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SF소설] 05.생명창조자의 율법 - 제임스 P. 호건

D-29
과학자들이야말로 가장 속여 넘긱 쉬운 작자들이지. 잠벤도르프가 좋아하는 말 중 하나였다. (...) 내가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어린아이나 마술사 같은 친구들이지. 과학자들은 아무런 문제도 안 돼. 그 작자들을 상대하는 일에는 나름 자신이 있다네.
생명창조자의 율법 p.37, 제임스 P. 호건 지음, 조호근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잠벤도르프라는 전문 사기꾼과 NASO의 수면 아래에서 펼쳐지는 치열한 대립, 잠벤도르프 일당의 전문적인 정보수집과 첩보력, 자신들의 세계에 궁금증을 갖는 기계들과 살벌한 정치극이 흥미롭네요. 아래의 내용들을 같이 얘기해봐요. 1) 프롤로그부터 13장까지 읽으면서 인상 깊거나, 재밌었거나, 강렬했던 인물이나 상황 또는 묘사를 얘기해주세요. 꼭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개여도 괜찮습니다. 2) 우주 탐사에 잠벤도르프를 보낸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3) 아직 초반이기는 하지만, 작가가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제 또는 소재는 무엇일 것 같나요? 4) 13장의 매시와 잠벤도르프의 설전에서는 세상 또는 대중에 대한 인식의 대립이 보입니다. 216p에서 잠벤도르프는 "내가 사람들을 그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나? 나는 그저 인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을 뿐이야. 사람들이 제대로 된 상식을 가지지 못하거나, 사회가 그 제대로 된 상식을 사용하도록 교육하지 못한 것 뿐인데, 왜 내가 비난의 표적이 되어야 하나?" 라고 주장합니다. 그의 도덕성과는 별개로 잠벤도르프의 주장에 동의하시나요? 또는 틀렸다고 생각하시나요? 잠벤도르프와 같은 사람들이 대중과 세상을 자신들의 뜻대로 바꿔가는 것일까요? 아니면 그런 세상이 잠벤도르프를 만들어낸 것일까요?
1) 전 5장에서 로프베이엘의 생각에 대해 종교적 진정성과 이단 여부를 심문하는 종교회의 묘사가 가장 기억에 남았어요. 전혀 다른 행성과 문명의 세계임에도 과거 역사의 종교회의 또는 종교재판이 겹치는 모습, 외계문명 또는 기계문명이라면 우리보다 앞선 사회일 줄 알았는데 중세 수준인 것도 눈에 들어오네요. 레카쇼바가 로프베이엘을 위협하며, 이단으로 몰아 눈을 파내고 산성용액에 담그려는 악의가 더해지고, 종교적으로 그를 이단으로 몰아가는 압박감.. 조용하고 엄숙하며 정적인 공간임에도 두려움에 기절할 것 같은 로프베이엘의 마음이 더해져 긴장감이 느껴지네요. 6장 119~120p에 걸쳐 NASO와 GSEC간의 겉으로는 의도를 직접 드러내지 않은 채, 수면 아래에서 진행되는 충돌과 정치극 묘사도 재밌었습니다. 슬쩍 간을 떠보는 GSEC과, 거기에 원론적으로 대응하는 NASO, 노골적으로 다시 윗선을 통해 압박이 가해지자 겉으로는 수긍하는 척 하며 자신의 직위를 걸고 정공법으로 가는 콘론.. 가식과 은밀함과 협박과 반박의 여러 수단이 다양하게 어우러지며 벌어지고 있지만 대중들은 아무도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도 모르겠죠. 과학기관과 영리집단, 과학적 사고와 신비주의 간의 갈등을 잠벤도르프라는 논란의 인물을 통해 풀어내는 스토리가 재밌네요. 2) 전 처음에는 잠벤도르프의 선동력 또는 연기나 연출력을 이용해 외계문명과의 협상에서 좋은 인상, 또는 인간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작용할 인지조작을 하고자 데려가는 게 아닐까 추측했습니다. 잠벤도르프의 영능력을 믿든 안믿든 그가 다수 대중의 관심을 휘어잡는 건 부인할 수 없으니까요. 만일 타이탄의 로빙들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잠벤도르프를 일종의 광대 역할로 사용하려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막상 읽다 보니 그것도 아닌 것 같네요. 단지 GSEC의 홍보나 이윤을 위해서라기에는 사건의 규모도 파장도 너무나 거대한데 점점 그가 왜 참가자 대상에 포함 된 건지 진짜 이유와 앞으로의 역할이 궁금해집니다.
