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롭네요. 잘 읽었습니다.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1. <세계를 향한 의지>
D-29

오구오구

향팔
셰익스피어 작품의 연출은 연극을 구상하고 연기하는 시대의 산물이다. 하지만 연극은 시대에 작용하여 그 작품을 보는 사람들을 바꾸어 놓는다.
『셰익스피어 깊이 읽기』 션 매커보이 지음, 이종인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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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G
“ 확실히 말해서, 셰익스피어는 극장에서의 비전을 그 믿음의 활발한 잔해들과 뒤섞었지만, 한 번도 무대의 비현실성에 대해 지각하는 시선을 놓친 적이 없었고, 캠피언 같은 사람을 죽음까지 몰고 간 신념과 믿음을 그의 문학적인 환상들이 단순히 대체할 수 있다는 듯이 가장한 적도 없었다. 그리고 분명히 짧게나마 황홀한 축복의 순간들을 경험한 적은 있었을 테지만, 그는 자신이 그토록 강렬하게 쓰고 꿈꾸었던 사랑을 절대 발견하지도, 실현하지도 못했다. 이 상실의 감각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믿음과 사랑의 공허함에 대한 회의적 암시-평범한 신사라는 역할을 연기하는 것은 그에게 중대한 성취일 수 있었다.
하지만 일상을 포용한다는 것은 결코 상실과 보상에 대한 문제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전반적인 위대한 상상력의 성취와 그 성격에 대한 문제였다. 배우이자 작가로 활동하는 내내 셰익스피어는 이국적인 지리, 고대의 문화, 전설과 역사로 남은 인물들에 매료되었다. 그러나 그의 상상력은 익숙하고 친밀한 것들에도 가깝게 놓여 있었다. 아니, 오히려 그는 비범한 것들의 중심에서 평범성을 드러내기를 좋아했다. ”
『세계를 향한 의지 - 셰익스피어는 어떻게 셰익스피어가 됐는가』 12장, 669~670쪽, 스티븐 그린블랫 지음, 박소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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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G
“ 셰익스피어는 일찍이 이런 판단을 했다. 아니, 어쩌면 이 판단이 그를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자기 안에 무언가 엄청나게 대단한 것이 있으나, 그것은 무에서 유를 만드는, 어느 한 세계를 통째로 형성하는 신과 같은 재능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가 지닌 본연의 뿌리들을 결코 잃어버리지 않는 재능이라는 것을. (마키아벨리와 달리) 셰익스피어는 평범한 사람들의 잡담, 사소한 사건들, 바보 같은 놀이들을 보면서 단 한 번도 지루해하지 않았다. 그의 마법사 프로스페로가 행한 가장 고귀한 행위는 마법의 힘을 포기하고 자신이 떠나왔던 장소로 돌아간 것이었다. ”
『세계를 향한 의지 - 셰익스피어는 어떻게 셰익스피어가 됐는가』 12장, 671쪽, 스티븐 그 린블랫 지음, 박소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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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G
저는 12장의 이 두 단락이 이 책의 아주 세련된 결론으로 읽었어요. 그 뒤에 이어지는 이 책의 마지막 단락은, 독자의 상상력을 불러 일으키는 셰익스피어식의 여백의 미.

오도니안
“ 연극의 끝에 이르면 특이한 욕지기가 인다. 마치 이 연극만이 아니라 셰익스피어 작품 세계 전체에 — 죽은 자를 소생시키고, 열정들을 불러일으키고, 이성적인 동기를 말소하고, 그리고 영혼과 국가 내부의 비밀스러운 장소들을 탐색하는 것 — 의문이 제기되는 것이다. 그것은 잘 속아 넘어가는 자들에게서 돈을 착취하기 위해 고안된 사기 행각이거나 마녀의 마법이다. ”
『세계를 향한 의지 - 셰익스피어는 어떻게 셰익스피어가 됐는가』 12장 일상적인 것의 승리, 스티븐 그린블랫 지음, 박소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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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도니안
콘텐츠 생산자들에게는 자신이 상상하고 만들어내는 콘텐즈가 갖는 가치에 대한 깊은 불안이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작품과의 비교에서 오는 불안도 있겠지만, 콘텐츠라고 하는 것의 본질적 가치에 대한 의구심에서 오는 불안도 있을 것 같아요.

