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어릴 때는 편지를 형식적으로, 그냥 자라면서 바왔던 사람들의 선물에 항상 편지가 끼어있길래 나도 그래야 할 것만 같다는 의무감이 들어서 썼던 것 같아요. 정말 하고 싶은 말이 생겨서 편지를 쓴 건 스무살이 넘어서 부터니까 그 전까지 썼던 편지들에는 아마 형식적인 말들, 진심과 겉치레가 섞인 말들이 더 많았을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은 어릴 때 더 순수했다고 하지만, 극심한 내향인이고 인정 욕구가 강했던 저는 되려 어렸을 때 더 겉치레에 많이 신경 썼거든요. 아마 고등학교 졸업 전에 쓴 편지들에는 거짓말이 많을거에요.
'선물'이라는 장르 안에 담긴 오늘의 글은 지원을 위해서만 쓴 글은 아니지만, 결국 지원에게 닿았고 또 지원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과 마음이 오롯이 담겨있다는 점에서 편지처럼 느껴졌어요. 지원은 이런 글을, 또 정말 편지로 쓰인 편지를 받고 타인이 보는 나를 차근차근 퍼즐처럼 맞춰가며 하나의 그림이 완성되기를 기다리는 유형의 사람일까요 아니면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가장 나다운 결정을 내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일까요. 저도 지원이 어떤 음악을 듣는지 궁금해진 것 같네요.
〔날 수를 세는 책 읽기 ㅡ 4월〕 달걀은 닭의 미래다
D-29

하금

jena
하금님의 글을 읽으니..엄청나게 많이 모아둔 편지상자를
몇년전 정리했던 일이 생각이나네요
초등학교 고학년~중.고등학생때까지
정말 많은 편지로 친구,후배.선배들과 소통했었던거같아요
내용은 뭐 일상이 이랬는데 네가 참좋고, 생각이나서~
이런내용이 가득했던것같은데. .
그때는 내용도 그렇지만,
편지를주고 받는 특별한 사이라는것이 좋았던것같아요

jena
하금님의 글을 읽으니. .지원의 표정과 말투가 떠오르는 느낌이에요.
진짜~ 지원은 어떤 음악을 듣고 좋아하는 사람일까요?~^^

하금
어쩌면 어린 우리에게 위험한 장소일 수도 있었지만, 그곳에선 무엇을 하더라도 들키지 않았으므로,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안전한 장소가 되었다.
『달걀은 닭의 미래 - 양안다의 4월』 p.122 (4월 22일의 산문, 탄 냄새) , 양안다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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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금
어릴 때 친구들과 공유하는 아지트 같은 장소가 있으셨나요? 저는 사실 어릴 때는 지금보다도 친구가 더 적어서 그런 공간이 딱히 없었던 것 같아요. 나이가 두 자릿 수가 되기 전에는 ‘블럭방‘이라고 아이들기리 모여서 레고를 하도록 만든 어린이 공방 같은 느낌의 공간이 있었는데, 아마 그곳이 나름의 아지트가 아니었나 싶어요. 동네 친구들은 다 거기 있었거든요. 그 다음에는 미술 학원, 피아노 학원, 역사 논술 학원... 지금 가장 친한 친구는 고등학교 수학 학원에서 만났어요. 수학을 싫어하는 애들끼리 잘 만난거죠. 그 때는 학원 근처 분수대랑 빙수 가게가 아지트였어요. 저는 시인처럼 공텉나 뭔가 후미진 곳의 기억은 잘 없는 것 같아요.

밝은바다
아주 어린 나이는 기억나지 않지만(아마도 동네 놀이 터였을 것 같아요) 지금보다 어린 20대때 아지트는 기억나요. 동네 호프집이었고, 거기서 하금님이 해주신 얘기처럼 시시콜콜한 얘기, 전에 했던 얘기를 삼십팔번째하며 웃고 떠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jena
시시콜콜한 이야기~ 삼십팔번째하며~에서 웃음 가득이 되었습니다.
정말 같은 얘기해도 또 하게되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런 친구들과 나누던 시간~~ 생각만해도 웃음나고 좋은거같아요..

jena
요즘 학원에가지않으면 친구 사귀기도 어렵다는...말이 생각나네요..
블럭방~ 레고하는 공간이 아지트셨군요^^

jena
공터~~
참 괜찮은 말인것같아요
아무것도 없고, 있어도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터..
어린아이들 뿐 아니라
이런 공간이 우리에게도 필요할텐데요..

