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제, 아프리카, 흑인문화를 따라 - 01.노예선, 마커스 레디커

D-29
향팔이님의 문장 수집: "자서전을 통해 중간항로 항해의 시련을 기록한 노예 올라우다 에퀴아노와 반-노예제도적 태도를 가진 선원이자 시인 제임스 필드 스탠필드, 노예선 선장에서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작곡한 폐지론자로 변모한 존 뉴턴과 같은 잊지 못할 인물의 이야기…"
추천사에서는 앞으로 4~6장에서 다뤄질 이야기가 미리 눈길을 끕니다. 평소 전혀 알지 못했던 인물들이라 너무 궁금하네요.
은화님의 대화: 1장에서 3장까지의 내용은 노예제도가 만연하던 시절에 있던 당시의 풍경, 사람들, 그들이 가진 생각과 일화를 통해 우리에게 노예제를 더 개인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해주네요. 1) 3장까지의 정보 중 기억에 남는 인물 또는 일화가 있으셨나요? 2) 기존에 노예제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 또는 정보와 달리 책을 통해 새로 알게 되거나 의외라고 생각한 내용이 있으신가요?
중간항로가 아래로부터의 저항과 창의성이 강력하게 발휘된 장소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 하갑판에 함께 던져진 다인종의 아프리카인들은 그들만의 문화를 구축하고 재구성하였고 새로운 언어를 발달시키며 새로운 노래를 부르고 새로운 춤을 추면서 단식 투쟁과 선상 반란과 같은 새로운 형태의 저항을 이어나갔습니다. 이 과정에서 넓은 의미의 아프리카계 아메리칸 문화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다양한 저항 문화를 바탕으로 아프리카의 정체성과 관습이 새롭고 긍정적인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노예선의 하갑판에서 울부짖던 불행한 노예들은 직면한 공포 앞에서 자신을 지탱할 수 있는 새로운 무언가를 자신의 힘으로 만들어 냈던 것입니다.
노예선 - 인간의 역사 마커스 레디커 지음, 박지순 옮김
향팔이님의 문장 수집: "중간항로가 아래로부터의 저항과 창의성이 강력하게 발휘된 장소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 하갑판에 함께 던져진 다인종의 아프리카인들은 그들만의 문화를 구축하고 재구성하였고 새로운 언어를 발달시키며 새로운 노래를 부르고 새로운 춤을 추면서 단식 투쟁과 선상 반란과 같은 새로운 형태의 저항을 이어나갔습니다. 이 과정에서 넓은 의미의 아프리카계 아메리칸 문화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다양한 저항 문화를 바탕으로 아프리카의 정체성과 관습이 새롭고 긍정적인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노예선의 하갑판에서 울부짖던 불행한 노예들은 직면한 공포 앞에서 자신을 지탱할 수 있는 새로운 무언가를 자신의 힘으로 만들어 냈던 것입니다."
8장에서 설명될 내용도 흥미롭습니다. “극심한 테러의 장소인 동시에 대량 학살의 장소”로만 알고 있었던 노예선 내에서 노래와 춤과 저항이라니… 아프리카계 아메리칸 문화라는 것은 아메리카와 카리브 해의 농장들에서 처음 태동한 줄 알았는데, 이미 중간항로의 노예선에서부터 싹트고 있었군요.
이 책을 쓰는 것은 고통이었으며, 만약 내가 이 주제에 어떠한 정당성이라도 부여했다면 이 책을 읽는 것 역시 고통스러울 것이다. 이러한 고통을 우회하는 방법은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 나는 이러한 공포가 항상 세계 자본주의의 중심에 있었고 여전히 남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는 확고한 믿음에 따라, 상상할 수 없는 폭력과 테러 그리고 죽음을 겪은 사람들에게 가장 커다란 존경심을 표하며 이 연구를 바친다.
