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대주의 정권이라면 일부 엘리트층이 원하는 대로 경제제도를 수립할 권력을 휘두를 수 있다. 그런 자들이 정치제도를 바꿔 다원적으로 만들려 할까? 으레 그럴 이유가 없다. 다원적 제도를 도입하면 자신들의 정치권력만 희석되고, 원하는 대로 경제제도의 틀을 짜기도 어려워지거나 아예 불가능해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도 갈등의 소지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착취적 경제제도하에서 신음하는 이들은 절대적 통치자가 자발적으로 정치제도를 바꿔 사회 전반에 권력을 재분배할 것이라 기대할 수가 없다. 이런 정치제도를 바꾸는 유일한 방법은 엘리트층이 한층 더 다원적인 제도를 수립하도록 압력을 행사하는 것뿐이다.
”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리커버)』 대런 애쓰모글루 외 지음, 최완규 옮김, 장경덕 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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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e2023
이제 막 1장을 끝내고 이 책에 대한 기대가 더욱 커졌네요
멕시코와 미국의 차이가 단순히 인종이나 종교, 언어가 아니고
그들이 식민지화 되어 가던 과정에서부터 그 기원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과
그만큼 정치체계가 중요하다는 것에 소름이 돋기도 합니다
요즘 드는 생각이 민주적 절차와 논의를 통해 갈등을 줄여나가야 할 정치가
오히려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데에서 오는
과연 정치가 필요한지에 대한 회의였는데 희망도 찾을 수 있기를
그리고 김새섬 대표님의 빠른 회복을 바랍니나
RAMO
창조적 파괴와 텅 빈 공장
미국 현대자동차 공장의 풍경은 낯설기만 합니다. 예전 같았으면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노동자들의 활기로 가득했을 공간이, 이제는 로봇 팔만이 묵묵히 제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자동화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한때 많은 일자리를 제공하던 제조업도 미국의 노동 시장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기술 발전의 필연적인 흐름이자, 자본의 끊임없는 이윤 추구가 만들어낸 현재의 모습입니다.
애쓰모글루와 로빈슨의 저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는 이와 유사한 역사적 사례들을 제시하며, 그 과정에서 ‘창조적 파괴’라는 개념이 작동했다고 주장합니다. 이 책의 핵심 메시지는 국가 실패의 원인을 분석하는 데 있지만, 미국 현대자동차 공장의 예를 들어, ‘창조적 파괴’의 역동적인 힘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보려 합니다.
이 책은 국가의 흥망성쇠를 정치 엘리트층의 이익을 우선하는 ‘착취적 체제’에서 더 많은 계층의 참여를 보장하는 ‘포용적 체제’로의 전환이라는 큰 틀에서 설명합니다. 전환에 실패하면 국가는 결국 쇠퇴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포용적 체제로 나아가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 바로 기존 질서를 허물고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는 ‘창조적 파괴’입니다. 산업혁명 시대의 방직기는 그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산업혁명 시대 방직기의 도입은 생산성을 크게 향상시켰지만, 동시에 수많은 노동자들을 실업 상태로 내몰았습니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당시 엘리자베스 여왕이 이 혁신적인 발명품에 대해 “자신의 백성에게서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며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단순한 염려를 넘어, 새로운 기술이 기존 지지 기반을 약화시키고 새로운 권력 구조를 형성할 것이라는 정치적 우려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창조적 파괴’를 통해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는 과정에는 필연적인 희생이 따릅니다. 바로 기존 질서에 순응하며 살아왔던 사람들입니다. 미국 현대자동차 공장의 경우, 로봇에 의해 일자리를 잃은 숙련된 노동자들이 그 희생양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이들이 떠난 텅 빈 공장 자리에 진정으로 포용적인 체제가 들어서고 그 결과로 더 나은 미래를 이룩할 수 있다면, 과연 국가는 실패하지 않는 것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요? 텅 빈 공장 안에서 이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진보의 그림자가 드리운 씁쓸한 현실을 마주하고 있을 뿐입니다.