하금
다양한 방법으로 시간을 떼웠지만 주된 목적은 대화였다. 사실 대화를 하려고 거기까지 갈 이유는 없었지만 우리만의 공간에서 떠들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었다.
『달걀은 닭의 미래 - 양안다의 4월』 p.123 (4월 22일의 산문, 탄 냄새) , 양안다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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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금
지금만큼 사람들 앞에서 편해지기 전에는 다들 친한 사람들과 만나면 뭐를 하는지가 그렇게 궁금했어요. 무슨 얘기를 나누는지, 그리고 더 나아가 친구가 내 앞에서 짓지 않는 표정을 짓는지도 궁금했고요. 제발 내 앞에서 친구가 편하기를 간절하게 바랐던 것 같은데 지금 돌아보니 그것도 참 이상한 강박이네요.
여러 이야기를 들어본 결과, 주제가 다를 수야 있지만 다들 참 시시콜콜한 얘기를 잘 하는 것 같아요. 저는 지난주 즈음 만난 친구와 ‘미국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들은 집에서 립글로스를 만들어서 판다니까?‘라는 문장 하나로 2시간을 떠들었어요. 그 전에는 아마 ‘너무 인간 같은 인공 지능 로봇이 인간을 살해하면 그건 살인 사건인가, 가전 제품 사고인가?‘라는 주제로 떠들었던 것 같아요.

jena
시시콜콜한 얘기로 보이는것에
재미와 진솔함이 숨겨져있기도 한것같아요.
지난주쯤 나누신 인공지능로봇 이야기는 꽤 진지한 이야기였는걸요~~~

하금
사람들 누구나 한 가지씩은 잘하는 게 있는 법이야. 모두가 타고난 재능이 있다고. 사람들은 그걸 찾지 못해서 다들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는 거야.
『달걀은 닭의 미래 - 양안다의 4월』 p.124 (4월 22일의 산문, 탄 냄새) , 양안다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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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바다
모두가 타고난 재능이 있다고. 사람들은 그걸 찾지 못해서 다들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는 거야.
『달걀은 닭의 미래 - 양안다의 4월』 <탄 냄새>, p.124, 양안다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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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na
4월 22일 (산문)
'탄 냄새'
요 몇일의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어린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되네요.
나에게 작가처럼 공터나 아 지트가 있었나?하고 생각하게되었어요
공터는 딱히 없었지만,자주 만나면서 뭔가를 탐구하는 정신으로? 시간을 보내던 사람들이 있었던것같아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함께 모여 뮤지컬, 밴드활동,말도 않되는 작곡..등등 지금보면 우스워보일수 있는 여러가지를 시도하며 시간을보낸것 같아요..
그러면서 청소년기의 나름 고민들을 이야기하고 뭔가를 바꿀수 있는 사람이 될거란 꿈을 꾸어가던 그런 시간을 보내던 기억이 떠올라 재미있었어요
그때도 작가의 친구처럼 숫자에 집착하는 친구도 있었고, 집에가기 싫어하던 친구도 있었네요.
무엇이 타들어가는 냄새같은 것이 나는
그런 청소년기의 냄새가 가득했던 시간이 떠오르네요

하금
우리의 산책에는 저녁이 없고 낮과 밤이 유일합니다
『달걀은 닭의 미래 - 양안다의 4월』 p.130 (4월 23일의 시, 호수의 골조), 양안다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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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금
서로를 등 지고 잠이 든 두 사람. 저녁이 없는 낮과 밤. 반으로 조각난 희망과 절망. 이렇게 반으로 뚝, 잘라낸 모습이 반복 되다보니까 저는 "문을 온전히 열어두지 말아요"라는 말이 시 전체 분위기에 맞지 않는 이질적인 존재로 느껴졌어요. 아예 열거나, 혹은 닫거나 이 두 모습 중 하나가 나와야 될 것 같았는데, 바깥으로 열리는 문은 애매하게 조금은 열고, 조금은 닫힌 채로 두잖아요. 칼 같이 나누어졌던 두 세계를 부드럽게 이으려는 시도인걸까요? 다른 분들은 어떻게 읽으셨나 궁금해요.

하금
희망과 절망을 반으로 조각내겠습니다 문을 온전히 열어두지 말아요
『달걀은 닭의 미래 - 양안다의 4월』 p.130 (4월 23일의 시, 호수의 골조), 양안다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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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na
4월 23일 (시)
'호수의 골조'
'너의 이름과 이름의 뜻을 발음해보았다'
익숙하게 불러오던 것을 입에넣어 발음하고 귀로 다시 주의깊게 들어보는것...그것이 주는 새로움과 감동이 있던 그런 순간들이 있는것 같아요
그래서, 그렇게 발음해본 단어가 뭐였지? 생각하다가
내가 아는 사람들의 이름을 떠올리게되었네요
글속 작가처럼요~^^
4월의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는
글을 헤집어 놓고 싶은 생각들이 자주 들어요.ㅎㅎㅎ
여기저기 흩어진 무언가를 다시 꼴라주하듯
짜맞추어야만 할 것 같기도하고요~^^
오늘의 글에서는 Ooo하기로 끝나는 문장이 눈에 들어왔어요
하수구로 떨어지겠지 너의 영혼처럼 춤추기
ㅡ길을 잃어가고 있어요
가라앉는 보트에서 먼저 도망치지 않기
ㅡ잃을 것도 없고
세상의 절반 사랑하기
인간의 절반 증오하기
ㅡ조금 열린 채로 조금 닫힌 채로
네가 두팔을 벌리면 호수가 펼쳐진다
~문을 온전히 열어두지 말아요
이렇게 적어놓고보니
딴지거는 말로도 보이네요...^^
이렇게 글을 읽다보면 가끔 쳇~~하는 말이 나오기도하는데요
그런데 밉지는 않네요ㅎㅎㅎ

