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SF소설] 05.생명창조자의 율법 - 제임스 P. 호건

D-29
“내가 보기에 다른 이들의 문제에 신경쓰는 작자들은 자신의 문제에서 가치를 찾지 못하는 자들 뿐이오. 자기 자신을 개선하려는 사람은 일생 내내 노력해도 부족한 법이니까. 자신이 세상을 개선시킬 적임자라 생각할 시간조차 없게 마련이지.”
생명창조자의 율법 p.154, 제임스 P. 호건 지음, 조호근 옮김
“잠벤도르프가 실제로 입에 올린 내용은 앨리스라는 부인의 딸이 선원과 결혼할 예정이라는 것뿐일세. 그자는 해군이라고도, 잠수함이라고도, 항해사라고도 하지 않았어. 전부 앨리스 여사가 스스로 한 말이지.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는 기억하지 않는다네. (중략) 세상의 모든 잠벤도르프와 동류의 사기꾼들은 그런 선별적인 기억 능력으로부터 아주 많은 도움을 얻는다네.”
생명창조자의 율법 p.93, 제임스 P. 호건 지음, 조호근 옮김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중심이 없으나 모든 곳에 중심이 있고, 크기에 한도가 있으나 경계는 끝이 없는 형상은 무엇인가?’ 여러 숙고와 실험 결과 오직 구체만이 그 수수께끼에서 지정한 모든 조건을 만족한다는 결론을 내렸고, 그러자 다음 질문이 생겨났습니다. ‘이 세계가 구체와 공통의 성질을 가진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 형태 또한 공유한다는 결론이 필연적이지 않은가?’”
생명창조자의 율법 p.101, 제임스 P. 호건 지음, 조호근 옮김
“액체는 구체 위에서 제 형상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구체의 형상을 한 세계에는 메탄의 바다가 존재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러나 대양은 분명 존재하지 않습니까? 제가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수천 명의 항해자와 여행자들이 환각에 빠진 것입니까?” 그는 강렬한 눈빛으로 로프베이엘을 쏘아보았다.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하겠는가, 대양을 부정하는 자여?” “답할 말이 없습니다.” 로프베이엘은 울적하게 중얼거렸다.
생명창조자의 율법 p.102, 제임스 P. 호건 지음, 조호근 옮김
"사람은 높이 올라갈수록 더 멀리 볼 수 있는 법입니다." (중략) 오플린의 눈초리가 잠시 아주 살짝 가늘어졌다가, 이내 다시 이쑤시개를 씹기 시작했다. "그렇지. 그리고 더 멀리 갈수록 더 조금만 보게 되는 법이오. 마침내 그 안의 작은 부분을 전혀 보지 못하게 될 때까지."
생명창조자의 율법 p.153, 제임스 P. 호건 지음, 조호근 옮김
왠지 이 대화는 잠벤도르프 뿐만이 아니라 매시에게도 적용되는 말이 아닐까 싶네요. 중간 중간 읽으면서 매시는 분명 자신감 있고, 그에 어울리는 능력을 갖춘 인물이지만 약간 오만하다는 생각도 들었거든요. GSEC의 경영진이나 잠벤도르프가 지적하듯, 마치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어리석은 대중을 그들의 무지로부터 꺼내줄 수 있다고 은연중에 속내를 품고 있다고도 느꼈어요. 대중을 이용해먹는 잠벤도르프와, 무관심해지는 대중을 은근히 내려다보는 매시 모두 자신들의 견해 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음을 지적하는 내용이 아닐까요?
"성장의 한계." 버넌이 중얼거렸다. "뭐라고?" 휘터커가 말했다. "아, 그냥 제가 읽었던 1970년대의 멍청한 책 제목이 생각나서 말입니다." 버넌이 대답했다. "나는 한계가 보이지 않는데." 콘론은 이렇게 말하며 별들 사이를 훑었다. "어디서 찾아야 하나?" "사람들의 마음속을 봐야지." 매시가 대답했다.
