨 소리가 나는지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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