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의 위대함은 상당 부분 당대의 최첨단 분야에 몸담았던 것에 빚지고 있지 않나 싶네요. 갈릴레오의 업적이 이탈리아의 도시에 있는 대학교수라는 그의 위치 덕분에 최신형 망원경을 접하기 쉬웠던 것에 큰 도움을 받았다고 하던데, 역사 상 위인들의 업적은 그 자신의 천재성만큼 그가 딩시에 어디에 있었는가가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1. <세계를 향한 의지>
D-29

오도니안

오구오구
굉장히 공감됩니다. 사회적 문화적 맥락이 중요한거 같아요.....

향팔
갈릴레오 하니 생각나는데 @오도니안 님 말씀처럼 셰익스피어는 최신 과학 지식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았던 것 같고 또 그럴 수 있었던 환경에 있었나봐요. 정확히 기억이 안 나지만 햄릿이 오필리어한테 - 지구가 태양을 돌듯이 나도 너를 맴돈다? 대강 이런 대사를 치는데, 셰익스피어도 이미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을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얘기라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그린블랫 책에도 나온 그 인쇄소 친구가 책을 많이 구해주기도 했을 것이고요 ㅎㅎ

향팔
찾아봤는데 햄릿 대사에 지구가 태양을 돌듯 나는 너를 맴돈다 이런 얘기가 나온 건 아니네요(엉엉 비루한 기억력), 죄송합니다! 전에 읽은 역사책에서 햄릿의 ‘태양이 움직인다는 것을 의심하라’는 대사를 인용해 설명하는데 그 기억이랑 제 상상력이 엉켰나 봅니다. 인상적인 부분이라 아래 그 내용을 옮겨볼게요. 책도 참 좋은 책이에요 ㅎㅎ
그대는 별들이 불꽃이라는 것을 의심하라,
태양이 움직인다는 것을 의심하라,
진실조차 거짓일 수 있다고 의심하라,
하지만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것만은 의심하지 말아다오.
(그대는 별들이 불이 아닐까 걱정하노라,
그대는 태양이 움직일까 걱정하노라,
진리가 거짓말쟁이가 될까 걱정하노라,
하지만 나는 사랑한다는 것을 결코 의심하지 않으리니.)
-셰익스피어, 『햄릿』, 2막 2장
“그대는 별들이 불이 아닐까 걱정하노라. 태양이 움직일까 걱정하노라.” 셰익스피어는 우주에 대한 예로부터의 이해를 뒤흔들어놓을지도 모를 새로운 사상을 암시하고 있는가?
『햄릿』,(1600년경 출판)은 코페르니쿠스가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1543)에서 태양은 움직이지 않고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사실을 암시한 지 50년 이상 후에야 집필되었다. 이 이론들이 유럽의 일부 식자층 사이에서만 회자되었더라도 셰익스피어는 아마도 그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오필리아를 향한 햄릿의 애절한 고백이 분명히 보여주듯이, 이 이론들은 추측이나 이상한 수학적 가설로 생각되었다. 이 이론들은 전통적인 학설과는 절대적으로 상충되었고, 아주 중요하게는 상식과 관찰에 도전했다. (…)
하지만 여전히 소수의 사상가들은 의혹을 품었다. 셰익스피어는 갈릴레이와 같은 해인 1564년에 태어났다. 영국의 극작가와 이탈리아의 철학자가 작업을 하고 있을 무렵에 우주에 관한 지식을 수정하고 우주가 작동하는 방식을 설명하는 새로운 법칙을 발견하고자 하는 기나긴 과정이 진행 중이었다.
새로운 서양 문명의 역사(하)문명의 역사』는 14판(2002년)부터 3세대로 접어들었다. 주디스 코핀(Judith G. Coffin)과 로버트 스테이시(Robert C. Stacey) 두 사람이 공저자로 투입되었다. 이번에 새롭게 번역해 선보이는 『새로운 서양 문명의 역사』는 16판(2008년)을 원본으로 삼았다. 3세대 『서양 문명의 역사』의 초판격인 14판의 내용을 15판(2005년)에 이어 수정 보완한 책이다. 2세대 저자들이 빠지고 3세대 저자 두 명으로 지은이가 모두 바뀐 데
책장 바로가기

오도니안
저도 궁금했었는데 찾아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미있네요 !
별들이 불꽃이라는 것을 의심하라, 태양이 움직인다는 것을 의심하라, 진실조차 거짓일 수 있다고 의심하라, 하지만 내 사랑은 의심하지 말라~
그냥 평범한 수사로 읽을 수 있는데 향팔이 님 인용해주신 내용을 보니 지동설을 접해본 듯해요. 지동설이 그럴듯하게 느껴지지 않았어도 이런 게 다 논란의 대상이 된다는 말이야 하는 인상 정도는 충분히 받았을 듯 하네요.
그리고 햄릿의 사랑이 얼마나 믿을 수 있는지를 같이 생각해 본다면, 천동설이 맞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하진 않았을 것 같네요.

borumis
시쳇말로: 사랑은 움직이는 거얏! ㅎㅎㅎ

롱기누스
@오도니안 저도 완전 동의합니다. 빌게이츠의 환경이 없었더라면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즈는 나올 수 없었겠죠. 이런 맥락의 연장선에서 저는 성공은 운(luck)에 많이 의지하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연세대 김현철교수님도 이부분에 대해 개인적인 경험담을 ‘경제학이 필요한 순간’에서 한챕터 할애해서 설명했는데 꽤나 설득력있게 다가왔습니다. 마이클 샌델 교수님의 ‘공정하다는 착각’도 개인적으로 꽤나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었습니다.

