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ef님의 대화: 〈헌법을 공부하는 슬픔과 기쁨〉에 대한 단상을 적습니다.
역사를 읽다 보면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이 여러 선택지 중 하나란 사실에 전율하게 됩니다. 우린 누군가가 선택하고 기획한 미래 속에 살고 있는 것이지요. '대한민국'이란 기획을 체계화한 헌법으로 우린 옳지 않음에 대한 감각을 구체화 할 수 있었고, 헌법이 부여한 권능으로 우리나라 국민은 여러 위대한 일을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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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마주하는 헌법이란 87년에 개정된 헌법이고 이는 '제헌헌법'과는 거리가 있는데 이것이 미국과는 다르다는 사실은 재미있네요. 우리는 국민성대로(?) 기존 헌법을 갈아엎지만 미국의 헌법 제정은 조문은 그대로 두고 수정헌법 조항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이뤄져 끊임없이 원전을 상기시키기 때문입니다.
많이 갈아엎어진 제헌헌법이지만 그 영향력은 아직 남아 있고, 그 제헌헌법을 제대로 만들기 위해 헌법기초위원회가 제대로 일했다는 사실은 찌르르 울림을 줍니다. 그들은 '대한민국'의 '대'자를 가지고도 논쟁했으며 "모든 국민은 그 보호하는 자녀에게 적어도 초등교육과 법률이 정하는 교육을 받게 할 의무를 진다"는 문장 속에 '적어도'란 말을 넣어 무상·의무 교육에 관하여 앞으로 나아갈 일만 남았다는 사실을 명확히 했습니다. 날림이 아닌 분명한 의도에 만들어진 기틀 위에 우리가 서있다는 사실을 자녀에게 어서 알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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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정부는 개헌을 시도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문제의식을 구체화하고,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지 결정할 날이 머지 않았습니다. 87년 헌법이 2024년 12월 3일 우리를 구했듯이, 과거가 현재를 구했듯이, 오늘이 내일을 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illef 네. 저도 <적어도>라는 말이 참 인상 깊었고, 헌법기초위원회 분들이 '적어도'라는 말을 넣기 위해 고민했던 것은 의무교육이 무상교육으로 나아가기 위한 장치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1963년에 군부독재로 탄생한 정권에 의해 헌법안에서는 '적어도'라는 말이 사라졌다가 10년 후에야 다시 등장했다고 그래요. 무상의무교육이 중학교까지로 확대된 것이 2005년 이후랍니다. 유정훈 선생님 리뷰에서는 지면상 핵심적인 부분만 짚고 상세하게 다루진 못했지만, 책(헌법의 순간)에서는 상술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