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 아, 나의 범죄, 그 악취 하늘까지 닿는구나. 형제 살인이라는 태초의 저주가 찍혔구나. 마음은 결심만큼이나 간절하지만 나의 더 큰 죄가 그 마음 꺾어 버리니 기도할 수가 없구나. 두 가지 일에 매달린 사람처럼 무엇을 먼저 할지 몰라 두 가지 모두 망쳐 버리는 사람 같구나. 이 저주받은 손이 형님의 피로 두껍게 범벅되었다 한들 자비로운 하늘에는 이 손 눈처럼 희게 씻어 줄 빗물이 없단 말인가? 죄악의 얼굴과 맞대지 않는다면 자비가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기도의 힘이란 우리 타락을 막아 주거나 타락한 다음 용서해 주는 것이거늘, 그 밖에는 기도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하늘을 올려다보자. 나의 죄는 지나갔다. 그러나 아, 어떤 기도가 내 죄에 소용될까? <내 더러운 살인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라고 하면 될까? 살인의 결과물들인 왕관과 야심과 왕비를 여전히 내가 가지고 있는 판에 그건 안 될 말. 죄의 산물을 간직한 채 용서받을 수도 있을까? 이 세상의 타락한 물결 속에서 죄의 금칠한 손이 정의를 밀쳐 버리고 사악한 재화가 법을 매수하는 일은 흔치 않더냐. 그러나 하늘나라에서는 안 통할 일. 거기서 속임수는 없고 행동은 본색을 드러내며 우리의 죄악 가까이 얼굴 맞대게 되면 증거가 드러나고야 만다. 그렇다면, 이제 방도가 없는가? 회개를 하여 보자. 회개하여 안 될 일 무엇이더냐? 그러나 회개할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일까? 아, 빌어먹을 처지여! 아, 죽음처럼 검은 가슴이여! 빠져나오려고 애쓸수록 더 깊이 옭매이는 덫에 걸린 영혼이여! 천사들이여, 도와주소서! 도와주소서! 뻣뻣한 무릎아, 꿇어라. 철심 박은 심장아, 갓난아이 근육처럼 말랑해져라. 그러면 만사가 좋아지리라. ”
『햄릿』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박우수 옮김
문장모음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