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보르헤스 읽기] 『말하는 보르헤스』 1부 같이 읽어요

D-29
화제로 지정된 대화
[신곡] 7일 밤의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단테의 ⟪신곡⟫을 다룹니다. 여담으로 시작하자면, 보르헤스는 고전이라고 해서, 누군가 읽을 만한 책이라고 해서 읽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책을 대할 때는 그것이 남들이 중요하다고 하든 아니든 똑같은 태도로, 마치 아이의 마음가짐을 가지고서 흥미와 호기심으로써 읽는다고 말합니다. 새겨들을 만한 말입니다. 누군가가 읽으라고 권해서, 그것이 '필독서'라고 해서 어떤 책을 읽으면, 거기에는 남모르게 '의무'가 씌입니다. 물론 이 자체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무슨 일이든, 의무감으로만 한다면 그 일을 오래 지속하는 데 적합한 동기가 되어주지는 못할 겁니다. 멀리 가는 데 신는 신발은 아닌 셈입니다. 멀리 가기 위해서 신는 신발은 따로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자발적인 호기심과 흥미라고 부릅니다. 한편, 보르헤스가 ⟨욥기⟩의 사례를 빌려서 단테의 위대함을 설명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혹자들은 단테가 ⟪신곡⟫을 쓴 이유가 자신의 적들에 복수하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보르헤스가 보기에 그것은 단테의 성취를 폄하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단테의 작품이 오롯이 단테 개인의 욕망이 집적된 것에 불과하며, 마치 문학이 현실에 좌절한 이가 개인적 복수심에 불타서 매달리는 헛된 몽상이거나 현실 도피라고 주장하는 셈입니다. 보르헤스는 ⟪신곡⟫을 그렇게 읽지 않았습니다. 단테는 ⟪신곡⟫ 안에서 1인칭의 인물이 되어서 하느님이 만든 천국과 연옥과 지옥을 그려보이면서도, 그것을 단테 개인의 이해를 뛰어넘는 불가해한 공간으로 묘사함으로써 ⟪신곡⟫에서 자신을 낮추었다는 겁니다. 보르헤스는 그것을 ⟨욥기⟩의 사례로써 설명합니다. 언젠가 하느님은 자신을 판단하거나 정당화하는 신자와 불신자 양쪽을 모두 꾸짖으며, 조아리게 만든 적이 있는데, 이와 비슷한 변주가 ⟪신곡⟫의 등장인물인 프란체스카의 경우입니다. 여기서 보르헤스의 핵심적인 물음은 이러합니다. "만일 ⟪신곡⟫ 속 단테의 하느님이 항상 단테의 감정과 일치한다면?" 만일 그렇다고 한다면, 단테의 하느님은 거짓된 것이고, 단순히 단테의 복제품일 따름입니다(앞서 단테가 자신의 적들에 복수하려고 ⟪신곡⟫을 썼다는 입장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단테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단테는 자신이 동정하고 은근히 부러워해 마지 않는 프란체스카나, 존경했던 파타리나 같은 인물을 지옥에 내버려둠으로써 하느님이 창조한 천상의 공간을 불가해한 영역으로 받아들입니다. 마치 현실의 단테가 베아트리체의 사랑을 얻지 못하고, 고향에서 추방당하고, 고향이 아닌 라벤나에서 죽음을 맞이했던 것처럼요. 즉 단테의 위대함은 자신의 감정과 이해를 넘어서는 방식으로 하느님을 묘사했다는 데 있었습니다. 보르헤스는 이것이야말로 ⟪신곡⟫을 한갓 복수극이 아닌, 위대한 문학으로 만든 요소라고 보았습니다. 또한, 보르헤스는 오디세우스가 나오는 부분 역시 "절정"이라고 치켜세웁니다. 사람들은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목마와 같은 거짓된 계략을 꾸몄기에 지옥에 떨어졌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보르헤스는 그렇게 보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가 "금지되고 불가능한 것을 알고자 하는 고결하면서도 대담한 작업"을 행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오디세우스는 지브롤터 해협을 건넘으로써 신이 정해둔 한계를 위반하였고, 자신들은 "무언가를 알고 이해하고자 태어났다"면서 동료들을 설득하여 모험에 나서게 만듦으로써 지식을 욕망하였으며, 결과적으로 연옥의 산에 가닿음으로써 파멸했습니다. 보르헤스는 이와 비슷한 구조를 훗날 ⟪모비딕⟫에서 발견하고서, 멜빌이 롱펠로가 번역한 ⟪신곡⟫을 이미 알고 있었으리라고 말합니다. 에이허브 선장은 흰고래라는 인간된 한계에 도전했고, 스스로 복수심에 불타서 흰고래를 찾아나섰으며, 끝끝내 흰고래를 만나서 파멸한다는 일련의 구조가 오디세우스의 여정과 대동소이하다는 겁니다. 