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SF소설] 05.생명창조자의 율법 - 제임스 P. 호건

D-29
초신성 폭발은 비교적 희귀한 사건이며, 은하 전체에서 1년에 두세 번 정도밖에 일어나지 않는다. (중략) 그 항성군의 가운데에는 보다 수명이 긴 정상적인 항성 하나가 있었는데, 그 항성은 우연찮게도 탐사선을 띄워 보낸 외계인 종족의 모성이기도 했다. 이 외계인 종족은 자신의 항성계 밖으로는 문명을 확장하지 않았는데, 이 사건으로 그들의 모성이 소멸해버렸다는 점을 생각하면 아쉬운 일이었다. 누구에게나 운 나쁜 날은 있는 법이다.
생명창조자의 율법 p.14~15, 제임스 P. 호건 지음, 조호근 옮김
비교적 작은 개별 연산 장치에 의존하는 자율 제어 형식의 로봇은 눈앞의 문제에 대해 단순한 해결책 밖에 사용할 수 없었지만, 동시에 주변 환경과 직접 교류하고 있기 때문에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중략) 따라서 자율 제어 형식의 로봇이 우점종이 되어 점차 표준 형태가 되었고, 무선 제어 형식은 쇠락하여 고립된 일부 지역에서만 살아남게 되었다.
생명창조자의 율법 p.24~25, 제임스 P. 호건 지음, 조호근 옮김
그곳의 모든 로봇은 백업 모드만을 사용했으며, 해당 공장에서 파생한 다른 모든 공장들도 같은 전통을 따랐다. 그러나 이는 곧 그런 공장들의 가동 거리가 극도로 늘어난다는 뜻이기도 했다. 따라서 그런 '결함'은 결국 결함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채집 부대는 더 멀리 떨어진 곳까지 움직이며 보다 넓은 영역을 통괄하기 시작했고, 종종 지리적으로 외딴곳에 있어서 손이 닿지 않던 사냥감을 회수해 돌아왔다. 선택압은 이런 식으로 작동하는 로봇의 구조를 천천히 개량해나갔다.
생명창조자의 율법 p.24, 제임스 P. 호건 지음, 조호근 옮김
초신성 폭발, 불시착, 가혹한 환경, 프로그램 오류 이런 우연의 요소들이 계속 겹치면서 로봇과 기계들이 점점 지구의 생명처럼 환경에 적응하고, 분화하며, '진화'하는 모습을 묘사하는 장면들이 흥미롭네요. 백업, 연산, 로봇, 공장 같은 단어들을 떼거나 일반 생물의 단어로 대체하면 아주 자연스럽게 원시 지구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것 같고요.
오리건 새복음과학연대는 고대의 우주 비행사가 등장하는 최신 유사과학 이론을 사용해 성경을 완전히 재해석해서, 고대의 계시와 기적은 모두 초자연적 능력을 가진 선량한 외계인들의 방문에 의한 것이며, 그들이 인간의 '졸업'을 완수하기 위한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는 '논리적인' 교의를 만들어냈다.
생명창조자의 율법 p.52, 제임스 P. 호건 지음, 조호근 옮김
이 외계인 종족은 자신의 항성계 밖으로는 문명을 확장하지 않았는데, 이 사건으로 그들의 모성이 소멸해버렸다는 점을 생각하면 아쉬운 일이었다. 누구에게나 운 나쁜 날은 있는 법이다.
생명창조자의 율법 p.15 , 제임스 P. 호건 지음, 조호근 옮김
고高 고도 관측 장비는 일부만 작동하고 탐사 로봇도 내보낼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우주선은 적절한 크기의 천체가 보이자마자 즉각 강하 궤도에 진입했다.
생명창조자의 율법 p.15, 제임스 P. 호건 지음, 조호근 옮김
이 문장에서 뭐라고 해야할까, 우주선이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긴했지만 그 '이성적' 판단이 기계의 수학적 계산에 의한 이성적 판단보다는 '인간의 이성적' 판단 처럼 느껴져서 괜히 이 문장을 두 번 읽었어요. '자연적인' 거주자들이 기계로 되어 있다는 작가의 사전 설명에 제가 깊숙히 이입했나봐요ㅋㅋ 작가의 의도는 기계가 문명을 이룩한, 그야말로 지금의 인간의 지위를 기계가 누린다는 의미였을텐데 저는 무의식적으로 그걸 '인간다움을 가진 기계'로 받아들였나봐요.
