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분으로 주워본 아름다운 것들~~~~ 예쁜 말이라 담아봅니다
〔날 수를 세는 책 읽기 ㅡ 4월〕 달걀은 닭의 미래다
D-29

jena

하금
우리는 우리의 좌절을 망각 속으로 던져도 좋겠습니다 어여쁘게 희망하겠습니다 너는 나의 어둠을 다 걸었습니다
『달걀은 닭의 미래 - 양안다의 4월』 p.79 (4월 14일의 시, 밤의 산책과 의지), 양안다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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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금
이렇게 줄글로 쉼표 하나 없이 이어지는 문장들로 켜켜이 쌓아 올린 시는 어떤 호흡으로 읽어야하나, 다들 어떻게 읽고 계신가 궁금했어요. 단 숨에 맘 속에 쌓아뒀던 말을 털어놓는 톤으로 읽어야할지 사람이 아니라 상념과 대화하듯 읽어야할지 고민하면서 읽었어요.
‘너는 나의 어둠을 다 걸었습니다‘라는 말이, 아름다운 것들을 나열하기 전까지는 숨 돌릴 틈 주지 않고 이어진 문장들이 화자의 어둠을 따라 놓인 길 처럼 느껴지게 하더라구요. 천변을 따라, 화자의 마음 속 어둠을 따라, 막을 내리는 겨울과 시작하는 봄 속에서 희망을 이야기하고 사랑을 이야기하고 새살처럼 돋는 새순을 이야기하고. 이 책에서는 참 오래간만에 슬픔보다 기쁨에 가까운 감정이 담긴 시 같아요.

jena
저와 같은 생각을 하셨었군요...
끊임없이 쓰여진 글.....
저는 단숨에 읽어갔어요~^^

jena
4월 13일 (시)
피크닉
'꽃 무더기가 폭죽처럼 웃음 짓는 날~'
~~ 꽃 무더기, 폭죽처럼 웃음 짓는 ...
그런 날을 생각하는것만으로도 참 좋은 순간이었어요.
'볕 좋은 곳에서 죄책감이 마르고 있다'
~마음이 마르고있다는 표현이 신선했어요
죄책감은 말라버려야할 것일까? 축축함을 가지고 있는것일까?하는 물음이 생겨났습니다.
'기쁨을 안고 이리 와요'
'미래를 안고 이리 와요'
기쁨과 미래를 안고~라고 표현하니
기쁨과 미래가 더 소중하게 다뤄져야할 것으로 느껴졌어요.
바람불고 비가오는 봄날~
꽃이 만발한 좋은 날씨의 피크닉을 상상하며
지내는 작은 순간이 쉼을 주기도하네요~^^

jena
4월 14일 (시)
'밤의 산책과 의지'
마침표는 없이 쉼표와 물음표는 있고,줄을 바꾸거나
쉬어가는 공간이 없는 글..
무엇이 이렇게 빽빽한 글을 쓰게했을까? 생각하며 읽기시작했습니다.
마음은 들키고싶지않고 일어난 상황을 빨리 전달하고 사라지고 싶었나?하는 생각은 했는데..다른 의미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네요~^^
속삭임이 발생~웃음이 발생~한다라는 표현의
발생이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습니다.
어떤것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것이 속삭임이고 웃음이라고 표현하는것으로 들렸어요
바람, 달 밝음, 천변의 물소리.. 자연과 환경적인것이 속삭임과 웃음을 만들어낸다니..
속해있는 환경의 중요함도 생각해보게되네요
'어여쁘게 희망하겠습니다.'
어여쁘게 희망하는 것은 무얼까? 생각해보고있는중입니다

