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보르헤스 읽기] 『영원성의 역사』 2부 다시 읽어요

D-29
1. "케닝은 10세기에 유행했는데, '툴리르'라고 불린 익명의 음유 시인들이 사적인 목적을 지닌 시인인 '스칼드'에 의해 사라지고 있던 때였다. 일반적으로 케닝이라는 변칙이 쇠퇴했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강제적 판단은 옳고 그름에 대한 문제 제기가 아니라 결과에 상응하는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그 변칙이 직관적 문학에 대한 최초의 의도적 언어유희였음을 인정하는 것으로 만족하자." → "케닝은 서기 100년경에 유행했는데, '툴리르'라고 불린 익명의 음유 시인들이 사적인 목적을 지닌 시인인 '스칼드'에 의해 사라지고 있던 때였다. 케닝을 흔히 쇠퇴[의 징후]라고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이 우울한 견해는 그것이 타당하든 아니든 문제를 봉합하려는 것일 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으로서는 본능에 의해 지배되던 문학을 의도를 가지고 언어로써 향유하려고 했던 최초의 시도였음에 만족하자." (284쪽) [설명] 당시에는 케닝이라는 장치를 문학적 쇠퇴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었다는 것이 보르헤스의 불만입니다. 그렇게 하면 케닝이라는 현상의 본질을 보지 못하게 된다고 보르헤스는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보다는 케닝이 언어적 즐거움을 탐닉하는 최초의 사례로 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2. "그리스인의 왕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데, 콘스탄티노플의 통치자 중에 그리스인들의 왕이 있었으며 예수 그리스도가 그에 못지 않다는 쌩뚱맞은 이유 때문이다. (···) 이 복잡한 통사적 등식에는 하위 등식이 있는데, 예컨대 갈매기의 초지는 바다라는 의미다. 부분적인 연결고리가 풀렸으니 독자 여러분도 이 '기만적인' 시구의 전체적인 의미를 조금쯤은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 "'그리스인의 왕'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데, 이는 콘스탄티노플 황제를 가리키는 칭호 중 하나이며, 예수 그리스도도 그에 못지 않다는 다소 산만한 이유에서 그러하다. (···) 이 복잡한 구문 방정식들 중 첫 번째인 '갈매기의 초원의 힘쌘 들소'는 2차식인데, '갈매기의 초원'이 이미 바다를 가리키는 표현인 탓이다. 부분적인 연결고리가 풀렸으니 독자 여러분도 이 시구의 전체적인 의미를 조금쯤은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확실히 기대에 못 미치는 면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286쪽) 3. "케닝에서는 기능적 성질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케닝의 대상은 모양보다는 활용되는 방식에 의해 정의된다. 케닝은 대상에 생기를 불어넣는데, 대상이 살아 있는 것이어도 그 방식을 바꾸지 않는다. (···) 스툴루손 상이한 성질의 두 가지 열정, 즉 절도와 선인들의 교양을 충족하고자 했다." → "케닝에서는 기능적 특성이 지배적이다. 케닝은 형태보다는 용도로 대상을 정의한다. 그 대상을 활인화하는 경향이 있으며, 생명체가 대상일 때는 반대로 사물화하곤 한다. (···) 스툴루손은 서로 다른 두 가지 열정을 충족하고자 했다. 바로 절제, 그리고 선조들에 대한 숭배였다." (292쪽) 4. "선인들의 이야기를 존중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인이라면 자기의 신앙을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7세기 전이니 차별을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 "선조들의 이야기를 존중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인이라면 그 이야기에 대한 신앙은 내려놓을 필요가 있었다. 7세기 전의 견해라고 해서, 간과해서는 안 된다." (293쪽) 5. "스칼드는 이 같은 이미지(케닝)를 곧이곧대로 이용했다. 스칼드가 이룩한 혁신이라면 이런 이미지를 과도하게 쓰는 것이었다. 그들은 그 이미지를 남발하고 조합하여 아주 복합적인 상징을 만들어 냈다. 케닝은 세월에 따라 변해 갔다. (···) 이런 등식이 만들어진 건 영국이 아니라 아일랜드의 몫이었다." → "스칼드들은 이런 수사법을 정밀하게 구사했다. 그들이 이룩한 혁신이란, 그것들을 폭포수처럼 쏟아내고 서로 결합하여 더 복잡한 상징의 토대로 삼은 것이었다. 세월의 흐름이 여기에 가세했다고 볼 수 있다. (···) 이런 순간은 영국이 아닌 아이슬란드에서 일어났다." (302쪽) 6. "이러한 접합은 게르만 혈통과 그리스에 대한 독서로 형성됐을 것이다. (···) 이러한 접합은 영어와 독일어에 대한 향수 때문일 것이다." → "이러한 시도는 그들의 게르만 혈통에서, 그리고 그들이 그리스어 문학을 접한 데서 비롯했을 것이다. (···) 이러한 시도는 영어라는 언어와 독일어에 대한 향수 어린 이해에서 비롯했을 것이다." (303쪽) 7. "케닝을 비난하기에 앞서, 케닝을 합성어가 아닌 하나의 언어로 옮기면 심각할 정도로 무용함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 "케닝을 비난하기에 앞서, 합성어가 [비교적] 두드러지지 않는 언어로 옮길 때, 그 부적절함이 더욱 심화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303쪽) 8. "또한 술 솔라르 같은 문법적 기준에도 맞지 않는 시구도 있는데 키플링이 그에 해당한다. // 사막, 그곳에서 똥 먹은 캠프 연기가 동그랗게 감겼다 // 그 찢긴 돌고래, 그 징 고통스러운 바다" → "마찬가지로 우리의 술-솔라르가 제안한 문법적 권고가 받아들여지기 전까지는 다음과 같은 키플링의 시구들은 [스페인어로는] 불가능할 것이다. // 사막, 그곳에서 똥으로-키워진-자들의 캠프-연기가 피어오른다 // 돌고래에게-찢긴, 그 뱃종에-시달리는 바다" (304쪽) 9. "위 문장은 스페인어로는 모방은커녕 생각조차 할 수 없다. / 더 이상의 핑계는 필요치 않을 것 같다. 분명한 건 후대 스칼드가 앞서 본 부정확한 표현을 계속해서 익혔지만 그 표현이 도식적인 방식으로 청중에게 전달되었다기보다는 시구의 변화 속에서 이뤄졌다는 점이다. (···) 우리는 그 법칙, 즉 루고네스의 훌륭한 메타포에 맞서 케닝의 판관이 제시할 수 있는 정확한 차이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 분명한 것은 어느 날 그들이 놀라운 기질을 드러냈으며 그들의 보잘것없는 솜씨에도 화산의 불모지와 피오르드에 사는 붉은 사내들이 매료됐다는 것이다." → "위 문장은 스페인어로는 모방은커녕 생각조차 할 수 없다. / 그럼에도 케닝을 달리 변호해볼 여지가 남았다. 분명한 사실은, 이러한 부정확한 표현들이 스칼드의 견습생들에 의해 체계적으로 학습되었으나, 청중에게는 도식적으로가 아니라 시적인 역동성 속에서 전달되었다는 점이다. (···) 우리는 케닝의 법칙을 알지 못한다. 