이 아래에 이어지는 '프로그램은 어떻게든 동작을 시작했으며' 라는 표현도 왠지 인간적인 감정 표현으로 느껴졌는데 P.17부터는 '아, 이렇게 받아들여도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불평하고 매도하고 해명을 요구하고. 너무 인간적이에요.
일련의 전기적 매도와 책임 전가가 계속된 끝에, 시스템 기록 및 점검 프로그램은 사라진 하위 파일이 통신 버퍼를 통해 외부의 로봇들에게로 흘러나갔다는 결론을 내렸다.
생명창조자의 율법 p.17, 제임스 P. 호건 지음, 조호근 옮김
프롤로그를 읽으면서 초반에 느껴지던 문체나 느낌이 뒤로 갈수록 다르게 다가오는 느낌이랄까요? 외계 우주선이 임무를 수행하다가 사고를 겪고, 불시착하고, 오류가 있는 상황에서도 본래의 프로그램대로 맡은 바대로 작동할 때까지는 말 그대로 기계로서의 객관적인 상황을 다큐멘터리처럼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 점점 환경이 주는 선택압 또는 현실적 제약을 마주하면서 때로는 실패하고, 그러다 몇몇 공장이나 개체는 적응가고, 그 과정에서 본래의 의도와 다른 방향으로 분화하는 묘사들에서 생기가 점점 느껴지더라고요. 무정물에서 점점 환경에 적응하려는 무언가로 묘사가 많아지면서 분명 금속과 전선으로 이루어진 기계라는 걸 알면서도 생물의 모습이 겹쳐 보이면서 친숙함도 느꼈고요. 말씀하신 프로그램간의 책임전가와 원인규명의 묘사를 보며 똑같은 상황을 문장으로 옮기더라도 표현을 어떻게 하냐에 따라 독자가 받아들이는 감정이 다를 수 있다는게 재밌네요. 자칫 건조하고 딱딱한 프로그램 수행 절차일수도 있는데 관료제 조직을 보는 것만 같아요.
이로 인해 자성체는 짝지을 상대를 선택하려는 특질을 발현시켰으며, 그에 따라 웅성체는 자신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의식, 과시, 시연의 행동 양식을 보이기 시작했다.
생명창조자의 율법 p.28, 제임스 P. 호건 지음, 조호근 옮김
이렇게 하여 로봇 집단은 유전적 다양성과 재조합, 경쟁, 선택, 적응이라는 행동 양식을 보유하게 되었다. 진화를 계속하는 데 필요한 요건이 모두 갖춰진 셈이었다. 이런 형태의 생명-충분히 생명이라 부룰 수 있지 않겟는가?-은 지구의 기준으로는 물론 조금 이상해 보일지도 모른다.
생명창조자의 율법 pp.29-30, 제임스 P. 호건 지음, 조호근 옮김
그리고 물론 이들의 진화 과정에서는 고분자 탄소 화합물이 관여할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이들이 생명체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맹목적 우월주의일 뿐이지 않겠는가?
생명창조자의 율법 p.29, 제임스 P. 호건 지음, 조호근 옮김
저도 이제 몇 페이지 넘겼는데요^^;; 로봇의 자기 복제 과정이 보편적인 우주의 진화 과정을 탐구해보는 과정 같이 느껴졌습니다. 분량의 압박이 있으니... 부지런히 따라가겠습니다.
저 프롤로그 읽다가 포기할 뻔 했는데, 1장부터는 미드 같아서 가슴을 쓸어내리며 읽고 있습니다. ^^
그렇죠. ㅎㅎ 프롤로그 이후는 수월하게 읽힙니다.
한 분야의 전문가라고 해서 자격 없는 분야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보다 나은 의견을 낼 수 있는 것은 아닐세. 하지만 종종 그런 사람들 중에서 모든 분야에 대해 자신이 틀릴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친구가 나오고, 사람들은 그의 말을 믿게 되지.
생명창조자의 율법 p.56, 제임스 P. 호건 지음, 조호근 옮김
끝이 어떻게 맺어질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이야기 진행을 따라오다보니 잠벤도르프 일당이 얄미워죽겠네요. 아, 현재 10장 읽고 있는 중입니다.
잠벤도르프가 사기꾼인걸 분명 독자의 입장에서 알고 있음에도 막상 책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그의 연기와 퍼포먼스에 저도 빠져드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3장의 NBC 스튜디오에서 그가 벌인 눈속임과 인간의 심리를 이용한 수법을 뒤에서 매시가 다 파헤치지만 막상 3장을 읽는 동안에는 저도 순간 '잠벤도르프가 진짜 영능력자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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