3) 전 현재는 18장을 읽고 있는 중인데 작가의 메세지가 무엇일지 계속 잡힐 듯 말듯 하며 아리송하네요. 그래도 제일 분명하게 잡히는 건 4장에서 매시가 언급한 '성장의 한계'인데요. 매시의 입장에서 봤을 때 좁게는 미국 넓게는 지구의 인류가 경제와 의식, 문화의 성장을 경험하고도 무관심, 정치이념, 상업적 유도 그리고 비이성에 빠져 정체/퇴보하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그리고 인간사회만이 아니라 타이탄의 로빙 특히 크로악소스의 기계들이 종교적 집착에 묶여 합리적인 호기심과 질문조차 탄압하는 모습도 보여주죠. 인간과 로빙 모두 자신들이 만들어 낸 스스로의 제약에 묶여 시간과 자원, 인력을 허비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소설은 주로 잠벤도르프의 사기극, 로빙들의 신정정치를 소재로 보여주고 있지만 꼭 미신이나 종교만 지적하는 건 아니라고 봐요. 이 소설이 쓰이던 시점은 아직 소련이 해체되기 전이기에 냉전이 미래에도 지속되고 있다는 가정이 나오고, 그로 인한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세계의 절반이 정체 중이라는 묘사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기업가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공공의 정책의 방향성을 교묘하게 틀어버리는 내용도 나오고요. 잠벤도르프는 아마도 '대중의 자기 판단력을 흐리게 만드는 모든 것'의 상징이라고 봤습니다. 그는 미신과 더불어 언론의 영향력을 등에 업고 있죠. 영향력 있는 누군가가 미디어를 통해서 지적해주는 사회문제와 의견은 우리에게 정말 도움이 되는 말일까요? 아니면 그들 또한 자신의 이해관계로 인해, 또는 인식의 한계로 인해 사건의 일부만 강조하는 건 아닐까요? 누군가가 말해주는 문제, 누군가가 제안하는 해결책을 보며 그들의 권위나 영향력, 지위라는 배경과 연결 지어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죠. 그 과정에서 순수한 '나'의 판단과 의견은 어디서부터 시작되고 어디까지가 끝일까요? 잠벤도르프는 단지 '미신'이라는 우리가 물고 뜯기 좋은 영역의 대표자일 뿐, 우리가 현대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사회영역에서는 보다 교묘한 잠벤도르프들이 숨어 있다고 지적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여러 요소들이 겹쳐 대중이 사실과 현상 그 자체보다는 그것들을 둘러싸는 의미부여에 더 관심을 갖게 된다고 설명하는 것으로 이해했어요. 그리고 본질에서 점점 멀어질수록 우리의 사고와 인식을 옭아매는 한계도 늘어난다는 뜻 아닐까요. 개인과 집단 모두 우리의 문제는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냈다는 점. 문제의 본질과 현상을 가리거나 무시하게 하는 왜곡은 모두 우리가 만들어 내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 왜곡의 안개를 걷어내는 힘 또한 우리 자신에게 있다고 말하려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2) 4장을 읽고 있는 지금, 잠벤도르프가 우주 탐사에 참여하게 된 이유는 사람들 마음 속에 있는 "혹시 몰라"라는 불안함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89페이지에서 휘터커가 지금의 뉴스에는 '기적을 부리는 자들, 다가오는 재앙에 대한 공포, 존재하지도 않는 소련의 궁극 무기, 파국에 이른 경제'가 주를 이루고 있다고 하잖아요. 확신을 갖고 사람들을 땅에 붙들어 두는 앵커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세상에서, 각국의 중대사를 다루는 사람들 역시 결국 그 사회의 사람들, 즉 약화되고 지식은 예전만큼 경고한 방어막을 제공해주지 못하는 사회에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내면에 '혹시 몰라'라는 생각을 품고 있을 것 같아요. 화성에 가게 되었을 때, 상식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사실이라고 입증 되고 있는 영적 능력이 쓸모가 있어지는 '혹시 모를' 상황이 펼쳐질지도 모른다. 미지의 세계에는 우리가 알 수 없는 미지의 존재가 있을지도 모르고, 그런 상황에서는 그런 '미지의' 능력이 쓸모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 작은 빈틈이 잠벤도르프를 세계적인 '영적 지도자'로 만들었고, 결국 우주선에 태웠다고 생각해요. 책을 읽으면서 앞으로 이 생각이 어떻게 변하게 될지 기대 되네요!