케닝의 판관이 루고네스의 훌륭한 메타포를 두고 정확히 어떤 이의를 제기할지 알지 못한다. (···) 분명한 사실은 케닝이 한때 경이로움을 불러일으키는 직분을 수행했으며, 그것이 대단히 부적절함에도 불구하고 사막의 불모지와 피오르드의 붉은 사내들을 매료시켰다는 점이다." (305쪽) 10. "내가 다시금 강조하는 그 원시적인 메타포에서 전사와 전투는 보이지 않는 층위에 있으며, 그 층위에서 유기적인 검들이 휘갈겨지고 닳아 없어진다. (···) 이는 변절자 브로디르가 배에 승선하는 장면인데, 이후 그는 전투 중 사망한다." → "내가 다시금 강조하는 이 원시적 메타포에서 전사와 전투는 보이지 않는 차원에서 결합하며, 이 차원 속에서 살아있는 칼들은 휘둘러지고, 서로 물어뜯고 증오한다. (···) 이러한 징조는 배교자 브로디르의 배에서 나타났는데, 훗날 그가 패배한 전투 직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306쪽) 11. ""행복한 왕이 절도 있는 자, 고상한 자, 유일무이한 자, 비통한 사자이자 청명한 달 같은 후계자를 남기고 죽었다 하지 말라." 이 표현이 게르만의 표현과 유사하고 우연찮게 동시대적이기에 월등한 가치가 있다고 할 순 없다. (···) 다음과 같은 말로 이 글을 정리하고자 한다. "견갑골의 다리"라는 표현은 아주 기묘하다. 하지만 사람의 팔이라는 표현보다 기묘하진 않다. 겨드랑이 쪽이 파인 조끼 밖으로 드러난 팔을 다리로, 실이 풀리듯이 기다랗게 오지(五指)까지 이어진 다리로 이해하는 것은 그 근본적인 기묘함을 직관한 것이다." → ""행복한 왕이 후계자를, 즉 절도 있는 자, 고상한 자, 유일무이한 자, 찢어발기는 사자이자 청명한 달과 같은 자를 남기고서 죽었다고 말하지 말자." 이 직유는 아마도 게르만인들과 동시대의 것이며, 그 가치가 월등하다고 할 순 없다. (···) 마지막으로 케닝을 옹호해 보려 한다. '견갑골의 다리'라는 표현은 아주 희귀하다. 하지만 사람의 팔이라는 표현도 그에 못지않게 희귀하다. 그것을 조끼의 겨드랑이 구멍에서 돌출된, 쓸모없는 다리로 상상해 보라. 그 다리는 끄트머리에 가서 고통스러울 정도로 기다란 다섯 개의 가지로 갈라진다. 이렇게 이해하는 것은 그 근본적인 기묘함을 직관한 것이다." (307쪽)
화제로 지정된 대화
[~케닝] 보르헤스는 생전 케닝에 대한 글을 적잖이 남겼고, 흥미롭게도 케닝에 매혹감을 느끼면서도 그 통속성에 피로함을 토로했습니다. 이 글에서도 마찬가지인데요, 보르헤스는 성공한 케닝과 실패한 케닝의 사례를 열거합니다. 먼저, 케닝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면 "boat를 wave traveler로 표현하는 따위의 완곡 대칭법"이라고 나옵니다. 하나의 대상을 2개 이상의 단어를 활용해서 표현하는 일종의 우회적 표현 기법인 것입니다(전투는 "검의 폭풍"으로, 바다는 "고래의 길"로 표현하는 식입니다). 보르헤스에 따르면, 케닝은 기원후 100년경에 유행했는데, 이 시기는 초기 북유럽 사회에서 활동했던 익명의 음유시인이자 이야기꾼인 툴리르(Thulir)가 쇠퇴함과 동시에 스칼드(skald)라는 시인이 등장한 때로, 고대 노르드어로 '스칼드'란 자기 이름을 내세우며 활동하는, 이를테면 오늘날의 작가나 시인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이들은 단순한 예술가라기보다는 왕실이나 귀족의 후원을 받으며 활동한 역사의 기록자로서, 왕과 영웅의 업적을 찬양하거나 역사적으로 커다란 사건들을 글로 남겼습니다. 케닝은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대신에 복합적인 은유를 활용합니다. 앞서 언급했듯, "검의 폭풍"이나 "고래의 길"처럼 하나의 사물을 그냥 표현하지 않고 두 가지 이상의 서로 다른 사물을 끌어들여서 표현합니다. 당시의 작시법은 두음법을 지키고 중간 운을 요하는 등 나름의 엄격함을 요구했는데, 케닝은 그러한 작시법 특유의 난점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고 합니다. 케닝은 종종 논리적 연결이 느슨하고 자의적이라는 단점을 노출하기는 했지만, 다양한 시어를 이질적으로 접촉시켜서 다양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보르헤스는 이러한 케닝의 의의가 어디까지나 시라는 장르에 한정된 것이기에 가능했음을 미리 짚어둡니다. 이를테면, "해적들의 달은 문장(紋章), 뱀은 창, 검의 이슬은 피, 매는 까마귀, 붉은 백조는 피 흘리는 모든 새, 붉은 백조의 살은 죽은 자, 늑대의 이빨을 가진 자들은 행복한 전사"라는 케닝을 받아들여서 시를 쓰는 것은 가능하지만, 이미 만들어진 시에서 케닝을 찾아서 다시 한 단어로 환원하면, 그 숨겨진 의미가 밝혀지는 것이 아니라 시가 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는 케닝이란 '언어를 유희하고자 했던 최초의 시도'라는 초반부 주장과도 연결됩니다. 보르헤스의 설명에 다르면, 케닝에서는 "기능적 특성이 지배적"입니다. 케닝은 형태보다는 용도로 대상을 정의하는데, 그 사물은 활인화하는 경향이 있고, 반대로 생명체는 사물화하곤 합니다. 이러한 예는 스노리 스툴루손이 쓴 ⟪산문 에다⟫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미 형식상의 과잉이라고 볼 수도 있는 케닝을 두고, 스노리는 형식적 절제와 전통 숭배라는 "서로 다른 두 가지 열정"을 추구하고자 했습니다. 보르헤스는 케닝을 스페인의 과식주의(Culteranismo)와 비교하면서, 케닝을 향한 매혹과 혐오를 동시에 드러냅니다. "과식주의가 박학한 정신의 광란이라면, 스노리가 코드화한 스타일은 모든 게르만 문학, 즉 합성어로 된 문학에 대한 전반적인 선호를 향한 극단적 표현, 즉 '레둑티오 아드 아브수르둠[귀류법]'에 가깝다."(300쪽) 보르헤스는 스칼들이 이러한 수사법을 정밀하게 구사했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스칼드가 이룬 혁신이란 "이러한 수사법을 폭포수처럼 쏟아내고 서로 결합해서 더 복잡한 상징의 토대로 삼은 것"(302쪽)입니다. 보르헤스는 비록 케닝이 복합어가 덜 발달한 스페인어와 같은 언어에서는 온전한 효과를 누리지 못하며, 심지어 "기지가 넘치는 경우가 별로 없으며 부적절하게 말을 지껄이는 것 같은 불편한 느낌"을 자아내지만, 그럼에도 케닝이 한때 경이로움을 자아내는 언어적 유희였음을 상기합니다. 케닝은 당대의 사람들로 하여금 "세계를 낯설게 느끼도록" 만드는 한 가지 수단이었다는 것입니다. 한편, 에세이 말미에서 보르헤스는 실패한 케닝과 성공한 케닝을 가름하는 나름의 기준을 제시합니다. 천일야화에 나오는 한 구절이 바로 그 예시인데요, 그 구절이 "의심스러운 정신 작용의 결과물이 아니라, 두 가지 직관이라는 정확하고 순간적인 진실"을 보여준다고 말합니다. 바로 '후계자'를 "찢어발기는 사자이자 청명한 달"로 묘사하는 것인데요, 이는 단순히 놀라운 어휘를 조합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존재하는 사물과의 유사성에 기반했기에 성공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논의는 바로 다음 에세이인 ⟨메타포⟩에서 좀더 예각화됩니다.
마지막으로 케닝을 옹호해 보려고 한다. “견갑골의 다리”라는 표현은 아주 희귀하다. 하지만 ‘사람의 팔’이라는 표현도 그에 못지않게 희귀하다. 그것을 조끼의 겨드랑이 구멍에서 돌출된 쓸모없는 다리로 상상해 보라. 그 다리는 끄트머리에 가서 고통스러울 만큼 긴 다섯 개의 가지로 갈라진다. 이렇게 이해하는 것은 그 근본적인 기묘함을 직관하는 것이다. 케닝은 그렇게 우리에게 놀라움을 선사하며 세계를 낯설게 느끼도록 한다.
영원성의 역사 307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박병규 외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메타포~] 앞서 ⟨케닝⟩과 이어지는 글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스노리 스툴루손의 '케닝'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수사학⟫ 3권에서 말한 '메타포'를 비교합니다. 마찬가지로 몇 가지 문장을 바꿔보겠습니다.
