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 맞지 않을까요! 저는 밸런스니까요!? 🤣🤣
[세창출판사/ 도서 증정] 편집자와 함께 읽는 한나 아렌트가 필요 없는 사회
D-29
밸런스39

바닿늘
흐흐 ~ 그럼 맞는걸로! ^^
여기서 이렇게 만나니 ~ 더 반갑습니다. 😆
밸런스39
한나 아렌트가 필요 없는 사회라니... 아무리 보아도 너무나 이중적인 것 같아요! 한나 아렌트의 이론이 현실화된 미래의 이상과 아무리 소환되어도 변하는 것이 없는 현재이 느낌이랄까요?? 궁금해 궁금해 입니다!!

woojoo
「한나 아렌트가 필요 없는 사회」 참여자 여러분~!!!!!! 필독!!!
참여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비 오는 금요일 오후입니다^^ 책을 받으신 분은 댓글에 사진을 공유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인스타그램에 추가로 해주시면 더더욱 감사합니다. 이 모임은 18일에 끝납니다.
진행자의 날짜 착오로 일정이 빠듯해진 점 거듭 사과드립니다.
따라서 페이지를 정해드리지 않고 자유롭게 읽으며 각자 사유를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먼저 읽은 제가 약간의 발제문을 드립니다. 읽으시면서 한 번쯤 떠올려보시고 의견이 있으시면 공유해 주세요^^
2. 책을 읽으시면서 궁금하신 점 댓글로 남겨주세요
#질문 이라고 해시태그 해주시면 더 좋겠습니다^^
참여자분들의 질문에 대해 16일쯤 세창출판사 이희도 편집자님이 답변해 주시기도 했습니다. (시간을 따로 정하지 않고) 여러분의 질문에 댓글로 답해주실 것 같습니다.
3. 153페이지로 얇은 편입니다^^ 언제든 읽으시면서 ①~ ④ 발제문에 대한 생각을 공유해 주세요. 전부 다 해주셔도 좋고, 선택해서 해주셔도 됩니다^^
책의 저자 윤은주 교님도 '인공지능의 시대 그러나 인간이 해야 할 일은 있다'라고 책 초반에 말합니다. 아무리 많은 책을 읽어도 자신의 생각을 추가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 없는 노동이 되어버립니다. 독자님들도 1회 정도는 발제문을 직접 만들어보시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발제문 ◆
① ( p22에서 저자는 온갖 시련 가득했던 한나 아렌트의 삶을 언급합니다. 그녀는 '악의 평범성' 개념을 통해 사유하지 않는 인간이 어떻게 악을 저지를 수 있는지를 설명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함께 생각하고 소통하며 그 의견을 나누고 있나요? 최근에 우리 사회는 공론장으로써 역할을 하고 있나요?
( 이 책에 제가 가장 좋아하는 《전체주의의 기원》 한나 아렌트의 문장이 언급되어 무척 반가웠는데요 ^^) 읽으면서 인상 깊은 문장들을 공유해 주세요
② p. 45를 읽으며 저는 많은 의문이 듭니다. 아렌트에게 정치는 공적 활동이다. 노동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아렌트의 논의는 가진 자들의 배부른 소리처럼 들려...라는 문장/ 한나 아렌트는 오히려 현대 소비사회에서 노동자들은 시스템화되며 정치적으로 자신만의 온전한 목소리를 낼 수 없어 안타까워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약자'들이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려면 혹은 '노동자'들이 정치적 인간이 되기 위해 필요한 제도에 대해 말해볼까요? ( 이 질문은 어쩌면 책의 제시한 문제의식을 관통하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
③ p80을 읽으면 한나 아렌트 저서 《인간의 조건》에서의 중요한 문장을 다룹니다.
한나 아렌트는 생명은 노동이며 정치활동, 정치적 삶은 그 이상의 무언가로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생명 그 자체로서의 노동이 정치와 어떻게 연결될까요? 혹은 충돌할까요
책의 저자는 인간은 공적 행위를 해야 인간다워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인공지능의 시대, 인간을 더 인간답게 하는 정치적 행위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④ 저에게는 113~115의 문장은 압도적인 감동을 주는 부분이었습니다. 챕터 제목이기도 한 '인간이 사라진 전체주의' ( 폭력에 대해 오히려 과거보다 폭력과 전쟁이 줄었다는 스티븐 핑커 선생님과 같은 주장도 있지만요. ) 한나 아렌트가 말한 전체주의의 망령은 오늘날 단절되고 고립된 개인에게 더욱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드러날지 생각해 보시고 그 예를 공유해 주세요^^