생명창조자의 율법 p.97, 제임스 P. 호건 지음, 조호근 옮김
그러나 단순한 설명으로 모든 사실을 해석할 수 있다면, 보다 복잡한 해석이나 그를 받아들이기 위한 논리적 해석은 필요 없는 법입니다.
생명창조자의 율법 p.176, 제임스 P. 호건 지음, 조호근 옮김
티르그의 박물학자 친구는 로빙을 비롯한 모든 생명이 동일한 재료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주었다. 그렇다면 그중 오직 한 종만이 다른 모든 생물과 명확히 구별되는 사고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다. (중략) 그러나 죽은 로빙을 조심스레 분해하여 연구해본 의사들의 말에 따르면, 로빙의 내부 구조는 다른 기계종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튜브, 섬유, 꺾쇠, 베어링 따위가 정신없이 배열되어 있으며, 셀 수 없이 많은 수정 조각 위에 복잡한 패턴이 빽빽하게 새겨진 모습이었다.
생명창조자의 율법 p.188, 제임스 P. 호건 지음, 조호근 옮김
'수정 조각 위에 복잡한 패턴'이란 문구를 저는 기계의 기판에서 볼 수 있는 회로가 머리에서 떠올랐어요. 어쩌면 로빙 의사들이 분해한 것은 '뇌'가 아닐까 싶고요. 인간의 뇌 속에 존재하는 뉴런은 100억개를 넘는다고 하는데 끝없는 패턴이라는 표현이 뇌를 연상시켰거든요. 마치 사람을 해부한 해부도나 수술장면이 머리에 떠오르지만 대신 기계와 금속, 전선이 써져 있는 문장에서 두 장면이 겹치는 게 인상 깊었습니다. 직접 관찰과 실험을 통해 물리적으로 동물과 로빙의 구성이 차이가 없다면, 의식은 어디에서 발원하는지, 영혼이 곧 의식인지, 영혼은 실재하는지를 묻는 티르그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 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이 자의식이 가능한 수준으로 지성이 발달하면 영혼이라는 개념을 떠올리는 것은 필연적인 과정인지, 아니면 인간만이 떠올릴 수 있는 개념인지 생각하게 되네요.
타이탄은 기계가 거주하는 땅이었다. 전자기적 생태계가 존재하며, 그 안에는 문명이 발달하고, 지능이 있으며, 아마도 자기인식이 가능한 우점종 로봇이 있었다.
생명창조자의 율법 p.214, 제임스 P. 호건 지음, 조호근 옮김
그에 따르면 로빙의 영혼은 전반적인 품질 확인 검사를 거쳐서 그 결과에 따라 생명창조자 곁으로 돌아가거나 액체 얼음 화산의 근원이 되는 땅속 거대한 환원 용광로로 이송된다고 한다.
생명창조자의 율법 p.188, 제임스 P. 호건 지음, 조호근 옮김
이 대목은 타이탄의 천국과 지옥, 혹은 그 갈림길에서 벌어지는 심판을 의미하는거겠죠. SF는 이런 지점이 참 재미있는 것 같아요. 글을 따라 온갖 이미지를 상상하느라 뇌가 푹 퍼질 즈음에 이런 문장을 만나면 다시 뇌를 작동시킬 힘이 나요.
그에게 있어 영혼이라는 '사실'은 정답에 맞추어 발명한 개념이라는 의심이 들 뿐이었다. 질문에 대한 올바른 답을 이끌어내기 위해 그가 고안한 일련의 규칙에 의거해 판단해보면, 영혼이라는 답은 사실로부터 유추해낸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규칙은 어디에 적용해도 그를 실망시킨 적이 없었다.
생명창조자의 율법 p.189, 제임스 P. 호건 지음, 조호근 옮김
생명창조자께서 우리가 지성을 가져 마땅한 존재라고 생각하셨다면, 우리가 그 지성을 사용하기를 원하셨음 또한 분명하지 않은가. 글쎄, 지식을 얻을 수 있는 믿을 만한 방법을 발견하는 것보다 더 나은 사용처가 또 어디에 있겠나?