1. "시 속에 한데 어우러진 메타포는 즐거운 감탄을 자아낸다.(혹은 자아내게 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메타포를 쓸모없이 공들여 만들었다고 판단해선 안 된다." → "이러 메타포가 시구 엮여 전달될 때는(전달되었을 때는) 즐거움과 놀라움을 주었지만, 나중에는 그러한 메타포를 뒷받침할 감정이 없음을 깨닿고서는 수고스럽고 쓸모없다고 판단하게 된다." (312쪽) 2. "스노리가 엮은 완곡어법에도 새로운 메타포를 구상하는 모든 의도를 '레둑티오 아드 아브수르둠'으로 만드는 뭔가가 있는 것 같다." → "나는 스노리가 수집한 완곡어법에서, 새로운 메타포를 정교화하려는 모든 시도의 무의미함을 증명하는 귀류법 같은 것을 본다." (313쪽) 3. "미들턴 머리는 아날로지가 현실적이어야 하는데, 당시까지는 그렇게 인식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 "미들턴 머리는 메타포가 실제로 존재하는 아날로지에 기반해야 하며, 이전까지 발견되지 않았던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313쪽) 4. "스노리가 보존한 비유는 정신 작용의 산물로서의 아날로지가 아니라 어휘를 조합한 것이다." → "스노리가 보존한 메타포는 아날로지를 인식하는 과정이 아니라, 단어들을 조합하는 정신적 과정의 산물이다."(314쪽) 5. "노자의 ⟪도덕경⟫~" → "⟪역경(I King)⟫~" (314쪽) 6. "장미와 그녀는 장미와 같은 삶을 살았다네." → "그리고 장미여, 그녀는 장미가 사는 만큼 살았네." (318쪽) 7. "지금까지 꿈-죽음과 관련한 10가지 예와 여자-꽃에 관련한 9가지 예를 봤는데, 때로는 본질적으로 단일한 것의 차이가 있는 요소들보다 명쾌하지 않기도 하다." → "지금까지 꿈-죽음과 관련한 10가지 예와 여자-꽃에 관련한 9가지 예를 봤는데, 본질적인 공통점은 흐릿하고 차이점은 비교적 명확해 보인다." (319쪽) 8. "생각을 표현하는 이 비밀스러운 교감을 지시하거나 암시하는 방식은 사실상 무제한적이다. 메타포의 미덕과 결점은 말에 있다." → "이런 개념쌍의 비밀스러운 친근함을 나타내거나 암시하는 방식은 사실상 무제한적이다. 메타포의 미덕과 결점은 단어에 있다." (319쪽) 9. ""동쪽의 감미로운 사파이어 색채" (···) "사파이어로 된 평원에서 별을 뜯네."" → ""동방 청옥의 감미로운 색채" (···) "청옥 평원에서 별들이 풀을 뜯네."" (320쪽)
화제로 지정된 대화
[~메타포] 13세기의 역사가 스노리 스툴루손이 다시 등장합니다. 스노리는 다양한 메타포의 목록을 작성하였는데, 보르헤스의 평가에 따르면, 그러한 메타포는 놀라움을 주기기는 해도 "메타포를 뒷받침할 감정이 없음을 깨닿고서는 수고스럽고 쓸모없다고 판단하게" 됩니다. 이를테면 "붉은 백조"나 "피의 매"는 인상적인 이미지이긴 하나 그것은 아무것도 드러내거나 전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스노리가 수집한 어휘의 목록이란, 새로운 은유를 정교화하려는 일체의 시도가 무의미함을 증명하는 귀류법에 불과한 것입니다. 보르헤스는 아리스토텔레스를 인용하는데요, 그에 따르면 메타포는 "서로 다른 사물간의 유사성(analogy)에 대한 직관에서 비롯"합니다. 덧붙여, 미들턴 머리는 메타포가 '실제로 존재하는 사물간의 유사성'에 기반해야 하며, 이전까지는 발견되지 않은 것이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메타포는 실제로 존재하는 사물간의 유사성에 기반해야 한다는 이러한 견해에 비춰 볼 때, 스노리가 수집한 메타포는 단순히 어휘를 조합한 것이기에 아리스토텔레스가 규정한 메타포의 정의에 부합하지는 않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어서, 보르헤스는 오래된 책들에서 잠과 죽음을 연결짓는 메타포의 10가지 예시와 여자와 꽃을 연결짓는 9가지 예시를 살펴봅니다. 물론 이러한 예시들은 진부한 것들이고 제각기 개별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같은 개념적 뿌리에서 파생하였습니다. 보르헤스는 이 글의 말미에서 서구 문학의 최초 기념비적 작품인 ⟪호메로스⟫ 이후로 3000년이 흐르는 동안 수많은 메타포가 발견되고 기록되었다고 말합니다. 앞서 살펴본 잠-죽음의 메타포, 여자-꽃의 메타포가 이제는 진부해진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보르헤스는 그럼에도 메타포가 소진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으며, 메타포를 이루는 개념쌍은 앞으로도 무궁무진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과거에서 그 힌트를 얻어옵니다. 보르헤스는 단테의 "동방 청옥의 감미로운 색채(Dolce color d'oriental zaffiro)"라는 표현과 공고라의 "청옥의 평원에서 별들이 풀을 뜯네(En campos de zafiros pace estrellas)"라는 표현을 비교하면서, 단테의 시구에 손을 들어줍니다. 단테의 시구에서 '동방(oriental)'은 '청옥(zaffiro)'을 수식하면서도 동시에 단테가 묘사하려는 '동방의 하늘'을 직접적으로 가리키며, 실재하는 대상에서 출발하기에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메타포의 정의에 부합합니다. 반면, 공고라의 시구는 보르헤스에게 과장으로 여겨지는데, 그 이유인즉 공고라의 메타포에서는 서로 다른 실재하는 사물 간의 유사성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입니다('밤하늘-청옥의 평원', '별-소'는 현실적인 연결성이 떨어진다고 봤던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공고라의 표현은 새로운 통찰을 주기보다는 단순히 주의를 끌기 위한 수사적 장치로 전락했다는 것입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순환 이론~] 보르헤스가 니체의 영원회귀론을 살펴본 뒤 자기 나름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조망하는 글입니다. '니체'와 '보르헤스'라는 키워드만으로도 굉장한 흥미를 불러 일으키는 텍스트입니다. 각설하고, 이 에세이는 세 개의 글꼭지로 이뤄져 있습니다. 첫 번째 글꼭지에서는 게오르그 칸토어의 집합론을 경유하여, 니체의 영원회귀를 비판적으로 검토해봅니다. 두 번째 글꼭지에서 보르헤스는 다시 니체를 옹호하는 듯 보입니다. 다만, 니체의 영원회귀론 역시 오롯이 니체가 독창적으로 고안해낸 것은 아니며, 과거의 어떠한 사상적 배경에서 시작되었는지를 나름대로 탐구해봅니다. 나아가 니체가 회귀를 주장하면서 활용했던 수사적 전략(계시 특유의 1인칭 기법)의 효용을 살펴보고, 니체가 어떻게 우리의 역사관 안에 회귀를 들여놓았는지를 짚어봅니다. 세 번째 글꼭지에서 보르헤스는 다시 영원회귀에 내재한 철학적 오류를 자세히 살펴봅니다. 요약하면, 유한한 것들이 무한한 시간 속에서 펼쳐진다는 니체의 전체 자체가 그릇된 것이며, 이는 시간의 무한함을 인식하지 못하는 인간된 인식의 한계를 드러낼 뿐이라는 겁니다. 나아가 세계가 무한히 순환된다면, 첫째 순환과 수백번째 순환이 다르다는 사실을 우리가 어떻게 알며, 그것을 아는 것이 우리에게 무슨 소용이 있는지 의문을 제기합니다. 다시 한번 느끼는 것이지만, 수학과 철학과 역사와 문학을 오가는 보르헤스의 솜씨는 놀랍습니다. 고작 삼십대 중반의 나이에 이 정도로 다양한 분야를 오가면서 한 편의 글을 엮어낼 수 있었다는 것이요. 보르헤스는 훗날 단편소설로 세계적인 유명세를 얻었지만, 그 유명세 이전에 이미 작가로서 상당한 수준에 이르러 있었음을 우리는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보르헤스가 작가로서 지녔던 몸집에 비하면, 나중에 그가 얻은 유명세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한줌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영원 회귀의 관점에서 말하자면, 보르헤스는 생전 무명이었더라도 무한한 시간 속에서 제게 꼭 필요한 독자의 숫자를 확보하지 않았을까요. 이런 상상은 즐겁습니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몇 가지 문장을 바꿔보겠습니다.
