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1. <세계를 향한 의지>

D-29
저희 그림자나 다름없는 것들이 여러분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언짢게 해드렸다면, 잠시 이렇게 생각해 주십시오. 여러분께서는 여기서 잠깐 조셨을 뿐인데, 꿈이나 환영이 눈앞을 스쳐 간 것으로 말입니다. 이 보잘것없고 허황된 연극을 한낱 헛된 꿈이라 생각하시고, 신사숙녀 여러분, 너무 나무라시지는 말아주세요. 만일 용서해 주신다면 앞으로 열심히 고쳐 나가겠습니다. 저는 매우 고지식한 요정 퍽이니만큼, 진심으로 말씀드린 겁니다. 여러분이 칭찬을 해주시면 더욱 분발해서 열심히 하리라는걸……. 이 말이 거짓이라면 이 퍽을 거짓말쟁이라고 부르세요. 그럼 여러분, 모두 안녕히 돌아가시기를……. 저에게 큰 박수를 보내주시고, 친구로 생각해 주신다면, 이 퍽은 앞으로 훌륭한 배우가 될 것입니다.
셰익스피어 5대 희극 한여름밤의 꿈, 5막 2장,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셰익스피어 연구회 옮김
셰익스피어 5대 희극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희극으로 구성된 작품집이다. '셰익스피어 4대 비극'과 더불어 높은 문학적, 극적 완성도를 인정받은 다섯 작품이 실려 있다. 청소년 독자들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문체를 다듬었다.
한여름밤의 꿈 마지막 대사. 대학로 소극장 연극에서 배우가 본연극에 앞서서 흔히 하는 인트로가 생각났어요.
인상적인 것이, 보텀이 정말 씩씩하고 당당하긴 하더라구요. 한여름밤의 꿈에서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가 아닐까 싶어요. 환상에서 깨고 난 다음에도 그 꿈을 그리워하기보단 금방 현실로 돌아와 동료들에게 얘기할 생각을 하더라구요.
보 톰(깨어나면서) 내 대사를 읊을 때가 오면 나를 불러줘. 내 대답할 테니. 다음에 나올 내 대사는 “아름다운 나의 피라므스여!”일 거야. 이봐, 피터 퀸스? 풀무장이 플루트? 땜장이 스너우트? 스타블링? 하느님 맙소사! 다들 어디 간 거야? 나만 잠자게 내버려놓고 가버리다니! 참 희한한 꿈을 꾸었는데. 꿈이 맞긴 맞을 거야. 우리 인간으로선 감히 상상도 못할 꿈이지. 이런 꿈을 해몽하겠다고 덤비는 놈들이 있다면 어리석은 당나귀 같은 놈들일 거야.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내가 생각하기로는, 하면서 어쩌고저쩌고 말하는 놈들은 얼룩 옷을 입은 어릿광대일 뿐이라고. 왜냐하면 나는 일찍이 인간의 귀로 듣지도 못했고, 인간의 눈으로 보지도 못했고, 인간의 혀로 맛보지도 못했을 꿈을 꾸었거든. 내 꿈이 어떤 꿈인지는 피터 퀸스에게 부탁해서 이 꿈에 관한 노래를 지으라고 해야겠구나. 제목은 ‘보톰의 꿈’이 좋겠군. 연극의 마무리 장면이 되면 이 노래를 공작님 앞에서 불러 드려야지. 그게 아니지. 더 재미있게 하려면, 시스비가 죽고 난 후에 불러야 할 것 같은데. (퇴장)
셰익스피어 5대 희극 한여름밤의 꿈, 4막 2장,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셰익스피어 연구회 옮김
케닐워스에서 벌어진 축제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후에 쓰인 「한여름 밤의 꿈」은 성인이 된 극작가가 유년기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몇 장면을 빌어 온 흔적을 보여 주는 동시에, 그가 그만큼 최초의 고향 으로부터 멀리 왔다는 것을 보여 준다. 1595년에 셰익스피어는 극작가라는 직업의 앞날이, 시골 마을의 전통적인 아마추어 공연들이 아니라 런던의 전문적인 연예계 산업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세계를 향한 의지 - 셰익스피어는 어떻게 셰익스피어가 됐는가 스티븐 그린블랫 지음, 박소현 옮김
그의 위대한 희극은 대가만이 성취해 낼 수 있는 홀륭한 작품성을 보여 주는 동시에 일종의 탈피를 개인적으로 기념하는 작품이기도 했다. 무엇으로부터의 탈피라는 말인가? 바로 구태의연하고 지리멸렬한 연극들, 셰익스피어가 그 한심한 제목을 패러디하기도 했던 토머스 프레스턴의 「페르시아의 왕 캄 비세스의 삶을 이야기하는, 유쾌한 소동을 함께 곁들인 한탄의 비극」 같은 연극으로부터의 탈피다.
