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주에 STS 관련 책 12권 읽기 ② 브뤼노 라투르의 과학인문학 편지 (브뤼노 라투르)

D-29
이 우회 안에는 어떤 약속과 위험이 함께 있습니다. 약속은 왕이 반드시 원래 목표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 하지만 위험도 있습니다. 원래 목표로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위험이지요(이제 새로운 목표는 히에론 왕과 아르키메데스 '공동의' 이익들로 '구성'되지요).
브뤼노 라투르의 과학인문학 편지 - 인간과 자연, 과학과 정치에 관한 가장 도발적인 생각 39쪽, 브뤼노 라투르 지음, 이세진 옮김, 김환석 감수
사실 아르키메데스는 자기 자신의 목표, 즉 기하학 연구의 순수한 발전을 좇았을 뿐입니다. 혹은, 다소 긴 우회를 통해 구성된 행위가 오히려 실천적 적용을 배제한 증명과 시라쿠사 방위 사이에서 커다란 간격을 낳았다고 할까요. 바로 이 간격을 고려해야만 합니다. 히에론 왕이 '자신의 목표'를 위해서 아르키메데스를 끌어들인 건지, 아르키메데스가 '자신의 목표'를 위해서 히에론 왕을 그의 목표에서 벗어나게 한 건지요. (...) 결국 행위란 이러한 연쇄들로 엮인 것, 즉 관심사, 실천, 서로 다른 언어-전쟁의 언어, 기하학의 언어, 철학의 언어, 정치의 언어-들이 겹겹이 쌓인 층상과 비슷합니다. 번역은 베끼고, 순서를 바꾸고, 옮기고, 다른 말로 바꾸는 그 모든 것, 따라서 '변형하여 전달하기'transporter en transformant입니다.
브뤼노 라투르의 과학인문학 편지 - 인간과 자연, 과학과 정치에 관한 가장 도발적인 생각 39-40쪽, 브뤼노 라투르 지음, 이세진 옮김, 김환석 감수
이 강의가 '과학과 기술'에 대한 것이라고 말하면 학생이 바로 거부감을 느끼고 도망가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군요. "과학과 기술에 대해서 공부하자"는 말로 학생들의 사기를 꺾는다면 그거야말로 최악이지요. 과학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에 모든 학생들이 안 좋은 기억을 갖고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적어도 프랑스에서는 그렇습니다. 학생은 독일인이니 어쩌면 좀 더 운이 좋았을지도 모르겠군요.
브뤼노 라투르의 과학인문학 편지 - 인간과 자연, 과학과 정치에 관한 가장 도발적인 생각 브뤼노 라투르 지음, 이세진 옮김, 김환석 감수
가장 서글픈 사실은 내 학생들 중에서 상당수가 과학 전공자라는 겁니다. 사람들 말마따나 그들은 '수학의 귀재들'인데도 대개 한 가지 생각밖에 없습니다. 최대한 빨리 과학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 말이지요. 게다가 기술은 그들에게 더욱더 혐오스럽게 보이는 모양입니다. "그것만 빼고 다 좋아요"라는 식이지요.
브뤼노 라투르의 과학인문학 편지 - 인간과 자연, 과학과 정치에 관한 가장 도발적인 생각 브뤼노 라투르 지음, 이세진 옮김, 김환석 감수
과학의 자율성이란 뒤늦은 임의적 분할 découpage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한 자율성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옹호해야 할 것인지, 케케묵은 것으로 규탄해야 할 것인지는 논외로 칩시다. 그 임의적 분할은 이 번역과 이익분배 intéressement 작용에서 특정 요소들을 고립시켜 이해할 수 없는 대립을 만들게 마련이지요. 우리는 이 분할에 대해서 풀리지 않을 의문을 제기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브뤼노 라투르의 과학인문학 편지 - 인간과 자연, 과학과 정치에 관한 가장 도발적인 생각 44쪽, 브뤼노 라투르 지음, 이세진 옮김, 김환석 감수
집단 행위는 우회와 구성을 통하여 서로 매우 다른 유래를 지닌 요소들을 한데 뒤섞습니다.
브뤼노 라투르의 과학인문학 편지 - 인간과 자연, 과학과 정치에 관한 가장 도발적인 생각 44쪽, 브뤼노 라투르 지음, 이세진 옮김, 김환석 감수
과학과 기술은 지나치게 '자율적'autonome 으로 보이기 때문에 사랑받기도 하고 미움받기도 합니 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학기술에 관심을 가져봤자 쓸데없다고 생각합니다. 과학기술은 보통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갖는 일상생활, 문화, 가치, 인간성, 정치적 열망 등과 관계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지요.
브뤼노 라투르의 과학인문학 편지 - 인간과 자연, 과학과 정치에 관한 가장 도발적인 생각 브뤼노 라투르 지음, 이세진 옮김, 김환석 감수
과학기술은 자율적이 되어버린 나머지 아예 낯선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문과대, 법대, 인문대, 심지어 사회과학대 출신의 교양깨나 있다는 사람들조차 과학기술에는 관심이 없는 듯합니 다. 그들은 기껏해야 과학기술에 감탄이나 할 뿐이지요. 그것도 멀찌감치 떨어져서 말입니다···.
