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증정] [번역가와 함께 읽기] 요모타 이누히코의 <계엄>

D-29
저도 지난 주말에 책을 완독했습니다. 처음에는 1979년 ‘계엄’ 상황을 다룬 책일 거라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계엄이 선포되기 1년 전쯤부터 외부인의 시선으로 본 서울의 모습과 당시 생활상이 더욱 많이 담겨 있어 새로웠습니다. 지금과는 많이 다른 강남·잠실·강북의 풍경을 묘사한 부분도 흥미로웠고, 통금 시간이나 일본어를 제대로 밝히거나 배울 수 없었던 시대적 분위기도 인상 깊었습니다. 끝까지 읽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자(주인공)는 일본인이지만 한국 사회에 대해 관심을 갖고 궁금해하며, 그럴 수밖에 없었던 당시 한국의 시대적 상황에 공감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일본인은 한국에 관심이 없거나 잘못된 편견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러한 인식 차이가 오늘날 양국의 시각·역사관 차이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겠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근 반세기 만에 똑같은 일이 한국에서 다시 일어난 현실은 너무 안타깝지만, 오늘의 상황을 나중에 외부인들은 어떻게 인식하고 느낄지도 궁금했습니다. 좋은 시기에 좋은 책을 읽게 되어 좋았습니다. 감사 드립니다.
서점에서 들고 온 스무 권 남짓한 서적은 대략 세 종류로 분류됐다. 한국의 현재를 불평 없이 예찬하는 책. 북한은 정통성이 있고 훌륭하지만 남한은 형편없는 나라라고 설파하는 책. 마지막으로 북에 대한 언급 없이 그저 현재 한국의 군사정권이 얼마나 억압적이고 비인도적인지를 강조하는 책. 저마다 입장이 다른 책을 연달아 읽고 나니 완전히 혼란스러웠다.
계엄 p.25, 요모타 이누히코 지음, 한정림 옮김
이 나라에서는 혼자서 밥을 먹는 일이 죄악인지, 아니면 엄청난 불행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계엄 p.45, 요모타 이누히코 지음, 한정림 옮김
식당에서 계산할 때면 항상 누군가가 다 계산했다. 비록 학생들끼리라도 각자 낸다는 습관은 없었다.
계엄 p.46, 요모타 이누히코 지음, 한정림 옮김
"선생님은 아시나요? 우리 외국어학과 학생들은 영어학과나 프랑스어학과에 미묘한 감정을 갖고 있어요. 열등감이라기에는 조금 다를지 모르겠지만 왠지 떳떳하지 못하고 복잡한 감정이에요" "우리는 일본어를 공부하는데도 외국어학과 학생으로서, 사람들 앞에서는 '외국어'를 공부한다고 말해야만 하죠"
계엄 p.53, 요모타 이누히코 지음, 한정림 옮김
@모임 이번 주말을 끝으로 함께 읽기가 끝납니다. [계엄]을 완독하신 분들은 @처음과끝 @Dennis 님이 올려주셨듯이 완독 후 소감 나눠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동안 좋은 글로 모임을 함께 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저도 완독했는데, 계엄에 대한 내용 보다는 70년대 일본인이 느꼈을 한국 상황이라는 점이 특이했습니다. 시대가 그렇다지만 학사졸업만으로 교수로 채용된 점, 박정희 정권에 대해 호의적이라는 점 등도 저에겐 생소했고요. 작가가 왜 박정희는 인정하고 전두환은 비판했는지 이유는 써 놓았지만, 한국인이 그 정권으로 인해 고통받은 점에 대해서는 잘 몰라 그렇게 썼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제가 평소에 볼 수 없었던 시각으로 쓰인 책이라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 이런 책 읽을 수 있게 방 열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박정희 정권에 대해 호의적으로 서술한 부분 번역하면서 몇 번이고 눈 비비며 다시 읽어봤어요. 심지어 다른 사람에게 제 번역이 맞는지 확인까지 햇었답니다. 함께 읽는 기간 동안 좋은 의견과 감상 나눠주셔서 감사했습니다. ^^