다만 다른 부분이 있다면, 오디세우스는 원한과 복수심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똑똑함을 과시하고 정당한 이유에 호소했다는 점에서 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보르헤스는 탁월한 해석을 이끌어냅니다. 이런 오디세우스 묘사하면서 단테는 그에게서 자신을 보았다는 해석입니다. 이 얘기인즉, 오디세우스야말로 단테의 거울이었다는 것입니다. 오디세우스가 "금지되고 불가능한 것을 알고자 하는 고결하면서도 대담한 작업"에 착수했던 것처럼, 단테 역시 "우리는 하느님의 심판을 예견할 수 없으며, 그 누구도 누가 벌을 받고 누가 구원받을지" 모르는 인간이면서도, ⟪신곡⟫을 통해서 마치 아는 것처럼 썼습니다. 자신의 시를 통해서 하느님의 섭리를 내다보았다는 점에서 단테는 오디세우스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단테가 오디세우스의 죄과를 쓰면서도 이를 몰랐을 리는 없었다는 것이 보르헤스의 생각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단테는 ⟪신곡⟫이라는 의무를 떨면서 수행했으며, 이것이야말로 단테의 위대함이라고 보르헤스는 말하는 듯합니다. ⟪신곡⟫을 읽으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단테가 자신의 시대에 꼭 매인 채로 그것에서 벗어나려고 분투했다는 점이며, 그리하여 번번이 실패했으며, 그럼에서 불구하고 ⟪신곡⟫을 끝까지 쓺으로써 성공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곡⟫을 읽을 때 한 시기의 실패가 성공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신곡⟫의 대단함이라면 대단함일 것입니다. 위대한 작품은 작가보다 뛰어나다고 말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겠죠.
우리 각자는 인생의 어느 한순간에, 즉 우리가 자기 자신과 영원히 만나는 순간에 규정되고 맙니다. 단테는 프란체스카를 비난하고 그녀를 매정하게 다루었다는 평을 듣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제3의 인물[하느님]을 무시하는 처사입니다. 하느님의 심판이 항상 단테의 감정과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신곡⟫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단테가 자신의 적들에게 복수를 하고 친구들에게 보답하기 위해서 이 책을 썼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니체는 단테가 무덤 사이에서 시를 짓는 하이에나라고 헐뜯었습니다. 그러나 시를 짓는 하이에나란 그 자체가 모순입니다. 그 외에도 단테는 남의 고통을 보며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용서받을 수 없는 대죄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각각의 대죄를 위해 그는 그 죄를 저지른 사람들을 선택합니다. 그러나 그런 죄인들 속에도 가치가 있거나 본받아야 할 사람들이 있습니다. 프란체스카와 파올로는 단순히 음란한 자들이 아닙니다.
말하는 보르헤스 126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악몽] 이 에세이에서 보르헤스는 강렬한 문장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꿈은 속(屬)이고 악몽은 종(種)입니다.” 그러고 나서 '꿈'이라는 주제에 천착했던 무수한 이름을 열거합니다. 구스타브 슈필러, 폴 그루삭, 토머스 브라운, 보에티우스, 존 던, 제임스 프레이저까지. 그 외에도 대단히 많은 작가의 이름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보르헤스는 보에티우스와 존 던의 사유를 빌려서, 꿈의 동시적인 성격을 해설합니다. 하느님이 영원 속에서 모든 과정을 동시에 지켜보듯이, 연속되고 순차적인 현실의 삶에서와는 달리 우리가 꿈에 다층적이고 동시적인 서사를 부여한다는 겁니다. 한편, 프레이저를 인용하면서 어떤 이들은 (미개인이라고도 불리우는 이들은) 꿈과 현실을 뚜렷이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예컨대, 꿈에서 사자를 죽였다면, 이들은 자신의 영혼이 육체를 벗어나 꿈속이라는 또 하나의 현실에서 사자를 죽였다고 믿었습니다. 마치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않고 모든 것을 '깨어있음' 쪽에서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아이들처럼요. 