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화님의 대화: @향팔이 님도 이 문장을 고르셨군요. 저도 지금 계속 책을 읽으면서 인상 깊은 인물들이 여럿 지나가지만 현재까지는 윌리엄 스넬그레이브가 제일 기억에 남네요. 뭐라고 해야 할까.. 이 사람이 한 행동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판단해야 할지 감이 안 잡힌달까요?
스넬그레이브에 대한 설명은 자서전 또는 일지/회고의 느낌으로 쓴 기록에 의존하기에 어느 정도 과장이나 가식, 또는 자기합리화나 변명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가 아프리카의 마을에서 아이를 구하고 어머니와 다시 상봉하는 일에 자신도 감동하는 묘사를 보면 근본이 무정하거나 사악한 인간은 아니지 않을까 생각도 들고요.
스넬그레이브는 그 아이와 어머니의 관계를 모르고 행한 일이고, 사들인 노예 어머니가 누구인지도 몰랐겠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행동은 선행이죠. (그의 진짜 동기와 내면, 사건의 진실은 오직 그만이 알겠지만) 저는 그가 조금은 과장을 곁들였을지는 몰라도 근본적인 성품이 악인은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지 않았다면 굳이 18개월 밖에 안된 아이를 사들이려 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한 개인의 성향과 성품, 행동이 선하다고 하여 그가 선인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도 생각했어요. 책에도 써있듯 결국 스넬그레이브 본인이 노예무역상이 아니었다면, 그 노예들을 사들이지 않았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비극이니까요. 물론 그가 아니었더라도 누군가 다른 노예상이 노예를 샀겠지만.. 노예제라는 거대한 억압구조에서 구매자로서, 인간을 매매하는 주도자로서, 상인-선장-선원-노예로 이어지는 피라미드에서 상위계층으로서 그도 결국 거대한 악의 공모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죠.
스넬그레이브가 자신의 선행에 '야만인들'이 감화되어 저항도 없이 착하게 순종하며 항해를 무사히 마무리했다고 말하는 모습에서 그는 자신이 '선한 사람'이라고 정말로 확신하고 있다고 봤어요. 스넬글레이브가 정말로 노예제도의 잘못을 인지하지도 못하고 자신이 기독교 서구문명의 일원이자 종교인으로서 선행을 다했다는 생각으로 그 기록을 남겼을지, 아니면 그 스스로도 노예매매의 악을 알고는 있지만 한편으로는 무시하고 합리화를 하며 쓴 것인지 궁금하네요. 우리는 결코 답을 알 수 없겠죠.
악의 평범성, 그리고 선/악이 시대와 상황에 상관없이 절대적인가 아니면 상대적인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네요.
“ 선장은 자신의 종교에서는 “연약하고 순수한 아이를 죽음으로 내모는 일과 같은 끔찍한 일은 허락되지 않는다”고 설명하며 양해를 구했다. 또한 그는 “인간 본성의 대명제는 타인에게 행함에 있어 타인이 우리에게 행하기를 원하는 행동으로 행하는 것”이라는 황금률을 덧붙였다. ”
『노예선 - 인간의 역사』 마커스 레디커 지음, 박지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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