꽃의요정
“ 창조적 파괴는 단순히 소득과 부만 재분배하는 것이 아니다. 실력자들이 정치적 파문을 우려해 윌리엄 리의 발명품을 달가워하지 않았던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창조적 파괴는 정치권력 또한 재분배한다. ”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리커버)』 대런 애쓰모글루 외 지음, 최완규 옮김, 장경덕 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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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MO
각자의 은퇴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는 세계 각국의 흥망성쇠를 제도적 관점에서 분석한 책입니다. 저자는 포용적 제도가 시민에게 기회를 부여하고 국가의 번영을 이끌어내는 핵심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반대로, 엘리트만의 이익을 대변하는 착취적 제도는 경제적 침체와 정치적 혼란을 초래한다고 지적하셨습니다. 이 책은 경제 성장의 기저에 무엇이 있어야 하는지를 묻는 동시에, 제도의 성패가 ‘사람들의 삶’에 얼마나 깊은 영향을 미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책을 읽으며 ‘은퇴’라는 키워드가 떠올랐습니다. 제가 언젠가 맞이할 현실적인 삶의 변화이자, 많은 시민이 직면하고 있는 과제이기도 합니다. 국가 안에 수많은 제도가 있지만 그중 은퇴라는 제도는 대부분의 시민에게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우연히 보게 된 김연경 선수의 은퇴 경기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삶의 장면’처럼 보였습니다. 마지막 경기, 숨 막히는 승부 끝에 그녀는 동료의 침착한 마무리를 지켜보며 자신이 속한 팀의 우승을 함께 기뻐했습니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피날레였습니다.
또 다른 모습의 은퇴도 있습니다.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에서 노년의 그는 조용히 약초방의 문을 닫습니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으면서도 삶 전체를 사회에 봉사하며 살아오신 한 분의 은퇴는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무엇보다도 그의 곁에 남은 이들의 진심 어린 회상이 더욱 인상적이었습니다. “진정한 어른이었다"라는 말은, 그의 은퇴가 단지 끝이 아닌, 하나의 존엄한 삶의 결말로 받아들여졌다는 뜻일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가끔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저는 과연 저렇게 따뜻하고 안정된 은퇴를 맞이할 수 있을까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두렵습니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OECD 최고 수준의 노인 빈곤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정년이라는 것도 점차 의미가 흐려지고, 언제든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마음 한편을 지배합니다. 누군가는 은퇴를 ‘또 다른 시작’이라 표현하지만, 현실의 많은 분들은 그 시작이 불안과 경제적 곤궁으로 가득 찬 길이 될까 봐 두려워하십니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가장 인상적인 메시지는 이렇습니다. “국가는 시민에게 동기를 부여할 수 있을 때 실패하지 않는다.” 이는 단지 정치 시스템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은퇴한 시민들도 안정적으로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제도야말로 진정한 포용적 제도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의 불안이 특별한 것이 아닌,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공통된 감정이라면 사회가 그 감정에 응답하는 방식 또한 달라져야 합니다.
다양한 은퇴의 모습은 각기 다른 삶의 서사를 품고 있습니다. 누구는 뜨거운 박수 속에서, 또 누구는 조용한 고요 속에서, 그리고 또 누군가는 불안한 한숨 속에서 새로운 장을 열어갑니다. 중요한 것은 사회가 그 모든 방식의 은퇴를 존중하고 지탱해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김장하 선생님은 말씀하십니다. “우리 사회는 특별한 영웅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 묵묵히 지탱하고 이루어 온 것이다.” 저 역시 그런 평범한 사람 중 하나로서, 제가 은퇴를 맞이할 그날에도 마음속에 작은 안심 하나 품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실패하지 않는 국가’의 모습일 것이라 믿습니다.
