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제, 아프리카, 흑인문화를 따라 - 01.노예선, 마커스 레디커

D-29
선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두 명의 노예는 성공적으로 익사하여 죽음을 맞이했다. 세 번째 노예는 다시 잡혀 왔고 갑판 위로 끌려와 “노예 생활보다 죽음을 더 원한 죄”로 맹렬한 채찍질을 당했다. 에퀴아노는 이렇게 노예들 사이에 형성되었던 저항의 문화를 기록했다.
노예선 - 인간의 역사 p.146, 마커스 레디커 지음, 박지순 옮김
비록 에퀴아노가 “아프리카 무역상의 폭력”으로 고생하기는 했지만, 그는 해안으로 향하는 행로에서 그들의 대우가 잔인하지는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신의 책에서 독자들에게 “인간의 권리를 빼앗았던 그 검은 무리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도망가지 못하도록 필요할 때에 포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나는 한 번도 그들에게 사악한 대우를 받지 않았고 그들이 다른 노예를 그렇게 대하는 모습도 본 적이 없다”는 점을 주지시키려고 했다.
노예선 - 인간의 역사 p.152, 마커스 레디커 지음, 박지순 옮김
에퀴아노는 이름을 부르는 것을 일종의 권력 행사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이름을 잃는다는 것이 문화적인 수탈인 것처럼 새로운 이름을 부여하는 것 역시 적대적인 지배 행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올라우다 에퀴아노라는 이름은 노예선에서 빼앗겨버렸고 이 이름을 되찾는 데 35년이 걸렸다. 그는 “아프리카에서 스노우급 함선을 탔을 때 나는 마이클이라고 불렸다”고 기록했다. 다음의 버지니아로 향하던 슬루프급 함선에서 그의 이름은 제이콥이었다. 마지막으로 부지런한 꿀벌호에 승선했을 때 그의 새로운 주인 파스칼 선장은 그에게 구스타부스 바사라는 네 번째 이름을 주었다.
노예선 - 인간의 역사 마커스 레디커 지음, 박지순 옮김
자고 나면 깨져버리는 불안정한 유대감 속에서도 그들은 “뱃동지”라고 부르는 새로운 혈족 관계를 형성했다. […] 수탈당한 아프리카인들은 이러한 방식으로 스스럼없는 상호 조력의 공동체를 형성했고 가끔은 노예선의 하갑판에서 그들의 “나라”를 세우기도 했다.
노예선 - 인간의 역사 마커스 레디커 지음, 박지순 옮김
술잔치가 밤이 깊도록 계속되어 아침까지 이어지면 술집 주인은 선원들의 부풀려진 빚을 분필로 벽에다가 써뒀다. “분필 표시 네 번에 1실링”이라는 리버풀 속담도 있었다. 선원들이 취해갈수록 셈이 더해졌고 곧 진짜 빚과 가짜 빚이 더해져 배로 늘어났다. 계약서에 날인하기를 거부했던 사람들은 이제 다른 상황을 마주하게 되었다. 술집 주인은 거나하게 취한 채 빚을 지고 있는 선원들에게 거래를 제안했을 것이다. 만약 그들이 노예선에 승선하는데 동의하면 그들의 급여를 미리 받아와서 당장 빚을 해결하는 데 쓸 수 있었다. 만약 선원들이 거래를 거부하면 술집 주인은 치안관을 불러서 그들을 감옥에 집어넣었을 것이다.
노예선 - 인간의 역사 p.164, 마커스 레디커 지음, 박지순 옮김
이 “거대한 기계”는 이제 황금 해안과 베냉만으로 향했다. 이 모든 것이 속임수와 학대로 이룩된 것이었음에도 함선은 새로운 돛과 새로 칠한 페인트의 색을 뽐내며 물 위를 떠다녔고 깃발은 바닷바람에 휘날리며 아름다운 장면을 그려내고 있었다.
노예선 - 인간의 역사 p.166~167, 마커스 레디커 지음, 박지순 옮김
다른 한편에서는 아프리카 해안에서의 체류 기간이 길어지면서 선원의 불행도 깊어졌다. 배에서 한동안 떨어져 지내다가 돌아온 스탠필드는 이등항해사가 “구급함을 등에 대고 머리를 아래로 떨구고 머리카락은 갑판에 널브러져 주변에 오물을 쏟은 채 누워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아무도 모르게 이제 막 숨을 거둔 상태였다. 오물로 가득한 갑판에서 더 큰 문제는 선원 몇몇이 “돌봐주는 사람도 없고 아무 해결책도 없이 병마와 싸우면서 홀로 최후의 순간에 접어들며” 거기에 뻗어 있다는 것이었다.