노예선 - 인간의 역사 마커스 레디커 지음, 박지순 옮김
은화님의 대화: 주말에 먼저 책을 좀 폈는데 읽다 보니 집중이 되어 금새 3장까지 읽어버렸네요. 개인적으로는 서막에서 저자가 말한 '추상성의 폭력'이라는 말이 인상 깊었어요. 어떤 사회/역사 문제에 대해, 비극에 대해 조사하다 보면 그것들은 필연적으로 그 규모와 심각성을 사람들에게 구체적으로 각인시키고자 수치화 하기 마련이죠. 어느 년도에, 몇 년에 걸쳐, 몇 명의 사람이, 몇 %의 비중이 등등.. 하지만 때론 그 숫자들을 읽어 내려가면 도리어 구체화 된 숫자의 숲에서 길을 잃는 느낌이 가끔 들곤하죠. 도대체 얼마나 되는 규모인지 체감이 되지 않고, 사태의 심각성은 아라비아 숫자와 기호 그 이상의 의미와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인지 저자는 우리에게 노예무역이 얼마나 광범위하거나, 얼마나 심각했는가를 수치화하여 보여주기 보다는 그 당시의 여러 사람들의 삶과 선택과 일지를 읽어줍니다. 숫자의 숲을 벗어나 개별적인 인간들이 겪고 느꼈던 고통, 모순, 탐욕을 들여다보면서 막연하게 비인간적으로만 느꼈던 노예제의 '인간적인 모습'이 드러나는 느낌이랄까요.
맞습니다. 저자 레디커 선생님이 이 책의 부제를 <인간의 역사>라고 지은 이유도, 우리의 탐구가 자칫 추상적이고 비인간적일 수 있는 숫자와 도구에 머물지 않고 구체적 인간의 진실에 다가서야 함을 강조하기 위해서겠지요.
윌리엄 스넬그레이브는 아프리카인은 “잔인하고 야만적인 식인종”이며 자신은 윤리적이고 문명화된 구원자이고 좋은 성품의 가톨릭 신자로서 야만인들조차 이를 알아보고 환호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스스로 파괴했던 가족의 구세주가 된다고 여겼다.
노예선 - 인간의 역사 마커스 레디커 지음, 박지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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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는 심오한 일련의 경제적 변화의 중심에 있었고 자본주의의 융성에 필수적으로 작용하며 새로운 영토의 장악, 수백만 명의 징용과 경제적 성장 시장으로의 재배치, 금과 은의 채굴과 담배와 사탕수수의 재배, 장거리 상거래 시장의 동반 상승, 마지막으로 세상 누구도 본 적 없던 자본과 부의 계획적 축적을 모두 이루어 냈다. 느리고 변덕스러우며 평탄하지 않지만 의심할 여지없는 저력으로 세계 시장과 국제적 자본주의 체제가 등장했다.
노예선 - 인간의 역사 p.62, 마커스 레디커 지음, 박지순 옮김
퍼슬스웨이트는 1740년대 초반에 이미 일부 사람들이 “노예무역”이라고 부르던 행위를 광적으로 비난하며 반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프리카 무역”이라는 공손한 표현을 사용하며 비난에 대한 방어를 준비했다. “많은 사람이 기독교 국가에서 흑인을 거래하는 이 무역이 야만적이고 비인간적이며 불법적인 운송이라는 생각에 따라 반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모든 노예무역업자처럼 그는 아프리카인들이 “문명화된 기독교 국가에서 사는 것”이 “야만인들” 사이에서의 삶보다 더 나을 것이라며 합리화했다.
노예선 - 인간의 역사 p.68, 마커스 레디커 지음, 박지순 옮김
총기와 화약을 구매했던 큰 집단은 중앙집권화 된 강한 군사 국가로 성장했고, 화기를 사용해서 이웃 부족을 정복하고 노예를 잡아들인 후 거래해서 소총을 사들이고 있었다. 노예무역이 가장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던 지역에서는 노예 포획과 유지 및 운송에 관한 새로운 노동 분업이 성장했다.