바닿늘
①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함께 생각하고 소통하며 그 의견을 나누고 있냐를 생각해보니.. 많이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많이들 그렇게 생각할거라고 생각이 자동적으로 들기도 했습니다.
그 원인에 대한 저의 개인적인 분석은.. 공론의 장이 많이 고장난 상태여서 그렇다는 생각이 듭니다.
공론의 장이 고장난 이유는, 공론의 장이 제대로 작동하길 바라지 않는 설계자들의 영향이 컸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가 '언론의 기계적 중립' 으로 나타나고, 그것들이 고착화가 되면서.. 지금의 상황이 만들어지는 데 큰 기여를 한 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희망도 느낍니다. 저는 비록 언론에 관심을 갖게 된지가 그렇게 오래 되지는 않았지만.. 나름의 기준을 세우고 미디어를 소비하려고 합니다. 그 중 한 가지가.. 기계적 중립이 심한 곳은 거르는 것입니다. 아예 편향적인 곳도 마찬가지고요.(좌든 우든 과하면 경계하려고 합니다.)
제가 주로 뉴스를 접하는 곳은, 평일 오전 시간대의 뉴스공장, 낮 시간대의 매불쇼, 저녁 시간대의 MBC 8시 뉴스 정도가 그나마 고정이라면 고정입니다. 낮 시간대와 저녁 시간대는 필요에 의해 챙기고 항상 챙기진 않습니다.
제 방법이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각자가 저마다의 기준을 세우는 것이 필요한 요즘이라고 한 번씩 느낍니다.
너무 디테일한 내용을 겁도 없이 이야기한 것 같은 측면도 있지만 ~ 적어도 이번 책이 한나 아렌트의 사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라면 ~ 충분히 허용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용기를 조금 과하게 내봤습니다.

woojoo
바닿늘님의 분석 정확하신 것 같아요
( 론의 장이 고장난 이유는, 공론의 장이 제대로 작동하길 바라지 않는 설계자들의 영향이 컸다고 생각) 이 부분!!
이들 설계자들은 '토론'이 아닌 '진영 싸움의 장'으로 이용하는 것 같습니다.
디테일한 점을 토론하기 위한 장이라 생각해요
대부분의 독서모임에서도 정치 이야기는 금지입니다 저역시 그렇게 진행해왔고요 최근 회의적입니다 ㅠㅠ
이 책은 그야말로 정치이야기 책이고ㅡ 또 우리가 진영싸움의 목적으로 이 플랫폼을 이용하는 것은 아니므로, 정치 이야기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닿늘
② '약자'들이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려면 혹은 '노동자'들이 정치적 인간이 되기 위해 필요한 제도는 무척 포괄적이고 추상적으로 느껴집니다. (그동안 깊게 생각해보지 않은 스스로를 반성하게 됩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하게 글을 적어본다면.. 저는 어느 정도까진 규제와 강제력이 선행되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평소에 행동경제학에도 관심이 많은데.. 행동경제학의 창시자로 알려진 대니얼 카너먼의 이론에 대해 얕게 아는 수준에 따르면.. 인간은 기본적으로 얻었을 때의 행복보다 잃었을 때의 상실을 더 크게 체감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를 신경 쓰는 것도 물론 필요하겠지만, -에 대한 제도 개선이 더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야기가 조금 추상적인 것 같아서.. 예를 들자면 '독과점' 문제가 그렇습니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라야 하는데.. 그저 큰 힘에는 큰 돈이 따른다고 믿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고 느낍니다.
결국.. 노동자가 없으면 회사는 아무것도 아닌데, 결국 따지고 보면 협력의 관계인데.. 왜 그토록 갑질이 사회에 그토록 많은지를 생각해 본다면.. 역시 고도 성장 시기를 거치며 고착화된 어떤 인식 때문이 아닐까.. 라는 아직은 불확실한 추측도 자연스럽게 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노동권 개선이나 환경 문제 개선 등은 장기적인 목표를 필요로 하는 것들이라.. 그 문제들이 장기 문제라는 것을 더 많은 사람들이 인식하는 것이 어쩌면 그 문제 해결의 시작이 아닐지도 함께 생각해봤습니다.