생명창조자의 율법 p.193, 제임스 P. 호건 지음, 조호근 옮김
단 하나의 질문도 용납되지 않는 교육이 그대의 신념을 만들었지만, 내 신념은 가능한 모든 질문을 던진 다음에야 배울 수 있는 것이니까. 비판적 검토를 견뎌내지 못하고, 반대의 말은 단 한마디도 던질 수 없는 신념에 대체 무슨 가치가 있겠나?
생명창조자의 율법 p.199, 제임스 P. 호건 지음, 조호근 옮김
은화님 말씀을 읽다보니, 인간 세계의 잠벤도르프와 로빙의 신정 정치가 상징하는 바는 '사고를 포기한 대중의 사회'이지 않을까 싶어졌어요.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는데, 제 주변에서 "생각 외주 맡겼네."라는 표현을 이따금 듣고 있어요. '생각 외주', 그러니까 아주 편리한 믿음의 대상을 제공하고 부록으로 믿음을 떠받드는 편리한 설명까지 제공한다는 점이 잠벤도르프와 신정 정치의 공통점 같아요.
저는 소설 속 대중의 무관심 또는 무지가 매시의 지적처럼 이념, 광고, 미디어를 통해 사람들의 주의를 돌리는 것도 있겠지만, 대중들이 보기에 사회가 자신들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느껴서 돌아선 것도 있다고 생각해요. 높이 올라서면 더 멀리 볼 수 있다는 잠벤도르프의 말에 반박하는 우주선 선원의 지적에서 그런 뉘앙스가 은근히 느껴졌거든요. 이념싸움과 이권에 흔들리는 지도계층을 보며 대중들은 관심을 잃고, 무관심 그리고 개선에 대한 필요를 못 느끼는 무기력함이 무지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로도 보이고요. 그렇기에 매시가 말하는 지적이나 중간 중간 보이는 태도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또 한명의 입장'일 뿐 대중의 눈높이에서 보지 못하는 반쪽짜리 지적이 아닌가 생각도 들었고요.
소설을 읽으면서 계속 타이탄 위성의 풍경이 어떨지 상상이 잘 안 되서 찾아봤어요. 타이탄은 토성의 위성들 중 유일하게 대기가 있으며, 지표면에 액체가 존재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소설에서 묘사했듯 강과 대양, 산맥과 대륙이 있으며 심지어 썰물과 밀물이 존재하고 메탄 비가 내리기에 태양계에서 지구와 가장 유사한 풍경을 가지고 있다고 하네요. 물론 온도나 대기와 액체의 구성성분은 전혀 다르지만요. 첫번째 링크는 NASA에서 만든 타이탄에 대한 요약 설명 영상입니다. 두번째 링크는 시뮬레이션을 통해 타이탄의 지표가 어떤 모습일지를 보여주고 있고요. 세번째 영상은 토성-타이탄 탐사목적으로 우주로 간 카시니 탐사선이 2005년에 타이탄 지표를 관측하기 위해 하위헌스 착륙선을 보냈을 당시 착륙선이 촬영한 풍경입니다. 마지막은 2027년에 타이탄을 탐사하기 위해 보낼 예정인 드래곤 플라이 호의 계획도입니다. 가는 시간을 감안하면 2034년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하네요. 드래곤 플라이 호는 아예 장기간에 걸쳐 비행을 하며 타이탄의 지표를 관찰한다고 하니 왠지 소설의 내용이 겹쳐 보이네요. (혹시..?) https://www.youtube.com/watch?v=lr4r70DWShk https://www.youtube.com/watch?v=w7vCYpr_ZKU https://www.youtube.com/watch?v=msiLWxDayuA https://www.youtube.com/watch?v=IdYeWN9ZivE&t=32s 타이탄의 대기가 두터워 지표에서는 볼 수 없지만 대기를 뚫고 가면 거기서 보일 토성의 풍경은 장관일 것 같아요.
흥미롭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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