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화님의 문장 수집: " 티르그의 박물학자 친구는 로빙을 비롯한 모든 생명이 동일한 재료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주었다. 그렇다면 그중 오직 한 종만이 다른 모든 생물과 명확히 구별되는 사고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다. (중략) 그러나 죽은 로빙을 조심스레 분해하여 연구해본 의사들의 말에 따르면, 로빙의 내부 구조는 다른 기계종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튜브, 섬유, 꺾쇠, 베어링 따위가 정신없이 배열되어 있으며, 셀 수 없이 많은 수정 조각 위에 복잡한 패턴이 빽빽하게 새겨진 모습이었다."
'수정 조각 위에 복잡한 패턴'이란 문구를 저는 기계의 기판에서 볼 수 있는 회로가 머리에서 떠올랐어요. 어쩌면 로빙 의사들이 분해한 것은 '뇌'가 아닐까 싶고요. 인간의 뇌 속에 존재하는 뉴런은 100억개를 넘는다고 하는데 끝없는 패턴이라는 표현이 뇌를 연상시켰거든요.
마치 사람을 해부한 해부도나 수술장면이 머리에 떠오르지만 대신 기계와 금속, 전선이 써져 있는 문장에서 두 장면이 겹치는 게 인상 깊었습니다. 직접 관찰과 실험을 통해 물리적으로 동물과 로빙의 구성이 차이가 없다면, 의식은 어디에서 발원하는지, 영혼이 곧 의식인지, 영혼은 실재하는지를 묻는 티르그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 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이 자의식이 가능한 수준으로 지성이 발달하면 영혼이라는 개념을 떠올리는 것은 필연적인 과정인지, 아니 면 인간만이 떠올릴 수 있는 개념인지 생각하게 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