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화님의 대화: 주말에 먼저 책을 좀 폈는데 읽다 보니 집중이 되어 금새 3장까지 읽어버렸네요. 개인적으로는 서막에서 저자가 말한 '추상성의 폭력'이라는 말이 인상 깊었어요. 어떤 사회/역사 문제에 대해, 비극에 대해 조사하다 보면 그것들은 필연적으로 그 규모와 심각성을 사람들에게 구체적으로 각인시키고자 수치화 하기 마련이죠. 어느 년도에, 몇 년에 걸쳐, 몇 명의 사람이, 몇 %의 비중이 등등..
하지만 때론 그 숫자들을 읽어 내려가면 도리어 구체화 된 숫자의 숲에서 길을 잃는 느낌이 가끔 들곤하죠. 도대체 얼마나 되는 규모인지 체감이 되지 않고, 사태의 심각성은 아라비아 숫자와 기호 그 이상의 의미와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인지 저자는 우리에게 노예무역이 얼마나 광범위하거나, 얼마나 심각했는가를 수치화하여 보여주기 보다는 그 당시의 여러 사람들의 삶과 선택과 일지를 읽어줍니다. 숫자의 숲을 벗어나 개별적인 인간들이 겪고 느꼈던 고통, 모순, 탐욕을 들여다보면서 막연하게 비인간적으로만 느꼈던 노예제의 '인간적인 모습'이 드러나는 느낌이랄까요.
맞습니다. 저자 레디커 선생님이 이 책의 부제를 <인간의 역사>라고 지은 이유도, 우리의 탐구가 자칫 추상적이고 비인간적일 수 있는 숫자와 도구에 머물지 않고 구체적 인간의 진실에 다가서야 함을 강조하기 위해서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