Alice2023
저도 시민들에게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국가가 실패하지 않는다는 부분에 공감이 가네요
3장을 읽던 중인데 중앙집권적 사회에서도 인센티브가 있는 경제 정책하에서는 성정하기도 하고 반대로 특권층만 이익을 누리는 착취적 경제정책에서는 시민들이 열심히 살 동기를 부여받지 못한다는 말에 지금 우리나라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잠시 고민해 보게 되네요
꽃의요정
저도 은퇴 후가 두려워 지금 한푼이라도 더 벌겠다고 전전긍긍하는 것 같아요.
현재 직장은 나름 안정적이지만, 은퇴 후의 삶도 길고 부모님들 부양에 대한 걱정도 있어서요.
지금이야 매달 월급이 들어오니 어떻게든 꾸려 나가지만, 이것이 끊기고 예상 못할 지출들이 생길 때의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사실 대출금 갚느라 준비할 여력도 없고요.
나라에 나를 책임지라고 하고 싶지는 않지만, 늙어서 허리도 못 펴는데 일하러 나가게 만드는 나라는 괜찮지 않다고 봅니다.
꽃의요정
“ 미국과 호주에서 포용적 제도가 뿌리내렸다는 것은 두 나라에 산업혁명이 빠르게 확산되어 부가 쌓이기 시작했다는 의미였다.
프랑스혁명은 프랑스 절대왕정을 무너뜨린 데 이어 국가 간 갈등을 잇따라 초래해 서유럽 대부분 지역에 제도적 개혁을 확산시켰다. 경제적인 결과만 보더라도 이런 개혁 덕분에 서유럽 대부분 지역에서 포용적 경제제도가 고개를 들었고, 이내 산업혁명과 경제성장으로 이어졌다.
제도를 개혁한 일본의 경제는 고속 성장의 길로 들어섰지만, 중국은 제도적 변화를 꾀하는 세력이 그만큼 강하지 못해 착취적 제도가 대체로 고스란히 존속하다 1949년 마오쩌둥의 공산혁명을 계기로 개악改惡의 길을 걷게 된다. ”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리커버)』 대런 애쓰모글루 외 지음, 최완규 옮김, 장경덕 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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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요정
저 3개의 경우가 전부 일맥상통하네요
꽃의요정
“ 트러스트 문제를 바로잡으려고 정치인이 발 벗고 나서게 된 데는 머크레이커의 역할이 컸다. 강도귀족은 머크레이커에 이를 갈았지만, 미국의 정치제도 때문에 이들을 짓밟거나 입을 틀어막지 못했다. 포용적 정치제도하에서는 자유언론이 번성하고, 자유언론은 포용적 정치·경제 제도에 대한 위협을 널리 알려 저항의 기운을 불러일으킨다. 반면 착취적 제도, 절대주의 체제, 독재정하에서는 그런 자유가 불가능하다. 착취적 정권은 애초에 그런 제도와 체제를 이용해 반대 세력이 심각한 위협이 되기 전에 짓밟아버리기 때문이다. 20세기 전반, 미국에서 자유언론이 제공한 정보가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런 정보가 없었다면 미국 대중은 강도귀족이 실제로 어느 정도 권력을 휘두르며 힘을 남용하고 있는지 끝내 깨닫지 못해 트러스트에 대항하는 운동이 불타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리커버)』 대런 애쓰모글루 외 지음, 최완규 옮김, 장경덕 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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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랑
이 책의 주제는 단순해 보입니다. 포용적 경제 제도 및 정치 제도가 성장을 이끈다. 국가가 실패하는 이유는 착취적 제도 때문이다. 나머지는 그에 대한 사례 이야기인 듯 합니다.(아직 다 못읽어서;;)
일단 저자가 말하는 국가의 성공이란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성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런 부분에 포용적 제도가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남/북한 사례보다 더 확실히 보여주는 것도 없을 것 같습니다. 지리적, 문화적 동질성이 강하지만 현재의 성취는 극과 극이니 이 책의 논리를 뒷받침하는 아주 강력한 증거로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부분적으로 착취적 경제 제도가 성장을 이끌 수 있지만 포용적 정치, 경제 제도로 전환되지 않으면 그 성장의 한계가 자명하다는 것은 구 공산권 국가들과 독재를 겪은 한국 사례에서 여실히 증명되는 부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만 부분적으로 결론을 정당화하기 위해 끌어들이는 논리에 동의하기 힘든 문제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번째는 토지 개혁의 문제인데, 저자는 이것을 사유재산에 대한 착취로 보고 있는 듯 합니다. 그러나 이는 착취적 경제 제도 하에서 형성된 토지 독점에 대한 해결책이기 때문에 오히려 포용적 경제 제도로의 전환으로 보는게 맞지 않을까 싶구요...브라질 사례를 제시했는데, 1964년 브라질 토지법은 지주들의 재산권을 존중하는 방식 - 남한의 방식과 유사 - 으로 진행되었고, 그것을 주도할 강력한 권력의 부재로 실패했으며, 그것이 현재 브라질을 비롯한 남미 여러 국가의 불평등 문제의 근본을 이루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반대로 토지개혁에 성공한 한국과 대만은 비교적 성공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따라서 재산권의 침해 소지가 있다는 것만으로 토지개혁을 착취적 경제제도로 보는 것은 무리로 보여집니다.