노예선 - 인간의 역사 p.99, 마커스 레디커 지음, 박지순 옮김
많은 아프리카인과 노예무역의 폐지론을 펼치던 유럽인들은 서아프리카의 법적 절차가 무너졌고 수천 명이 잘못 고발되고 유죄 판결을 받았다고 느꼈다. 그들은 이러한 오심이 교역할 가치가 있는 노예를 최대한 생산하고자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왕립 아프리카 회사에서 일했던 프랜시스 무어는 감비아 지역에서 1730년경 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들의 경우 “모든 처별이 노예형이었다”고 기록했다. 월터 로드니는 북부 기니 해안의 지방 지배 계급이 “노예무역을 보조해 주는” 법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노예선 - 인간의 역사 p.122, 마커스 레디커 지음, 박지순 옮김
향팔이님의 문장 수집: "윌리엄 스넬그레이브는 아프리카인은 “잔인하고 야만적인 식인종”이며 자신은 윤리적이고 문명화된 구원자이고 좋은 성품의 가톨릭 신자로서 야만인들조차 이를 알아보고 환호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스스로 파괴했던 가족의 구세주가 된다고 여겼다."
@향팔이 님도 이 문장을 고르셨군요. 저도 지금 계속 책을 읽으면서 인상 깊은 인물들이 여럿 지나가지만 현재까지는 윌리엄 스넬그레이브가 제일 기억에 남네요. 뭐라고 해야 할까.. 이 사람이 한 행동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판단해야 할지 감이 안 잡힌달까요? 스넬그레이브에 대한 설명은 자서전 또는 일지/회고의 느낌으로 쓴 기록에 의존하기에 어느 정도 과장이나 가식, 또는 자기합리화나 변명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가 아프리카의 마을에서 아이를 구하고 어머니와 다시 상봉하는 일에 자신도 감동하는 묘사를 보면 근본이 무정하거나 사악한 인간은 아니지 않을까 생각도 들고요. 스넬그레이브는 그 아이와 어머니의 관계를 모르고 행한 일이고, 사들인 노예 어머니가 누구인지도 몰랐겠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행동은 선행이죠. (그의 진짜 동기와 내면, 사건의 진실은 오직 그만이 알겠지만) 저는 그가 조금은 과장을 곁들였을지는 몰라도 근본적인 성품이 악인은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지 않았다면 굳이 18개월 밖에 안된 아이를 사들이려 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한 개인의 성향과 성품, 행동이 선하다고 하여 그가 선인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도 생각했어요. 책에도 써있듯 결국 스넬그레이브 본인이 노예무역상이 아니었다면, 그 노예들을 사들이지 않았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비극이니까요. 물론 그가 아니었더라도 누군가 다른 노예상이 노예를 샀겠지만.. 노예제라는 거대한 억압구조에서 구매자로서, 인간을 매매하는 주도자로서, 상인-선장-선원-노예로 이어지는 피라미드에서 상위계층으로서 그도 결국 거대한 악의 공모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죠. 스넬그레이브가 자신의 선행에 '야만인들'이 감화되어 저항도 없이 착하게 순종하며 항해를 무사히 마무리했다고 말하는 모습에서 그는 자신이 '선한 사람'이라고 정말로 확신하고 있다고 봤어요. 스넬글레이브가 정말로 노예제도의 잘못을 인지하지도 못하고 자신이 기독교 서구문명의 일원이자 종교인으로서 선행을 다했다는 생각으로 그 기록을 남겼을지, 아니면 그 스스로도 노예매매의 악을 알고는 있지만 한편으로는 무시하고 합리화를 하며 쓴 것인지 궁금하네요. 우리는 결코 답을 알 수 없겠죠. 악의 평범성, 그리고 선/악이 시대와 상황에 상관없이 절대적인가 아니면 상대적인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네요.