노예선 - 인간의 역사 p.174, 마커스 레디커 지음, 박지순 옮김
윌슨 선장은 중간항로 내내 아팠지만, 스탠필드가 보기에 오히려 그의 압제는 더해졌다. 나무로 만들어진 이 세상의 군주는 약해진 상태에서도 선원들에게 자신의 몸을 들어 옮기도록 했고 그 와중에 “직업용 칼”을 들고 다니다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을 보면 어김없이 칼을 던져버렸다. 선원이 한 명씩 줄어들었다. 새로 임명된 이등 항해사도 갑판에서 선장에게 얻어맞고 머리에 칼에 베인 상처를 입고 얼마 안 가 죽음을 맞이했다. 요리사도 선장의 저녁 고기 요리를 조금 태웠다가 분노를 샀고 곧 “엄청나게 두들겨 맞았고 선장은 그에게 침까지 뱉었다.” 그는 네발로 기어 다니다가 하루 이틀 사이에 세상을 떠났다.
노예선 - 인간의 역사 p.175, 마커스 레디커 지음, 박지순 옮김
죽은 선원은 정확한 이름으로 부르고 매장해 주었지만 죽은 아프리카인은 단지 승선할 때 부여된 숫자로만 기록되었고 상어가 기다리는 배 밖으로 던져졌다.
노예선 - 인간의 역사 p.202, 마커스 레디커 지음, 박지순 옮김
스탠필드에게 노예 항해의 인간극은 아프리카의 해안이나 노예선에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 상인들의 거래소나 커피 하우스 같은 신사적인 상황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노예선 - 인간의 역사 마커스 레디커 지음, 박지순 옮김
노예선이 취항할 계획이 생기면 상인과 선장, 회계 그리고 알선꾼(악랄한 인력 동원 대행업자)이 “끊임없이” 리버풀의 거리를 배회했다. 선원 하나하나를 다그쳐서 그들의 휘하에 있는 술집에 가도록 하고 선원들에게 음악과 매춘, 술을 제공했다. […] 목표는 오직 선원들이 술과 빚에 절도록 하는 것이었고 두 경우 모두 결과적으로 노예선으로 불러들이는 수단이 되었다. […] 올가미와 덫에 걸린 많은 사람이 배로 홀려 왔다. 어떤 사람은 술에 취해 빚을 떠안고 강제로 육지의 지하 감옥에서 떠다니는 지하 감옥으로 옮겨졌다.
노예선 - 인간의 역사 마커스 레디커 지음, 박지순 옮김
노예선은 선원과 노예 모두에게 “떠다니는 지하 감옥”으로 나타났다. 노예선에 타고 있는 사람 대부분은 어떤 면에서 포로나 마찬가지였고 관행적 테러 체제와 죽음에 지배당하고 있었다. 대서양을 아우르는 사슬은 모두를 휘감았고 리버풀의 감옥에서 치안관과 함께 노예선으로 걸어오던 길은 아프리카 내륙에서 약탈자들과 함께 이동하는 노예무리의 길과 다르지 않았다.
노예선 - 인간의 역사 마커스 레디커 지음, 박지순 옮김
강제로 육지의 지하 감옥에서 떠다니는 지하 감옥으로 옮겨진 많은 선원의 경우 자원해서 승선한 다른 선원에 비해 노예무역의 공포에 대한 책임이 덜하다고는 할 수 있겠지만, 그들도 교도관으로서, 잔인한 “고통의 도구”를 사용하는 자로서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백인”으로서 분명한 공범이 될 수밖에 없었다.
노예선 - 인간의 역사 마커스 레디커 지음, 박지순 옮김
실제로 상인은 자신의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예가 “사망자 명단”에 이름을 올릴지 계산했기 때문에 죽음도 계획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노예선 - 인간의 역사 마커스 레디커 지음, 박지순 옮김
지난 항해보다 더 좋은 항해를 했지만 이번에도 뉴턴은 선주의 희망에 부응하지는 못했다. (중략) 선원에 대한 결과는 더 좋았고 그들 (스물일곱 명) 중 한 명만을 잃었다. 그러나 이러한 수행은 마네스티 씨에게 이익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탈주한 네 명의 선원과 초반에 배에서 내린 한 명의 선원의 경우 리버풀에서 그들의 급여를 받을 수 없었기 때문에 이익이 될 수 있었다.