Edna
4/9 ~ 4/24
그림자를 키우는 식물. 팬데믹 동안 재택근무 + 제한된 외부활동으로 식물 집사의 길로 접어든 사람들이 많아졌었는데 덩달아 그 늪에 빠졌어요. 창가 앞 작은 선반에 있던 화분 서너개가 급속도로 증식했었는데 초보에겐 식물이 아니라 손에 잡히지 않는 그림자를 키우고 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너무 많은 그림자들이 식물을 죽이는 게 맞는지 식물들이 많이 떠났어요. 팬데믹 잦아든 몇년 후 지금, 몇개만 잘 버티고 남았어요. 내가 아닌 식물이 키우는 그림자는 잘 큽니다.
나 죽을 때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소설가 지망생들 앞에서 죽고 싶다고 늘 말했었는데 - 그들에게 강렬한 소재를 던지고 싶다는 어이없는 과한 욕심에 - 책 좋아하는 사람은 비슷한 면이 많구나 싶었습니다. 학교 다닐 때 도서관에서 거의 살았던 거 같아요. 공부하는 도서관말고 책 읽는 도서관. 고등학교 까탈스럽기로 유명한 사서 선생님의 예쁨을 많이 받았던 기억이 나요. 대학교 도서관은 졸업 후 수십년이 되었는데 졸업생 대출증 끊어서 지역 도서관에서 찾지 못하는 책을 구해서 읽고. 도서관은 영원한 마음의 안식처입니다. 옛날에 서점도 그러했는데 (광화문 교보 특히) 요즘은 책을 거의 온라인으로 구매하거나 책을 사지 않고 주로 빌려보게 되면서 안 가게 된 것 같아요. 그래도 보낸 시간이 많다보니 도서관이나 서점이나 추억은 어마무시하게 많습니다.
미래를 안고 오는 피크닉. 한참 생각했어요. 아직도 생각 중이어요.
어른이 된 후의 악몽이란, 공포스러운 분위기에서 헤매는 것이 아니라 학창 시절로 돌아가서 시험 보거나, 프레젠테이션 준비하는데 일이 자꾸 꼬이거나, 출근해야 하는데 버스가 오지 않아 조바심에 쩔쩔매거나, 지독하게 현실적인 상황들이 펼쳐져서 아침에 일어나자마나 두통약을 삼켜야 하는.
1년 중 가장 힘든 한 주가 4월 한가운데에 있다. 그 해 그 날 잊지 못함. 언젠가 이에 대해 글을 쓸 수 있겠지만 아직도 아닌 것 같다. 못하겠다.
달걀은 닭의 미래인데 달걀도 닭도 전혀 언급되고 있지 않아요. 그래서 한참 생각하게 되죠. 달걀 => 콜럼버스 => 이사벨 1세 => 아메리카 => 미국 => 아 미국 요즘 우리처럼 정말 엉망진창이지 => 기타등등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결국 정말 달걀이 닭의 미래가 되는 흐름을 타게 되어버렸어요. 아하. 이런 거구나.
누군가를 처음 만났는데 학교 어디 나왔는지 무엇을 하는지 어디에 사는지 나이가 몇인지 전혀 궁금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음악 듣는지 궁금하다는 것 이해합니다. 나도 궁금해요. 어떤 음악 듣는지. 혹시 인생 책, 인생 영화 있는지. 단번에 말해주는 사람들도 있는데 대답 못하는 사람도 많아요. 그런데 그런 사람들 있어요.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생각해보겠다고. 그리고 대화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 한참 후에 '생각났어요'라며 말해주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 좋아합니다.
음악적 재능 조금이라도 있었으면 락음악 한다고 설쳤을 겁니다. 왼발로 캐스터네츠, 플루트가 있는 밴드. 많이 웃었어요. 그럴 듯하잖아요. 상상만해도 즐거워요.
마음을 투명하게 보여주는 사람 아직도 못 만나본 것 같습니다. 심지어 가족도. 날카로운 빛보다 둔한 어둠이 편할 것 같아요.
...
끄적인 글 수정없이 그대로 올립니다.
@jena 님 + 다른 분들 글 다 읽고 있습니다. 덕분에 도서관에서 신이인 시집 '검은 머리 짐승 사전'을 빌렸어요. 문체가 마음에 들어 다른 책도 빌려보게 될 것 같아요. 추천 고맙습니다.
드디어 날씨가 많이 풀렸죠. 어디선가 본 짤인데 한국 이제 계절이 여섯이라고. 시원한 여름 - 여름 - 미친 여름 - 따뜻한 겨울 - 겨울 - 미친 겨울. ㅎㅎ 이 시원한 여름에 건강 조심하시길. 마지막 주에 글 다시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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