은화님의 대화: 1장에서 3장까지의 내용은 노예제도가 만연하던 시절에 있던 당시의 풍경, 사람들, 그들이 가진 생각과 일화를 통해 우리에게 노예제를 더 개인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해주네요. 1) 3장까지의 정보 중 기억에 남는 인물 또는 일화가 있으셨나요? 2) 기존에 노예제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 또는 정보와 달리 책을 통해 새로 알게 되거나 의외라고 생각한 내용이 있으신가요?
전 3장이 노예제에 대한 새로운 생각과 정보를 많이 전해주는 부분이었어요. 그 전에는 억압자로서의 백인, 핍박자로서의 흑인이라는 단순한 대립구도가 막연하게 뿌연 상으로 머리에 차 있었습니다. 하지만 3장을 읽으니 유럽과 아프리카, 서구인과 아프리카인들의 노예매매에는 그들의 이해관계와 역학구도가 더 복잡하게 얽혀있다는 걸 알게 되네요. 서구인들은 새로운 아메리카 식민지를 개척할 노동력이 필요하고, 아프리카의 지도세력과 상인들은 전쟁, 내전, 사법에 의해 낙오된 필요없는 하층민과 포로들에 대한 관리책임을 떠넘기고 싶은 상호 이해가 맞아 떨어져 노예매매가 본격화 되었다는 게 새롭게 다가왔어요. 그리고 그 둘의 근본적인 동기에는 이윤과 욕심이 개입되어 있다는 점이 씁쓸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인간을 사들이고, 하나의 산업으로서 다른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수요자로서 서구 세계에 가장 많은 잘못이 있죠. 하지만 동시에 아프리카의 같은 흑인들 내에서도 지배세력들이 다른 주변국가나 공동체를 약탈하거나 정복하고, 노예를 더 팔아넘기기 위해 노예형 선고를 남용하고, 공동체끼리 약탈하는 모습들을 보며 아프리카도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다고 생각했어요. 결국 아메리카, 아프리카, 유럽 모든 곳에서 상위의 계층들이 자신들의 필요와 욕심에 의해 누군가를 희생시켜야 했고 그 희생양으로 다수의 흑인 피지배층이 제물이 되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네요.
은화님의 대화: @향팔이 님도 이 문장을 고르셨군요. 저도 지금 계속 책을 읽으면서 인상 깊은 인물들이 여럿 지나가지만 현재까지는 윌리엄 스넬그레이브가 제일 기억에 남네요. 뭐라고 해야 할까.. 이 사람이 한 행동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판단해야 할지 감이 안 잡힌달까요? 스넬그레이브에 대한 설명은 자서전 또는 일지/회고의 느낌으로 쓴 기록에 의존하기에 어느 정도 과장이나 가식, 또는 자기합리화나 변명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가 아프리카의 마을에서 아이를 구하고 어머니와 다시 상봉하는 일에 자신도 감동하는 묘사를 보면 근본이 무정하거나 사악한 인간은 아니지 않을까 생각도 들고요. 스넬그레이브는 그 아이와 어머니의 관계를 모르고 행한 일이고, 사들인 노예 어머니가 누구인지도 몰랐겠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행동은 선행이죠. (그의 진짜 동기와 내면, 사건의 진실은 오직 그만이 알겠지만) 저는 그가 조금은 과장을 곁들였을지는 몰라도 근본적인 성품이 악인은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지 않았다면 굳이 18개월 밖에 안된 아이를 사들이려 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한 개인의 성향과 성품, 행동이 선하다고 하여 그가 선인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도 생각했어요. 책에도 써있듯 결국 스넬그레이브 본인이 노예무역상이 아니었다면, 그 노예들을 사들이지 않았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비극이니까요. 물론 그가 아니었더라도 누군가 다른 노예상이 노예를 샀겠지만.. 노예제라는 거대한 억압구조에서 구매자로서, 인간을 매매하는 주도자로서, 상인-선장-선원-노예로 이어지는 피라미드에서 상위계층으로서 그도 결국 거대한 악의 공모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죠. 스넬그레이브가 자신의 선행에 '야만인들'이 감화되어 저항도 없이 착하게 순종하며 항해를 무사히 마무리했다고 말하는 모습에서 그는 자신이 '선한 사람'이라고 정말로 확신하고 있다고 봤어요. 스넬글레이브가 정말로 노예제도의 잘못을 인지하지도 못하고 자신이 기독교 서구문명의 일원이자 종교인으로서 선행을 다했다는 생각으로 그 기록을 남겼을지, 아니면 그 스스로도 노예매매의 악을 알고는 있지만 한편으로는 무시하고 합리화를 하며 쓴 것인지 궁금하네요. 우리는 결코 답을 알 수 없겠죠. 악의 평범성, 그리고 선/악이 시대와 상황에 상관없이 절대적인가 아니면 상대적인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네요.
