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역서가 아니라 한국에서 기획 편집으로 만든 책이니까 그런 점은 높이 삽니다. 기획 아이디어를 출판사에서 냈는지, 홍성욱 선생님이 냈는지는 모르겠지만 후자였다 하더라도 그 아이디어를 기꺼이 받았다는 점에서 감사하네요.
이음출판사가 과학 계간지 에피도 내고 있어요. 주일우 대표님은 학부에서 생화학을, 석사는 과학사를 전공하고, 케임브리지대에서 환경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문학과지성사 대표도 지내시는 등 과학과 인문학 양쪽에 조예가 깊은 분이세요. 과학평론가로 활동하기도 하셨고요.
12주에 STS 관련 책 12권 읽기 ① 과학에 도전하는 과학 (브뤼노 라투르 외)
D-29

장맥주

borumis
오 이음출판사가 이런 출판사였군요. 안그래도 브뤼노 라투르 책들이 여기서 많이 나왔고 최근 '작가와 작품을 분리할 수 있는가?'라는 책이 나왔길래 관심 갖고 있었는데.. 이 잡지도 제 취향 저격이네요.

장맥주
국내 유일의 STS 잡지 아닌가 싶은 <과학기술과 사회>도 살며시 추천해 봅니다. 홍성욱 선생님이 편집장이세요. 홍 선생님은 <서울 리뷰 오브 북스> 편집위원이기도 하신데, 이 두 잡지는 모두 알렙 출판사에서 나오네요.

과학기술과 사회 7호 - 과학기술학과 사회 정의7호의 특집 주제는 ‘과학기술학과 사회 정의’이다. 인공지능의 발전과 같은 정보혁명, 유전체학과 생명공학을 비롯한 생의학적 혁신 등, 과학기술의 급격한 발전은 그 이면에 새로운 형태의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인공지능은 데이터세트가 사회적·역사적 불평등을 그대로 반영할 때 기존의 사회적 편견을 강화하고 재생산하며, 의료 분야의 혁신은 최첨단 치료에 대한 접근성의 차등적 분배에 따른 건강 불평등 문제를 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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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umis
감사합니다. 방금 에피 잡지를 하나 장바구니에 담았는데 ㅎㅎ 또 주섬주섬 담으러 갑니다.

새벽서가
이과인 보루미스님이 재미없고 딱딱하게 느끼셨는데, 문과와 예체능과인 저는 어떻겠어요. 서문 읽고 기대했다가 도입부 꾸역꾸역 읽고 있는데, 흰건 화면이요 검은건 글씨로다 수준입니다. ㅠㅠ

borumis
아니 아까 해러웨이에서도 말했지만 여기 이 학문은 별로 이과 문과 전공 차이가 없습니다만;; 오히려 앞의 두 대담자들도 보면 다 문과(철학/인류학, 법학) 출신이고 실제로도 이 분들 글 보면 사회학이나 철학 하신 분들이 보면 더 이해가 잘 갈 것 같더라구요^^;; 저야말로 무식한 이과생이어서 가끔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게 맞나?하고 그냥 술술스리슬쩍 넘깁니다 ㅎ

siouxsie
놀랍게 저도 이과예요! ㅎㅎㅎ
근데 그게 제 인생 최대 실수였고요. 나중에 문과로 전향했습니다

borumis
마찬가지로 그 다음 쉴라 재서노프의 인터뷰도 같은 학술지 'Engaging Science, Technology and Society'에 게재되어 있군요. pdf 링크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s://estsjournal.org/index.php/ests/article/view/226/142
여기서도 마틴 피커스길의 짧은 소개글 ST&S가 한역본에는 빠져 있는데 제 생각에는 이 인터뷰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인터뷰를 읽기보다 이 소개글이나 적어도 책에 있는 대담자 소개를 어느 정도 읽어보면 좀더 이해가 잘 되네요.
앞에 들어서는 글에서 말했듯이 두 논문을 제외하고는 모두 이 ESTS 오픈액세스 학술지 링크에 있으니 찾아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https://estsjournal.org/index.php/ests/issue/view/10
인터뷰어가 각자 다르기도 하지만 번역도 각자 다른 사람이 맡아서 다소 불균일한 번역이 될 수도 있어서 저로서는 원문을 볼 수 있는 게 좋네요.