그런 반면, 시인들은 주어진 모든 상황을 '꿈' 쪽에서 보기도 합니다. 대표적으로 오스트리아 시인 발터 폰데어포겔바이데는 다음처럼 물었다고 합니다. "내가 인생을 꿈꾼 것인가? 아니면 내가 꿈이었던가?" 약간 딴 얘기를 하겠습니다. 앞서 언급한 발터 폰데어포겔바이데의 물음은 장자의 호접지몽과 대단히 유사합니다. 한국을 비롯한 동양권에서 어떤 사람들은 보르헤스의 소설을 읽으면서 동양적인 것을 발견하고 기뻐합니다. 추측컨대, 보르헤스 같은 뛰어난 장자의 호접지몽에서 큰 영감을 받았다는 것이 되레 '동양'의 위대함을 방증한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런 주장이야말로 어떤 콤플렉스의 소산이 아닐까 합니다. 이 에세이에서 열거되는 무수한 이름을 보면, 보르헤스는 장자의 호접지몽에서 지대한 영향을 받은 게 아니라, 장자의 호접지몽'도' 읽었던 것입니다. 엄밀할 필요가 있습니다. 보르헤스는 구스타브 슈필러를 읽었고, 폴 그루삭을 읽었고, 토머스 브라운 경을 읽었고,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를 읽었으며, 오스트리아 시인 발터 폰데어포켈바이데를 읽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이름의 연장선상에서 장자의 호접지몽을 읽었을 테고, 아마 신기해 하면서 자신이 고민해오던 바가 동양의 어느 철학자의 글 속에도 있다는 것을 알고서는 기뻐했을 겁니다. 그렇게 자신이 앉은 자리에서 모든 곳의 모든 면이 보이는 단 한 점으로서 '알레프'에 대 구상을 키워갔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동양의 변두리에 있는 어느 국가에서는, 코스모폴리탄이었던 보르헤스가 일찍이 호접지몽을 알았다는 것을 대단히 자랑스럽게 여기고, 거기서 유일한 영감을 얻었다고 말하기를 바라겠지만, 현실은 많이 달랐던 셈입니다. 다시 본문 얘기를 해보자면, 보르헤스는 꿈이 최초의 미학적 형식이자 연극임을 주장한 뒤, 곧이어 종(種)으로서 악몽을 말합니다. 여기서 약몽의 이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공포가 제공하는 인상이나 감각 그 자체입니다. 보르헤스의 설명에 따르면, 현실에서 우리는 일반적인 인과관계를 통해서 공포와 억압을 느끼지만, 꿈은 그만의 특별한 논리, 즉 역전된 인과관계를 따른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겠습니다. 현실에서 우리는 사자를 보면서 두려움을 느끼고, 잠에서 깼을 때 사자가 자기 몸을 누르고 있는 걸 본다면 억압감을 느낍니다. 그러나 꿈에서는 이 과정이 반대입니다. 꿈에서는 두려움과 억압감이라는 감정을 먼저 오고 나서, 그 다음에 앞선 감정에 대한 설명을 찾게 되는데, 이때 꿈의 이미지가 일종의 설명으로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현실에서 이불이 무겁거나 호흡이 곤란해진 사람이 꿈 속에서 스핑크스가 자기 몸에 올라타 있는 광경을 보는 식입니다. 이때 중요한 사실은 스핑크스가 억압을 일으킨 원인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억압을 섦여해주기 위해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뒤이, 보르헤스는 비슷한 맥락에서 수사나 봄발이 꾸었던 꿈과 자신의 악몽을 이야기한 뒤, 마지막으로 워즈워스가 자기 시대에 느꼈던 막연한 불안감을 어떻게 걸출한 서사와 이미지로 재현해냈는지를 살펴봅니다. 꿈이 미학적 표현으로서 연출에 매달린다면, (꿈의 한 갈래인 종으로서) 악몽은 우리 감각과 인상에서 출발하는 지극한 문학의 형식인 것입니다. 우리는 거기서 놓여나지 않습니다.
깨어 있는 우리의 삶은 끔찍한 순간으로 가득합니다. 우리 모두는 어느 순간 현실이 우리를 짓누르기도 한다는 것을 압니다. 가령, 사랑하는 사람이 죽거나, 사랑하는 사람이 우리를 버리거나 하는 것들은 슬픔과 절망의 원인이 되기에 충분합니다. 그러나 이런 동기들이 악몽과 비슷하지는 않습니다. 악몽에는 특별한 공포가 있고, 그 특별한 공포는 이야기를 통해 표현될 수 있습니다. 돈키호테이기도 한 워즈워스의 베두인족이나 가위와 실 또는 내가 꾸었던 왕의 꿈이나 유명한 포의 악몽에 의해서 표현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바로 악몽의 '맛'입니다. 내가 참고한 서적들은 이런 공포에 대해 전혀 말하지 않습니다.
말하는 보르헤스 159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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