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그렇게 말했던가? 신이 그들을 그렇게 귀엽게 만든 이유는 우리가 죽이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나는 새벽 4시에 이 말에 특히 더 공감하게 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24년 전 새벽에 신경질을 내며 일어났지만, 나를 보고 방긋 웃는 아들의 모습에 그만 무장해제되어 젖병을 물렸던 내모습이 overlap 됐습니다. ㅎㅎ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2. <어머니의 탄생>
D-29

롱기누스

롱기누스
21장의 내용 중, 신생아가 일주일을 굶어도 괜찮다는 말은 무척이나 흥미롭습니다. 특히 유사한 영장류, 고릴라, 침팬지와 비교해서 무게가 2배나 더 나가고 지방이 4~8배 많다는 것도 놀랍습니다. 그렇다면 왜 인간만 유독 이렇게나 많은 지방층을 가지고 태어났어야 했는지 궁금해지네요. 이렇게나 많은 지방은 좁은 산도를 나오는데 분명 불리함으로 작용했을텐데요... 결국 21장에서는 신생아의 지방은 신생아의 생존에만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 아이가 살아남고 건강해지며 충분한 신경학적 발달을 향유할 것이라고 홍보하며 자신에게 내기를 거는 것이 얼마나 탁월한 선택인지를 알린다고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신생아는 자신의 생존확률을 높이기 위해 어머니의 지대로부터 할 수 있는한 영양분을 빼앗아(?) 자신의 지방을 축적하는 것이었군요... 이 문제는 어머니의 관점이 아닌 아기의 관점으로 이동이 탁월한 설명력을 갖게 되는 원인이 되는 것 같습니다. 관점의 변화가 이렇게나 중요하군요..

오구오구
뒤에 지방이야기가 나오는군요. 이번 건강검진에서 엄청난 지방율이 확인되어서 ㅠ 기대됩니다 ㅠ

롱기누스
21장에서 영아의 지방이 결국 어머니의 관점에서 보면 아이가 나중에 잘 성장 - 두뇌를 포함하여 모든 장기나 신체가 - 하리라는 믿음을 주는 동시에 내가 이 만큼 투자했다는 것을 눈으로 확증시켜주는 것이라는 해석이 무릎을 탁 치게 되네요... 이것도 결국 투자한 비용을 고려하면 기대할 수 있는 편익이 계산된다는 관점에서 매우 재미있는 해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롱기누스
아기가 필요로 하는 것을 알게 되어도 어머니를 노예로 만들 필요는 없다.
『어머니의 탄생 - 모성, 여성, 그리고 가족의 기원과 진화』 p.768., 세라 블래퍼 허디 지음, 황희선 옮김
문장모음 보기

롱기누스
세라 블래퍼가 에드워드 윌슨을 까는(?) 부분이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일개 곤충학자가 생물학에 대해 벼락치기 공부를 하고 쓴 주장 "낮 동안 여성과 아이는 주거 지역에 남아 있고, 남성은 사냥감 또는 그의 상징적 등가물인 물물교환과 화폐를 통한 거래를 하러 나간다." 에 대해 통렬하게 비판하네요. 수렵-체집 사회의 여성이 아기를 대리고 주거지나 근처에만 머물었던 것이 아니라 연간 2,400킬로미터 이동하는 예를 들면서 윌슨의 그 같은 주장이 너무나도 터무니 없었음에도 발표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 통용되고 있는 것은 '세계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기대와 일치했기 때문이다'라고 일갈합니다. 최재천 교수님께서 이 문장을 보시면 뭐라 하실지 궁금해지네요. ㅎㅎ 퓰리처상 2회의 수상자이며 세계적인 명성에 결코 주눅들지 않고 명료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모습이 당차고 매력적입니다.

