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살의 부패 기간과 애도 기간은 일치한다...화장으로 인해 생자는 애도에서 더 빨리 해방되지만, 역으로 사자는 생자의 기억에서 더 빨리 사라진다.
『죽음을 사색하는 시간』 p. 42, 이창익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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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은 타인의 죽음을 만나는 것이고, 이로 인해 우리는 타인의 죽음들이 조금씩 나를 죽이고 있다는 것을 서서히 경험한다. 타인의 죽음은 내가 타인과 함께 구축한 세계의 사라짐일 뿐만 아니라, 나의 존재를 구성하는 데 참여했던 타인의 사라짐이기도 하다.
이처럼 타인의 죽음을 통해 우리는 서서히 작은 죽음들을 축적한다.(p.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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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저 너머의 세계와 연결하는 가장 중요한 매체는 아마도 영혼일 것이다. 장례식은 인간의 몸에서 영혼을 증류하는 기술이다. 그러므로 장례식은 부패하는 신체에서 영혼을 구제하기 위한 일련의 세밀한 절차로 구성된다. 우리는 단일한 장례식이 몸의 장례식과 영혼의 장례식, 또는 살의 장례식과 뼈의 장례식으로 이중화되는 사례를 제시함으로써, 장례식이 어떻게 영혼의 추출 장치로 기능했는지를 살펴볼 것이다.(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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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이 녹아 없어지는 일차 장례식 동안 사자(死者)의 영혼은 이승과 저승 사이에서 방황하는 존재로 그려졌다. 이차 장례식이 거행되기 전까지 죽은 자는 완전히 죽은 것으로 간주되지 않았고 하루에 두 번씩 식사를 제공받기도 했다.
(.....) 살이 사라지고 뼈만 남을 때까지, 일차 장례식을 거쳐 이차 장례식에 도달할 때까지, 사자의 영혼은 불안정하게 이리저리 흔들렸고, 생자는 애도 행위를 통해 사자의 영혼을 상대해야 했다.
(.....) 결국 장례식은 신체에서 빠져나온 영혼을 정령으로 변형시켜 죽은 자의 세계에 온전히 안착시키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 따라서 죽은 자의 불안정한 영혼에게 확고한 존재의 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이 장례식의 주목적이다.(p.3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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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이나 자연적인 육탈은 불순하고 썩기 쉬운 살을 파괴하고 뼈를 보존하기 위한 것이다.
매우 극단적인 사례이긴 하지만, 이제 우리는 엔도카니발리즘(endocannibalism), 즉 '족내 식인 의식'을 잠시 살펴볼 것이다. 엔도카니발리즘은 친척들이 사자의 살을 의례적으로 섭취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이것은 잔인한 식인 행위도 아니었고, 육체적인 식욕을 위한 것도 아니었다. (.....) 엔도카니발리즘을 실행하는 부족은 살 속에 존재하는 생명력을 그냥 부패하도록 내버려 둘 경우 자기 부족의 힘이 상실될 거라고 믿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부족의 생명력의 양이 일정하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생자가 사자의 생명력을 회수해야 한다는 관념을 만난다. 뒤에 이야기할 환생의 신화에서도 우리는 똑같은 관념을 발견할 수 있다. 인류학자인 모리스 블로흐도 장례식이 집단 내부에서 죽은 자의 생명력을 재활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주장한다.
화장에서처럼, 엔도카니발리즘에 의해 사자는 역겹고도 느린 부패의 과정에서 해방되어 즉시 뼈의 정화에 도달한다. 그리고 사자의 살은 생자의 몸을 묘지로 삼는다. 오스트레일리아의 투르발족(Turrbal)은 사자에 대한 애정 때문에 그의 살이 악취를 풍기며 썩지 않도록 하기 위해 식인을 한다고 주장했다.(p.44-45)
엔딩코디
조로아스터교의 경전인 「젠드아베스타(Zend-Avesta)」에도 시체의 불결함에 대한 교리가 등장한다. 부패하는 시신은 접촉한 모든 물질을 오염시키기 때문에 최대한 안전하게 시신을 처리하는 것이 중요했다. 따라서 조로아스터교는 시체에 의한 오염으로부터 신의 선한 창조물을 보호하기 위해 많은 규칙을 만들었다. 부패하는 살은 흙과 물과 불의 성스러움을 손상시키기 때문에 매장도 수장도 화장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시체는 멀리 떨어진 황폐한 고지나 돌로 만든 원통형 건축물인 다크마(dakhma), 즉 '침묵의 탑'으로 보내졌다. 이곳에서 시체는 태양에 노출된 채 육식을 하는 개나 독수리나 야생 동물의 먹이로 주어졌다. "조로아스터교의 교리에 따르면, 죽음 후에 영혼이 몸을 떠나자마자 나수(Nasu)라는 악마가 파리의 모습을 하고 나타나 시체를 부패시킨다. 따라서 개나 독수리가 시체의 살을 먹어 나수를 지옥으로 돌려보내는 것이다. 독수리가 시체를 처리하는 데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p.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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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다크마도 또 다른 곤경에 처했다. 인도에서는 1992년에서 2003년 사이에 독수리가 99% 가량 감소했다. 여러 연구는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제인 디클로페낙이 투여된 가축의 사체를 먹고 나서 독수리들이 죽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도에서는 2005년에 디클로페낙 사용이 금지되었다. 독수리가 거의 절멸하자 인도 뭄바이의 파시 공동체는 태양열 집광 장치를 사용해 섭씨 120도의 열로 3일 안에 시체의 살을 모두 제거하는 방식을 택했다. 또한 화학 약품으로 시체의 살을 제거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독수리가 없는 다크마에서 시신이 그저 부패하고 있다는 사실이 일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독수리의 절멸 위기로 인해 살의 장례식이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된 것이다. (p.48-49)
노말
1장에서 이중 장례식에 관한 내용이 흥미로웠습니다. 시살의 장례식과 뼈의 장례식, 개별성의 장례식과 영혼의 장례식을 구별하는 것.