[첫 번째 글꼭지] 1. "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원자의 수는 헤아릴 수는 없지만 유한하며, 오직 유한한 수(이 또한 헤아릴 수 없지만)의 순열로서 가능하다. 무한한 시간 속에서 가능한 순열의 수가 한정적이라면 세계는 반복된다." → "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원자의 수는 헤아릴 수는 없지만 유한하며, 오직 유한한 수(이 또한 헤아릴 수 없지만)의 순열만가능하다. 무한한 시간 속에서 가능한 모든 순열은 반드시 실현되며, 우주는 반복되어야 한다." (321쪽) 2. "반면 러더퍼드는 태양계의 이미지처럼 원자가 원자핵과 원자보다 10만 배나 작은 회전 전자로 이뤄져 있다고 주장했다. (···) 하나 극소 입자가 그런 다양성을 갖는다면 우주의 불변성은 전혀 신뢰할 수 없다." → "반면 러더퍼드는 원자를 정의하면서 마치 태양계의 모형처럼 중심핵, 그리고 원자 전체보다 10만 배 작은 스핀하는 전자로 이뤄져 있다고 했다. (···) 거의 무한소에 가까운 한 입자가 그런 다양성을 갖는다면, 우주가 단조롭다는 견해는 전혀 신뢰할 수 없다." (322쪽) 3. "2그램의 수소를 얻는 데는 수천조가 넘는(···)" → "2그램의 수소를 얻는 데는 10^24[백경]가 넘는(···)" (322쪽) 4. "엄청난 수를 고통없이 순수하게 낭비하는 일은 과잉에 대한 독특한 즐거움을 준다. 그렇지만 회귀는 여전히 어느 정도 영원하다. 물론 그 시기가 멀지만 말이다." → "이 거대한 수를 고통없이 순수하게 낭비하는 행위에는 모든 과잉에서 오는 특유의 즐거움이 분명히 있지만, 그러에도 회귀는 다소간 영원한 것으로 남아 있다. 비록 그것이 먼 미래의 일일지라도." (323쪽) 5. "그에게 연산은 두 가지 급수의 비교와 다름없었다." → "그에게 계산이란 [단순한 숫자를 세는 게 아니라] 두 집합 사이의 일대일 대응관계를 파악하는 것이었다." (323쪽) 6. "여기에서 그 수는 불확정적이다. 그 수가 무한한 다른 집합도 있다. 자연수의 집합은 무한하다. 하지만 짝수로도 홀수로도 나타낼 수 있다." → "여기에서 그 숫자는 불확정적이다. 이를테면, 원소의 수가 무한한 다른 집합이 가능하다. 자연수의 집합은 무한하지만 짝수와 홀수의 개수는 동일함을 보일 수도 있다." (324쪽) 6-1. "1에 2가 상응(···)" → 통상 "상응"이 아니라 "대응"이라고 표현합니다. 이하 증명 과정에서 동일합니다. 7. "이러한 증명은 무의미할 정도로 당연하다. 하지만 이는 다음과 같이 무한한 수만큼이나 3018의 배수가 있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 수에서 3018과 그 배수를 제외하지 않고 말이다." → "이 증명은 자명하며 사소해 보이나, 다음처럼 3018의 배수들이 모든 수의 개수만큼 존재한다는 증명으로 이어진다. 모든 수의 개수에서 3018과 그 배수를 제외하지 않더라도 그러하다." (324쪽) 8. "이러한 전개를 수용하면, 하나의 무한한 축적은 ~ 그건 마치 크기에 따라 쪼개진 수의 연쇄와 같다." → "이런 사실들을 탁월하게 인식함으로써, 무한집합이란⏤예컨대 자연수의 집합⏤그 구성 원소들이 다시 무한수열을 형성할 수 있는 집합임을 정식화할 수 있게 되었다. (모호함을 피해 엄밀히 정의하자면, 무한집합은 임의의 부분집합과 동등한 크기를 가질 수 있는 집합이다.) 이러한 숫자에 관한 고차원의 영역에서, 부분은 전체보다 결코 작지 않다. 즉, 우주 전체에 존재하는 점의 개수는 1미터 구간의 점의 개수와 동일하며, 1데미시터 구간이나 가장 먼 항성 궤도의 점의 개수와도 동일하다. 자연수의 수열은 잘 정렬되어 있다. 각 항은 연속적인 순서를 따르며, 28은 29 바로 앞에, 27 바로 뒤에 위치한다. 반면 공간의 점들의 수열은 이처럼 정렬될 수 없다. 어떠한 점도 직접적으로 선행하거나 후행하는 점을 가지지 않는다. 이는 크기 순으로 배열된 분수의 수열과 유사하다." (324-325쪽) 9. "만약 세계가 무한한 항의 수로 구성된다면, 무한히 조합되는 수가 가능하다. 그러면 회귀의 필연성은 깨지고 그 가능성은 0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 "만약 우주가 무한한 수의 요소로 구성된다면, 엄밀히 말해 무한한 조합이 가능하므로 영원회귀의 필연성은 사라진다. 단순한 가능성에 그칠 뿐이며, 그 확률값은 0으로 계산된다." (325쪽)
[두 번째 글꼭지] 1. "우리 이미 과거에 그 자리에 있지 않았던가? 그리고 우리는 다시금 그 긴 길을, 저 길고 음산한 길을 영원히 되돌아가지 않겠는가?" → "그리고 우리는 이 긴 길에서, 이 길고 음산한 길에서 되돌아오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영원히 반복되는 것이 아닐까?" (326쪽) 2. "~ 그리스인에게 일정한 유형이 없는 명사는 있을 수 없었다." → "~왜냐면 그리스인들은 모든 명사 개념에 물질성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326쪽) 3. "하지만 아우구스티누스의 분노를 두 가지 주제로 나눠 보자면, 하나는 그 순환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신(Logos)이 십자가에 묶인 곡예사처럼 끝없이 곡예를 하다 죽을 거라는 조롱의 내용이다. (···) 신이 만물의 무한한 순환을 배우며 적응해야 한다고 단정했다." → "하지만 아우구스티누스의 분노를 두 가지 주제로 나눠 보자면, 하나는 그 순환이 외견상 쓸모없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스토아 학파의 신인 로고스(Loges)가 끝없는 공연 속에서 곡예사처럼 십자가에 매달려 죽는다는 조롱의 내용이다. (···) 세계의 영원한 순환을 통해서 세계를 배우고, 세계에 익숙해진다고 주장했다." (327쪽) 4. "존 스튜어트 밀은 인과율을 다룬 ⟪논리학⟫의 한 장에서 역사의 주기적 반복이 (진리는 아니지만) 납득할 만하다고 주장하면서 베르길리우스의 ~" → "존 스튜어트 밀은 인과율을 다룬 ⟪논리학⟫의 한 장에서 역사의 주기적 반복이 (진리는 아니지만) 개념적으로 상상이 가능하지만 실제로는 사실이 아니라고 선언하고 ~" (328쪽) 5. ""불멸의 순간에 나는 영원 회귀를 창안했다. 그 순간이 있어서 나는 회귀를 버텨 내고 있다." 그렇지만 나는 가경할 무지나 영감과 기억 사이의 인간적인, 진저리 나게 인간적인 혼동의 범죄 또는 오만이라는 범죄를 상정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나의 주장은~" → ""내가 영원 회귀를 잉태했던 그 순간은 불멸하다. 그 순간이 있기에 나는 회귀를 견디고 있다." 그러나 나는 우리가 이를 두고 가경할 무지라고 하거나, 영감과 기억 사이의 너무나 인간적인 혼란이라고 하거나, 허영의 죄질이 있다고 상정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내가 생각하는 관건은~" (329쪽) 6. "나의 양이라는 짐승의 살에 비유할 수 있다면, 인간의 정신을 인간의 정신적 상태에 비유한다고 하여 누가 제지하겠는가? (···) 미겔 데 우나무노가 사상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일에 관해 이미 언급한 바 있으니, ~" → "만일 내 인간된 육신이 양이라는 짐승의 살을 동화한 것이라고 한다면, 인간의 정신이 다른 인간의 정신 상태를 동화하는 것을 누가 제지할 수 있겠는가? 미겔 데 우나무노가 이미 이러한 사상의 입양 행위에 관하여 몇 페이지를 할애한 바 있으므로, ~"(330쪽) 7. "니체가 불멸을 하나의 의무로 간주하자 ~ 니체는 영원회귀의 순환으로 그를 맞서 그를 내쳤다." → "니체는 불멸을 하나의 의무로서 제안하고, 거기에 불면증이라는 지독한 광휘를 부여한다. (로버트 버턴의 고서에서 내가 읽기로) "잠을 자지 않는 것은, 우울증 환자를 십자가에 매다는 것이다." 그리고 니체가 이러한 십자가형을 겪었으며 쓰디쓴 클로랄수화물[수면제]에서 구원을 찾아야만 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니체는 월트 휘트먼이 되고자 했으며 자신의 운명을 철저히 사랑했다. 그는 영웅적인 방법론을 따랐다. 영원한 반복이라는 견디기 힘든 이 정신적 악몽에서 환희의 순간을 이끌어내려 했다. 그는 우주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개념을 찾아내어, 그것을 인간의 기쁨을 위해 제시했다. 안일한 낙관주의자는 종종 자신을 니체주의자라고 생각하지만, 니체는 그를 영원 회귀의 원환과 마주하게 하여 그를 입 밖으로 뱉어낸다." (330-331쪽) 8. "마우트너는 영원 회귀의 논리에 도덕적 영향력(실제적 영향력)을 ~ 영원한 형벌의 가능성이 이루지 못한 게 있던가!" → "마우트너는 영원 회귀 이론에 도덕적인 것, 즉 실용적 영향력을 부여하는 것은 그 이론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왜냐면 이는 무언가가 다른 방식으로 일어날 수 있다고 상상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니체라면, 영원 회귀를 정식화하는 것, 그 광범위한 도덕적(즉 실용적) 영향력, 그리고 마우트너의 심오한 고찰에 대한 반박까지도 모두 세계사의 필연적인 순간들이며, 원자적 동요의 산물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따라서 니체는 이미 쓴 것을 그대로 반복할 것이다. "순환적 반복이라는 교리가 개연적이거나 가능성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단순한 가능성의 이미지조차 우리를 몸서리치게 하고, 재건하게 할 수 있다." 영원한 형벌의 가능성이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쳐왔는가!" (331-332쪽)
