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약 우리가 사실의 실험실에서 그들이 제조를 덧붙이고, 물신에 그들의 제작자에 의한 명시적이고 성찰적인 제조를 덧붙인다면, 비판의 두 가지 주요 자원은 사라질 것이다. 모루 뿐 아니라 망치마저도 말이다. ㅏ그들 대신에 나타나는 것은 우상파괴주의에 의해 파괴되어온 것이자, 항상 거기 있어온 것이다. 즉 그것은 항상 다시 새롭게 새겨져야만 하는 것이자, 행위하기와 주장하기에 필요한 것이다. 이것이 내가 팩티쉬라고 부르는 것이다. 우리가 사실과 물신 둘 다에 관한 제작자의 행위들을 명백하게 복구할 때, 사실과 물신의 대학살로부터 팩티쉬를 구제할 수 있다. ”
“ 이자벨 스탕저의 강력한 주장에 따르면, 비록 우리가 정말로 외부에 있는 세계를 안다는 과학의 주장을 폭로하려고 준비하고 있다고 해도, 모든 이는 "이것이 전쟁을 의미한다."는 것을 시인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명백하게 두 개의 정반대되는 합의가 있을 때만 싸울 가치가 있는 전쟁이 된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근대주의의 합의는 이제 분명히 우리의 뒤편에 있고 또 하나는 아직도 장래에 있다. 어느 누구라도 이러한 전쟁을 일으키기를 원한다면, 그들은 이제 내가 어떤 입장에 서 있는지, 내가 지킬 준비가 되어 있는 가치들이 무엇인지, 내가 휘두르려고 하는 단순한 무기들이 무엇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중략) 나는 우리가 그러한 최전선에서 만났을 때 아무런 무기를 지니지 않은 채 시민의 복장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왜냐하면 집합체를 발명하는 작업은 너무 어마어마한 일이라서 모든 전쟁들을 상대적으로 보잘 것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물론 과학전쟁을 포함해서 말이다. ”
오! 사진이 많아 쑥쑥 읽히네요. 아직 2장인데 토양체취작업이 얼마나 많은 분야의 것들을 끌어와 과학에 접목시키나 예시를 보여주는 건가요? 내용이 어렵지는 않은데 작가분의 의도를 모르겠어요.
근데 철학자들 말투는 전세계적으로 공통되는 건지 문장에 철학자 말투가 많이 묻어나네요.
제가 지식인병에 걸려서인지 일련의 과정에 철학적 사유를 조금씩 접붙이기 하는 거 싫지 않습니다. 헤헤
꽃의요정
“ 과학적 사실은 지금 존재하는 기술적 배치로부터 만들어지는 것이다. 사실과 인공물은 분리하기 힘들 정도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이런 의미에서 근대 이후에 과학과 기술을 구분해서 얘기하는 것보다 이를 한꺼번에 테크노사이언스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하다. 과학을 이렇게 보는 것은 합리성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을 살아 있는 것으로 창발하는 것으로 창의적인 인간의 활동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것이 <판도라의 희망>에서 펼쳐지는 라투르의 '과학철학'이다. ”
“ 과학은 세계에 대해 말한다기보다는, 오히려 언제나 세계를 저 멀리 밀어내버리는 동시에 세계를 더 가까이 가져오는 재현들을 구성한다. 내 친구들은 숲이 전지하는지 후퇴하 는지 여부를 발견하고자 하고, 나는 어떻게 과학이 실제적인 동시에 구성적일 수 있는지, 직접적인 동시에 매개적이고, 믿을 만한 동시에 허술하고, 가까운 동시에 멀 수 있는지 알아내고자 한다. ”
“ "고양이는 매트 위에 있다."라는 문장에 진리값을 부여하려면 '진짜' 고양이는 그 말 속에 있는 매트 위에서 조용히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확실성을 획득하기 위해서 세계는 단어보다 훨씬 더 그것 스스로를 휘젓고 변형시켜야 한다. 바로 이 점이 분석철학자가 지금 깨달아야만 하는, 분석철학에서 무시되어온 절반이다. ”
