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주에 STS 관련 책 12권 읽기 ① 과학에 도전하는 과학 (브뤼노 라투르 외)

D-29
STS 학자들은 '진리', '법칙', '지식' 같은 만만찮은 표현들에 압도당하는 대신, 지식은 어떻게 생산되는지, 진리의 지위는 어떻게 획득되는지, 물리 법칙은 어느 역사적 시점에 등장했는지 적극적으로 되묻는다. STS의 관점에서 과학이란 인간을 초월하는 진리가 아니라, 특정한 시대적·문화적 조건에서 이뤄지는 열려 있는 실천이다.
과학에 도전하는 과학 - 과학기술학(STS)을 만든 사람들 브뤼노 라투르 외 지음, 홍성욱 외 옮김
실천으로서 과학을 이해하는 데에 자연과 사회의 이분법, 혹은 과학과 기술의 엄격한 분리는 방해가 된다.
과학에 도전하는 과학 - 과학기술학(STS)을 만든 사람들 브뤼노 라투르 외 지음, 홍성욱 외 옮김
STS의 오랜 슬로건 '달랐을 수도 있다(It could be otherwise)'는 여전히 STS 사고방식의 근본을 이룬다. 과학은 한 장소와 순간에서 특정한 인간과 비인간, 물질과 담론이 얽히는 실천이며, 실천이 달라지면 실재도 달라진다. 단일하고 보편적인 실재란 존재하지 않는다.
과학에 도전하는 과학 - 과학기술학(STS)을 만든 사람들 브뤼노 라투르 외 지음, 홍성욱 외 옮김
유명 물리학자가 '물리학은 우주 전체에서 통용되며 외계인도 우리와 같은 물리학을 한다'고 자신있게 설명할 때 그와 반대로 외계인의 별난 과학을 상상해 보는 것이고, 어느 진화 심리학자가 수컷이나 암컷의 '생물학적 본능'에 대해 가르칠 때 '본능'이라는 게 정확히 어떻게 정의되고 측정되었는지 궁금해하는 것이다.
과학에 도전하는 과학 - 과학기술학(STS)을 만든 사람들 브뤼노 라투르 외 지음, 홍성욱 외 옮김
외계인의 별난 과학을 상상해보는 만화들..ㅎㅎㅎ 제가 좋아하는 랜들 먼로의 xkcd에서는 항상 별난 과학을 상상해봅니다. 랜들 먼로도 STS학자? 그리고 진화심리학자들의 그 '본능'이란 게 정확히 어떻게 정의되고 측정되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많은 페미니스트 생물학자들이 요즘 패러다임의 전환을 일으키고 있는 것에 대해 좋은 책으로 루시 쿡의 '암컷들'을 추천해요. 아주아주 흥미롭습니다.
암컷들 - 방탕하고 쟁취하며 군림하는마다가스카르의 정글과 케냐의 평원, 하와이나 캐나다의 바다 등을 종횡무진 모험하면서, 진화생물학의 최전선을 걷고 있는 연구자들을 만난다. 바람둥이 암사자, 레즈비언 알바트로스, 폭압의 여왕 미어캣, 여족장 범고래 등 수컷보다 방탕하고 생존을 위한 투사로 살아가며 무리 위에 군림하는 자연계 암컷들의 진면목을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텔링으로 펼쳐 보인다.
중요한 점은, '달랐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개입과 변화의 가능성을 수반한다는 것이다. 과학기술의 지금 모습이 필연적이지 않으며 더 견고하고, 공평하고, 민주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감각은 원하든 원치 않든 도덕적인 책임감을 부과한다. 이런 점에서 STS는 학문적인 태도뿐만 아니라 일종의 윤리 의식을 공유하면서 연결된 집단을 가리킨다.
과학에 도전하는 과학 - 과학기술학(STS)을 만든 사람들 브뤼노 라투르 외 지음, 홍성욱 외 옮김
한국의 STS가 처해 있는 상황은 여러모로 서구와 다르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정치 성향을 막론하고 기후 변화나 진화론을 부정하는 세력이 크지 않다. (...) 다만 동시에 한국은 그만큼 과학주의가 강한 나라다. 단기간에 급속한 산업화와 기술 발전으로 경제 성장을 이룬 만큼, 과학을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으로 보는 실증주의 태도가 굳게 자리잡고 있다.
과학에 도전하는 과학 - 과학기술학(STS)을 만든 사람들 브뤼노 라투르 외 지음, 홍성욱 외 옮김
오늘날에는 많은 국내 학자가 성장 지향적인 과학관을 비판하며, 과학기술 개발에서 윤리 의식을 제고하자고 외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대중과 정치인에게 STS의 발언권은 국가의 과학기술 성장을 늦추지 않는 선에서만 허락되는 것 같다.
과학에 도전하는 과학 - 과학기술학(STS)을 만든 사람들 브뤼노 라투르 외 지음, 홍성욱 외 옮김
STS 연구자에게는 적어도 두 가지 큰 강점이 있다. 첫째는 사회 혹은 사회적인 힘을 설명적인 자원으로 여기기보다는, 현장 연구를 통해 해명해야 하는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 둘째로, STS 학자는 늘 연구자로서 자신의 위치에 대해 성찰한다. (...) 이들은 외부에서 현장을 투명하게 목격하기보다는, 어떻게 그 일부로 '연루되어', "다른 행위자들 그리고 현장과 연결되었는지" 상세하게 드러내고 그 함의를 논한다.