[세 번째 글꼭지] 1. "그들은 기억이 변하여 그 논리를 부정할 수 있다는 것도, 시간이 그 기억을 (개인이 자신의 운명을 내다보고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 갈 머나먼 주기까지) 완성해 갈 것이라는 것도 망각하고 있다. 어쨌든 니체는 회귀에 대한 기억의 확신에 관해선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 "그들은 기억이 회귀 이론을 부정하는 새로운 요소를 수반한다는 것, 그리고 시간이 그 기억을 (개인이 자신의 운명을 내다보고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 갈 머나먼 주기까지) 완성해 갈 것이라는 것도 망각하고 있다. 한편, 니체가 기억을 통해서 회귀를 입증하려고 한 대목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322쪽) 2. "또한 주지할 사실은 니체가 원자의 무한성에 관해서도 말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 그는 자신의 논리를 정립하기 위해 한정적 힘을 거론하는데, 이 한정적 힘은 무한한 시간 속에서 전개되지만 수는 무제한적으로 변화하지 않는다. 니체의 작업은 충실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333쪽) → "또한 주지할 사실은 니체가 원자의 유한성에 관해서도 말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 니체는 자신의 논리를 입증하기 위해 제한된 힘을 거론하는데, 이 제한된 힘은 무한한 시간 속에서 전개되지만 무한한 숫자의 변형은 불가능하다. 니체의 작업은 교묘하게 이뤄졌다." (333쪽) 3. "예컨대 그는 우주적 힘의 균형은 불가능하다고 하는데,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이전의 영원에서 우주의 역사는 무한히 발생했다." → "예컨대 그는 우주적 힘의 균형은 불가능하다고 하는데, 만약 가능했더라면 이전의 영원에서 우주의 역사는 무한히 발생했다. (333쪽) 4. "하지만 그 이전의 영원(또는 신학자들이 말한 '과거의 무한한 시간')은 시간의 원리를 인식할 수 없다는 우리의 선천전 무능력을 의미하는 것일 뿐이다. 우리는 공간에 대해서도 그와 같은 무능력의 병에 걸려 있다. 따라서 이전의 영원을 불러내는 것은 오른쪽의 무한, 즉 미래의 무한을 불러내는 것만큼 결정적이다." → "하지만 그 이전의 영원(또는 신학자들이 말한 '과거의 무한한 시간')은 시간의 시작을 개념화할 수 없다는 우리의 선천전 무능력을 의미하는 것일 뿐이다. 우리는 공간과 관련하여 이러한 무능력으로 고통받고 있기에, 이전의 영원을 불러내는 일은 오른쪽의 무한, 즉 미래의 무한을 불러내는 일 만큼이나 결정적이다." (333쪽) 5. "열역학의 두 번째 법칙은 에너지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존재하고 이 과정은 돌이킬 수 없다고 단언한다. 색과 빛은 에너지의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 검은 표면에 빛을 투사하면 색으로 변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반면에 색은 다시 빛의 형태로 돌아가지 못한다. 어딘가 무심하고 무료한 것 같은 이런 확신은 영원 회귀의 "순환적 미로"를 파기한다." → "열역학 제2법칙은 에너지가 비가역적인 과정을 따른다고 말한다. 열과 빛은 에너지의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 검은 표면에 빛을 투사하면 열로 변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반면에 열은 다시 빛의 형태로 돌아가지 못한다. 어딘가 무해하고 무미건조하기까지 한 이런 사실을 확인하는 것은 영원 회귀의 "순환적 미로"를 파기한다." (334쪽) 6. "열역학의 첫 번째 법칙은 우주의 에너지가 항구적이라는 것이다. (···) 서로 다른 온도가 동일해질 때, 다른 물체에 대한 한 물체의 모든 행위가 제외(혹은 벌충)될 때, 세계는 원자의 우발적 집합이 될 것이다. (···) 상호 교환의 힘으로 전 우주가 균형적 상태에 이르면 미지근해지고 죽게 될 것이다." → "열역학의 첫 번째 법칙은 우주의 에너지가 보존된다고 말한다. (···) 엔트로피가 최대치에 도달하면, 온도가 균등해지고 한 물체가 다른 물체에 미치는 작용이 상쇄되거나 벌충되는데, 이때 세계는 원자들의 우발적인 집합이 될 것이다. (···) 끊임없는 상호 교환을 통해 전 우주가 균형적 상태에 이르면 미지근해지고 죽게 될 것이다." (334쪽) 7. "빛은 색으로 사라지고 있으며 우주는 매 순간 알아볼 수 없게 변하고 있다. 또한 훨씬 옅어지고 있다." → "빛은 점차 열로 손실되어 가며, 우주는 매 분마다 보이지 않게 된다. 또한 더욱 가벼워진다." (334쪽) 8. 마지막 단락. → "마지막으로, 형이상학적 관점에서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차라투스트라의 논리를 수용하고도 나는 어떻게 동일한 두 과정이 하나로 통합되지 않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하나의 연속성 안에서 일어난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한가? 아무도 그것을 입중해주지 않는데도 말이다. 그 숫자를 셈해주는 특별한 대천사가 없다면, 우리가 수열의 첫 항이나 322^2000째 항이 아닌 13514번째 순환 주기를 통과하고 있다는 사실이 대관절 무슨 의미란 말인가? 이는 실용적 관점에서 아무 의미도 없는데, 사상가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다. 지성적 관점에서도 아무 의미가 없으며, 이는 심각한 문제다." (335쪽)
화제로 지정된 대화
[~순환 이론] 첫 번째 글꼭지에서 보르헤스는 무한을 파고든 수학자인 게오르그 칸토어의 증명을 빌려, 니체의 영원 회귀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합니다. 간단히 말하면, 칸토어는 모든 무한은 크기가 똑같은지, 아니면 어떤 무한은 다른 무한보다 더 큰지를 궁금해 하고 증명하고자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업적을 이루었는데요, 대표적으로 칸토어는 (유한집합과 달리) '무한집합은 자신의 어떠한 부분 집합과도 동일한 집합'임을 알아냈습니다. 이것이 왜 흥미롭냐면 무한집합에서 부분은 전체와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러한 칸토어의 발견에 기대어, 보르헤스는 일찍이 니체가 주장한 영원 회귀의 논리적 취약성을 간파합니다. 니체는 영원 회귀를 말하면서 중요한 전제를 세웠습니다. 바로 세계를 이루는 원자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을지언정 유한하며, 그리하여 세계는 거대할지언정 유한한 수의 조합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무한한 시간 속에서는 가능한 모든 순열이 실현되기에, 우주는 반복된다는 것입니다. 