56 쪽 한 분야의 전문가라고 해서 자격 없는 분야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 보다 나은 의견을 낼 수 있는 것은 아닐세. 하지만 종종 그런 사람들 중에서 모든 분야에 대해 자신이 틀릴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친구가 나오고, 사람들은 그의 말을 믿게 되지. 59 쪽 애석하게도 논리적이고 교육 수준이 높으며 분별력이 있는 사람들은 훌륭한 소비자가 되지 못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에, 누구도 논리적이고 교육 수준이 높으며 분별력있는 대중을 만들어내려 시도 하지 않았다. 111 쪽 겉으로는 열렬히 지식과 교육을 찬양 하면서도, 부와 명예는 사상가나 창조자나 생산자가 아닌 사회의 편견과 환상을 유지시켜 주는 이들에게 넘겨 준다는 사실 말이다. 130 쪽 모든 해답을 알고 자신들을 보살펴줄, 보다 현명하고 강한 존재를 신뢰하기를 원할 뿐이죠. 신이든, 정부든, 사교 집단의 우두머리든, 마법의 힘이든… 뭐든지요. 219 쪽 세상의 모든 문제는, 타인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의 고귀하고 올바른 사상 때문에 생겨난 거라고.
생명창조자의 율법 제임스 P. 호건 지음, 조호근 옮김
에버퀸은 웃음기 없는 미소를 머금었다. "자신감이란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때 느끼는 감정이지."
생명창조자의 율법 p.37 , 제임스 P. 호건 지음, 조호근 옮김
1) 지금 4장을 읽는 중인데, 1장에서의 이 문장이- 그리고 이 문장 이전에 이어진 애버퀸과 잠벤도르프의 결론이 정해진 설전이 자꾸 눈앞에 아른거려 돌아왔어요. 두 사람의 관계성이, 잠벤도르프의 오만한 나른함이 그리고 애버퀸의 올바른 곳에 쓰이지 못하는 지혜의 단서가 1장 초반에 모두 들어있는 것 같단 생각이 들면서 참 세밀하게 짜인 글이구나 싶었습니다. 등장인물이 많은 편에 속하는 책인데도 각각의 개성과 역할이 확고해서인지 다른 책을 읽을 때보다도 '이게 누구더라?'하고 고개를 갸웃하는 일이 적은 것 같고요.
잠벤도르프의 잔재주에 극도로 허황된 설명을 붙이고, 비판적인 사고나 자제력을 조금도 발휘하지 않고 모든 것을 믿어버리는 페리에라의 능력은 잠벤도르프 본인조차 항상 경탄하게 만들곤 했다.
생명창조자의 율법 p.42, 제임스 P. 호건 지음, 조호근 옮김
1) 페리에라 박사를 묘사하는 이 구간은, 언젠가 시청했던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한 편이 떠올라 인상이 깊었어요.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흔히 '지구 평평설'이라고 불리는 지구가 둥글지 않다고 믿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 간의 연대를 그린 다큐멘터리였는데, 학력과 관계 없이 누구나 상식을 역행하는 가설을 전적으로 믿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었어요. 다큐멘터리를 본 n년 전에는 "왜 고등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상식을 거스를까?"라는 의문을 가졌는데, 이 부분으로 그에 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엉성한 갭을 채울 수 있는 풍부한 재료를 가졌기 때문이겠죠. 과학과 기술이 발전할 수록 상식을 역행하는 음모론을, 미신을, 가설을 신뢰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 같아요. 지식은 재료잖아요. 그 재료로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낼지는 개인의 역량에 달려있죠. 사회가 제공하는 공교육의 질, 매일 노출 되는 소셜 미디어 속의 프로파간다, 그리고 개인이 속해있는 커뮤니티의 성격에 따라 지식이 이용 될 수 있는 방식은 너무 다양한 것 같아요.