하금
그런데도 나는 이곳에 다시 찾아왔다. 유년과 악몽이 있는 곳으로.
『달걀은 닭의 미래 - 양안다의 4월』 p.85 (4월 15일의 기억, 별 우물), 양안다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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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금
공포 영화를 보면 항상 유년기의 끔찍한 기억이 있는 곳으로 주인공이 돌아가잖아요.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서나, 공포의 근본적 원인을 제거해서 미래로 나아가고 싶다는 일념 하에요. 저는 그런 마음이 이해가 잘 안 갔어요. 지금도 잘 살고 있었는데, 굳이 그걸 마주봐야하는 이유가 있을까?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과거에 붙잡히러 가는 길 같아서 왠지 더 꺼려지고 무섭더라구요. 이것도 영화의 무서움을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인지, 아니면 그냥 제가 주인공과 전혀 다른 부류의 인간인지 궁금했어요.
유년과 악몽이 겹치는 곳이나 사물을 다시 마주한 적이 있으세요? 저는... 안 좋은 기억은 다 잊어버린 것 같아요. 어릴 때 은행 정수기에서 온수 버튼을 잘못 눌러 손목을 데인 적이 있는데, 그 때의 흉터는 아직 있지만 저는 기억이 전혀 없어요. 저는 다 잊어버리는 쪽인가봐요.

jena
안좋았던 상황이 기억이 다시 되지 않는건 그 문제가 내안에서 잘 받아들여졌기 때문이 아닐까?하고 생각되어요.
저는 공포스러움이라는 단어로 기억되는 상황이 있는데요
그것이 똑같은 상황에서 그 감정이 느껴질때도 있겠지만,
뜬금없이 그 느낌이 불러 일으켜지기도 하더라구요.
이런건 해결이 않되었다기보다 감정과 상황의 연결이 뇌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닐까하고도 생각되어요.
이럴때면 뇌과학에대한 궁금증이 마구마구 올라오곤 하네요.ㅎㅎㅎ

하금
별과 우물로 만들어진 이름이 너무 궁금해서 오늘치 기억을 다 읽자마자 검색창에 이런저런 검색을 해서 동네 소개글을 찾아봤어요. 충남 천안의 성정동일까, 싶은데- 검색을 다 끝내고나니까 ‘이렇게 파헤치는 느낌이 들면 안 될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기는했지만... 너무 궁금하더라구요.

jena
저도 별우물이라는 뜻의 동네가 궁금했는데요..
천안성정동 이라고 생각할 수 있군요..ㅎㅎㅎ
어릴적 학교에서 선생님이 내주신 조별과제가 생각나기도 하네요.
우리동네에대해 조사해서 발표하는 숙제였어요.
그때는 지금같이 정보가 다양하지 않아서 주위 어른들을 직접 인터뷰하고 동사무소에 가서 묻거나 했던 기억들이
떠오르네요...

jena
4월 15일 (기억)
‘별우물’
오늘의 글은 옛날 살던 동네의 기억에 대한 글이었네요.
저도 어린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면 기억나는 동네가 있어요.
몇해전 그곳 주변을 지날일이 있었는데, 주위 동네 모습은 꽤 많이 바뀌었지만,
제가 살던 아파트도 그대로 있고 자주 가던 상가 건물도 그대로 있더라구요.
어린 시절 살던 곳의 기억들을 들추어 보는 것이 재미있네요.
작가가 살던 옛 집에는 쥐와 벌레가 많이 살았다니.... 좀 소름이 돋기도 했어요.
사자문양 문고리 이야기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나에게 강렬하게 남아있는 어린 추억은 무얼까?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일자식 복도를 줄줄이 자전거를 타고 돌던 친구,같은 층 언니들과의 시간도 생각나고요~
봄~이맘때쯤 예쁜 꽃들이 필때면 집주변에서 사진을 찍어주던 엄마와의 시간도 떠오르네요..
떠오르는게 별로 없을 것 같았는데...줄줄이 계속해서 생각이 끊이질 않네요..
내가 살던 곳은 무슨 뜻이었나? 싶어 찾아보니 평야라는 뜻을 가지고 있었네요.
이제야 알게 되네요.. 별우물이라는 곳의 이름 뜻과 함께요