두번째는 남한의 60년대 이후 경제 개혁이 박정희 정권이 가진 강제력에 대한 확신 - 봉기, 폭동으로 인한 전복을 방지할 수 있다는 - 에서 비롯되었다고 보고 있는데, 이는 한국 역사학계의 일반적 해석과 너무 괴리됩니다. 박정희 정권이 경제 성장에 매진해야만 했던 것은 권력 획득 과정에서 정당성이 없었기 때문에 결과적 차원에서라도 국민의 경제 성장에 대한 요구를 실현해야만 했기 때문으로 해석하는게 일반적 의견입니다. 1960년 4.19혁명도 단순히 이승만 정부의 부정선거 및 부패만이 그 원인이 아니라 1950년대 내내 지속된 빈곤이 국민들의 지속적 불만을 낳았기 때문으로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권력 유지에 대한 강한 자신감으로 경제 개혁을 추진할 수 있었다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세번째는 포용적 경제, 정치 제도가 중요하다는 저자의 생각에는 동의하지만..그것이 항상 다른 요인들..예를 들면 지리적, 문화적 요인 등을 압도한다든가..이런 요인들과 별개로 핵심적 역할을 한다든가 하는 주장은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저자도 지적하였듯 한 사회는 제도적 부동 - 유사했던 사회가 서로 다른 제도로 분기 - 과 결정적 분기점의 상호 작용에 의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 지 알 수 없습니다. 따라서 현재의 성장을 이룬 여러가지 요소들 가운데 무엇이 핵심인지에 대해 명확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사회과학적 오만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성장의 사례로 그토록 찬탄해마지 않는 포용적 정치, 경제 제도를 갖춘 자본주의 국가가 현재 착취적 정치, 경제 제도로 전환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드는데...이 부분에 대해선 과연 어떤 얘기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네요(아직 다 안읽어서;;) 다 읽고 다시 한번 쓰도록 하겠습니다.
꽃의요정
저는 루스벨트 대통령 정책에 제동을 걸어 삼권분립을 지켜낸?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물론 역사가마다 다르게 해석할 수 있겠지만, 미국도 좋은 의도로 시작했던 것(물론 진짜 의도는 모르지만)이 독재체제로 (조금 더 이른 시기에) 나아갈 뻔했다는 교훈으로 받아들였어요.
꽃의요정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리커버)』 대런 애쓰모글루 외 지음, 최완규 옮김, 장경덕 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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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로 지정된 대화
그믐클럽지기
공지 감사합니다. 작가님.
아쉽게도 본 모임의 기간 동안 클럽지기의 건강 문제로 독서 모임을 제대로 진행하지 못했습니다. 이 점, 여러분의 너른 양해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더불어 sam 구독권을 증정하지 못했음에도 각자의 자리에서 꾸준히 읽고 써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인사 드립니다.
'지금, 한국 사회를 생각하며' 2회를 잘 준비하여 조속한 시일 내에 찾아뵐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