세계를 향한 의지 - 셰익스피어는 어떻게 셰익스피어가 됐는가 스티븐 그린블랫 지음, 박소현 옮김
「한여름밤의 꿈」 5장은 셰익스피어가 쓴 것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익살스러운 재미가 이어지는 장이다. 거기서 터져 나오는 웃음은 무대 위의 상황에 대해 관객이 느끼는 우월감에서 비롯되는데, 그 우월감이란 지성 수준, 훈련의 정도, 문화 배양 능력, 기술 숙련의 차이 때문에 느껴지는 것이다.
세계를 향한 의지 - 셰익스피어는 어떻게 셰익스피어가 됐는가 스티븐 그린블랫 지음, 박소현 옮김
관객들은 무대 위에서 일어나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조롱하는, 세련된 상류 무리의 일원으로 참여하도록 권유받는다. 순진하고 촌티 나는 아마추어 수준의 성취로부터, 세련된 취향과 전문적인 기술로의 전이를 보여주는 부분에서 젊은 극작가는 이러한 조롱의 관점을 확연하게 보여 주고 있다.
세계를 향한 의지 - 셰익스피어는 어떻게 셰익스피어가 됐는가 스티븐 그린블랫 지음, 박소현 옮김
「한여름밤의 꿈」이, 갓 서른 살이 된 셰익스피어가 그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을 깊이 끌어오면서 극작가로서의 자아를 성찰하는 작품이라면, 거기서 그는 연극 무대라는 것을 두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서 받아들였다. 마술적이고 비인간적인 요소를 지닌 것으로서 상상력의 힘을 활용하여 현실의 구속으로부터 자유롭게 풀려나는 측면이 있고, 동시에 또 너무나 지나칠 정도로 인간적인 요소, 그가 장인들의 직업에서 연결 짓듯이 건물, 잘 짜인 무대, 의상, 악기 등과 같은 현실에서의 공연 행위에 필요한 물질 구조를 만들어 내야 하는 측면이 있다.
세계를 향한 의지 - 셰익스피어는 어떻게 셰익스피어가 됐는가 스티븐 그린블랫 지음, 박소현 옮김
이 물리적 구조들이 바로 마술적 상상력이 깃들 수 있는 공간과 이름을 부여한다. 그는 연극 공연이 이루어지는 극장이라면, 관객에게 이처럼 환상적인 일탈의 체험을 줄 수 있어야 하며 동시에 아주 견고하고 일상적인 현실의 토질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이해했고, 또한 관객도 이를 이해하기 원했다. 그 현실의 건강한 토질이 바로 그의 창조적 상상력의 기반이 되는 부분이었다. 그는 자신이 살다 온 작은 시골 마을의 소박한 세계와 고대 시인 아리온의 가면 뒤에 여느 평범한 필부의 얼굴이 있었다는 것을 결코 잊지 않았던 것이다.
세계를 향한 의지 - 셰익스피어는 어떻게 셰익스피어가 됐는가 스티븐 그린블랫 지음, 박소현 옮김
This was the crucial moment in the development of the English language, the moment in which the deepest things, the things upon which the fate of the soul depended, were put into ordinary, familiar, everyday words. Two men above all others, William Tyndale and Thomas Cranmer, rose to the task. Without them, without the great English translation of the New Testament and the sonorous, deeply resonant Book of Common Prayer, it is difficult to imagine William Shakespeare.
세계를 향한 의지 - 셰익스피어는 어떻게 셰익스피어가 됐는가 p. 96, 스티븐 그린블랫 지음, 박소현 옮김
John Shakespeare, his son may have observed, was something else. He wanted to keep both his options open - after all, he had seen enough of the world to know that there might be a drastic change of direction again; ...... He had not so much a double life as a double consciousness.
세계를 향한 의지 - 셰익스피어는 어떻게 셰익스피어가 됐는가 p. 111, 스티븐 그린블랫 지음, 박소현 옮김
There are many forms of heroism in Shakespeare, but ideological heroism - the fierce, self-immolating embrace of an idea or an institution - is not one of them.
세계를 향한 의지 - 셰익스피어는 어떻게 셰익스피어가 됐는가 p.120, 스티븐 그린블랫 지음, 박소현 옮김
2장에 베니스의 상인 이야기도 잠깐 나오네요. 저는 이 작품을 만났을 때 엄청 충격을 받았습니다. 읽어보기 전에는 샤일록이라는 인물을 그냥 단순한 악역의 대명사로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그게 그렇지가 않았다는 것이죠. 베니스의 상인인지 해적인지 모를 안토니오 패거리에게서 평생을 갖은 멸시와 학대를 받으며 살아온 노인네라, 급발진 복수극을 벌이는 것이 이해가 되더라고요. 샤일록은 등장하는 장면마다 존재감이 쩌는데, 인상적인 장면으로는 기독교도들의 인간 차별에 대해 사자후를 토하는 대목, 베니스의 노예 착취를 예로 들어서 그들의 위선을 꼬집는 대목이 기억납니다. 셰익스피어가 만든 여러 입체적인 캐릭터들은 정말 흥미로워요.