선장은 자신의 종교에서는 “연약하고 순수한 아이를 죽음으로 내모는 일과 같은 끔찍한 일은 허락되지 않는다”고 설명하며 양해를 구했다. 또한 그는 “인간 본성의 대명제는 타인에게 행함에 있어 타인이 우리에게 행하기를 원하는 행동으로 행하는 것”이라는 황금률을 덧붙였다.
노예선 - 인간의 역사 마커스 레디커 지음, 박지순 옮김
은화님의 대화: @향팔이 님도 이 문장을 고르셨군요. 저도 지금 계속 책을 읽으면서 인상 깊은 인물들이 여럿 지나가지만 현재까지는 윌리엄 스넬그레이브가 제일 기억에 남네요. 뭐라고 해야 할까.. 이 사람이 한 행동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판단해야 할지 감이 안 잡힌달까요? 스넬그레이브에 대한 설명은 자서전 또는 일지/회고의 느낌으로 쓴 기록에 의존하기에 어느 정도 과장이나 가식, 또는 자기합리화나 변명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가 아프리카의 마을에서 아이를 구하고 어머니와 다시 상봉하는 일에 자신도 감동하는 묘사를 보면 근본이 무정하거나 사악한 인간은 아니지 않을까 생각도 들고요. 스넬그레이브는 그 아이와 어머니의 관계를 모르고 행한 일이고, 사들인 노예 어머니가 누구인지도 몰랐겠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행동은 선행이죠. (그의 진짜 동기와 내면, 사건의 진실은 오직 그만이 알겠지만) 저는 그가 조금은 과장을 곁들였을지는 몰라도 근본적인 성품이 악인은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지 않았다면 굳이 18개월 밖에 안된 아이를 사들이려 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한 개인의 성향과 성품, 행동이 선하다고 하여 그가 선인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도 생각했어요. 책에도 써있듯 결국 스넬그레이브 본인이 노예무역상이 아니었다면, 그 노예들을 사들이지 않았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비극이니까요. 물론 그가 아니었더라도 누군가 다른 노예상이 노예를 샀겠지만.. 노예제라는 거대한 억압구조에서 구매자로서, 인간을 매매하는 주도자로서, 상인-선장-선원-노예로 이어지는 피라미드에서 상위계층으로서 그도 결국 거대한 악의 공모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죠. 스넬그레이브가 자신의 선행에 '야만인들'이 감화되어 저항도 없이 착하게 순종하며 항해를 무사히 마무리했다고 말하는 모습에서 그는 자신이 '선한 사람'이라고 정말로 확신하고 있다고 봤어요. 스넬글레이브가 정말로 노예제도의 잘못을 인지하지도 못하고 자신이 기독교 서구문명의 일원이자 종교인으로서 선행을 다했다는 생각으로 그 기록을 남겼을지, 아니면 그 스스로도 노예매매의 악을 알고는 있지만 한편으로는 무시하고 합리화를 하며 쓴 것인지 궁금하네요. 우리는 결코 답을 알 수 없겠죠. 악의 평범성, 그리고 선/악이 시대와 상황에 상관없이 절대적인가 아니면 상대적인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네요.