siouxsie
“ STS가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STS가 쉽고 단순한 답을 제공하려고 애쓰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이 흑백이 아니라면 흑백 논리의 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학문이 명쾌한 흑백의 답을 내놓는다면, 이는 도덕적이지 못하고 정의롭지 않을 수 있다. 흑백의 답을 만드는 단순화 과정에는 배제되는 목소리가 있기 때문이다. ”
『과학에 도전하는 과학 - 과학기술학(STS)을 만든 사람들』 브뤼노 라투르 외 지음, 홍성욱 외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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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umis
이 문장이 저도 좋아서 밑줄 쳤는데 지금 읽고 있는 여러 자연과학 및 사회과학 벽돌책들이 실은 그 책들이 여러 다양한 각도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각자의 관점이 서로 상호작용하는 영향과 맥락을 두루 살피기 때문에 단순한 과정으로 요약하기도 명쾌한 정답을 도출하기도 어렵기도 하지만 그만큼 배제되는 목소리가 생기지 않도록 더 깊이 있는 분석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에 두꺼워지는 것 같아요. 그만큼 한 순간의 행동이나 의식상태(또는 무의식)조차도 그 뒤에 몇 천만년의 진화적 발달의 역사가 깔려있고 이는 미술감상이든 문학이든 역사의 어떤 사건이든 간에 쉽게 결론 내리기 힘들게 하는 것 같아요. 예전같았으면 '아, 그래서 답이 뭐냐고!'하고 신경질 냈을 것 같은데 이제는 오히려 그런 다소 불친절한 복잡함 속에서 다양한 상호관계를 발견하면서 어떤 지고한 아름다움과 조화를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borumis
'단순화 과정에는 배제되는 목소리가 있기 때문'을 읽고 여기에서 권보드래 작가의 삼월일일의 밤에서 이광수 등 애증의 작가들도 배제되는 일 없이 꼼꼼이 살펴본 게 생각났어요.

siouxsie
맞아요. 전에는 단순히 어떤 카테고리 안에 집어 넣어놓고 나쁜놈/좋은놈으로 편가르기를 했다면, 이젠 다각도로 보며 쉽게 단정짓지 않으려는 노력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얘기하다가 '어...어떻게 결론을 내리지.' 하고 속으로 생각하다 얼버무릴 때가 많네요;;;

드라이아이스
안녕하세요? 그믐에 처음 가입한 신입회원입니다. STS에 관심은 많은데, 책은 본격적으로 읽어본 적이 없네요. 제시해주신 길대로 잘 따라가보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장맥주
환영합니다. 저도 STS에 관심은 많은데 잘 모릅니다. 제가 누굴 이끌거나 가이드를 할 주제는 못 되네요. 같이 읽으며 서로 응원하고 모르는 대목에서는 함께 궁리하며 12주를 보내는 걸 목표로 하고 있어요.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

새벽서가
반갑습니다, 드라이아이스님!

장맥주
“ 인문학은 과학을 미워하는 걸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가장 강하게 저항했고, 과학이 사실 멋진 자원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지난 4~5년 동안의 작업 덕분에 지금은 STS를 활용하는 인문학 논문이 풍부합니다. ”
『과학에 도전하는 과학 - 과학기술학(STS)을 만든 사람들』 브뤼노 라투르 외 지음, 홍성욱 외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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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umis
실은 "트러블과 함꼐하기" 강의를 들을 때도 노명우교수님이 여기 강의를 듣는 대부분이 문과생이어서 (전 아닌데;;) 이과생 출신인 해러웨이의 책을 처음에는 접근하기 힘들 거라고 하셨는데.. 실은 이건 문과생의 잘못된 편견이 아닐까 싶습니다;; 전 오히려 수학이나 과학적 용어나 공식보다 해러웨이의 지나치게 은유적이고 추상적이면서 문학적인 표현이 어려웠는데;; 그리고 새폴스키나 도킨스처럼 내용 자체는 복잡하고 어려울 수 있어도 그 전달 방식은 매우 재미있고 이해하기 쉽게 표현하는 것도 많은데 인문학 쪽 사람들은 과학을 너무 어렵거나 딱딱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밑줄치신 문장 뒤에 "이제는 분야를 막론하고 과학자적 태도를 벗어나려는 혁신적인 사람들에게 STS가 쉬볼레트가 되었죠"라고 하는데 우선 과학자적 태도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런 태도를 벗어나려는 게 과연 혁신적인 건지, 아니면 그저 '튀고 싶은' 게 아닌 건지에 대해 의문이 생깁니다.

장맥주
제가 쓰고 싶은 말을 대신 써주셨네요. 해러웨이의 인터뷰나 글을 조각조각 읽을 때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자기가 전달하고 싶은 명확한 메시지가 과연 있는 걸까, 그런 메시지가 있다면 그걸 이렇게까지 과하게 현학적으로 표현하는 이유는 뭘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신문사 편집국에서는 누가 이렇게 글 써오면 박박 찢어버립니다. 이런 글쓰기가 이과생의 특징은 전혀 아닐 텐데요.

borumis
ㅋㅋㅋ 제 말이.. 노명우교수님이 생물학과 출신이어서 우리 문과생들은 이해하기 좀 힘들 수 있겠다고 하시는데.. 제가 '아니거든요!! 이과생들 중 이렇게 말하는 사람 아무도 없거든요!!'하고 외치고 싶었다는;;
아니 저도 해러웨이 말처럼 kin을 넘어선 전 생물체를 향한 사랑 다 좋고 동의하지만.. 그렇게 중요한 메시지를 왜 그렇게 어렵게 포장해서 첫장부터 집어던지고 싶게 만드냐구요;;; 문학적인 표현이 과학과 인문학의 소통을 오히려 더 어렵게 하는 케이스 같아요;;

장맥주
말 나온 김에... 그런 문장이 문학적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그냥 현학적(신문사 편집국에서는 '쓰레기'와 동의어)이라고 생각해요. ㅠ.ㅠ
그런데 노명우 교수님은 학부, 석사, 박사 전부 사회학을 전공하셨을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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