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Afterword가 앞으로 갔군요! 휴 착각했어요.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1. <세계를 향한 의지>
D-29

borumis

borumis
제가 최애 셰익스피어 희곡을 1. 리어왕, 2. 맥베스 3. 템페스트로 꼽았는데요.
알고보니 이게 다 햄릿 이후에 나왔던 그의 후기작들이네요..
어쩐지.. 뭔가 다른 작품들에 비해 연륜이 느껴지던데..
템페스트가 마지막 솔로작품인 것은 알았지만.. 시기를 보니 그가 뭔가 인생의 만곡점을 느끼기 시작하던 때였나봅니다..
저는 실은 어릴적에 친할머니랑 살다가 치매에 걸리시고 절 못 알아보시고 돌아가시는 걸 봤고..
그 후에 고3때 외할머니가 다발성골수종에 걸리셨는데 일사병으로 쓰러진 절 더 걱정하시면서 보약 챙겨먹이다 나중에 제가 대학교 입학하고나서 돌아가셨어요. (실은 고3때 막판에 문과에서 이과반으로 전향한 것도 외할머니가 큰 동기였죠)
일하면서도 죽음을 많이 접하고 나중에 결국 이대로는 못 살겠어서 조금 죽음에서 멀어지고자 여성병원에서 죽음보다 탄생을 더 접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여기서도 아기는 물론 태아도 죽을 수 있다는 걸 느끼게 되었는데요..
생명에는 탄생과 동시에 죽음이 필연적으로 따라올 수 밖에 없는 걸 절감합니다. 게다가 아이들을 낳고 나서 제게 항상 뇌 속에 시한폭탄 같은 죽음이 따라다녔다는 걸 발견했구요.. (남편은 정관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어릴적부터 죽음과 인생의 부조리와 허무에 대해 고민이 많았어요. 실은 베케트나 까뮈 등의 책을 좋아한 것도 그래서일 수도 있구요. 위에서 언급한 셰익스피어의 세 작품의 공통적인 최애 장면들은 그런 허무함을 마침내 수용하고 인생에서 그토록 집착하던 것을 내려놓는 장면들이었어요.
그래서 템페스트에서 마침내 박수를 보내달라는 프로스페로/셰익스피어의 모습에서 감동했던 것 같아요. 연기는 대학교 연극동아리에서 잠시만 했지만 무대나 음향 팀 등 스태프를 맡아도 연극이 끝나고 난 뒤 밀려들어오는 안도감 성취감 및 허무함.. 그리고 모두 떠나고 남겨진 무대에 앉아 정리할 때의 그 느낌.. 이걸 어떻게 방학때마다 해도 해도 익숙해지지 않을까..했는데 그걸 한 평생 정신없이 해온 셰익스피어는 어땠을까요..
스테이션 일레븐의 리어왕 공연도 아프가니스탄의 '사랑의 헛수고'도 어쩌면 연극이 끝나고 난 뒤 돌아갈 폐허같은 죽음과 폭력이 만연한 세상 속에서라도, 아주 일시적인 '헛수고'일지라도 마법같은 찰나의 순간을, 그 열정을 조금이나마 전하려고, '우리를 즐겁게 해 드리고자 열심'이었고 그 자신도 그 열정을 통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세상을 향한 Will의지였던 것 같습니다.
마침 떠오르는 명곡 링크를 달아봅니다.
샤프 - 연극이 끝난 후
https://youtu.be/s3uPXokhpnA?si=rKLoLfF2FIvaAj2s

stella15
와, @borumis 님 같은 X 세대가 이 노래를 알고 계시다뇨! 반갑네요. 대학가요제 386 세대 전위물 같은 건데. ㅋ 이 노래 정말 좋죠? 정말 셰익스피어는 자기 작품이 무대에 올라갈 때마다 무엇을 보고 느꼈을까? 어디쯤에서 자기 작품을 봤을까? 배우를 봤을까? 관객을 봤을까? 만족을 했을까? 화를 냈을까 궁금해지더라구요.
이책 역사적 윌은 탁월하게 그렸다고 생각하는데 실존으로서의 윌은 좀 아쉽지 않나 그런 생각이 살짝 들기도 합니다.
borumis 님의 이야기도 절절하네요. 연극은 미치지 않으면 못하죠. 저는 연극에 미친 사람 보긴했는데 역시 제 정신 같아 보이진 않았습니다. ㅎㅎ 아, 이러면 안 되는데... 미안해요. ㅠ