네, 아직 1장을 읽는 중인데 스넬그레이브 이야기가 특히 인상적이었어요. 위의 인용구가 노예선 선장의 발언이라니 참 아이러니합니다. 스넬그레이브가 아니었으면 그 아이는 그날밤을 못 넘기고 제물로 희생됐겠죠(그의 기록이 사실이라는 전제 하에서요). 그걸 근거로 자신의 선행을 확신했을 것이고, 선의를 가지고 행한 것도 맞겠죠. 어차피 그의 노예선에 탄다는 것 자체가 무한 노역과 사망으로 가는 길임에도 불구하고… 스넬그레이브는 자신이 미개한 종족의 손아귀에서 아이의 생명을 구한 영웅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을 것 같습니다. 자기가 노예선에 태우는 사람들의 앞날에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아프리카 땅에 남아있는 것보다는 낫다고 확신했을 것 같고요. 나도 돈 벌어서 좋고 너도 이런 데서 탈출하는 게 낫고! 자기합리화일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너무 깊이 생각할 필요도 없었겠죠.
다른 모든 노예무역업자처럼 그는 아프리카인들이 “문명화된 기독교 국가에서 사는 것”이 “야만인들” 사이에서의 삶보다 더 나을 것이라며 합리화했다. 어떤 경우에도 인도주의적 염려가 국가의 경제적·군사적 이익을 뛰어넘은 적은 없었다. 노예무역이 바로 “국가에 풍부한 자금과 해상력을 제공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프리카 무역을 촉진함으로써 의회는 많은 사람의 행복과 번영을 촉진할 수 있었다. 이렇게 말함으로써 그는 반세기 후 화가 윌리엄 블레이크가 그리게 될 유명한 작품 <유럽을 떠받치고 있는 아프리카와 아메리카>라는 그림을 예견하였다.
노예선 - 인간의 역사 마커스 레디커 지음, 박지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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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이님의 문장 수집: "다른 모든 노예무역업자처럼 그는 아프리카인들이 “문명화된 기독교 국가에서 사는 것”이 “야만인들” 사이에서의 삶보다 더 나을 것이라며 합리화했다. 어떤 경우에도 인도주의적 염려가 국가의 경제적·군사적 이익을 뛰어넘은 적은 없었다. 노예무역이 바로 “국가에 풍부한 자금과 해상력을 제공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프리카 무역을 촉진함으로써 의회는 많은 사람의 행복과 번영을 촉진할 수 있었다. 이렇게 말함으로써 그는 반세기 후 화가 윌리엄 블레이크가 그리게 될 유명한 작품 <유럽을 떠받치고 있는 아프리카와 아메리카>라는 그림을 예견하였다."
William Blake’s Europe Supported by Africa and America
그는 또한 노예무역이 영국에 자본주의 제조업의 융성에도 중요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노예선에 실려서 아프리카 각지로 보내지는 화물은 영국 제조업 생산량의 8분의 7에 해당하며 그로 인한 이익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노예선 - 인간의 역사 마커스 레디커 지음, 박지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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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이님의 문장 수집: "그는 또한 노예무역이 영국에 자본주의 제조업의 융성에도 중요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노예선에 실려서 아프리카 각지로 보내지는 화물은 영국 제조업 생산량의 8분의 7에 해당하며 그로 인한 이익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삼각 무역이란 유럽(또는 아메리카)에서 제조업 상품을 싣고 출발한 배가 서아프리카로 향하고 그곳에서 노예를 거래한 후에 아메리카로 떠나 설탕, 담배, 쌀과 같은 농산물을 거래하는 방식이다. 최근 학계에서는 노예선 대부분이 서인도나 북아메리카에서 반환 화물을 싣지 못하였기 때문에 엄격하게 말해서 삼각 무역은 아니라는 점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삼각 무역이라는 개념은 세 가지 핵심적 장소와 거래 요소 — 영국과 미국의 자본과 제조업, 서아프리카의 노동력, 아메리카의 생산물자(때로는 원재료) — 를 시각화해 주었다는 점에서 여전히 가치가 있었다.