브뤼노 라투르의 과학인문학 편지 - 인간과 자연, 과학과 정치에 관한 가장 도발적인 생각 브뤼노 라투르 지음, 이세진 옮김, 김환석 감수
저도.. 이게 좀 아쉬워요. 오히려 이과생들은 요즘 인문학이 핫하다면서 인문학 강의도 일부러 찾아 듣고 관련 책들도 많이 읽는데 문과 출신의 사람들은 평소 책을 많이 읽는 편인데 이쪽 자연과학 장르는 미리 어렵다고 판단을 내리시고 거리를 두시더라구요..;;
찰스 퍼시 스노우가 <두 문화>를 말했을 때와 달라진 게 없는 듯해서 아쉽습니다. 저는 소설가들에 대해서도 그런 아쉬움을 느낍니다. 몇 년 전에 성소수자 문제로 소설을 쓴 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하는데 그 분은 성정체성이 얼마나 유전의 영향을 받느냐 하는 문제가 어떤 사회적 함의를 지닐 수 있는가에 대해 전혀 모르시더라고요.
나는 학생이 자연과학의 주제에만 국한하여 관심을 쏟지는 말라는 뜻에서 이 예를 선택했습니다. 경제학은 사회과학이지만 도처에 영향을 미치며 우리 삶의 모든 측면에, 화학이나 의학에도 관 여합니다. 그래서 경제학의 목표와 기능, 경제학의 신뢰도와 예측 능력 등등에 관한 논쟁들은 모두 직접적으로 우리의 관심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브뤼노 라투르의 과학인문학 편지 - 인간과 자연, 과학과 정치에 관한 가장 도발적인 생각 브뤼노 라투르 지음, 이세진 옮김, 김환석 감수
과학기술의 우회를 고려하지 않는 학문분과들이 흥미로울 수는 있겠지만, 그 학문분과들은 개코원숭이를 다루지 인간은 다루지 않습니다. 과학기술 없는 인문학은 원숭이 놀음에 지나지 않다는 말입니다. 소아과 논문이나 심리학자의 견해에 영향을 받지 않은 초보엄마의 행위가 있을까요. 프로이트를 외면할 수 있는 사랑싸움 따위가 어디 있겠습니까.
브뤼노 라투르의 과학인문학 편지 - 인간과 자연, 과학과 정치에 관한 가장 도발적인 생각 브뤼노 라투르 지음, 이세진 옮김, 김환석 감수
저도 이부분을 줄쳤습니다.^^;; 물론 프로이트를 너무 신경 써서 곧이곧대로 믿다가 제게 차인 남친도 있었지만..;;ㅎ
프로이트를 곧이 곧대로 믿으신 분은 @borumis 님이 아니라 그 남자친구 분이신 거지요...? ㅎㅎㅎ (STS보다 훨씬 재미있는 게 바로 타인의 연애사... ^^;;;)
네 답답하더라구요. 프로이트와 정말'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같은 고리짝 시절 책을 맹신해서;; 어느 곳이든 어느 분야(?)든 고정된 틀에 갇힌 사람들은 있더라구요..^^;;
화남금녀는 저의 연애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던... 제 아내의 연애에도 영향을 미쳤던 거 같습니다. ("동굴에 들어가야 할 시간"이라는 말이 얼마나 편리했는데요!) ^^
바로 이 이유에서 나는 다음과 같은 방법적 규칙을 선택의 원리로 채택합니다. 어떤 행위 경로에 ('하드'와 '소프트',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을 막론하고) 어떤 기술이나 과학의 중재(번역)가 다소 명시적으로 언급되지 않고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흐를 수 있는지(기사라면 몇 줄이나 지나갔는지, 대화에서라면 얼마나 많은 문장이 지나갔는지) 살펴보세요. 선택할 수 있는 예들이 넘쳐날걸요.
브뤼노 라투르의 과학인문학 편지 - 인간과 자연, 과학과 정치에 관한 가장 도발적인 생각 브뤼노 라투르 지음, 이세진 옮김, 김환석 감수
집에 사놓고 계속 안 읽게 되어서 책 내용이 궁금했는데 이번 참에 읽을 수 있겠어요! 멋진 기획 감사드립니다. : )
대충 시작한 기획입니다만 이렇게 함께 읽을 기회를 마련하게 되다니 기쁩니다. 어서오세요!
'공개토론'이나 '시민' 같은 단어들이 '소각장' 같은 '순전히 기술적인' 용어와 연결되는 것은 명실상부한 시대적 경향입니다. 학생 말마따나, 이것은 정치와의 새로운 연결을 상정합니다. 히에론 왕은 아르키메데스의 전투기계를 쓸 것이냐 말 것이냐를 시라쿠사인들의 토론에 부치지 않았지요···.
브뤼노 라투르의 과학인문학 편지 - 인간과 자연, 과학과 정치에 관한 가장 도발적인 생각 브뤼노 라투르 지음, 이세진 옮김, 김환석 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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