헉.. 다음 장은 진짜 칸트의 정언명령이 나오는군요.. 아.. 칸트의 Groundwork of the Metaphysics of Morals라도 읽고올까..;;
12주에 STS 관련 책 12권 읽기 ⑤ 책임의 원칙 (한스 요나스)
D-29

borumis

siouxsie
전에 칸트 책 읽다가 죽을 뻔 했는데, 여기에 등장하시다니...ㅜ.ㅜ

borumis
ㅋㅋㅋㅋ 게다가 이 분 이름이 왜이리 낯익을까 했더니.. 알고보니 불수능 사탐 출제문제에서 나온 책이네요;;;

borumis
어쩐지 익숙하다고 했더니.. 2024 수능 생활과윤리 18번 문제가 한스 요나스의 이 책에서 나온 거네요.. 가끔 심심하면 수능 문제를 풀어봐서.. 책임의 원리도 자주 출제되더라구요.

borumis
갑 사상가/을 사상가로 해놓고 칸트 사상과 요나스 사상을 비교하는 문제도 많이 나오더라구요.^^;;;
그나저나 우리나라 고등학생들 수준이 장난 아니네요.. 이 책들을 다 읽진 않았을 것 같고.. 아마 학원 같은 데서 요점 정리 노트로 가르치겠죠?

siouxsie
그걸 어떻게 기억하시는 건가요?!!! 타임머신 타고? ㅎㅎ

borumis
“ 칸트의 정언 명법은 "너의 격률이 일반적인 법칙이 되기를 원할 수 있도록 행위하여라"라고 말하였다.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무엇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은 바로 이성의 가능성으로서 이성이 자기 자신과 일치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인간적 행위자의 사회가 존립한다는 사실을 전제하면, 행위가 바로 이 공동체의 일반적 실천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자기 모순이 아니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도덕의 기본 생각이 도덕적이지 않고 논리적이라는 사실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
『책임의 원칙 - 기술 시대의 생태학적 윤리』 40, H. 요나스 지음, 이진우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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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umis
역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칸트답게 도덕적 근본마저 도덕적이라기보다는 이성의 논리에 따른 것으로 해석하네요;; 원하거나 실행 가능한 것마저 동의나 반감보다는 논리적 일치 가능성을 따져야 하는;;

borumis
“ 그런데 인류가 언젠가 실존을 중단하리라는 생각에도 자기 모순이 없다. 마찬가지로 현재 세대와 다름 세대의 행복이 후세대의 불 행 또는 소멸이라는 값을 치르고 획득한 것이라는 생각에도 자기 모순이 전혀 없다. 끝으로 다음 세대의 행복이 현재 세대의 불행이나 말살이라는 희생을 치르고 획득된 것이라는 반대의 생각에도 자기 모순은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를 위한 미래의 희생을 미래를 위한 현재의 희생보다 논리적으로 더 논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책임의 원칙 - 기술 시대의 생태학적 윤리』 40, H. 요나스 지음, 이진우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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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umis
영화 돈룩업이 생각나네요..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물론 자기 모순은 없죠.. 암요..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반감이 없느냐? 그건 아니쥐요..
그나저나 현재를 위한 미래의 희생을 미래를 위한 현재의 희생보다 논리적으로 더 논박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한 경우에는 계열이 계속되지만 다른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는데, 여기서 "계열"은 무엇을 의미하고 어느 쪽이 계열이 계속된다는 건지?