"초자연적 발현은 평범한 물질 수준의 존재와는 달리 부정적 또는 비판적 감정에 영향을 받는다네. 재현 가능성에 차이가 생기지." 페리에라는 설명했다. "기초 양자역학을 적용하면 예측 가능한 결과라네. 관찰자와 관찰 대상 사이에는 밀접한 연관이 있거든."
생명창조자의 율법 p.43, 제임스 P. 호건 지음, 조호근 옮김
기초 양자역학을 모르는 제가 이 말에 무슨 반박을 할 수 있겠나요! 그냥 "와, 정말 전문적인 헛소리 같아요."라는 말 말고는 떠오르지 않아요. 그렇다고 제가 기초 양자역학을 배우면 이 말에 반박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도 들긴하네요. 책을 읽고 계시는 분들은 영적 능력을 믿으시나요? 혹시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으시나요? 저는 영적 세계는 있다고 믿는 편이지만, 지구는 둥글다고 믿어요. 전자에 대한 믿음은 사실 뼈대가 없어서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갖고 있는 믿음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어서 좋은 기회 같아요. 난 이걸 왜 사실이라도 받아들이고 있을까? 마음 편하자고?ㅎㅎ 하면서요.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지금 참가 중인 극도로 비일상적이며 중요한 사건에 대한 확신은 갈수록 강화되기만 했고, 그가 저지른 사소한 실수 따위에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갑자기 인생의 모든 문제와 걱정이 단순히 기원하는 행위만으로도 손쉽게 사라질 것처럼 느껴졌다. 누구나 비밀을 해석할 수 있다. 누구나 힘을 다룰 수 있다. 필연성이 더욱 달콤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룰 수 없는 소망이 하찮게 느껴졌다. 더는 고독이나 무력감을 느낄 필요가 없었다. 위대한 현자께서 그들 모두를 인도해줄 테니까. 그의 신도가 되었으니까.
생명창조자의 율법 p.77, 제임스 P. 호건 지음, 조호근 옮김
1) 3장의 라이브 쇼 장면은 영화 '악마와의 토크쇼'가 떠올랐는데, 라이브 토크 쇼 + 게스트의 초자연적인 자질 증명 이라는 성격 때문에 필연적으로 떠오를 수 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한 차례 유행처럼 지나간 '럭키걸 신드롬'이 떠오르기도 했고요. 영적 능력이라는 말에 담긴 뉘앙스 때문인지, 잠벤도르프의 능력이 럭기컬 신드롬의 뿌리에 있는 자기암시(manifest)와 같은 카테고리에 있는 것 처럼 느껴지다가도, 책에서의 묘사를 보면 그보다는 'X맨'에 가깝지 않나?라는 생각도 들어요. 히어로 장르에 익숙한 오늘날의 대중 앞에 잠벤도르프가 나타난다면 쫄쫄이 타이즈를 입고 대중 앞에 나서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드네요.
악마와의 토크쇼1977년 핼러윈 전날 밤, 시청률을 위해서라면 일단 틀고 보는 방송국 놈들 때문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방송사고 발생! 그리고 마침내 미국 전역을 충격에 빠트렸던 그날 밤의 생방송 악마와의 토크쇼 녹화영상이 최근에 발견됐는데… 47년간 숨겨진, 절대 생중계돼서는 안 될 최악의 토크쇼가 마침내 공개된다, 그동안 공개되지 않은 비하인드 영상과 함께!
해답이 단순할수록 대부분의 사람들은 쉽게 눈치채지 못한다네. 항상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복잡한 설명을 찾아다니지.
생명창조자의 율법 p.94, 제임스 P. 호건 지음, 조호근 옮김
비교적 어린 시절부터 그는 정직하고 지적이고 근면하고 다른 여러 모범적인 덕목을 소유한 자신의 부모가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고 있으며, 마땅히 그래야 할 만큼 부유해질 수도 없을 것이며, 그들의 노동이 공적으로 인정이나 찬사를 받지도 못할 것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깨닫게 되었다.