borumis
ㅎㅎㅎ 전 미국의 60년대 노래들도 무지 좋아해요 엄마아빠 CD를 들으면서 자라서..^^;;
정말 이 책을 읽기 전까진 셰익스피어를
그저 작가로만 보고 그의 연극을 그저 책 내지는 무대 위 잠시동안 공연되는 작품으로 봤는데 이제는 셰익스피어를 배우이자 연출 및 극단 책임자 및 가장이자 시민 등의 살아있는 모습으로 보게 되고 그 작품들도 시공간을 초월한 것으로 보이네요.

stella15
그러게요. 동감입니다.
근데 전유물을 전위물 썼네요. 그러고 보면 그믐의 달빛도 저에겐 너무 밝은가 봅니다. 흐흑~ (뭔말을 하는건지. ㅠ)

연해
우와... @borumis 님 리뷰 정말 감동인데요. '죽음과 인생의 부조리와 허무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는 말씀에는 가만히 끄덕끄덕했습니다. 어제 제가 다녀온 독서모임에서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이 나서요. 탄생과 죽음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주제인데, 가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마치 영생을 할 것 같은(자신에게 죽음은 오지 않을 것만 같은) 막연함이 들거든요. 언젠가는 다들 죽는데 말이죠.
대학생 때 연극동아리 하셨던 일화도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에 밀려오는 그 복합적인 감정. 저는 대학생 때 사진동아리를 했었는데요. 전시회를 마치고 나면 뭔가 개운하고, 뿌듯하다는 느낌보다는 헛헛함이 있더라고요. 사진을 다 정리하고, 텅빈 전시장을 멀거니 쳐다보면서도 왠지 모를 쓸쓸함이 있었고요. 이 알 수 없는 감정은 @borumis 님 말씀처럼, 해도해도 익숙해지지가 않는 이상한 굴레 같습니다.

borumis
“ Now I want
Spirits to enforce, art to enchant;
And my ending is despair
Unless I be relieved by prayer,
Which pierces so, that it assaults
Mercy itself, and frees all faults.
As you from crimes would pardoned be,
Let your indulgence set me free. ”
『세계를 향한 의지 - 셰익스피어는 어떻게 셰익스피어가 됐는가』 스티븐 그린블랫 지음, 박소현 옮김
문장모음 보기

borumis
이걸 보니 셰익스피어는 학교나 교회를 세워서 그의 사후의 영안을 위한 기도를 받는 대신 수많은 관객들의 박수갈채를 통해 면죄의 기도를 받고자 했던 것 같네요..

borumis
Nothing of him that doth fade
But doth suffer a sea-change
Into something rich and strange.
『세계를 향한 의지 - 셰익스피어는 어떻게 셰익스피어가 됐는가』 스티븐 그린블랫 지음, 박소현 옮김
문장모음 보기

오도니안
템페스트는 아직 안 읽어봐서 조만간 일순위로 읽어봐야겠습니다. 셰익스피어 일생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 은퇴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더라구요. 그처럼 풍요로운 창작 활동을 하던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나이에 딱 은퇴를 하다니, 이것만 봐도 셰익스피어는 정말 현자인 것 같아요. 하지만 모처럼 그렇게 선택을 했는데 여생이 길지 않았던 건 아쉽네요. 마치 잘 짜여진 연극 한편처럼 자기 삶에 군더더기를 두지 않으려고 했던 것처럼.

borumis
We are such stuff
As dreams are made on, and our little life
Is rounded with a sleep.
『세계를 향한 의지 - 셰익스피어는 어떻게 셰익스피어가 됐는가』 스티븐 그린블랫 지음, 박소현 옮김
문장모음 보기

borumis
“ ... it is a strangeness that hides within the boundaries of the everyday. And that is where he was determined to end his days. ”
『세계를 향한 의지 - 셰익스피어는 어떻게 셰익스피어가 됐는가』 스티븐 그린블랫 지음, 박소현 옮김
문장모음 보기

borumis
“ A great while ago the world begun,
With hey, ho, the wind and the rain,
But that's all one, our play is done. ”
『세계를 향한 의지 - 셰익스피어는 어떻게 셰익스피어가 됐는가』 스티븐 그린블랫 지음, 박소현 옮김
문장모음 보기