노말
“ 이중 장례식에서는 몸과 영혼이 하나로 여겨진다. 그러나 어떻든 인간의 죽음은 달과 태양의 죽음과 다르다. 달과 태양은 매일 매월 똑같은 모습으로 부활하지만, 인간은 타계에서 부활하거나 다른 존재로 부활할 수 있을 뿐이다. 이것이 인간의 죽음에 담긴 원초적인 절망일 것이다. 장례식의 상상력은 결코 죽음을 완전히 폐기하지 못하며, 그저 죽음이 다른 생으로의 도약이기를 기원할 뿐이다. ”
『죽음을 사색하는 시간』 p. 82, 이창익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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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말
그러므로 우리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어찌 보면 죽음의 사실이 아니라 죽음의 가능성이다. 즉 나라는 존재가 갖는 근원적인 허약성이 우리의 가장 큰 문제이다.
『죽음을 사색하는 시간』 p. 111, 이창익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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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말
타자의 시간을 경험함으로써 비로소 나의 시간의 개별성이 도드라진다.
『죽음을 사색하는 시간』 p. 125, 이창익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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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말
“ 대체로 종교에서는 오로지 죽음을 통해서만 더 이상 죽지 않는 불멸의 영역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바로 죽음이 지닌 기본적인 역설이다. 죽어야만 죽음이 사라지는 것이고, 죽어야만 바로소 죽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
『죽음을 사색하는 시간』 p. 128, 이창익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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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말
“ 종교적 상상력에서 불멸성은 보통 신의 전유물로 이해된다. 따라서 인간 영혼의 불멸성을 주장한다는 것은 인간이 신의 자리로 이동한다는 것, 즉 인간이 신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리킨다. ”
『죽음을 사색하는 시간』 p.146, 이창익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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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말
죽음 담론은 '죽음 이전'과 '죽음 너머'의 관계에 의해 서술된다. 죽음이 현세와 내세의 공간 단절 사건으로 이해될 경우, 대체로 현세보다는 내세에 무게 중심이 놓이게 된다.
『죽음을 사색하는 시간』 p. 181, 이창익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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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말
“ 달력은 여러 가지 기준에 의해 시간을 미세하게 분할하고 잘게 토막 낸다. 그런데 이러한 미세한 시간 분할을 통해 달력은 시간 토막들 사이에서 다양한 유사성을 창조하고, 이로써 처음에는 전혀 달랐던 시간 토막들을 점점 서로 비슷한 것으로 변형시킨다. ”
『죽음을 사색하는 시간』 p. 186, 이창익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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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말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 구별은 기억, 지각, 기대라는 심적 상태의 결과물일 수 있다.
『죽음을 사색하는 시간』 p. 193, 이창익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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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말
시간의 시제는 인간이 현재라는 아페이론에 자리잡을 때만 성립할 수 있다. 인간은 시간에 시제를 주는, 시간 성립의 주체이다.
『죽음을 사색하는 시간』 p.201, 이창익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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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말
아무도 자신을 구원해 주지 않기 때문에, 신조차도 자신을 구원할 가망이 없기 때문에,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구원자가 되기 위해 자살을 한다.
『죽음을 사색하는 시간』 p. 230, 이창익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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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말
인간은 과거, 현재, 미래라는 이질적인 시간 영역으로 시간을 분할할 뿐만 아니라, 현재 너머로 외출하거나, 또는 현재 속으로 과거와 미래를 끌어들인다.
『죽음을 사색하는 시간』 p. 261, 이창익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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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말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시간은 영혼 안에 있으며, 우리는 영혼 안에서 시간을 측정한다. 과거, 현재, 미래는 기억, 지각, 기대의 형태로 영혼 안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