핵심은 유한한 세계의 모든 가능성이 무한한 시간 속에서 무한히 반복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칸토어의 발견은 이러한 영원 회귀에 배치될 가능성을 품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세계란, 자연수의 수열과 달리, 선행하거나 후행하는 점을 가지지 않는 공간상에 펼쳐져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숫자에 관한 고차원의 영역에서, 부분은 전체보다 결코 작지 않다"라는 관점에서 보면, 세계는 유한한 사물로 이뤄져 있지만 본디 무한한 요소로 채워질 수 있습니다(이는 시간의 무한함과 무관하게 무한합니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도드라집니다. 만일 세계가 무한한 수의 항으로 구성될 수 있다면, 무한한 수의 조합이 가능하며, 우주가 정확히 똑같은 형태로 반복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해지기 때문입니다. 보르헤스는 이렇게 적습니다. “[칸토어의 집합론에 따라] 만일 우주가 무한한 수의 요소로 구성된다면, 엄밀히 말해 무한한 조합이 가능하므로 영원 회귀의 필연성은 사라진다. 남는 것은 단순한 가능성뿐이며, 그 확률값은 0으로 계산된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예시를 들어보겠습니다. 정확하진 않을 수 있습니다. 육면체의 주사위의 세계는 누가 보더라도 유한합니다. 주사위는 육면체의 구조와 각각에 쓰인 1부터 6까지의 유한한 숫자로 구성됩니다. 니체의 가설대로 무한한 시간 속에서 주사위가 무한히 던져진다고 생각해봅시다. 보르헤스의 주장은 주사위가 무한히 던져진다고 해도 특정 순열(1-2-3-4-5-6-1-2-3-······)이 반복된다고 말할 근거는 희박합니다. 왜냐하면 무한한 조합 속에서 그 한 순열이 반복될 가능성은 0으로 수렴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니체의 영원 회귀는 이후 칸토어가 정립한 집합론의 세계와 양립할 수 없습니다.
두 번째 글꼭지에서, 보르헤스는 니체가 1881년 8월 실바플라나 호수의 숲길을 산책하면서 문득 영원 회귀를 착상한 순간을 설명합니다. 분명 영원 회귀는 니체가 고안한 것이지만, 오롯이 니체의 사상적 결과물이라고만은 말할 수 없고 유구한 내력을 지닙니다. 모든 명사에 물질 개념을 부여했던, 저 그리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주랑학파라고도 불리웠던 스토아학파는 만물회복설(apokatastasis)을 말하며, 이미 니체에 앞서 '순환'을 언급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이후 아우구스투스는 ⟪신국론⟫에서 순환을 혐오스러운 교리로 낙인 찍고, 스토아학파와 피타고라스학파가 제시한 원환의 미로를 타파할 수단이자 '곧은 길'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제시합니다. 보르헤스는 헬레니스트였던 니체가 이러한 논박 과정을 몰랐을리는 없다고 단정하면서, 니체가 활용한 계시적 1인칭의 기법을 탐구합니다. 누구보다 뛰어난 헬레니스트였던 니체가 굳이 박식하게 저자를 인용하면서 따옴표를 쓰는 방식을 채택하지 않고 계시적 1인칭을 내세운 것은 수사적 효과였다는 것입니다. 보르헤스가 보기에, 니체의 영원 회귀란 자신의 운명을 긍정하고 사랑하는 한 가지 수단이었습니다. 니체는 적습니다. “머나먼 행복과 은혜와 축복을 갈망할 게 아니라 우리가 다시 살기를 바라도록, 그리하여 영원히 그럴 수 있도록 살아야 한다.” 그러나 마우트너는 니체의 영원 회귀에 '도덕적인 것', 즉 실용적 영향력이 끼어들 틈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우리가 회귀의 도덕적 영향력을 가정하는 순간 도래할 미래를 미리 생각하고 지금의 행동을 조정하는 것이기에 "무언가가 다른 방식으로 일어날 수 있다고 상상하는 것"이며, 결과적으로 영원 회귀는 깨어지게 된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니체라면 마우트너의 비판 자체도 영원 회귀의 일부로 여겼으리라고, 보르헤스는 추측합니다. 왜냐면 영원 회귀에서 중요한 것은 '확실성'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니체는 세계가 반복될, 그 일말의 '가능성'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썼습니다(“순환적 반복이라는 교리가 개연적이거나 가능성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단순한 가능성의 이미지조차 우리를 몸서리치게 하고 우리를 재건할 수 있게 한다. 영원한 형벌의 가능성이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던가!”). 흥미롭게도 이 대목에서 보르헤스는 니체에 대한 자세를 고쳐 잡는 듯합니다. 분명 보르헤스는 영원 회귀가 단순한 형이상학적 이론이 아니라 삶을 변화시키는 실천적 개념이자, 그 비판까지도 포용하는 철학의 체계였다는 것을 일부 긍정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세 번째 글꼭지에서 보르헤스는 다시 영원 회귀를 비판적으로 살펴봅니다. 먼저, '기억'을 통해서 영원 회귀를 논박합니다. 보르헤스는 흔히들 느끼는 '데자뷰 현상이 영원 회귀를 입증하는 한 사례'라는 주장을 검토하며 시작합니다. 보르헤스는 단호하게 데자뷰 현상이 영원 회귀를 입증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만일 어떤 이가 이전의 순환된 사건을 기억한다면, 그러한 기억 자체가 이미 순환에 없었던 '새로운 요소'가 되며, 이 없던 새로움이야말로 모든 순환이 완전히 동일하게 반복된다는 영원 회귀의 핵심 전제를 부정하게 됩니다. 그뿐 아니라,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개인이 자신의 운명을 내다보고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 갈" 가능성까지 생겨나게 됩니다. 이는 데자뷰 현상이 영원 회귀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아니며, 외려 반박하는 증거임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보르헤스는 '기억'이 영원 회귀론의 내적 모순을 드러내고 있음을 날카롭게 간파합니다("한편, 니체가 기억을 통해서 회귀를 입증하려고 한 대목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다음으로, '원자'를 통해서 논박합니다. 보르헤스는 니체가 원자론 자체를 부정한 채, 영원회귀를 뒷받침하려고 '한정된 힘'을 언급했음을 지적합니다. 니체에게 원자란 산술적 이해를 위해서 고안된 모델에 불과할 뿐이라는 겁니다. 그 대신에 제시한 '한정된 힘' 안에서, 니체는 무한한 것은 시간일 뿐 변화 자체는 무한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보르헤스는 니체가 '이전의 영원/선행 영원(Eternidad Anterior)에 호소한 것이 논리적으로 모순됨을 간파합니다. '시간'을 하나의 연장선으로 상상할 때, 왼쪽으로 향하는 것이 '이전의 영원'으로 향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긍정하는 순간, 미래로 나아가는 '오른쪽의 무한'도 긍정해야 하는데, 보르헤스가 보기에 이 모델을 상정하는 것은 "시간의 시작을 개념화할 수 없다는 우리의 선천적인 무능력"을 반영할 뿐입니다. 나아가 시간의 무한함을 직관하는 것은 공간의 무한함을 긍정하는 것인데, '이전의 영원'은 현실에서 흘러가는 시간과는 무관합니다. 따라서 거듭해서 앞선 근거로 거슬러가는 무한퇴행을 막기 위해서라도 아우구스티누스는 창조가 '시간 속에서'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창조 자체가 '시간과 함께' 일어났다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보르헤스는 형이상학적 관점에서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영원 회귀를 수용하더라도 하나의 회귀와 또 다른 회귀의 차이를 누구도 입증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보르헤스는 말미에 이렇게 적습니다.