borumis
“ 인간 행위의 새로운 유형에 적합하고 새로운 유형의 행위 주체를 지향하는 명법은 대충 다음과 같을 수 있다. "너의 행위의 효과가 지상에서의 진정한 인간적 삶의 지속과 조화될 수 있도록 행위하라." ”
『책임의 원칙 - 기술 시대의 생태학적 윤리』 40-41, H. 요나스 지음, 이진우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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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umis
“ 나는 미래의 선을 희생함으로써 현재의 선을 바랄 수 있다. 나는 내 자신의 종말과 마찬가지로 인류의 종말도 역시 바랄 수 있다. 내 자신과의 모순에 빠지지 않고서도 나는 스스로와 인류를 위해서, 평범하 게 끝없이 지속되는 것보다는 극단적인 자기 만족을 주는 짧은 불꽃놀이를 선호할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명법은 우리 자신의 생명을 내걸 수는 있으나 인류의 생명을 위태롭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
『책임의 원칙 - 기술 시대의 생태학적 윤리』 41, H. 요나스 지음, 이진우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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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umis
“ 그러나 우리는 현재 세대의 존재를 위해 미래 세대의 비존재를 선택하거나, 또는 감히 위태롭게 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왜 우리가 이러한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은지, ... 어쨌든 실존하지 않으면서 실존에 대한 어떤 청구권도 가지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의무를 가지는가에 대해서는 이론적으로 그리 쉽게 정당화딜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아마 종교 없이는 거의 확증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의 명법은 이것을 우선 아무런 확증도 없이 공리로서 받아들인다. ”
『책임의 원칙 - 기술 시대의 생태학적 윤리』 41, H. 요나스 지음, 이진우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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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umis
“ 더 나아가서 새로운 명법이 사적인 행동보다는 오히려 공적인 정치에 시각을 맞추고 있음은 분명하다. ... 칸트의 정언 명법은 개인을 향하였고, 그 기준은 순간적이었다. 만약 지금 나의 행위의 격률을 일반적 입법의 원리로 만든다면, ...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숙고하라고 정언 명법은 우리 모두에게 요청한다. 이 가설적 일반화의 자기 일치 또는 모순은 사적 선택을 검사하는 기준으로 만들어졌다. .... 그리고 원칙은 객관적 책임의 원칙이 아니라 나의 자기 규정(자율)의 주관적 성질에 대한 원칙이다. 새로운 명법은 다른 일치를 언급한다. 그것은 자기 자신과의 활동의 일치가 아니라, 자신의 행위의 효과와 미래에서 인간적 활동성이 지속되는 것과의 일치이다. ”
『책임의 원칙 - 기술 시대의 생태학적 윤리』 41-42, H. 요나스 지음, 이진우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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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umis
“ 새로운 명법에 복종하는 행위들, 즉 집단적 전체의 행위들은 행위의 충동이 진보함에 따라 자기 자신을 "전체화"하고, 궁극적으로 사물들의 보편적 상태를 형성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이러한 사실로 말미암아 칸트적 정언 명법의 논리적 순간 작용에 전적으로 결여되어 있는 시간 지평이 도덕적 계산에 첨가된다. 후자가 추상적 양립 가능성의 영원한 현재 질서를 추정한다면, 우리의 명법은 계산될 수 있는 실제적 미래를 예측한다. 그런데 이 미래는 완결되지 않는 우리의 책임의 차원이다. ”
『책임의 원칙 - 기술 시대의 생태학적 윤리』 42, H. 요나스 지음, 이진우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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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bedo
“ 동시대적 인간 상호간의 영역에 가장 직접적으로 결합될 수 있는 이러한 윤리학의 정초는 형이상학의 영역에까지 다다라야 한다. 오로지 형이상학에서만 "왜 인간은 결국 이 세계에 존재해야만 하는가?", "인간의 실존을 미래에도 보장해야 하는 무제약적 정언 명법이 왜 타당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이와 같이 기술의 모험은 가장 극단적인 실험을 통해 가장 극단적인 자각을 강요하는 것이다. 동시대적 철학이 실증주의적, 분석적이라는 이름 아래 그러한 윤리학의 정초를 포기하고 있는 것과는 반대로 여기에서는 그것을 시도하고자 하는 것이다. 새롭게 나타나고 있는 인간의 의무를 가치 주관주의를 넘어서서 존재에 정착시키기 위해 존재와 당위, 원인과 목적, 자연과 가치의 관계에 대한 전통적 질문을 존재론적으로 새롭게 전개하고자 한다. ”