생명창조자의 율법 p.111, 제임스 P. 호건 지음, 조호근 옮김
전 이 부분이 잠벤도르프와 같은 자들에게 사람들이 매료되는 근본적인 이유를 보여주는 문장이라고 생각해요. 문장의 바로 뒤에 이 내용이 있죠. "그는 차츰 이러한 불합리한 사실을 사회 전체의 체계적인 자기기만이라는 보다 큰 음모의 일부로 여기게 되었다. 겉으로는 열렬히 지식과 교육을 찬양하면서도, 부와 명예는 사상가나 창조자나 생산자가 아닌 사회의 편견과 환상을 유지시켜주는 이들에게 넘겨준다는 사실 말이다." (p.111) 현대사회는 자기발전과 노력을 통한 신분 또는 형편의 상승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지만, 정작 그런 가치들은 개인이 성장하고 사회에 진출하면서 시험대에 오르거나 부정 당하는 일들을 겪게 되죠. 과학적 사고, 경제적 판단, 합리적 선택으로 무장하고 세상에 나가더라도 막상 세상을 유지하고, 움직이는 것들의 많은 부분은 그것들과 무관한 요소들로 작동하는 경우도 많죠. (지연, 학연, 혈연, 인종적 또는 직업적 편견, 개인의 신념, 조직문화 등) 잠벤도르프는 세상에 존재하는 불합리함에 대해 합리성을 통해 사회를 바꾸어나가거나, 맞부딪치기 보다는 본인도 그런 불합리함의 파도에 올라타기로 선택합니다. 개인의 입장에서는 그게 훨씬 쉽고, 고민할 필요가 없으며, 멀리 돌아가지 않아도 되는 지름길이니까요. 어차피 세상이 합리성과 이성 만으로 돌아가지 않으며, 이해할 수 없는 모순과 한계도 같이 끌어안고 가야 한다면 무엇 하러 힘들게 전자를 선택하느냐는 입장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이미 불합리한 세상에 조금 더 미신과 엔터테인먼트와 쇼, 그리고 대중의 심리를 조작한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지겠냐는 거죠. 이런 잠벤도르프의 마음은 소설 속 대중들의 의식/무의식 밑바닥에도 깔려 있다고 봐요. 세상을 이해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힘들게 논리와 이성과 교육에 투자하더라도 현실은 다른 모습이거나 실망스러우며, 거기서 괴리감을 느끼고, 자신 같은 개인들이 세상을 바꿀 수 없다면 그냥 현실을 '쉽게 받아들이게 해줄' 무언가로 결국 돌아서는 거죠. 잠벤도르프는 그런 대중들의 무관심, 사회에 대한 불만 또는 의식하지 못하는 불편함을 보다 극적인 예능과 사기극으로써 잘 써먹고 있을 뿐이고요. 어쩌면 기성 정치인이나 사회 지배계층에 대한 불신과 반발심으로 잠벤도르프에게 더 열광하는 걸 수도 있겠고요.
개인은 사회를 변화시킬 수 없다는 믿음이 잠벤도르프에게도, 말씀하신대로 소설 속 대중에게도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는 것 같아요. 대중은 불합리함을 게임의 규칙 중 일부로 받아들아고, 잠벤도르프는 그 규칙을 가장 잘 이해하고 이용하는 플레이어 중 한 명이겠죠. 지금 막 9장의 끝장을 읽었는데, 사람들의 머리 꼭대기 위에 있는 듯하던 잠벤도르프와 그 팀원들이 처음으로 자신들이 게임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의구심을 가지는 장면이 참 흥미로웠어요. "잠벤도르프 같은 사람이 그곳에 반드시 가야하는 이유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p.167) 처음으로 잠벤도르프가 다른 등장인물들과 동등한 출발선에 놓인 기분이 들어서일까요. 10장 부터는 쉽사리 이해할 수 없는 음모가 드러나기 시작할 것 같아서 기대 되네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것을 원하지 않아요." 실비아 펜턴은 주장했다. "모든 해답을 알고 자신들을 보살펴줄, 보다 현명하고 강한 존재를 신뢰하기를 원할 뿐이죠. 신이든, 정부든, 사교 집단의 우두머리든, 마법의 힘이든…… 뭐든지요."
생명창조자의 율법 p.130, 제임스 P. 호건 지음, 조호근 옮김
이 행성에서 가장 낭비되는 자원은 인간 정신의 가능성, 특히 젊은이들의 가능성입니다. 그래요, 저는 그런 가능성의 일부를 발현시킬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생명창조자의 율법 p.131, 제임스 P. 호건 지음, 조호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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