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현대문학상, 김지연

D-29
서울대를 쪼개놓자 서울대 나온 작가와 지잡대 나온 작가의 글의 수준이 같을 때 뭔가 서울대 나온 작가의 글이 더 있어 보인다. 실제 그 작가가 더 상을 많이 받는다. 불합리하지만 현실에서 아주 당연히 잘 일어나는 일이다. 그래 기를 쓰고 사람들이 서울대에 가려는 것이다. 사람이 왠지 달라 보이기 때문이다. 서울대를 대표 분야로 나눠 지방에 하나씩 분산해야 한다. 경상도, 부산, 전라도, 충청도, 그리고 서울에. 서울은 일부러 비인기과를 둬야 한다. 그래야 그나마 지방의 붕괴가 더뎌지고 수도권 과밀이 좀 줄어들 것이다.
한국 소설 작가들은 한글을 엄청나게 사랑한다.
묻지마 범죄 “봉천동 아파트 방화, 미아동 60대 여성 살해.” 연일 묻지마 범죄가 일어나고 있다. 분노의 기운과 그에 따른 불안감이 주위를 맴돈다. 이제 새 정권도 들어서니,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이 문제를 제대로 짚고 근본 원인을 찾아 없애지 않으면 반복해서, 끝없이 일어날 것 같은 조짐이 우리를 더 불안하게 한다. 물론 아무나에게 앙갚음하고 싶은 파괴 분노만 사라지게 하면 이에 따라 생기는 불안감도 자연히 사라질 것이다. 이런 분노는 자기만 불행에 빠졌다는 건데, 그 이유는 자기와 같은 사람이 주변에 없다는 말과 같다. 그러니 자기와 다르게 안 불행한 무리를 응징한다는 것이다. 전엔 없이 살아도 이런 일은 잘 일어나지 않았다. 자기와 비슷한 사람들이 주변에 늘 있었기 때문이다. 부족한 가운데서도 서로 돕고 나누며 살았다. 상대적 불행이 문제다. 이해하고 이해받을 수 있는 공동체가 무너졌다. 자기만 혼자가 아니라 자기와 생각과 생활이 비슷한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이런 분노도 서서히 자취를 감출 것이다. 시위 현장에서 옆자리 사람에게 키세스 초콜릿을 살며시 건넨다. “그도 나처럼 춥고 배고플 거야.” 생각해서 그것으로나마 자기 마음을 전한다. 도우면 도왔지, 서로 이해하고 이해받으면 상대를 절대 해치지 않는다. 그는 나와 비슷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대신 자기와 너무 다르고 일상에서 소통도 부족하면 그런 마음을 갖기가 쉽지 않다.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고 외국에서 국외자(局外者)로 혼자 사는 것하고 같다. 언제 무심히 길 걷다 모르는 사람이 휘두른 칼에 희생될 수도 있고, 한밤중 깊은 잠에 빠져 있는데 갑자기 불이 나서 연기로 숨이 막혀 고층 아파트 아래로 추락할 수도 있다, 누구도 아닌 바로 내가. 묻지마 범죄가, 안전지대였던 이곳을 야금야금 침윤(浸潤)해 들어오고 있다. 어디도 안전하지 않다. TV에 나오는 장면은, 먼 나라에서 일어나는 전쟁과 다르게 내 주변과 너무나 닮은 모습이다. 이제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나랑은 아무 상관도 없는 게 아니게 되었다. 이렇게 바로 내 안전과도 직결되는 문제니, 영향력 있는 위정자들은 팔 걷어붙이고 달려들어 하루빨리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대증(對症) 요법이 아니라 근본 원인을 찾아 없애야 한다. ‘왜’를 계속 물어야 한다. 아픈 사람은 아픈 원인을 찾아야 병이 제대로 고쳐지기 때문이다.
소설에서 여자 주인공은 대개 이혼한 후다. 그래야 좀 말이 되고 사연이 있는 여자 같나.
책을 많이 읽으며 현실을 벗어나고자 해도 인간인지라 더 나이들수록 그게 힘들다.
현실만 얘기하는 인간들이 대부분이다. 추억이나 미래 같은, 현실과 동떨어진 것을 얘기하는 인간은 확실히 드물다.
우리나라는 기승전 가족인데 이것도 지겹다. 버려야 한다. 아직은 이게 한국엔 살아있다. 이런 엄연한 현실을 무시하면 큰코다친다.
인생이란 맺고 끊는 게 없이 어쩌면 애매한 게 진실일 것이다. 그러나 죽을 때가 되면 아프다가 죽는 것이다. 그리고는 끝. 영혼도 천당도 없다. 그냥 다른 동물들이 죽어 시체로 나뒹구는 것처럼 먼지로 돌아가는 것이다. 자연의 일부였듯이 이젠 좀 형태를 달리해 자연의 일부로 역시 남는 것이다.
여자 작가는 할 수 없이 자기들의 이야기를 하게 되어 있다. 그것만 확실히 알기 때문이다. 모르는 것에 대해서도 말 하기 힘들고 모르니 관심도 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골고루 나와야 한다. 너무 치우친다.
인생이란 인생이란 맺고 끊는 게 없이 어쩌면 애매한 게 진실일 것 같다. 삶에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영역이 존재한다. 내 의지와 욕망만으로 살아가는 것도 아니고, 외부의 강제에 의해 살아지는 것도 아닌, 많은 게 얼기설기 엮여 그냥 어쩌다 보니 이렇게 살게 되더라, 라는 게 많이 맞을 것이다. 어영부영하다가 시나브로 여기에 와 있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남들과 다르게 특별할 것도, 그렇다고 안 특별할 것도 없는. 그러다 죽을 때가 되면 남들처럼 아프다가 나도 죽는다. 그리고는 끝. 암흑, 이제부터 영원한 무(無)의 연속. 내 실존은 생겨나기 전처럼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이다. 사후엔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도 하나하나 없어지고 만다. 무(無)의 세계가 나와 그들을 전부 삼켜버린다. 그러면 육체도, 내가 이 세상에 존재했었다는 흔적도 모두 소진(消盡)되고 마는 것이다. 남은 인생에서 오늘이 가장 젊다. 동물로서 영혼도 천당도 없다. 그냥 다른 동물이 죽어 시체로 나뒹구는 것처럼 먼지로 돌아갈 뿐이다. 인간도, 영혼이 있다는 인간이기 이전에 동물이다. 자연의 일부로 싱싱하게 생겨났다가 이젠 쭉정이가 되어 그 형태를 달리해 자연의 일부로 역시 섞이는 것이다. 실은 삶이 리얼하게 이렇게 우리 앞에 펼쳐지니까, 무상(無常)하니까-견딜 수 없어, 견디기 위해-정신이 있는 인간이 영혼을 만들고 사후 세계를 상상해 놓은 것이리라. 그렇지만 자연은 역시 냉혹하다. “신이니 극락이니 그런 건 너희가 만들었지, 내가 만들었냐?” 하며, 그런 인간들만의 사정을 자연은 봐주지 않는다. 인간은 별거 없이 자연, 우주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자기기만을 하면서까지 자기가 믿는 것을 그게 아니라고 합리화하며, 그 힘으로 버티려고 하는 게 인생 아닐까. 이렇지만 진실을 직시하며, 뭔가 자기만의 무너지지 않는 걸 향해 살아 있는 동안만이라도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 불교에서 말하는 열반(涅槃)이란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 그냥 죽어 꺼져버리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유한하고 끝이 있으니까 삶이 더 가치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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