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1. <세계를 향한 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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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위대한 희극은 대가만이 성취해 낼 수 있는 홀륭한 작품성을 보여 주는 동시에 일종의 탈피를 개인적으로 기념하는 작품이기도 했다. 무엇으로부터의 탈피라는 말인가? 바로 구태의연하고 지리멸렬한 연극들, 셰익스피어가 그 한심한 제목을 패러디하기도 했던 토머스 프레스턴의 「페르시아의 왕 캄 비세스의 삶을 이야기하는, 유쾌한 소동을 함께 곁들인 한탄의 비극」 같은 연극으로부터의 탈피다.
세계를 향한 의지 - 셰익스피어는 어떻게 셰익스피어가 됐는가 스티븐 그린블랫 지음, 박소현 옮김
「한여름밤의 꿈」 5장은 셰익스피어가 쓴 것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익살스러운 재미가 이어지는 장이다. 거기서 터져 나오는 웃음은 무대 위의 상황에 대해 관객이 느끼는 우월감에서 비롯되는데, 그 우월감이란 지성 수준, 훈련의 정도, 문화 배양 능력, 기술 숙련의 차이 때문에 느껴지는 것이다.
세계를 향한 의지 - 셰익스피어는 어떻게 셰익스피어가 됐는가 스티븐 그린블랫 지음, 박소현 옮김
관객들은 무대 위에서 일어나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조롱하는, 세련된 상류 무리의 일원으로 참여하도록 권유받는다. 순진하고 촌티 나는 아마추어 수준의 성취로부터, 세련된 취향과 전문적인 기술로의 전이를 보여주는 부분에서 젊은 극작가는 이러한 조롱의 관점을 확연하게 보여 주고 있다.
세계를 향한 의지 - 셰익스피어는 어떻게 셰익스피어가 됐는가 스티븐 그린블랫 지음, 박소현 옮김
「한여름밤의 꿈」이, 갓 서른 살이 된 셰익스피어가 그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을 깊이 끌어오면서 극작가로서의 자아를 성찰하는 작품이라면, 거기서 그는 연극 무대라는 것을 두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서 받아들였다. 마술적이고 비인간적인 요소를 지닌 것으로서 상상력의 힘을 활용하여 현실의 구속으로부터 자유롭게 풀려나는 측면이 있고, 동시에 또 너무나 지나칠 정도로 인간적인 요소, 그가 장인들의 직업에서 연결 짓듯이 건물, 잘 짜인 무대, 의상, 악기 등과 같은 현실에서의 공연 행위에 필요한 물질 구조를 만들어 내야 하는 측면이 있다.
세계를 향한 의지 - 셰익스피어는 어떻게 셰익스피어가 됐는가 스티븐 그린블랫 지음, 박소현 옮김
이 물리적 구조들이 바로 마술적 상상력이 깃들 수 있는 공간과 이름을 부여한다. 그는 연극 공연이 이루어지는 극장이라면, 관객에게 이처럼 환상적인 일탈의 체험을 줄 수 있어야 하며 동시에 아주 견고하고 일상적인 현실의 토질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이해했고, 또한 관객도 이를 이해하기 원했다. 그 현실의 건강한 토질이 바로 그의 창조적 상상력의 기반이 되는 부분이었다. 그는 자신이 살다 온 작은 시골 마을의 소박한 세계와 고대 시인 아리온의 가면 뒤에 여느 평범한 필부의 얼굴이 있었다는 것을 결코 잊지 않았던 것이다.
세계를 향한 의지 - 셰익스피어는 어떻게 셰익스피어가 됐는가 스티븐 그린블랫 지음, 박소현 옮김
This was the crucial moment in the development of the English language, the moment in which the deepest things, the things upon which the fate of the soul depended, were put into ordinary, familiar, everyday words. Two men above all others, William Tyndale and Thomas Cranmer, rose to the task. Without them, without the great English translation of the New Testament and the sonorous, deeply resonant Book of Common Prayer, it is difficult to imagine William Shakespeare.
세계를 향한 의지 - 셰익스피어는 어떻게 셰익스피어가 됐는가 p. 96, 스티븐 그린블랫 지음, 박소현 옮김
John Shakespeare, his son may have observed, was something else. He wanted to keep both his options open - after all, he had seen enough of the world to know that there might be a drastic change of direction again; ...... He had not so much a double life as a double consciousness.
세계를 향한 의지 - 셰익스피어는 어떻게 셰익스피어가 됐는가 p. 111, 스티븐 그린블랫 지음, 박소현 옮김
There are many forms of heroism in Shakespeare, but ideological heroism - the fierce, self-immolating embrace of an idea or an institution - is not one of them.
세계를 향한 의지 - 셰익스피어는 어떻게 셰익스피어가 됐는가 p.120, 스티븐 그린블랫 지음, 박소현 옮김
2장에 베니스의 상인 이야기도 잠깐 나오네요. 저는 이 작품을 만났을 때 엄청 충격을 받았습니다. 읽어보기 전에는 샤일록이라는 인물을 그냥 단순한 악역의 대명사로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그게 그렇지가 않았다는 것이죠. 베니스의 상인인지 해적인지 모를 안토니오 패거리에게서 평생을 갖은 멸시와 학대를 받으며 살아온 노인네라, 급발진 복수극을 벌이는 것이 이해가 되더라고요. 샤일록은 등장하는 장면마다 존재감이 쩌는데, 인상적인 장면으로는 기독교도들의 인간 차별에 대해 사자후를 토하는 대목, 베니스의 노예 착취를 예로 들어서 그들의 위선을 꼬집는 대목이 기억납니다. 셰익스피어가 만든 여러 입체적인 캐릭터들은 정말 흥미로워요.
