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동시대 미술가들을 다룬 글인데도 나는 왜 이들이 그리거나 만드는 게 아니라 쓰고 있다고 느끼는 것일까. 쓴다는 것은무엇이기에 계속해서 미술가들의 작업이 쓰기로 보이는 걸까. 이들의 ‘쓰기’는 그리는 것과 만드는 것,움직이는 것과 가만히 있는것을 모두 포함하는 광활한 바다와 같은 포용적인 동사다. 회화와조각, 설치와 미디어, 퍼포먼스, 서예와 자수 등등의 실험적이고 또전통적인 미술 장르와 달리 ‘쓰는’ 것은 좀 더 보편적이다.
여성(미술가)에게 ‘쓴다’는 것은 일종의 반복성을 갖는다.쓰기는 말을 대신하여 외부에 자신의 존재와 사고를 각인시키는 행동이다.만들고 그리는 것 또한 알타미라 동굴 벽화에서부터 시작된오래된 일이다.쓰는 것은 양피지처럼 겹쳐 쓰기,두루마리 그림처럼 끝도 없이 지속하여 쓰기가 가능하다.무게를 가진 미술 재료와다르게 백지만 있으면 쓸 수 있다.그래서 손에 아무것도 들지 않은 절실한 사람에게도 허락되는 일이다.쓰는 일은 말하는 것과 대비될 뿐 아니라 지우는 일과도 항을 이룬다.썼다가 지우거나 다시쓸 수도 있다.여성 미술가들의 작업(하기)은 ‘거행’되지 않는다.모처럼 자행되는 특별한 일이 아니라 계속되는 쓰기다. ”
『서울리뷰오브북스 17호』 현시원, 여자들은 쓰고 있다, 64쪽, 유정훈 외 지음, 서울리뷰오브북스 편집부 엮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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