jena
4월16일(일기)
‘4월 16일’
이날이 되면 기억해야만 하는 일이 있지요..
그날을 기억하고 아파해야했던 사람들을 떠올려 마음을 다해 함께 해주어야 하는 날이라는 것을 압니다.
오늘 책을 읽고 그 느낌을 기록하는 지금 저는 커피 볶는 냄새가 가득한 공간에 있는데요..
냄새가 너무 가득하니 조금은 힘에 버거운 것 같아요.
이렇게 누군가는 힘든 기억의 냄새가 조금이라도 떠오르면 더 아파서 내버려두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 같아요. 또 어떤 사람들은 그 기억을 꺼내 함께 말하고 나누고 함께 울고 웃으며 그렇게 그 아픔을 나누어야 하는 분들도 계실 것 같아요..
각각의 아픔을 대하는 방법을 잘 인정해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어요...
아픔을 함부로 대하지는 말고요....
가방에 달아놓은 노란 리본을 떼어간거라면? 하는 생각을하자...
그 장면이 아주 느린 움직임으로 지나가는 영상같이 보이는 것 같았네요
그 마음~ 아픔을 기억해두고 싶어서 몰래 가져간 것이면 좋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해보게되어요
날이 너무 좋은 날인데~~~ 아픈 기억이 존재하는 4월, 그리고 5월...
그러고보니
모든 시간에는 좋은 날, 힘든날, 아픈날....모두 함께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당연한 이 생각을 오늘의 글을 읽으며 하게 되는 오늘은 좋은 날입니다.

하금
그래. 악어는 물과 육지를 다닐 수 있으니까. 5년 전 그날, 내가 원했던 건 악어의 영혼일지도 모르겠다.
『달걀은 닭의 미래 - 양안다의 4월』 p.92 (4월 16일의 일기, 4월 16일), 양안다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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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금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아요, 누군가가 귓속말을 속삭이고 사라진다 꽃줄기를 씹어 먹던 중환자들이 동시에 우릴 쳐다보는데
『달걀은 닭의 미래 - 양안다의 4월』 p.92 (4월 16일의 일기, 4월 16일), 양안다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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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금
저는 4월 16일에, 그 해의 4월 16일에 시험을 앞두고 모아두었던 수행평가지 파일을 잃어버렸어요. 사회 과목이었던 것 같아요. 수능을 안 보고 대학에 가고 싶어서 내신에 열심이었는데, 그래서 그걸 잃어버리면 안 되는데. 간수를 잘 할 걸. 청소년기의 예민한 성격에 짜증스러움이 더해지니까 막 울음이 났어요. 거실에 있던 낮은 테이블 끝에 걸터앉아서 엉엉 울다가 무슨 일이신지 걸려온 전화를 받았는데, 아빠였어요. 저희 아빠는 (지금은 많이 물렁해지셨지만) 정말 엄하고, 또 살가운 행동은 먼저 못 하셔서 전화 하시는 일이 거의 없거든요. 제가 엉엉 우니까 놀라셨는지 "왜 울어?"하시던 목소리가 어렴풋이 기억 나요. 제가 수행평가지를 잃어버렸다고하니까 한숨 반 웃음 반 섞인 숨을 쉬시더니, "너는 애들이 죽었는데, 그걸로 울음이 나니." 하시더라고요. 그 말 뒤로는 그 날의 기억이 없어요. 그냥, 아마도, 무슨 말씀인지 되묻고 뉴스를 보고. 그러고도 실감이 안 나서 멍했던 것 같아요.
저는 죽은 사람을, 죽은 사람을 추모하는 사람들을, 추모하는 행위에 동참하고 싶은 사람들을, 추모의 감정을 일상에 간직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혐오하는 방법이 있을거라곤 상상도 해보지 못했어요. 10대에서 20대가 된 지금은 감히 제 상상을 뛰어넘는 그 혐오가 너무 다양해져서 이제 넌더리가 나요. 그래서 더 어릴 때는, 20대 초반까지는 차라리 눈을 돌려버리거나 바락바락 화를 냈어요. 그러다 작년 말 즈음부터 방법을 바꾼 것 같아요. 똑바로 쳐다보고 말하기로 맘을 바꿨어요. 우리가 감히 말 섞기도 싫어서 아예 말을 안 하니까, 이 사람들이 정상적으로 사고하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아예 잊었나보다 싶었어요. 그래서 요새는 인터넷에서 참 말을 많이해요. 바락바락 덧글도 남기고, 눈쌀 찌푸리게 만드는 사람들은 꼬박꼬박 신고도 해요.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잖아. 산 사람은 살아야하잖아. 위로가 되어야 할 말로 추모의 행렬을 가로막는 사람들의 얼굴을 생각해봤어요. 사람들은 언제나 정답이고 싶어서 위로의 뉘앙스를 잊은 것 같아요. 산 사람은 살아야하니 죽은 사람이 돌아오지 않는 걸 알고서도 추모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이해하지 못 하겠으면 침묵하면 좋겠어요.