저는 오늘 주인공이 전라도에 여행을 다녀오는 부분을 읽었어요. 1970년대에 서울보다 더 낙후되어 있었던 전라도는 저도 상상이 잘 안 가는데 외국인의 시선에서 따라가는것도 색다른 재미가 있네요. 그런 시절에 한국을 올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주인공은 뭔가 편협한 사람은 아니고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으리라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한국인이 무조건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굉장히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실체를 잃어버린 채 편협하게 관념화되었다"는 평에 조금 뜨끔하면서 놀라기도 했어요. 대조적으로 주인공의 친구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보통의 일본 사람들처럼 한국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재단하려고 하죠. "군인과 기생 말고 뭐가 있냐"는 불만에 조금 부끄러우면서도 지금의 한국이 얼마나 변했는지 새삼 느껴지네요. 그시절 일본은 훨씬 선진국이고 한국은 이제 전쟁의 상처에서 회복중인 불안정한 개발도상국이었다면 이제는 한국과 일본이 거의 대등해진 것은 아닌지..그런 변화도 보였어요.
네. 독도 문제에 있어서는 일본의 진보적 지식인 그 누구도 작가 이상의 인식을 보여주질 못하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전라도 여행 부분이 번역하는 데 좀 시간이 걸렸는데 앨리스 님은 고비를 넘기신 것 같네요. ^^ 얼른 완주하셔요!
편지는 한꺼번에 세통, 네통씩 뭉텅이로 배달되었다. 한 번 개봉해서 문장을 검열한 후 풀로 치덕치덕 다시 봉인한 흔적이 선명했다. 불길했다. 아마 내가 일본으로 보내는 편지에도 같은 처리를 했겠지. 한 번에 여러 통의 편지가 도착하는 이유는 검열에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계엄 p.113, 요모타 이누히코 지음, 한정림 옮김
내가 이 나라에서 서툰 한국어만으로 살아남은 것은 결국 식민지 지배 종식 이후 남겨진 문화 잔재에 약삭빠르게 의존하며 기생한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계엄 p.117, 요모타 이누히코 지음, 한정림 옮김
"일본에서는 누가 영웅입니까? 일왕인 히로히토입니까?" "일본에서는 일왕이 아니라 천황이라고 하죠. 하지만 히로히토는 영웅이 아니에요. 존경할 만한 인물도 아니죠. 일본에는 한국과 달리 국민 전체가 신뢰하는 영웅따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요. 전쟁에 패하기 전에는 곳곳에 영웅이 살아고 신사 경내에는 군마를 탄 장교 동상이 어디든 있었는데, 전후에 그 동상을 없애버려서 군마 조각만 남았어요."
계엄 p.262, 요모타 이누히코 지음, 한정림 옮김
시신을 태극기로 덮는 것은 한국에서는 경의를 표하는 일이다. 일본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설령 '학생 의거'가 일어난다 해도 일본 활동가의 시신을 히노마루(일장기)로 덮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계엄 p.289, 요모타 이누히코 지음, 한정림 옮김
도쿄로 돌아온 나는 주변이 예전과 달라진 것 없다는 사실에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대학 시절 친구들은 누구 하나 한국에 관심이 없었고 내가 보고 들은 것을 말하면 아주 먼 나라 이야기처럼 시큰둥했다. 그들은 이 나라의 또래 젊은이들에게 중요한 문제인 징병제나 민족주의와 민주화 투쟁에 조금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박정희 대통령 암살은 매우 가난하고 더러운, 일본을 정말 싫어하는 나라라는 한국을 둘러싼 기존 고정 관념에 야만적이고 폭력으로 가득 찬,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나라라는 이미지 하나를 덧붙였을 뿐이다.
계엄 요모타 이누히코 지음, 한정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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