샤일록이 유대인이죠? 유대인들에 대한 보편적이 인식이었을지 궁금하더라구요...
네 유대인 고리대금업자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캐릭터인데, 막상 읽어보니 유대인 샤일록보다는 베니스의 상인 놈이 훠얼씬 더 나쁜 놈이더라고요.
그렇군요. 저도 읽어봐야겠어요~ 뭔가 청소년 문고판으로 읽고 싶어지네요 ㅎㅎ
말볼리오는 신사의 신분을 얻고 싶어 하는 셰익스피어 본인의 집착과 그 어두운 부면을 나타내는 인물로 기능한다.
세계를 향한 의지 - 셰익스피어는 어떻게 셰익스피어가 됐는가 스티븐 그린블랫 지음, 박소현 옮김
말볼리오는 자기 앞에 놓인 함정에 곧 빠질 것이다. 노란색 각반을 차고, 부적절한 미소를 보이다가 광인으로 취급되어 감금되고, 잔혹하게 창피를 당하게 되는 그런 함정에 말이다. 셰익스피어의 모든 작품 중 가장 위대한 희극 줄거리의 하나인 이 이야기는 어쩌면 극작가 자신의 깊은 내면을 보여주고 있는데, 더 높은 신분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고자 하는 그 모든 계획-자신의 것과 부모가 시도했던 것-에 내포된 냉소적이고 자조적인 웃음이 강렬하게 포착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세계를 향한 의지 - 셰익스피어는 어떻게 셰익스피어가 됐는가 스티븐 그린블랫 지음, 박소현 옮김
이런 분석이 흥미진진하네요. 셰익스피어가 자신의 삶과 내면을 어떻게 작품 속에 녹여냈는지 보여주는… 셀프조롱을 통해 메타인지를 시전하는 작가!
작성
글타래
화제 모음
지정된 화제가 없습니다
[책나눔 이벤트] 지금 모집중!
[텍스티] 텍스티의 히든카드🔥 『당신의 잘린, 손』같이 읽어요🫴
💡독서모임에 관심있는 출판사들을 위한 안내
출판사 협업 문의 관련 안내
그믐 새내기를 위한 가이드
그믐에 처음 오셨나요?[메뉴]를 알려드릴게요. [그믐레터]로 그믐 소식 받으세요
[그믐클래식] 1월부터 꾸준히 진행중입니다. 함께 해요!
[그믐클래식 2025] 한해 동안 12권 고전 읽기에 도전해요! [그믐클래식 2025] 1월, 일리아스 [그믐클래식 2025] 2월, 소크라테스의 변명·크리톤·파이돈·향연[그믐클래식 2025] 3월, 군주론 [그믐클래식 2025] 4월, 프랑켄슈타인 [그믐클래식 2025] 5월, 월든[그믐클래식 2025] 6월, 마담 보바리 [그믐클래식 2025] 7월,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7월 23일 그믐밤 낭독은 <리어 왕>
[그믐밤] 37. 달밤에 낭독, 셰익스피어 3탄 <리어 왕> [그믐연뮤클럽] 3. "리어왕" 읽고 "더 드레서" 같이 관람해요
수북탐독의 재미, 다시 한 번 더!
[📚수북플러스] 3. 깊은숨_수림문학상 작가와 함께 읽어요[📚수북플러스] 2.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_수림문학상 작가와 함께 읽어요[📚수북플러스] 1. 두리안의 맛_수림문학상 작가와 함께 읽어요
우리가 몰랐던 냉전의 시대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4. <소련 붕괴의 순간>[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3. <냉전>[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16. <마오주의>
바쁘지만 책은 읽고 싶어 by Oncoazim
올해 가을엔 산에 가야지 머리는 차갑게 좋아하는 것들을 찾기
💰 비트코인과 달러, 같이 공부해요!
『트럼프 시대의 비트코인과 지정학』 함께 읽기 (비트코인, 그리고 달러의 지정학의 개정판)책 [레이어드 머니 돈이 진화한다] 읽기 모임
극과 극은 통한다!
[도서증정][김세진 일러스트레이터+박숭현 과학자와 함께 읽는]<극지로 온 엉뚱한 질문들>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19. <호라이즌>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서리북 아시나요?
<서리북 클럽> 두 번째_편집자와 함께 읽는 서리북 여름호(18호) 혼돈 그리고 그 너머서울리뷰오브북스 북클럽 파일럿 1_편집자와 함께 읽는 서리북 봄호(17호) 헌법의 시간 <서울리뷰오브북스> 7호 함께 읽기
문풍북클럽의 뒷북읽기
[문풍북클럽] 뒷BOOK읽기 : 7월의 책 <혼모노>, 성해나, 창비[문풍북클럽] 6월 : 한 달간 시집 한 권 읽기 [문풍북클럽] 뒷BOOK읽기 : 5월의 책 <죽이고 싶은 아이 1,2권>[문풍북클럽] 뒷BOOK읽기 : 4월의 책 <예술도둑>
모집중밤하늘
내 블로그
내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