jena
4월16일은 개인적으로도... 기억에 남는 날이시네요
어제 하금님 글을 읽고는~
뉴스를 보게되었는데..
남아있는 가족들에게 좋지못한말들을하는. .것에대한 내용이 나오더라고요.
저는 그정도로 심한줄. .그정도까지는 생각하지못한것같아요
사람이 말이라는것, 글이라는것으로 옮기는것. .에 생각하게된 시간이었어요
잘말하고~ 잘 쓰고 해야할텐데요..

하금
바다를 깊이로 이해하지 않는다면
바다를 넓이로 이해할 수 있다면
『달걀은 닭의 미래 - 양안다의 4월』 p.98 (4월 17일의 시, 정확한 고립), 양안다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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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금
심해의 깊이를 가늠해야하는 깊은 물이 아니라, 광활하게 끝이 어딘지 모를만큼 펼쳐진 물로 바다를 이해하면 꿈 속에서 아무도 익사하지 않을 수 있을까. 사람들이 감탄사처럼 말하는 ‘죽고 싶다‘라는 말에 담긴 진의는 (전에도 비슷한 말을 한 적 있는 것 같지만) 감각을 잠시 차단하고 싶다는 의미가 90%이상이라고 생각해요. 바다에 들어가고 싶다는 사람들의 말에는 그런 뜻이 담겨있지 않을까 싶어요. 어둡지만 편안한 공간에서 부유하고 싶어. 빛이라는 가장 원시적인 자극조차 없는 공간에서 둥실둥실 떠다니고 싶어. 화자는 그런 사람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싶어하는 것 같아요. 물 속이 아니라 수면 위에서 떠다니라고. 거기서 최소한 해는 보라고. 바다의 밑바닥에 뿌리를 내리고 수면 위로 가지를 뻗어올리는 나무를 보면서요.
언젠가 어느 글에서, 사람은 모두 양수에서 태어나기 때문에 바다를 생명의 근원으로 생각한다는 말을 읽은 적 있는 것 같아요. 정말 그럴까요? 오감을 차단하고 부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 심해를- 혹은 바다를 꼽는 사람이 우리나라에 얼마나 있을지 궁금해요. 우리는 전통적으로(?) 죽어서 땅에 묻히잖아요. 화장 후 유골함을 납골당에 보관하거나, 수목장을 선택하거나 아니면 뼛가루 채 물이나 공기에 흩날리는 선택지는 그보다는 조금 마이너한 것 같아요.

하금
살아남자고 이야기하는 시에 덧붙이는 질문으로는 부적절하지만, 혹시 죽고난 뒤에는 어떤 장례 서비스를(*적절한 표현인지 모르겠네요) 선택하고 싶으세요?
저는 왠지 수목장이 좀 끌려요. 나무가 되거나 아니면, 꽃밭의 꽃이 되도 좋을 것 같은데 그런 장례 서비스가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뼛가루로 보석을 만들어주는 서비스는 본 적 있는데 누가 저를 장신구처럼 차고 다니면 왠지 좀 어색할 것 같아요. 램프의 지니처럼 소원이라도 들어주거나, 할리우드에서 만든 해적 영화에 나오는 ‘영혼이 든 보석 장신구‘처럼 비범하고 음험한 힘을 내뿜어야할 것 같은데 왠지 제 영혼에 그만한 힘은 없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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