『책임의 원칙 - 기술 시대의 생태학적 윤리』 6p, 지은이의 말, H. 요나스 지음, 이진우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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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bedo
“ 오늘의 책임을 미래 차원으로 확장함으로써 결론적 주제인 유토피아가 등장한다. 전세계를 포괄하고 있는 기술 진보의 동력은 그 자체에 유토피아주의를 함의하고 있다. 물론 이것은 계획되었다기보다는 경향적으로 그러하다. 전지구적 미래관을 가지고 윤리학의 하나인 마르크스주의는 기술과의 연합을 통해서 유토피아를 명백한 목표로 부상시켰다. 이러한 사실로 말미암아 유토피아적 이상을 상세하게 비판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이상은 태고적 인류의 꿈을 함축하고, 이 꿈을 하나의 사업으로 실행할 수 있는 수단을 기술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예전의 안일한 유토피아주의는 이제 오늘날 인류가 가지고 있는 가장 위험한 유혹이 되어 버렸다. 생태학적으로뿐만 아니라 인간학적으로 실패하고(전자는 증명될 수 있고, 후자는 철학적으로 해명될 수 있다) 있는 목표 설정의 오만성에 대해 책임의 원칙은 공포와 경외가 명령하는 보다 겸손한 과제를 대립시킨다. 즉 환경이 변화한다 해도 결코 없앨 수 없는 인간의 자유가 가지는 이중성 속에서 인간 세계와 인간 본질의 불가침성을 인간 권력의 침입으로부터 지키는 것이다. ”
『책임의 원칙 - 기술 시대의 생태학적 윤리』 p7-8, H. 요나스 지음, 이진우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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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bedo
“ 여기서 시도되고 있는 '기술 윤리 논고'는 독자뿐만 아니라 저자에게도 해당하는 엄격함으로 윤리의 필요 조건을 제시하고자 한다. 주제에 어느 정도 부합하고자 하는 사람은 솜방망이 같아서는 안 되고 강철과 같아야 한다. 천사의 편에 서서 죄악에 대항하고 번영을 찬성하며 몰락을 반대한다는 고백과 흠없는 의도, 선한 태도 등등의 솜방망이 같은 것은 오늘날 이루어지는 윤리적 반성에도 충분히 있다. 이 저서의 의도는 어디에서나 체계적이지 결코 설교적이 아니다. 그것이 시대적이건 아니면 반시대적이건간에 윤리적 태도에 관한 어떤 찬양도 논리적 사고 과정의 철학적 불충분성에 대한 변명이 될 수 없다. ”
『책임의 원칙 - 기술 시대의 생태학적 윤리』 p9, H. 요 나스 지음, 이진우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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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bedo
“ 종래의 모든 윤리학은...다음과 같은 전제 조건들을 공유하고 있다. (1)인간의 본성과 사물의 본성을 통해 주어진 인간의 상태는 그 근본 특성에 있어서 단연코 확정되어 있다. (2)인간 선은 이러한 토대를 근거로 별반 어려움 없이 분명하게 규정될 수 있다. (3)인간 행위와 인간 책임의 범위는 좁게 서술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전제 조건들이 더 이상 타당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또한 이런 사실이 우리가 처해 있는 도덕적 상황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를 반성해 보고자 하는 것이 앞으로의 우리 논의가 갖는 의도이다. ”
『책임의 원칙 - 기술 시대의 생태학적 윤리』 p22, H. 요나스 지음, 이진우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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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bedo
“ 지식은 이제까지 지식의 역할을 위해 요구되어 왔던 모든 것을 넘어서서 아주 절박한 의무가 된다. 그리고 지식은 우리 행위의 인과적 규모에 일치하는 크기를 가져야만 한다. 그러나 지식의 크기가 현실적으로 행위의 인과적 규모와 같은 수 없다는 사실, 즉 예견하는 지식은 우리의 행위에 권력을 제공하는 기술적 지식에 뒤처진다는 사실 그 자체는 윤리적 의미를 획득한다. 예견적 지식의 힘과 행위의 권력 사이의 간격은 새로운 윤리적 문제를 만들어 낸다. 그렇다면 무지의 인정은 지식 의무의 이면이 되고, 따라서 점차 필요해지는 우리의 과도한 권력에 대한 자기 통제를 지도해야만 하는 윤리의 한 부분이 된다. 전통적 윤리는 인간적 삶의 전지구적 조건과 종의 먼 미래와 실존을 고려할 필요가 없었다. 그렇지만 이러한 것들이 오늘날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한 마디로 말해 권리와 의무에 관한 새로운 견해를 요구하는 것이다. ”
『책임의 원칙 - 기술 시대의 생태학적 윤리』 p35, H. 요나스 지음, 이진우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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