향팔
무덤들도 내 명령에는
그 안에 잠든 자들까지 깨워 내고, 문을 열고 그들을 내보냈다.
나의 이 강력한 예술의 힘으로. 하지만 이 거친 마법을
나 이제 포기하노라.
『세계를 향한 의지 - 셰익스피어는 어떻게 셰익스피어가 됐는가』 스티븐 그린블랫 지음, 박소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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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 저 물 밑 다섯 길 아래 그대 아버지가 누웠네.
그의 뼈대는 산호로 만들어져 있다네.
저들이 한때 그의 눈이었던 진주이니
그의 어떤 부분도 사라지지 않는다네
오직 바다에게 시달리면서 변해갈 뿐
아주 풍요로우며 낯선 그 무엇인가로. ”
『세계를 향한 의지 - 셰익스피어는 어떻게 셰익스피어가 됐는가』 스티븐 그린블랫 지음, 박소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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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피천득 선생님의 <산호와 진주>가 템페스트의 에어리엘이 부르는 노래에서 따온 산호와 진주… 소네트 번역도 그렇고 피천득 선생님은 정말로 셰익스피어에 진심이셨나 봅니다.

borumis
앗 피천득님이 번역하신 거였나요? 수필로만 알았는데 셰익스피어 번역도 이렇게 멋지군요. 안그래도 민음사에서 바이런의 시 '착하게 살아온 나날' 번역을 맡고 쓴 서문에서 '사실 나는 안정적인 삶을 살아왔습니다. 글을 써서 이름도 얻었고 대학교수도 했습니다. 그런데 나는 이런 사실이 너무도 송구스럽습니다. 나는 이런 것을 얻기 위해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았는데, 다만 운이 좋아서 이런 것들이 주어진 것 같습니다. 아는 시를 쓰면서도 안정 속에 들어 있는 내 삶이 한없이 송구스럽습니다.'라고 쓴 걸 보고 안타까웠습니다. 사람들이 사회성이나 철학성이 부족하다고 지적받기도 하고 자신의 삶이 너무 순응적이지 않았나 하고 미안함과 회한으로 남아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당시 수필들이 너무 쉽게 읽힌다는 오해를 받던 것만큼 대중적인 면과 예술을 동시에 추구하고 살벌한 사회의 검열을 피하고자 했던 셰익스피어가 더 깊이 와닿았을 것 같네요.

향팔
아, 피천득 선생님이 내셨던 문집 중에 <산호와 진주>라는 책이 있었는데 그 산호와 진주가 템페스트에서 따온 말이라고 해서요. 셰익스피어에 얼마나 진심이셨으면 소네트 번역도 모자라서 본인의 책 제목도 산호와 진주라고 지으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밥심
셰익스피어 소네트를 피천득 번역본과 김용성 번역본을 빌려 비교해가며 읽어봤는데, 같은 영어 원본이지만 번역본은 상당히 다르더라구요. 소설도 마찬가지겠지만 시는 특히 원문으로 읽고 감상할 수 있으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소네트는 제 취향이 아닌지 완독 못하고 중간에 포기했습니다. ㅋㅎ

stella15
산호와 진주 읽고 싶긴하네요. 근데 피천득 선생의 책은 이제 안 나오지 않았나요? 워낙 오래된 분의 책이라. 중고샵이나 헌책방에 가면 구할 수 있으려나 모르겠어요.

