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가 아직도 10장에서 멈춰 있는 중인데; <햄릿>으로 가는 길에 리처드 왕 시리즈가 나오길래 수다 떨러 또 왔습니다.
먼저 <리처드 2세>는 아주 섬세하더라고요, 치열하기도 하고. 인물들의 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모두 시와 같고… 아니 그냥 작품 전체가 한 편의 시처럼 느껴졌어요. 극 중간쯤에 가서 리처드 왕에 대한 쿠데타가 성공하는데, 이후부터는 하루아침에 권좌에서 끌려내려온 전직 군주의 심리 묘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가장 좋았던 대목은 웨스트민스터 홀에서 리처드가 왕관을 내어 놓는 장면과, 폼프릿 성 감옥에서의 마지막 독백(그린블랫 책에도 나오죠)입니다. 연극 공연을 직접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매력적인 작품이었어요.
그린블랫 책에서는 <리처드 3세>가 나중에 나온 <리처드 2세>보다 기량이 쪼금 딸린다는 얘기가 나오고 예시로 대사도 한 대목 실려 있지만, 저는 그 장면을 읽을 때 그런 건 잘 못 느꼈어요. 리처드가 보스워스 들판에서 최후의 결전을 앞둔 밤, 자신이 살해한 모든 이의 영혼과 조우하며 느끼는 공포가 극도의 분열과 혼란으로 나타나는 장면…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confrontation도 살짝 생각나고요.)
‘곱사등이 두꺼비’로 태어나 ‘지옥의 사냥개’로 살았기에 세상 모두에게서 멸시받고, 심지어는 낳아준 어머니로부터도 저주받은 존재. 그래서 천국이란 왕관에 있는 것이라고 믿었고, 믿어야만 했고, 그것을 위한 싸움에서 물러서지 않았으며, 완벽한 이기주의자인 자신을 부인하지 않았던 리처드. 보스워스 전투에서 타고 있던 말을 잃고 난 뒤, “말을 다오! 말을! 말 한 필이면 내 왕국도 주리로다!” 반복하며 부르짖는 외침이 그에게 주어진 마지막 대사라는 사실은, 리처드 3세의 ‘악’을 혐오할 수 없는 이유 중의 하나로 남습니다.

리처드 2세'아침이슬 셰익스피어 전집' 15권. 학정으로 치닫던 리처드 2세가 에드워드 3세의 넷째 아들인 랭커스터 공작 아들, 즉 사촌 헨리 볼링브루크(훗날 헨리 4세)에게 밀려나 플랜타저넷 왕가에서 랭커스터 왕가로 바뀌는 잉글랜드 역사의 한 대목이다.

리처드 3세에드워드 4세 치하에서 왕위 계승 앞 순위 자들을 하나하나 제거하며 드디어 왕위에 오른 리처드 3세 통치 2년, 그리고 1485년 헨리 리치먼드(훗날 헨리 7세)가 보스워스 전투에서 승리해 튜더 왕조를 여는 과정을 압축적으로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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