롱기누스
윈스턴 처칠이 이런 말을 했나요?
"과학은 대안을 제외하면 진실에 도달하는 최악의 방법이다."
처칠을 다시보게 되네요... ㅎㅎㅎ

롱기누스
23장을 읽으면서 Ishi 라는 아메키라 원주민이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번역본을 찾아보닌 없었는데, 원서라도 읽고 싶은 마음이 들더군요. 혈육도 없고 동료도 없이 고립된 상황에서도 매우 다른 인종과 시대에 속하는 사람들의 감정에 대해 진심어린 관심을 드러내는 것으로 특징지어지는 감정을 통해 낯선 세계에 적응했다고 합니다. 이 영속적인 고귀함의 근원은 그 자신의 내면화된 도덕적 가치, 옳은 행동과 그른 행동에 대한 개인적 기준이었다고 세라 블래퍼는 말하고 있네요.. 아울러 이러한 개인적 기준을 형성하게 만든 것은 자신의 행복한 삶에 헌신하는 혈족 집단에 대한 초기의 소속감이라고 주장합니다. 제가 느끼기에는 약간은 논리적 비약이 느껴지기도 하는 부분입니다. Ishi 라는 사람에 대한 추가적인 설명이 없이 너무 크고 담대한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롱기누스
“ 여기에 내가 생각하기에 어머니의 자유에 대한 볼비의 제1법칙, 어머니들을 위한 중요한 실천적 조언이 담겨있다. 아이에게 다른 사람과 놀기 위해 당신을 떠나기를 원하는 사람이 바로 아이 자신이라는 점을 확신시키고, 반대의 경우는 하지 말라는 것이다.
아... 아이에게 이를 확신시키는 것이 가능한가? 가능하다고 하더라고, 그런 대행 부모를 찾는 것이 쉬울까? 그래서 모든 문제가 발생하나보다...
아울러 이렇게 또 말한다.
"불안한 아기의 반응은 해로운 영향을 끼치는 대행 어머니에게 아기를 넘겨주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 아니다. 아기에게 자신을 버리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는 점을 확신시키는 데 실패한 결과로 생겨난 것이다.
어린이집 그렇게도 가기 싫어하던 아들을 생각하면.... 만감이 교차하네요... 아들에게 자신을 버릴 수 없다는 확신을 심어주지 못한 부모의 책임을 묻고 있는 것 같아서요... ”
『어머니의 탄생 - 모성, 여성, 그리고 가족의 기원과 진화』 세라 블래퍼 허디 지음, 황희선 옮김
문장모음 보기

롱기누스
저는 오늘 24장을 마칩니다. 3장을 들어서서는 도저히 중간에 멈추지 못하겠더라구요. @YG 덕분에 이제는 왠만한 두께에는 놀라지 않는 심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엘버트 허시만, 행동에 이어 어머니 대자연 까지... 독서의 지평을 한단계 넓혀준 @YG 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24장은 결국 양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스스로 느끼기에 자신은 절대 버려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주는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아기와 부모간의 결속을 강하게 다지고, 반드시 어머니가 아니더라도, 대행 어머니 또는 아버지 또는 대행 아버지 또는 대행 부모(들)이라고 하더라도 '결코 널 포기하지 않을꺼야'라는 확신을 심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네요. 다만, 한 가지 개인적으로 걸리는 것은 이런 확신을 어떻게 심어줄 수 있을까 하는 부부입니다. 다시 말해 부모와 떨어질 때, 울거나 때 쓰는 아이들이 있다면 그것은 부모가 아이에게 앞서 언급한 확신을 주지 못했기 때문으로 단정할 수 있는 것인가? 반대로 아이와 떨어질 때, 울거나 보채지 않는다고 하여 그 부모가 아이에게 확신을 준 것으로 결론 지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결국 저는 개인적으로 세라 플래퍼의 주장에는 동의하지만, 그것의 검증에는 쉽게 동의를 누를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비록 성년이 지났지만 아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네요
"사랑하는 아들아! 온 세계에 맞서 너를 안전하게 지킬 것이다"

오구오구
어머, 완독 축하드립니다!!!!
밥심
완독 축하드립니다. 저는 21장까지 읽었는데 그동안 제가 임신과 출산이라는 이벤트에 대해 너무 무지했다는 자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너무 안이하게 생각했었던 것 같아요. 수십 년 전 마구 울어대는 갓난 아들을 요람에 눕혀두고 방을 나와버렸던 순간이 하필 기억나기도 했구요. 아들은 그 때 어떤 공포를 느꼈던 것일까… 오늘 내일 중으로 완독 예정입니다.

연해
우와, 세상에! 벌써 완주하셨군요! 축하드립니다:)
저는 오늘 오전에 18장을 읽었어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롱기누스 님 말씀처럼 3부로 접어드니 훨씬 더 흥미로운 내용이 많은 것 같습니다.