바닿늘
④ 전체주의의 망령의 예가.. 저는 엄청 다양하게 나타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의식의 확장을 한 번씩 과하게 하는 편이라.. 누군가는 과하게 느낄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본다면, 래디컬 페미니스트가 먼저 떠오르고요. (굳이 예시를 적진 않겠습니다..) 그 다음으로 떠오르는 건 급진성을 띈 정당주의자도 그렇습니다. 급진적 사대주의자도 마찬가지일테고요. 명명이 적절한 지 모르겠으나.. 이렇듯, 진보는 중요하지만.. 급진적인 성향이 붙게되면 문제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저는 태극기 부대에서 성조기와 태극기를 같이 들고, 과할 경우 이스라엘 국기까지 드는 것이.. ;;; 어쩌면 그저 내편의 말만 믿고, 그에 무조건적으로 힘을 보태는 것이.. 내집단 편향 성이 만들어낸 행태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주황색 옷 입고 선거 유세 하고 있는 누구에 대해 더 말하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지만.. 거기까진 나가지 않겠습니다. ^^;;
대화가 많이 이어지지 않다 보니.. 조금 과하게 용기를 내는 측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너무 과하다 싶으면 누가 말려주셔도 괜찮습니다. ^^;;;
위버m
① 공론장의 역할을 하려면 a. 자유롭고 b. 공개적으로 c. 토론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 사회에서 a, b의 기능은 갈수록 발전하고 있지만, ‘토론’에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ㅜㅜ 모두가 자신의 이야기만 할뿐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고 숙고하는 모습은 오히려 퇴보하는 것 같아요.
② 노동/작업/행위의 삼분법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노동이 작업이 되도록, 작업이 행위가 되도록 하는 동기를 생각하는 것이 첫 번째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생각한 내용으로 행위할 수 있도록 자유를 주어야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일하는 사람에게 여가 시간을 보장하고 자기만의 생각을 할 수 있는 도움이 제도로 마련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책을 읽고 의견을 나누는 모임이 활성화하는 것도 그 방법의 하나이고요 ^^
(정치적 성향과 무관하게) 과거 대선에 나섰던 후보가 내세운 ‘저녁이 있는 삶’이란 슬로건을 참 좋아합니다. 근로 시간 단축, 단축된 시간으로도 충분히 저녁을 누릴 수 있는 임금제, 그 시간을 의미 있게 쓸 수 있는 교육이나 여가 마련 등이 떠오릅니다.
밍묭
① 요즘은 오히려 예전보다 공론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적어진 것 같아요. 첫 장에서 언급한 것처럼 'A 아니면 B'와 같이 극단적인 선택지만 남아있는 경우가 더 많이 보이더라고요. 정치에서 이런 경우가 자주 보이긴 하지만, 요새는 꼭 정치가 아니더라도 흔하게 나타나는 것 같아요. 시간이 흐를 수록 삶을 부지하기 어려워지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각박함이 원인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바닿늘
각자도생 사회에서.. 공론의 장 적극 참여는
어쩌면 사치라고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 ㅜㅜ
밍묭
② 저는 2장을 읽으며 흥미로운 부분을 많이 느꼈어요. 약자들이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결국 사회가 그에 맞는 제도를 내놓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어떤 제도를 내놓아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사실 딱히 생각해보진 않은 것 같아요. 생각해보면 지금 사회에서도 약자를 위한 제도는 많이 있지만 잘 실행되고 있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는데요, 이유를 몇 개 들어보자면 사회적 인식이 부족해서도 있고 강제성이 없어서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결국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회를 만들려면, 위에서 열린 귀를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이것저것 얘기하려니까 굉장히 두서 없고 횡설수설 하네요...ㅎ
밸런스39
39는 제 무의식의 숫자입니다!!