오도니안
“ 종교 개혁은 그에게 놀라운 선물 — 한때 풍족하고, 고도로 복잡성을 가졌던 체계가 깨어지고 난 파편 — 을 남겼다. 그리고 그는 이 선물을 정확히 어떻게 받아들이고 사용해야 하는지 알았다. 그는 자신이 성취한 세속적인 성공에 무관심하지 않았지만, 수익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셰익스피어는 한때 완전하던 의례들이 모두 깨지고 손상되어 버린 후의 세계에서(대부분의 우리가 여전히 살아가는 바로 그 세계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느끼는 연민과 혼돈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끌어모았다. ”
『세계를 향한 의지 - 셰익스피어는 어떻게 셰익스피어가 됐는가』 10장 망자와의 대화, 스티븐 그린블랫 지음, 박소현 옮김
문장모음 보기

오도니안
바로 정리할 수는 없지만, 서구 유럽 역사에서 기독교 신앙의 역할, 카톨릭과 개신교의 차이, 종교개혁이 당시 사람들에게 미쳤을 영 향, 종교적 의미가 사라진 세계에서 연극(더 넓은 의미에서 콘텐츠)이 갖는 역할 등에 대해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제가 그동안 알았던 종교개혁에 대한 지식은 상당히 피상적이었구나 싶기도 하구요.

장맥주
지금 @오도니안 님과 제가 동시에 559쪽을 읽고 있나 봅니다. 신기합니다. 아울러 저도 비슷한 생각을 하며 읽고 있습니다. <햄릿>이 종교개혁 시대 사람들의 혼란한 내면을 반영한 작품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네요.

장맥주
“ 연옥에서 온 유령이 「햄릿」의 세계에 나타나서 자신을 기억해 달 라고 하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개신교 교리에 연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잠시 제쳐 두고라도, 여기서 말하는 암시는 수수께끼처럼 드러난다. ”
『세계를 향한 의지 - 셰익스피어는 어떻게 셰익스피어가 됐는가』 스티븐 그린블랫 지음, 박소현 옮김
문장모음 보기

장맥주
“ 상식적으로 하느님이 세운 거대한 참회소에 속한 영들이, 누군가에게 살인 범죄를 저지르라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어쨌든 그들은 하늘로 올라가기 위해 지금도 자신의 죄를 정화의 불로 태우고 있는 시점이므로. 하지만 이 유령은 미사나 자선을 행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결국 하느님이 모든 복수의 권한을 쥔 독점 체계에서, 그의 아들에게 자신을 죽이고 왕위를 탈취하고 아내와 재혼한 사람을 죽여 달라며 미리 선수를 친 복수를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
『세계를 향한 의지 - 셰익스피어는 어떻게 셰익스피어가 됐는가』 스티븐 그린블랫 지음, 박소현 옮김
문장모음 보기

장맥주
“ 이쯤 되면 관객들은 이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 않을 것이다. - 연극은 결국 신학 강의와는 상관없는 방향으로 가고 있으니까. 하지만 햄릿은 그에 대해 걱정하고, 실질적인 복수 행위 대신 그를 점점 마비시키는 내적 의심과 불안이 연극의 중심에 들어앉는다. ”
『세계를 향한 의지 - 셰익스피어는 어떻게 셰익스피어가 됐는가』 스티븐 그린블랫 지음, 박소현 옮김
문장모음 보기

장맥주
“ 세익스피어 시대의 공식 개신교 입장에서 유령이란 아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중종 맞닥뜨리는 환영들-사랑했던 사람이나 친구의 외양과 기괴할 정도로 닮은 환영들-은 그저 망상이거나, 더 나쁜 경우에는 희생자에게 죄를 짓게 하려는 악마들이 가장하여 나타나는 것이었다. 햄릿은 처음에는 자신이 "정직한 유령"(1.5.142)을 보았다고 선언하지만, 이 자신감은 점점 불확실성으로 변한다. ”
『세계를 향한 의지 - 셰익스피어는 어떻게 셰익스피어가 됐는가』 스티븐 그린블랫 지음, 박소현 옮김
문장모음 보기
작성
게시판
글타래
화제 모음
지정된 화제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