“ 우리는 어떻게 이런 재현의 관계, 위임의 관계를 진술할 수 있을까? 특히 그것이 모방이 아니면서도 그렇게 잘 조정되고, 매우 정확하고, 실제로 가득하고, 그리고 결국 매우 실제적일 때에는? 철학자들이 진리의 최종적 기준으로서 단어와 사물 사이의 대응을 찾을 때 그들은 스스로를 우롱한 것이다. 진리도 있고 실재도 있지만, 대응이나 일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말하는 것을 증명하고 보장하기 위해, 연속적인 층위들의 변형을 통한 훨씬 더 믿을 만한 이동이 있는 것이다. 각 단계에서, 대부분의 요소는 사라지지만 동시에 재탄생하면서 물질과 형식을 분리하는 해협을 가로질러 도약하는 것이다. ”
“ 실험은 비문자적 상황에 대한 텍스트이며, 추후 다른 이들은 그것이 단순히 텍스트일 뿐인지 아닌지를 결정할 시험을 한다. 만약 마지막 시험이 성공적이면, 그것은 단지 텍스트가 아니며, 그것의 뒤에 실제 상황이 정말로 있고, 행위자와 그것의 저자 모두가 새로운 능력을 부여받는다. 파스퇴르는 발효물이 살아 있는 물질(즉 발효균)임을 증명했고, 발효균은 양조 효모와는 다른 특별한 발효를 촉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
“ 파스퇴르 역시 무엇이 무엇을 승인하고, 누가 누구를 승인하고, 무엇이 누구를 승인하고, 누가 무엇을 승인하는가를 탐험하고 협상하고 시험하고 있다. 실재성을 획득하는 다른 방법은 없다. 그러나 그가 선택한 연합과 그가 탐험하는 치환은 다른 사회-자연적 집합에 이바지하고, 그의 이동 각각은 황제뿐 아니라 공기, 저장(즉 저장된 음식들)에 대한 해석뿐 아니라 실험실 장비의 사용, 농업 관련 사업의 기획뿐 아니라 세균의 분류학 등과 같은 연합된 존재자의 정의를 변경시킨다. ”
마지막에 "아마도 다음에는 성공할 것이다."라고 하신 게 이 책의 실패인정인 듯합니다. ㅎㅎ
장맥주
으하하하. 저자도 인정한 실패한 책이군요. ^^
꽃의요정
423p
왜 어디에서나 그렇게 쉬워 보이고 널리 퍼진 것처럼 보일 때 왜 그렇게 어려워야 하는 것일까? 우리가 실행의 가르침을 들을 때에는 너무도 상식적으로 보이지만, 우리가 이론의 가르침을 들을 때면 너무도 모순적이고 뒤틀려 있고 불분명해 보인다.
셀프디스가 여기에 또...
borumis
ㅋㅋㅋㅋ 그래도 솔직하네요..
장맥주
전 더 얄밉습니다. 아니, '얄밉습니다'에서 '얄' 자는 빼도 될 거 같기도... ^^
꽃의요정
사건이었던 것은 계속되는 사건으로 남아 있어야만 한다. 우리는 단지 네트워크를 역사화하고 국소화하는 것을 계속하고, 누가 그리고 무엇이 그것의 후예를 만들어내는지 찾아나가야 한다.
“ 어떻게 우리가 근대인이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었음을 깨달았는지를 알 수 있는가? 그들은 사실을 허구로부터 구분하고 매개의 실행으로부터 이러한 분리의 이론을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러한 부서진 조각을 끊임없이 강박적으로 고치고 수리하고 극복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주체와 객체가 조화되어야 하고, 땜질되어야 하고, 극복되어야 하고, ‘파기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이용한다. 근대주의는 수리와 땜질을 되풀이하는 것을 결코 멈춘 적이 없으며, 동시에 그것이 수리 가능하지 않은 것임에 대해 절망한다. 이러한 모든 수리 작업에도 근대인은 애초에 근대성을 만들어낸 것, 즉 이 모든 것을 시작되게 한 파괴의 몸짓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다른 문화를 산산조각 내고 난 후에, 절망에 찬 나머지 그들은 그들을 질투하기 시작하고, 엑조티시즘의 이름 아래 온전하고 완전하고 유기적이며 건전하고 훼손되지 않고 더럽혀지지 않은, 그리고 근대화되지 않은 야만인에 대한 전시학적인 예찬을 고안해내는 것이다. 근대인이 되기 위해 그들은 전근대라는 한층 더 이상한 발명을 덧붙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