샤일록이 유대인이죠? 유대인들에 대한 보편적이 인식이었을지 궁금하더라구요...
네 유대인 고리대금업자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캐릭터인데, 막상 읽어보니 유대인 샤일록보다는 베니스의 상인 놈이 훠얼씬 더 나쁜 놈이더라고요.
그렇군요. 저도 읽어봐야겠어요~ 뭔가 청소년 문고판으로 읽고 싶어지네요 ㅎㅎ
말볼리오는 신사의 신분을 얻고 싶어 하는 셰익스피어 본인의 집착과 그 어두운 부면을 나타내는 인물로 기능한다.
세계를 향한 의지 - 셰익스피어는 어떻게 셰익스피어가 됐는가 스티븐 그린블랫 지음, 박소현 옮김
말볼리오는 자기 앞에 놓인 함정에 곧 빠질 것이다. 노란색 각반을 차고, 부적절한 미소를 보이다가 광인으로 취급되어 감금되고, 잔혹하게 창피를 당하게 되는 그런 함정에 말이다. 셰익스피어의 모든 작품 중 가장 위대한 희극 줄거리의 하나인 이 이야기는 어쩌면 극작가 자신의 깊은 내면을 보여주고 있는데, 더 높은 신분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고자 하는 그 모든 계획-자신의 것과 부모가 시도했던 것-에 내포된 냉소적이고 자조적인 웃음이 강렬하게 포착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세계를 향한 의지 - 셰익스피어는 어떻게 셰익스피어가 됐는가 스티븐 그린블랫 지음, 박소현 옮김
이런 분석이 흥미진진하네요. 셰익스피어가 자신의 삶과 내면을 어떻게 작품 속에 녹여냈는지 보여주는… 셀프조롱을 통해 메타인지를 시전하는 작가!
그의 상상력이 갖춘 가장 아름답고 설득력 있는 측면은, 작품 속에서 동물들의 삶에 대해 언급하거나 기후의 갑작스러운 변화를 이야기하거나 꽃과 약초의 세부 사항을 설명하거나 자연의 순환에 대해서 말할 때, 참으로 용이하고 섬세하면서도 정확한 묘사를 한다는 점이다.
세계를 향한 의지 - 셰익스피어는 어떻게 셰익스피어가 됐는가 p. 96, 스티븐 그린블랫 지음, 박소현 옮김
시인 셰익스피어가 성인이 된 후, 그의 생애를 짚어 볼 수 있는 핵심적인 전기적 기록물들은 바로 부동산 증서들이다. 전기 작가들은 종종 그의 생애에 보다 인간적이고 사적인 내용 대신, 이러한 종류의 사무적인 공증서들만 넘쳐 나는 상황을 보고 진한 아쉬움을 표현해 왔다. 하지만 인생 내내 보였던 부동산 투자에 대한 깊은 관심은, 그의 동료 극작가들에게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종류였고, 어쩌면 그래서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계시보다도 그의 인간적 세부 사항을 더욱 잘 말해주기도 한다.
세계를 향한 의지 - 셰익스피어는 어떻게 셰익스피어가 됐는가 p. 97, 스티븐 그린블랫 지음, 박소현 옮김
나왔네요, 부동산! 2장은 읽으면 읽을수록 셰익스피어의 작품성과는 또 다른 (현실적인) 모습을 알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의 욕심과 야망, 인간적인 면모랄까.
연극의 독자와 관객은, 다시는 되찾을 수 없다고 여겨지던 것이 모든 희망과 기대조차 없는 상황에서 재생되어 돌아왔다는 것을 이 장면의 감정 분출을 통해 충분히 느끼게 된다. 하지만 이 회복은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다. 회복된 과거는 급하게 날조된 것이거나 또는 망상이거나, 최악의 경우 오히려 상실의 상태를 더욱 뼈저리게 느끼게 해 주는 것으로 드러난다.
세계를 향한 의지 - 셰익스피어는 어떻게 셰익스피어가 됐는가 스티븐 그린블랫 지음, 박소현 옮김
이 부분은 예전에 <겨울 이야기>를 읽고 느낀 점과 통하는 것 같아서 그때 썼던 독서일기를 열어보았습니다. (하.. 전에는 책읽으면 이런것도 바지런히 썼는데 이젠 전혀..ㅜㅜ) 아래 일부 옮겨봅니다. ‘잃어버린 소중한 것’을 되찾는 여정... <겨울 이야기>를 읽으면서, 꼬꼬마 때 동화로 봤던 토막기억이 새록새록 살아나서 나름 반가웠다. 의처증 걸린 왕 하나가 가족들과 주변인들에게 평생 원상복구불가 급의 민폐를 끼치는데, 덕분에 죄없는 사람들이 바다에 빠져 죽고 곰한테 찢겨 죽고 난리도 아니다. 16년간 고향을 등지고 살아야 했던 카밀로의 회한 섞인 한 마디는 마지막 5막에서 쓸쓸히 가슴을 울린다. “슬픔이 너무 아프게 내려앉아, / 열여섯 번의 여름이 그만큼 많은 겨울을 / 날려버리지 못했습니다.” 오래 전에 잃어버린 소중한 그 무엇을 세월이 흐른 뒤에 다시 찾는다 해도, 그게 정말 과거에 놓쳤던 그것이 맞을까. 자식 세대 덕에 얻은 “용서와 화해”로 인생을 훈훈하게 마무리 짓는단들, 지나온 고통의 시간을 치유할 수 있을까. 차가운 조각상에 따뜻한 피가 돌고 마침내는 살아 움직이며 말을 하는 그런 ‘마법’이, 우리들 삶에 정말로 일어날 수 있을까. 셰익스피어의 로맨스 극은 그렇게 묻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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