그 숫자를 셈해주는 특별한 대천사가 없다면, 우리가 수열의 첫 항이나 322^2000째 항이 아닌, 13514번째 순환 주기를 통과하고 있다는 사실이 대관절 무슨 의미란 말인가? 이는 실용적 관점에서 아무 의미도 없는데, 사상가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다. 지성적 관점에서도 아무 의미가 없으며, 이는 심각한 문제다.
영원성의 역사 335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박병규 외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순환적 시간~] 보르헤스는 1934년에 발표한 ⟨순환 이론⟩에서 니체의 영원 회귀를 수학적으로든 철학적으로든 반박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7년이 더 흐른 1941년에 이 글을 쓰면서, 보르헤스는 "영원토록 영원 회귀로 돌아가곤 한다"면서 니체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보르헤스는 이 글에서 역사적으로 영원 회귀를 해석하는 세 가지 방식을 다시금 살펴봅니다. 마찬가지로 몇 가지 문장을 바꿔보겠습니다.
1. "이 글에서 나는 (몇 가지 역사적 해설을 덧붙이면서) 영원 회귀의 세 가지 기본적 논리를 밝히고자 한다. / 첫 번째는 플라톤이다." → "이 글에서 나는 (몇 가지 역사적 해설을 덧붙이면서) 영원 회귀의 세 가지 기본적 해석 방식을 정의하고자 한다. / 첫 번째 방식은 플라톤의 것으로 여겨져 왔다." (337쪽) 2. "시간에 대한 플라톤의 논리는 그러했다. (···)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일반적으로 발생하는 것이지 (플라톤이 추정하듯) 개별적으로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 "시간이 흐르면서 이 추측은 플라톤이 제시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일반적인 형태로 발생하는 것이지 (플라톤이 추정하듯) 세부적인 특수성까지 반복되는 것은 아니다." (338쪽) 3. "대수학의 원리가 그를 정당화 해주는데, n 수의 대상은 (르 봉의 가설에서 원자, 니체의 가설에서 힘, 코뮌주의자 블랑키의 가설에서는 단순한 육체들) 무한한 순열의 수가 될 수 없다." → "대수학의 원리가 그를 정당화 해주는데, n개의 대상은 (르 봉의 가설에서 원자, 니체의 가설에서 힘, 코뮌주의자 블랑키의 가설에서는 원소) 무한한 수의 순열을 생성할 수 없다." 4. "에피쿠로스가 말한 무한한 물질이 아니라 한정적 물질을 상상해 보자. 한정적 입자의 수는 무한한 이항의 여지가 없는 반면, 영원한 지속성 안에서는 실행 가능한 모든 질서와 배치가 무한하게 발생한다." → "에피쿠로스처럼 물질이 무한하다고 가정하지 말고, 유한하다고 가정해 보자. 유한한 수의 입자들은 무한한 배열 가능성을 가질 수 없다. 영원한 시간 속에서 모든 가능한 순서와 배치는 무한한 횟수로 발생할 것이다." (340쪽) 5. "그 가정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후행하는 상태가 이전 상태와 정확히 동일하다는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하나의 상태가 두 번 발생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 그가 출발한 지점과 도착한 지점이 서로 다른 공간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아주 유사하기에 동일한 공간이라고 할 것이다. 역사가 순환적이라는 가정으로 이런 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특정 상황에 대한 모든 동시대적 상황의 총체를 구성해 보면, 경우에 따라서 그 모든 총체가 제 자신에 선행한다." → "이 가설은 어떻게 정식화될 수 있을까? 우리는 이후의 상태가 이전의 상태와 순번상 동일하다고 말해야 한다. 우리는 그 상태가 두 번 발생했다고 말할 수 없다. (···) 그는 출발점과 도착점이, 서로 다르지만 매우 유사한 두 장소라고 말하지 않고, 같은 장소라고 말한다. 역사가 순환적이라는 가정도 다음처럼 이해할 수 있다. 특정 상황과 동시에 존재하는 모든 상황의 집합을 구성해 보자. 어떤 경우에는 이 전체 집합이 시간상 자기 자신에 선행한다." (340쪽) 6. "그 기간이 길든 짧든 마찬가지이다." → "가장 긴 기간과 가장 짧은 기간은 동일하다." (343쪽) 7. "과거와 미래는 이성의 원리에 구속된 의식의 속박에 의해 개념으로서만 존재할 수 있다." → " 과거와 미래는 개념 속에서만, 그리고 이성의 원리에 따라 작동하는 우리 의식의 연속적인 흐름을 통해서만 존재한다." (344쪽)
화제로 지정된 대화
[~순환적 시간] 첫 번째는 이제껏 플라톤의 것으로 간주됐던 해석 방식으로, "행성의 주기가 순환적이라면 우주의 역사도 그와 같을 것"이라는 점성술에 바탕합니다. 유의해야 할 점은 플라톤의 해(Año de Platón/Plato's year)가 끝날 때마다 ‘운명’이 필연적으로 순환한다는 것입니다. 보르헤스는 자유론자였던 바니니의 글을 인용하면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 속에서 운명이 "일반적인 형태로 발생하는 것이지 (플라톤의 추정처럼) 세부적인 특수성까지 반복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지만, 플라톤의 해는 비교적 엄격하게 운명을 순환시킵니다. 두 번째는 니체의 방식입니다. 앞서 에세이에서도 살펴봤듯, 유한한 원소가 무한한 시간 속에서 유한한 순열을 반복합니다. 말미에서 보르헤스는 러셀이 제시한 엄격한 가설, "동일한 보편적 역사의 항구적 연쇄"를 보여줍니다. 여기서 역사는 완벽히 동일하게 반복됩니다. 역사의 순환 속에서 이전 상태와 이후 상태는 유사한 것이 아니며, 전과 후는 ‘순번상으로(numéricamente)’ 동일합니다. 따라서 한 상태가 두 번 발생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 러셀이 제기한 가설의 핵심입니다. 이 해석에서 시간은 완벽히 순환합니다. 순환적 시간은 과거-현재-미래가 연대기순으로 펼쳐지는 선형적인 시간관과 다르게 흘러갑니다. 순환적 시간관에서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삼각형을 그리며 빙글빙글 도는 모델을 상상해야 합니다. '···과거-현재-미래-과거-현재-미래-···'처럼 순환합니다. 이때 미래는 과거로 굽어지게 되는데, 이 순간 '현재'는 과거 뿐만 아니라 미래에도 앞서는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이것이 바로 일찍이 러셀이 제시한 "동일한 보편적 역사의 항구적 연쇄"가 보여주는 모델입니다(“역사가 순환적이라는 가정도 다음처럼 이해할 수 있다. 특정 상황과 동시에 존재하는 모든 상황의 집합을 구성해 보자. 어떤 경우에는 이 전체 집합이 시간상 자기 자신에 선행한다.”⏤340쪽). 이런 사고방식을 끝까지 밀어붙이면, 우리는 연대기순의 시간관에 근거한 비평이 아닌 순환적인 시간관에 근거한 급진적인 비평론을, 피에르 바야르의 ⟪예상표절⟫ 같은 책을 맞닥뜨리게 됩니다. 세 번째 해석 방식은 앞선 두 가지와 달리 섬뜩하지도 멜로드라마적이지도 않은 것입니다. 여기서는 앞서 살펴본 러셀 옹의 가설과 좀 다르게, 주기가 '동일'하게 순환하지 않고 '유사'하게 순환합니다. 보르헤스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입니다. 아우렐리우스는 과거와 미래가 관념일 뿐 실재성이 없으며, "현재가 모든 삶의 형태"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모든 이들의 운명은 기실 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가정합니다. (이는 훗날 보르헤스가 쓴 단편 소설 ⟨신학자들⟩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단조로운 세계를 상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앞서 말했듯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사람들의 운명이 지닌 아날로지를 확인하는 것이지 동일하다고 말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짧든 길든 모든 순간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옹호한 '현재'이며, 현재는 모든 역사를 품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보르헤스는 이렇게 적습니다.
