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적 시간] 첫 번째는 이제껏 플라톤의 것으로 간주됐던 해석 방식으로, "행성의 주기가 순환적이라면 우주의 역사도 그와 같을 것"이라는 점성술에 바탕합니다. 유의해야 할 점은 플라톤의 해(Año de Platón/Plato's year)가 끝날 때마다 ‘운명’이 필연적으로 순환한다는 것입니다. 보르헤스는 자유론자였던 바니니의 글을 인용하면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 속에서 운명이 "일반적인 형태로 발생하는 것이지 (플라톤의 추정처럼) 세부적인 특수성까지 반복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지만, 플라톤의 해는 비교적 엄격하게 운명을 순환시킵니다.
두 번째는 니체의 방식입니다. 앞서 에세이에서도 살펴봤듯, 유한한 원소가 무한한 시간 속에서 유한한 순열을 반복합니다. 말미에서 보르헤스는 러셀이 제시한 엄격한 가설, "동일한 보편적 역사의 항구적 연쇄"를 보여줍니다. 여기서 역사는 완벽히 동일하게 반복됩니다. 역사의 순환 속에서 이전 상태와 이후 상태는 유사한 것이 아니며, 전과 후는 ‘순번상으로(numéricamente)’ 동일합니다. 따라서 한 상태가 두 번 발생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 러셀이 제기한 가설의 핵심입니다. 이 해석에서 시간은 완벽히 순환합니다. 순환적 시간은 과거-현재-미래가 연대기순으로 펼쳐지는 선형적인 시간관과 다르게 흘러갑니다. 순환적 시간관에서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삼각형을 그리며 빙글빙글 도는 모델을 상상해야 합니다. '···과거-현재-미래-과거-현재-미래-···'처럼 순환합니다. 이때 미래는 과거로 굽어지게 되는데, 이 순간 '현재'는 과거 뿐만 아니라 미래에도 앞서는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이것이 바로 일찍이 러셀이 제시한 "동일한 보편적 역사의 항구적 연쇄"가 보여주는 모델입니다(“역사가 순환적이라는 가정도 다음처럼 이해할 수 있다. 특정 상황과 동시에 존재하는 모든 상황의 집합을 구성해 보자. 어떤 경우에는 이 전체 집합이 시간상 자기 자신에 선행한다.”⏤340쪽). 이런 사고방식을 끝까지 밀어붙이면, 우리는 연대기순의 시간관에 근거한 비평이 아닌 순환적인 시간관에 근거한 급진적인 비평론을, 피에르 바야르의 ⟪예상표절⟫ 같은 책을 맞닥뜨리게 됩니다.
세 번째 해석 방식은 앞선 두 가지와 달리 섬뜩하지도 멜로드라마적이지도 않은 것입니다. 여기서는 앞서 살펴본 러셀 옹의 가설과 좀 다르게, 주기가 '동일'하게 순환하지 않고 '유사'하게 순환합니다. 보르헤스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입니다. 아우렐리우스는 과거와 미래가 관념일 뿐 실재성이 없으며, "현재가 모든 삶의 형태"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모든 이들의 운명은 기실 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가정합니다. (이는 훗날 보르헤스가 쓴 단편 소설 ⟨신학자들⟩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단조로운 세계를 상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앞서 말했듯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사람들의 운명이 지닌 아날로지를 확인하는 것이지 동일하다고 말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짧든 길든 모든 순간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옹호한 '현재'이며, 현재는 모든 역사를 품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보르헤스는 이렇게 적습니다.

예상 표절 - 문학과 예술의 전통적 연대기를 전복하여 무한히 확장된 독서의 세계로 빠져들다<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으로 독서의 근간을 뒤흔든 피에르 바야르가 이번에는 문학과 예술의 가장 민감한 이슈인 ‘표절’의 개념을 전복시키는 주장을 펼친다. 이 책에서 문제 삼는 표절은 과거의 것을 후대에서 도용하는 전통적인 표절이 아니라, 미래의 작품이나 아이디어를 앞선 세대에서 도용하는 이른바 ‘예상 표절’에 관한 이야기이다.

알렙환상적 사실주의와 추리소설적 기법, 반복 회귀라는 세계인식, 고도의 압축성 등이 특징으로 꼽히는 보르헤스의 단편 17작품을 한데 묶었다. 표제작인 <알렙>은 이 세상의 모든 사물, 상황, 모든 시간과 공간이 단 한순간으로 압축되어 있는 `알렙`이란 존재에 대한 기록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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