노예선 - 인간의 역사 마커스 레디커 지음, 박지순 옮김
책에 대서양 지도가 잘 나와 있어서 텍스트 이해에 도움이 많이 되네요. 평소 세계지도 하면 한가운데 한국이 있고 왼쪽 끝에 유럽과 아프리카가, 오른쪽 끝엔 아메리카가 있는 지도만 저의 뇌를 지배하다보니, 지구는 둥글고 대서양을 통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유럽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얼른 와닿지 않을 때가 많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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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이님의 대화: 책에 대서양 지도가 잘 나와 있어서 텍스트 이해에 도움이 많이 되네요. 평소 세계지도 하면 한가운데 한국이 있고 왼쪽 끝에 유럽과 아프리카가, 오른쪽 끝엔 아메리카가 있는 지도만 저의 뇌를 지배하다보니, 지구는 둥글고 대서양을 통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유럽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얼른 와닿지 않을 때가 많아서요.
저도 아프리카나 아메리카 지명들이 많이 나오는데 지도가 많아서 읽기 쉬웠어요. 특히 아프리카 대륙은 세네감비아부터 시작해서 바람막이 해안, 황금해안, 베냉만, 서부해안으로 이어지는 노예 무역의 경로들을 보며 규모가 얼마나 광대했는지도 체감이 되고요. 점점 더 많은 노예를 공급받기 위해 아래로, 내륙으로 이어지는 무역 지점 외에도 네덜란드, 포르투갈, 영국이 아예 '공장' 용도의 요새를 지어 안정적으로 노예를 확보했다는 내용도 처음 알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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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믐클래식] 1월1일부터 꾸준히 진행중입니다. 함께 해요!
[그믐클래식 2025] 한해 동안 12권 고전 읽기에 도전해요! [그믐클래식 2025] 1월, 일리아스 [그믐클래식 2025] 2월, 소크라테스의 변명·크리톤·파이돈·향연[그믐클래식 2025] 3월, 군주론 [그믐클래식 2025] 4월, 프랑켄슈타인
4월의 그믐밤엔 서촌을 걷습니다.
[그믐밤X문학답사] 34. <광화문 삼인방>과 함께 걷는 서울 서촌길
스토리탐험단의 5번째 모험지!
스토리탐험단 다섯 번째 여정 <시나리오 워크북>스토리탐험단 네 번째 여정 <베스트셀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스토리 탐험단 세번째 여정 '히트 메이커스' 함께 읽어요!스토리 탐험단의 두 번째 여정 [스토리텔링의 비밀]
셰익스피어와 그의 작품들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1. <세계를 향한 의지>[북킹톡킹 독서모임] 🖋셰익스피어 - 햄릿, 2025년 3월 메인책[그믐연뮤클럽] 3. "리어왕" 읽고 "더 드레서" 같이 관람해요
봄은 시의 세상이어라 🌿
[아티초크/시집증정] 감동보장!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 아틸라 요제프 시집과 함께해요.나희덕과 함께 시집 <가능주의자> 읽기 송진 시집 『플로깅』 / 목엽정/ 비치리딩시리즈 3.여드레 동안 시집 한 권 읽기 13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서리북 아시나요?
서울리뷰오브북스 북클럽 파일럿 1_편집자와 함께 읽는 서리북 봄호(17호) 헌법의 시간 <서울리뷰오브북스> 7호 함께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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