오도니안
6장에 말씀하신 주제를 연상시키는 내용들이 많네요. 셰익스피어의 업적은 당시 런던의 호황, 선구적인 극장사업가들, 극작가라는 새로운 직업의 기회, 말로라는 동갑내기 선배의 영향력, 새로운 책들을 찍어내는 인쇄산업의 발전, 도덕주의적 성직자들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즐거움을 우선시했던 권력자들의 문화 등 여러 요인들의 영향이 종합된 것이죠. 물론 그 위에 셰익스피어 고유의 역량과 노력이 더해진 것이지만요.
밥심
옆집에서 소설집 <회색 여인>에 실린 단편 <마녀 로이스>를 읽다가 새삼 셰익스피어가 살던 시절에 마녀 사냥, 마녀 재판이 많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는데 셰익스피어 작품에는 마녀 사냥을 직간접적으로 다룬 희곡이 없는지요? 전작을 읽으신 @향팔이 님은 아실듯 하여..

향팔
@밥심 제 기억에는 마녀사냥 이야기는 없었던 것 같아요! 헨리6세에서 잔다르크를 악마에 씌인 광녀로 묘사하긴 하는데요, 실제로 마녀 혐의로 화형당했으니..
맥베스에서 중요하게 등장하는 세 마녀의 예언(꼬꼬마 때 저를 공포에 떨게 했던), 템페스트에서도 프로스페로가 흑마술을 배웠었나(이건 기억이 확실치 않아요) 이 정도만 떠오르는데, 곳곳에 그런 어두운 분위기들은 있었던 듯해요!
밥심
<템페스트>를 병행 독서중인데 프로스페로가 마법을 주요 수단으로 쓰는 것은 확실한데 마녀 재판이 성행하던 시절에 마법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주인공을 등장시키는 것이 우려할만한 시도는 아니었나 보네요. 절묘한 처세술을 보여준 셰익스피어이므로 알아서 잘 했겠지만요.

향팔
@밥심 오 템페스트 읽고 계시는군요. 마지막 작품이라고도 하던데 그에 걸맞게 참 달콤씁쓰름하고 아련한 결말이 기억에 남는 연극입니다. 즐거운 독서 되시길요. (희곡 전작은 아니고 하나는 못 읽었습니다. ㅎㅎ; 시도 소네트 말고는 못 읽어봤고요)

YG
@밥심 @향팔이 마녀 사냥은 14세기부터 18세기까지 유럽 전역에서 벌어지긴 했지만, 가장 극심했 던 때는 뜻밖에도 16세기부터 17세기였다고 해요. 주로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간의 종교 갈등 속에서 상대방 신도나 상대 교세가 우세한 지역을 마녀 사냥의 대상으로 삼은 셈이죠.
특히 17세기가 마녀 사냥의 절정이었다고 합니다. 30년 전쟁터였던 독일이 심했고, 영국도 청교도 혁명(1642~1651) 시기가 절정이었다고 합니다. 셰익스피어가 활약했던 엘리자베스 시기는 상대적으로 마녀 사냥의 여파가 가라앉아 있었던 안정기였기 때문에 그도 그런 설정을 등장시키는 데에는 큰 위험을 느끼지 않았겠죠. 하지만, 역시 그도 마녀 사냥 자체를 소재로 삼는 건 부담스러웠을 겁니다.

borumis
그쵸.. 또 너무 마녀들에 대해 자세히 리얼하게 쓰면 너도 마녀들이랑 내통하는 거 아니냐?하고 몰아 붙일 수도 있고;;
자나깨나 종교적 스캔들 조심..;;

향팔
“ 각 시는 그 내부에 진술되는 내용의 확정성을 부인하는 원칙을 효과적으로 가지고 있었다. 즉 어느 격분한 독자의 항의를 맞닥뜨린다면, 시인은 언제나 “당신은 절 오해하셔서 잘못된 결론에 이르셨군요. 저는 ‘그분’에 대해서 말한 게 전혀 아닌데요.” 라고 말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
『세계를 향한 의지 - 셰익스피어는 어떻게 셰익스피어가 됐는가』 스티븐 그린블 랫 지음, 박소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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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umis
이거 참 편리한 방어대책이죠..^^;; 명예훼손과 언론의 자유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셰익스피어는 자연스럽게 터득한 듯..

향팔
“ 『비너스와 아도니스』는 셰익스피어만의 특징을 화려하게 보여 주는 작품이다. 어느 곳에나 편재하면서 동시에 아무 곳에서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그의 놀라운 능력, 독자를 향해 보여 줄 수 있는 모든 자세를 취하면서도 그 모든 제약으로부터 미끄러지듯 유유히 빠져나가는 능력이 시에 잘 드러나 있다. 이러한 수용력은 대상에 가까이 있는 것과 거리를 두는 것, 그리고 대상에 친밀한 관점과 분리적 관점을 동시에 취하는 깊은 역설적 성취에 기대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그토록 많은 장소에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셰익스피어는 자신의 극작을 추동했던 감성을 이 시에서도 기묘하게 농축된 형태로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
『세계를 향한 의지 - 셰익스피어는 어떻게 셰익스피어가 됐는가』 스티븐 그린블랫 지음, 박소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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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8장에 수록된 비너스와 아도니스 구절들을 보는데 와 장난 아니네요;; 누구라도 넘어갈 듯..

오구오구
너무나 관능적이죠? 16세기라는 맥락을 생각하니 더 그렇습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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