예상 표절 - 문학과 예술의 전통적 연대기를 전복하여 무한히 확장된 독서의 세계로 빠져들다<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으로 독서의 근간을 뒤흔든 피에르 바야르가 이번에는 문학과 예술의 가장 민감한 이슈인 ‘표절’의 개념을 전복시키는 주장을 펼친다. 이 책에서 문제 삼는 표절은 과거의 것을 후대에서 도용하는 전통적인 표절이 아니라, 미래의 작품이나 아이디어를 앞선 세대에서 도용하는 이른바 ‘예상 표절’에 관한 이야기이다.
알렙환상적 사실주의와 추리소설적 기법, 반복 회귀라는 세계인식, 고도의 압축성 등이 특징으로 꼽히는 보르헤스의 단편 17작품을 한데 묶었다. 표제작인 <알렙>은 이 세상의 모든 사물, 상황, 모든 시간과 공간이 단 한순간으로 압축되어 있는 `알렙`이란 존재에 대한 기록을 담고 있다.
호시절에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변치 않고 항구적이라는 주장이 사람을 서글프게 하거나 분노케 하지만, 궂은 시절에는 어떤 수치도, 어떤 재난도, 어떤 독재자도 우리를 가난하게 하지 못하리라는 약속이 된다.
영원성의 역사 345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박병규 외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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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야화⟫의 역자들~] 총 세 개의 글꼭지로 구성돼 있으며, 말 그대로 ⟪천일야화⟫를 둘러싼 번역의 역사를 번역가를 중심으로 소개합니다. 소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첫 번째 글꼭지에서는 영역본의 권위 있는 번역자인 리처드 버튼 경을 다루고, 두 번째 글꼭지에서는 불어본의 번역자인 마르드뤼 박사를 다루며, 세 번째 글꼭지에서는 독어본의 번역자인 엔노 리트만을 다룹니다. 번역은 굉장히 의도적인 행위입니다. 모든 번역서는 번역될 대상으로 선정된 그 순간부터 번역될 책에 대한 기준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번역될 책으로 선택된 순간부터 '의도'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 만큼 타인의 번역을 논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며, 모든 번역은 크든 작든 미진합니다. 단 모든 번역이 미진함에서 그치는 것은 아니며, 좋은 번역서는 제 미진함으로써 인간된 한계를 드러내고, 그것을 갱신하고자 하는 의지를 후대에 계승합니다. ⟪천일야화⟫의 역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찬가지로 몇 가지 문장을 바꿔보겠습니다.
[버턴 경] 1. "앙드레 지드는 1921년 ⟪에세이 선집⟫에 실린 경망스러운 송사에서 갈랑의 자격을 비난했다. 그런데 이 공격의 목적은 마르드뤼가 18세기의 갈랑만큼이나 '세기말'적이며, 갈랑보다 훨씬 충실하지 못하다고 비판함으로써 (지드가 평소 본인의 평판과 다르게 너무나도 노골적으로) 마르드뤼의 번역을 묻어 버리려는 것이었다." → "앙드레 지드는 1921년 ⟪에세이 선집⟫에 남아 있는 어떤 경망스러운 찬사에서, 갈랑의 자유분방한 번역을 비난하면서 (지드 자신이 얻은 명성을 가뿐히 뛰어넘는 무구함으로) 마르드뤼의 문자 그대로의 번역이라는 관념을 부각시키려 했다. 그러나 마르드뤼의 번역은 갈랑이 18세기적인 것만큼이나 '세기말'적이며 훨씬 불충실하다."(351쪽) 2. "(품격을 지키고자 한 갈랑의 절제된 글에 "침대에 들어간다."라는 표현은 잔혹한 것이었다.)" → "(품격을 지키고자 한 갈랑의 절제된 글에서 "침대에 맞아들였다"와 같은 상황 묘사가 오히려 더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351쪽) 3. "레인의 박식한 버전의 ⟪천일야화⟫가 일탈의 백과사전인 (혹은 그렇게 보이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 "레인의 박식한 버전의 ⟪천일야화⟫가 회피술을 망라한 백과사전인 (혹은 그렇게 보이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352쪽) 4. "그가 책임질 전폭적인 삭제가 부조리하진 않지만 핑계가 지나치다. 레인은 조심성이라는 미덕을 지닌 사람으로 할리우드식의 아주 기이한 신중함의 선구자라 할 만하다." → "이러한 책임감 있고 전적인 거부는 내게 비논리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내가 비난하고자 하는 것은 청교도적 위장술이다. 레인은 위장술의 대가이며, 할리우드에서 볼 법한 기이한 과묵함의 최고봉을 보여주는 선구자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352쪽) 5. "그는 원문을 요약하는 데 만족하지 않았다." → "그는 원문을 축약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353쪽) 6. "정신을 번역하는 것은 너무나도 거대하고 비현실적인 의지이기에 해가 되지 않으며, 글을 번역하는 것은 너무나도 무모한 정밀함을 요하기에 그 글이 현실화될 위험이 없다. (···) 그가 쓰는 어휘에는 간결한 기교로 대체되지 못한 라틴어가 지나치게 많다는 게 흠이다." → "정신을 번역한다는 것은 너무 거대하고 환영 같은 의도를 가지기에 [실제로는] 무해하다고 할 수 있다. 문자 그대로 번역한다는 것은 너무 무모한 정밀성응ㄹ 요하기에 현실화되기 어렵다. (···) 간결함에 이르는 기교를 아무리 활용한다고 한들, 어찌할 수 없는 라틴어 단어가 지나치게 많다는 점이 지적된다." (354쪽) 7. "버턴의 번역에 나무랄 데 없는 동양식 표현이 있는 게 의아하다. 반면에 레인의 번역에선 그런 표현이 드문 것으로 보아 그가 부지불식간에 독자적인 표현을 쓴 것으로 보인다." → "버턴의 번역에서는 나무랄 데 없는 동양식 표현이 있는 게 의심스럽지만, 레인의 번역에선 그런 표현이 너무 드물어서, 의도치 않게 진정성 있어 보인다." (355쪽) 8. "리트만은 ⟪천일야화⟫가 무엇보다 경이로움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한다. 동양의 모든 정신에 대해 이런 견해가 보편화된 것은 갈랑의 작품 덕이다. 이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아랍인은 ⟪천일야화⟫가 우리에게 들려주지 않은 사람, 관습, 부적, 사막, 정령을 이미 알고 있기에 원본을 업신여기고 있다고 주장한다." → "리트만은 ⟪천일야화⟫가 무엇보다 경이로움의 모음집이라고 관찰한다. 이러한 견해가 모든 서구인의 정신에 보편적으로 자리하게 된 것은 갈랑 덕분이다. 이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우리에 비해 아랍인들은 ⟪천일야화⟫를 읽고서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는데, 그것은 그들이 이미 이야기에 나오는 사람, 관습, 부적, 사막, 정령을 익히 들어 아는 탓이다." (3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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