향팔
몇년 전에 범우사에서 나온 피천득 문학 전집이 깔끔하게 정리가 잘돼 있어 좋더라고요. 총 일곱 권인데 취향 따라 골라 보면 되실 거예요. 옛날 산호와 진주에 실렸던 글들은 시, 수필, 번역시들이 섞여 있었을 건데, 범우사 전집에서는 종류별로 나누어 놓았답니다. 저는 꽃씨와 도둑(시), 나의 사랑하는 생활(수필), 나는 미를 위하여 죽었다(번역시), 셰익스피어 소네트 이렇게 네 권만 읽어봤어요. 피천득 선생님은 수필의 대가라고만 알고 있다가 그분이 쓰신 시도 수필 못지않게 좋다는 걸 느끼고 감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꽃씨와 도둑피천득 문학 전집 1권. 시집 꽃씨와 도둑. 1926년 첫 시조 <가을비>와 1930년 4월 7일 《동아일보》에 실린 첫 시를 필두로 초기 시를 다수 포함하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나와 있는 시집들과 다르게 모든 시를 가능한 발표연대 순으로 배열하였다.

나의 사랑하는 생활피천득 문학 전집 2권. 기존의 수필집과 달리 본 수필집 역시 앞의 시집처럼 연대와 주제를 고려하여 크게 3부로 나누었으며, 지금까지 미수록된 수필을 발굴해 실었다. 피천득은 흔히 수필을 시보다 훨씬 나중에 쓴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 그는 초기부터 수필과 시를 거의 동시에 창작하였다.

나는 미를 위하여 죽었다피천득 문학 전집 4권. 외국시 한역시집인 동시에 한국시 영역시집이다. 피천득은 영미시 뿐 아니라 중국 고전시, 인도와 일본 현대시도 일부 번역하였다. 특히 이 번역집에는 기존의 번역시집과 달리 피천득의 한국시 영역이 포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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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15
와, 정말 있군요! 오래 전부터 피천득하면 범우사라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예쁘게 나와 있었네요. 고맙습니다. 향팔이님.^^

향팔
“ 배우이자 작가로 활동하는 내내 셰익스피어는 이국적인 지리, 고대의 문화, 전설과 역사로 남은 인물들에 매료되었다. 그러나 그의 상상력은 익숙하고 친밀한 것들에도 가깝게 놓여 있었다. 아니, 오히려 그는 비범한 것들의 중심에서 평범성을 드러내기를 좋아했다. ”
『세계를 향한 의지 - 셰익스피어는 어떻게 셰익스피어가 됐는가』 스티븐 그린블랫 지음, 박소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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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 셰익스피어의 상상력은 일상의 범주 위로 광활하게 높이 날아가지도 않았고, 형이상학의 장대한 홀에 들어가서 매일매일의 삶을 뒤로 한 채 문을 닫아 버리지도 않았다. 『비너스와 아도니스』에서, 우리는 사랑의 여신의 얼굴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는 것을 본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슬픔에 빠진 부모들이 줄리엣의 생기 없는 육체를 붙잡고 흐느낄 때, 결혼식을 위해 고용된 음악가들은 그들의 악기를 집어넣으면서 서로에게 조용히 실없는 농담을 건넨다. — 그리고 그들은 장례식장에서 저녁을 때우기 위해 떠나지 않고 남는다. ”
『세계를 향한 의지 - 셰익스피어는 어떻게 셰익스피어가 됐는가』 스티븐 그린블랫 지음, 박소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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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 그는 일찍이 이런 판단을 했다. 아니, 어쩌면 이 판단이 그를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자기 안에 무언가 엄청나고 대단한 것이 있으나, 그것은 무에서 유를 만드는, 어느 한 세계를 통째로 형성하는 신과 같은 재능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가 지닌 본연의 뿌리들을 결코 잃어버리지 않는 재능이라는 것을. ”
『세계를 향한 의지 - 셰익스피어는 어떻게 셰익스피어가 됐는가』 스티븐 그린블랫 지음, 박소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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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 그는 평범한 사람들의 잡담, 사소한 사건들, 바보 같은 놀이들을 보면서 단 한 번도 지루해하지 않았다. 그의 마법사 프로스페로가 행한 가장 고귀한 행위는 마법의 힘을 포기하고 자신이 떠나왔던 장소로 돌아간 것이었다. ”
『세계를 향한 의지 - 셰익스피어는 어떻게 셰익스피어가 됐는가』 스티븐 그린블랫 지음, 박소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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