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백수 시절 시간이 넘쳐날 때 책을 읽으면 독서일기 비슷한 걸 쓰곤 했습니다. 지금은 게을러져서 못하지만요. 그때 매커보이의 <셰익스피어 깊이 읽기>도 봤고요. 그중에서 오늘 문득 떠오르는 <오셀로>에 관한 짧은 이야기가 있어서 공유해보려고 합니다. (마침 요즘 옆방에서 흑인노예/인종차별 관련 책 읽기에 참여하고 있어서 생각이 났나 봐요)
@borumis @stella15 님도 연극 공연에 담긴 추억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책으로 읽는 셰익스피어만이 아니라 그 작품을 실제 무대 위에 올려서 연출하고 연기했던 사람들과 그들의 역사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는 토막인 것 같습니다.
1930년 런던 웨스트엔드 극장들에서 최초로 흑인 배우가 무대에 올라 오셀로를 연기했다고 합니다. 그의 이름은 폴 로브슨. 그가 오셀로 역을 따낼 수 있었던 건, 차별의 벽을 뛰어넘었다거나 평등주의 원칙이라든가 머 그런 이유와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인종차별의 논리에 따른 결과였다는 사실이 흥미로운데요. 당시 사람들은 “합리적이고 문명화되어 자신의 감정을 잘 통제하는 백인은 기질적으로 오셀로 역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로브슨에게 그 역할이 돌아가게 된 것이라네요.
관객들은 흑인 배우가 연기하는 오셀로 역에 큰 반발을 보이지 않았지만, 극장 옆에 있던 호텔에서는 로브슨의 출입을 거부했고, 데스데모나 역의 백인 여배우는 일종의 협박 편지인 “증오 우편”을 받기도 했답니다. 무대 연출은 <흑인 남자와 백인 여자의 사랑>이 너무 직접적으로 표현되지 않도록 많은 부분이 모호하게 처리되었고, 배우들의 연기나 공연 자체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음은 물론입니다.
그로부터 13년이 흐른 뒤, 영국인 배우 마거릿 웹스터가 연출한 무대에서 로브슨은 다시한번 오셀로 역을 맡게 됩니다. 흑인이 주연이라는 이유로 스폰서도 유명 배우도 심지어 극장조차 구하지 못해 대학의 장소를 빌려 공연을 하는 악조건 속에서도, 그들의 <오셀로>는 대성공을 거뒀습니다. 로브슨의 힘있고 생생한 연기, 웹스터의 새로운 연출, 2차대전 중 상대적으로 향상된 흑인의 사회적 위치의 영향도 있었을 거라고 하네요. 이후 이 작품은 브로드웨이로 진출, 미국 역사상 최장기간 공연된 셰익스피어 연극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셀로의 결말이라는 것은, 무대 위에서나 무대 밖에서나 결코 훈훈하게 마무리될 수가 없는 것일까요? 옛 노예의 아들로서 민권 투사이자 사회주의자였던 로브슨은 “비미국적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여생을 망명자로 보내야 했다고 하네요.
흑인이 백인 역을 맡는 일이 다반사가 된 세상에서, 흑인이 흑인 역도 맡지 못했던 시절 얘기를 읽으니 머랄까 정말 요지경 같다고나 할까요…
저는 매커보이 책에서 이 이야기를 읽고 셰익스피어 작품 자체 말고도 연극 공연/연출의 역사라는 것도 재밌는 거구나, 알게 되었는데요. 관심 있으신 분들은 시공 RSC 셰익스피어 선집으로 나온 셰익스피어 희곡을 보시면(총 다섯 권 있습니다) 작품 뒤에 해당 공연사와 연출가/배우들의 인터뷰가 상세하게 실려있으니 도움이 되실 겁니다. (시공사는 한때 전두환 아들이 하는 출판사라고 해서 불매하기도 했는데 요즘은 그냥 봅니다. 주인이 바뀐 것 같기도 하고요)


셰익스피어 깊이 읽기심층적인 셰익스피어 읽기로 안내하는 기본 가이드. 저자는 셰익스피어의 고유한 글쓰기 방식과 의도를 알 수 있는 작품을 인용하고 충실한 용어 풀이를 덧붙여서 최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오셀로<오셀로>는 사랑과 질투의 심리를 선명하게 그려낸, 셰익스피어 작품 중 가장 강렬하고 관능적인 비극이다. 지랄디 친티오의 중편소설 <일백 편의 이야기>(1565)를 기초로 하여 1604년경 집필된 희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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