노예선 - 인간의 역사 p.211, 마커스 레디커 지음, 박지순 옮김
노예선 선장들은 네 번 정도 항해를 하고 나면 살아서 건강하게 이 사업에서 빠져나가며 한 몫 챙길 수 있다고 생각하던 것이 통념이었다.
노예선 - 인간의 역사 p.222, 마커스 레디커 지음, 박지순 옮김
이런 급여 조정에 관한 상세한 예시는 한 상인 집단이 1776년에 스노우급 함선 아프리카호의 토마스 베이커 선장에게 쓴 편지에 잘 나타났다. 베이커는 한 달에 5파운드를 급여로 받았고 여기에 추가로 노예의 평균 판매 가격에 따라 운송하고 판매한 노예 100명당 4명에 해당하는 노예의 가격을 수수료로 받았다. 또한, 그는 노예 일곱 명을 “선점”할 수 있고 이 노예들은 상인의 돈으로 사들이지만 팔 때는 그곳의 시장 가치에 따라 판매하여 자신의 이익으로 삼을 수도 있었다. (중략) 의사 토마스 스티븐스는 한 명의 “선점” 노예에 추가로 토바고에서 살아남은 채 운송된 아프리카인 한 명당 1실링을 “머릿수대로” 지급받았다. 마지막 합의 내용에 따라 “의사는 판매가 될 곳까지 노예를 돌보도록 하는 동기를 가질 수 있었다.”
노예선 - 인간의 역사 p.226, 마커스 레디커 지음, 박지순 옮김
선점 노예를 처리하는 방식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해 갔다. 18세기 초반에 선장과 다른 고급 선원들은 선점하고 싶었던 노예를 골라 두었지만, 이 노예들이 죽으면 다른 노예를 선택해서 손해는 선주의 몫으로 돌렸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상인들은 선장들에게 해안에서 미리 노예를 선택하고 다른 고급 선원들이 보는 앞에서 낙인을 찍어두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이 방식도 그리 만족스럽지 않았는데, 이는 모든 고급 선원 역시 이 문제에 관해서 공동의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어서 서로 이를 덮어주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상인들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려고 했고 선점 노예를 개별적으로 정하는 대신 노예선이 신세계 항구에 도착해서 판매한 모든 노예의 평균 가격으로 선점 노예의 가치를 환산했다. 이 방식은 모든 노예를 잘 보살피도록 하는 이점이 있었지만, 동시에 평균 가격을 낮추고 선장의 선점 특권을 저해하는 아프고 병약한 노예를 항구 근처에서 죽여 버리는 경향이 생기기도 했다.
노예선 - 인간의 역사 p.452 주석 20., 마커스 레디커 지음, 박지순 옮김
노예의 건강은 더 중요했다. 토마스 스타크는 1700년 제임스 웨스트모어 선장에게 쓴 편지에서 “항해를 통해 얻는 모든 이익은 당신이 흑인들의 목숨을 얼마나 살려오느냐에 달려 있다”라고 명확하게 적시하고 있다. 두 미국인 상인 조셉과 조슈아 그라프턴도 1785년에 같은 점을 지적했다. “당신의 항해 전체가 노예들의 건강에 달려 있습니다.” 한 상인 집단은 아픈 노예에게 먹일 “양고기 수프”를 선원들이 만들게 하려고 양과 염소를 배에 실어두도록 선장에게 말할 정도였다.
노예선 - 인간의 역사 p.231, 마커스 레디커 지음, 박지순 옮김
선장들이 왜 선원보다 오히려 노예에 신경을 썼는지 그들의 급여체계(?)를 보며 알게 되네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체계적이면서도 선장과 상인 간의 보이지 않는 수싸움도 재밌고요. 상인과 선장들이 노예를 신경 써서 대우하는 이유가 인간성 때문이 아닌 오직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였다는 점. 대상을 더 쉽게 물건처럼 부리고 양심의 가책이 없도록 상품화/자본화 하는 시선이 낯설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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