과학에 도전하는 과학 - 과학기술학(STS)을 만든 사람들 브뤼노 라투르 외 지음, 홍성욱 외 옮김
@ssun 님 글대로 저도 마지막 두 글을 통해 정리가 되었네요. 안그래도 엮은이 말대로 다들 같은 주제를 두고도 각자 말이 달라서 (어쩌면 '트러블과 함께하기'나 '실험실 생활' 등의 저서에 대한 평을 떠나서 더 다양하고 근본적인 주제와 방향의 엇갈림이 있겠죠) 처음에 좀 갈피를 못 잡다가 갈 수록.. 아 이 사람들 각자 자기 생각대로 솔직히 말하는 편이구나..말 그대로 정해진 답이 아니라 'It could be otherwise'라는 태도를 실천하는 사람들이라는 걸 글로 느꼈습니다. 다음은 그 '이해하기 힘든 학술적 방언(jargon)'을 잔뜩 늘어놓는 현학적인 학자로 볼 수 있다고 홍성욱 교수님이 얘기한 라투르의 책에서 또 뵙겠습니다.. ㅎㅎㅎ
라투르는 STS적 사고가 체화되어, 오히려 그쪽으로 생각하지 않는 걸 못하는, 무척 흥미로운 사람이었군요. 인류세를 살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STS의 미래라고 말하는 대목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인류세 연구자들은 STS 학자이거나, STS스러운 학자들이라고요.(작년 국제지질학회에서는 현 지질시대를 인류세로 규정하는 안건이 폐기되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합니다)
STS 사람들의 좋은 점은, 어디를 가도 똑같이 열렬하고, 젊고, 최근에 개종한 청년들을 볼 수 있다는 건데, 놀라운 일이죠. 제가 30살일 때는 40살 먹은 자들은 늙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제 68살이지만 젊은 사람들로부터 “당신의 연구를 발견했는데, 내 지도교수가 STS에 대해 아무것도 듣고 싶지 않아 해서 번거롭게 많이 싸웠습니다. 열심히 힘들게 투쟁했네요.” 하는 편지와 이메일을 계속 받고 있습니다. 굉장한 거죠. 이 분야는 말하자면 아직도 야만인들 가운데 있는 셈이지요. “저리 가, 전부 다 알고 있으니 나가.”라고 말하는 사람들 대신 젊은 개종자들을 보는 건 이 나이에 아주 기분 좋은 일입니다.
과학에 도전하는 과학 - 과학기술학(STS)을 만든 사람들 1장 | 브뤼노 라투르, 브뤼노 라투르 외 지음, 홍성욱 외 옮김
STS를 향한 믿음과 사랑, 소망이 느껴집니다.
다음에 읽어보고 싶은 책들도 남겨봅니다ㅎㅎ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이 책은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을 연구해온 인류학자인 저자 브뤼노 라투르가 근대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방식에 던지는 독특하고 근본적인 문제제기이다. 탈근대주의의 근대성 비판은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 라투르가 말하는 근대인의 본질은 이분법이 아닌 ‘하이브리드’의 증식이다.
지구와 충돌하지 않고 착륙하는 방법 - 신기후체제의 정치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브뤼노 라투르는 기후 위기뿐 아니라 점점 심화되는 불평등, 대규모의 규제 완화, 악몽이 되어가는 세계화로 인해 지구에 각종 위기가 엄습하는 이 시기를 신기후체제(New Climatic Regime)라 선언하며, 그에 적합한 정치적 도전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저도 읽어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브뤼노 라투르의 책이 정말 번역이 많이 되었군요.
홍성욱 교수님 계시는 과학학과 대학원에는 한 학기 내내 브뤼노 라투르만 읽는 강의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엄두가 나질 않아 청강은 못했지만요ㅎㅎ
선생님 말씀 듣고 찾아보니 정말 작년 8월 부산에서 인류세 결정이 부결되었네요. 기사에는 정치적인 문제가 원인인 것처럼 나오긴 했습니다만, 인류세가 기후위기 위기의식과도 연관된 문제란 점에서 아직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 같습니다. 인류세 문제 관심 두고 있었는데, 덕분에 결과 알게 되었어요. 감사합니다. https://www.hani.co.kr/arti/science/science_general/1156163.html
앗 이런 결정이.. 전 이제 당연히 인류세가 정착된 줄 알았는데 역시 기후위기와 같이 부인하는 회의론자들도 아직 많군요. 그나저나 agnostic (불가지론자) 에서도 쓰이는 agno-와 연관된 단어인 agnotology를 여기서 배우게 되네요. 기사에서 애그토톨로지라고 오타인 것 같은데 애그노톨로지가 맞을 듯 합니다. study of ignorance, 무지학, 또는 불가지학이라고 해야할까요? 정확하지 않거나 오해의 소지가 있는 과학적 정보에 대한 사람들의 사회 문화적 무지와 의심을 탐구하는 학문이라고 영어사전에는 나와있는데 아직 한국에는 정확한 번역어가 없는 듯합니다. 하긴, 한국에는 이렇게 기후위기에 대해 부인하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는 않은 듯합니다.
정말 궁금한 건 기후위기를 부인하시는 분들은 정말 그렇게 믿으시는 건가요? '어떤 이유' 때문에 선동을 그렇게 하시는 건가요? 정말 그렇게 믿으시는 거라면 좀 슬프지만, 어떤 목적이 있는 거라면...에라이~~
서양에는 꽤 많은 듯 합니다. 진화론이나 백신 등 각종 아몰랑(불가지론자?부인자?) 족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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