woojoo
와 👍 멋있어요

바닿늘
“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삼삼오오 모여보자. 모임에는 별다른 준비물이 필요 없다. 열심히 생각하고 자유롭게 이야기하면 된다. 이야기하는 장소가 거창할 필요도 없다. 날이 좋다면 잔디밭도 나쁘지 않다. 모여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그곳이 우리가 찾는 공론장이다.
공론장은 독단적 결정에 끌려다니지 않도록 다양한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곳이다. 이야기한 끝에 좋은 합의에 이르면 좋겠지만 억지로 결과를 만들 필요는 없다. 위르겐 하버마스는 공론장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조건과 그들로부터 얻어지는 합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함께 생각하고 소통한다는 것에 방점을 찍는 것이 좋겠다. 이것이 지금 우리에게 아렌트가 필요한 이유다. ”
『한나 아렌트가 필요 없는 사회』 p. 18, 윤은주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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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닿늘
저는 일단 서로의 의견에 대해 함부로 공격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드는 것부터가 우리 사회에 무척
시급해 보입니다.

woojoo
위에 공유해 주신 문장, 저도 밑줄 두 줄 그은 문장입니다. 교단에서 강연장에서 혹은 연예인, 혹은 여러 인사들이 자유롭게 정치를 이야기하지 못하게 하는 사회가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이유입니다 ㅠㅠ

바닿늘
이런 의견이 더 많아져야 그때부터 활발한
공론장이 열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아직은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이번에 생겨난 동력이 그것에 분명히
어느 정도까진 영향을 줄 것 같습니다.

바닿늘
그런 분위기를 정규 교육 과정에서
더 많이 길러줬으면 좋겠습니다.
(각각의 가정 교육에서도 물론이고요. ^^;;)
다행스럽게도 얼마 전에 저희 아이들 (초5, 초2)
둘의 공개수업을 직접 다녀오며 느낀 것이..
과거보단 무척 개선되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어보이긴 합니다.
잘은 모르지만.. 선생님에 따라 교육의 환경이
크게 다르다고 느껴지더라고요. ^^;

바닿늘
“ 버스나 지하철에서 이어폰을 끼고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리는 사람들을 만난다. 언젠가부터 흔한 풍경이다. 같이 가는 사람이 있는 듯한데, 그와는 낯선 사람처럼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다. 오히려 스마트폰에 내장된 인공지능 프로그램과 씨름한다. 사람이 아닌 기계와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이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에 낀 세대에게는 말도 안 되게 낯설지만, 디지털 세대에게는 아주 익숙한 풍경이다. 사람이 사라지고 기계가 대신하는 일상이다. "참 편한 세상이다"라고 해야 할까? 사람들과 함께 하는 일상이 늘 행복한 것은 아니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의견 차이로 싸울 수도 있고, 부탁했는데 들어주지 않아서 속이 상할 때도 있다. 언제 들어도 싫은 말이 '싫다' 아닌가. 그런데 기계에는 'No'가 없다. 다 들어주는 기계, 얼마나 좋은가. ”
『한나 아렌트가 필요 없는 사회』 p. 27, 윤은주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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