YG
@롱기누스 님, 제일 먼저 완독하신 것 축하합니다. 벽돌 책에 내성이 생긴 것도 축하드리고요. 언급하신 세 권을 완독하셨으니 이제 무서운 벽돌 책이 없는!!! :)
한참 육아 후배 같지만, 세라 허디의 주장을 염두에 두면 영아기와 육아기의 경험(5세 이하)이 진짜 중요해 보여요. 그 시점에 어머니든 아버지든 혹은 대행 부모와 애착('결코 널 포기하지 않을 거야!')을 어떻게 형성할지가 관건으로 보입니다.
이건 현실의 국가 육아 정책과도 연관이 되는데요. (1) 지금처럼 만 6개월부터 보육 시설에 아이를 맡기는 방향의 양육이 최선인지. (2) 오히려 엄마나 아빠, 혹은 둘 다와 아이가 오랫동안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육아 정책이 짜여야 하는 게 아닌지. (3) (2)와 관련해서 경제적 인센티브, 특히 여성의 경우에는 경력 단절과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복지-노동 정책과 연계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등의 고민이 훨씬 필요해 보여요.
저 같은 경우는 운이 좋게도 엄마가 3년간 육아 휴직을 할 수 있었고, 저도 그 기간에 1년 조금 넘게 아이랑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었거든요. 도움을 주시는 대행 부모도 계셨고요. 그렇게 좋은 조건이었음에도 아이 키우는 게 쉽지는 않더라고요. 그래도, 그런 덕분에 10대가 된 현재까지 아이가 애착 형성에 실패했다고 느껴지는 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
원래 오늘(5월 22일) 읽을 부분의 마지막에 아래와 같은 인용구가 나옵니다. 사실, 육아를 경험해본 아버지로서 제가 저출산 전도사('아이, 함부로 낳지 마라. 아이는 절대로 혼자서 크지 않는다.')가 된 이유와 일맥상통해서 고개를 끄덕였던 대목이었습니다.

YG
“ 저명한 여성 과학자이며 아동의 젠더 정체성 발달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전문가인, (…) 이 비범할 만큼 양육적인 여성은 왜 자신이 아이를 절대 갖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렸는지를 고백했다. 아이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
『어머니의 탄생 - 모성, 여성, 그리고 가족의 기원과 진화』 16장 631쪽, 세라 블래퍼 허디 지음, 황희선 옮김
문장모음 보기

stella15
저는 최하 2년까지라고 들었는데 저자는 5년이라고 보고 있군요. 저도 비슷한 생각이 들긴했습니다. 6개월부터 보육시설행. 그 보육사들이 얼마나 아이에게 애정을 갖느냐가 관건이겠죠.
근데 같이 있는다고해서 엄마와 아기 둘 다 행복할 수 있는가 그것도 생각해 봐야할 것 같습니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는데.
저같은 경우 엄니가 전업주부셔서 그게 참 양가감정을 갖게하더라고요. 어떤 땐 어딜 갔다 들어와도 엄마가 집에 있다는 게 넘 안정감을 갖게 하다가도 같이있으면 감시받는 것 같아 불편하고. 결국 양육의 양이 아니라 질일텐데 쉽지 않아요.

YG
@stella15 네, 맞는 말씀이네요. 제가 맨날 욕 먹었어요. 같이 있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열심히 놀아주라고!!! 다시 저출산 전도사로 돌아가는데, 열심히 키울 자신이 없으면 차라리 안 낳는 게 낫다는 극단적인 생각으로. 물론 아이가 태어나서 키워보기 전에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지만요.

꽃의요정
진짜진짜 공감해요. 아마도 저와 남편이 아이를 키우기에는 둘 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 것도 문제인 것 같아요. 아이를 위해 집중해서 시간을 다 쓰는 부모님들을 볼 때마다 '역시 한 명만 낳길 잘했어. 나에겐 없는 재능이야'라는 걸 많이 느끼거든요. 저도 아이랑 놀아줄 줄 몰라 남편한테 엄청 혼납니다. 하지만, 아이가 좋아하는 건 농구와 게임인데, 이게 또 우연찮게 제가 둘다에 재능이 없네요 캬캬캬

stella15
이런 말씀 드려도 될지 모르겠지만, @siouxsie 님 귀여우십니다. ㅎㅎ
세상에 원래 부모는 없습니다. 그래도 그 아이 지금 잘 자라고 있지 않나요? 그 아이 나중에 커서 부모님과 놀아 줄 겁니다. ^^

꽃의요정
뱃속에서부터 우량아 지금도 우량아...불곰처럼(성격도) 아주 잘 크고 있습니다~
작성
게시판
글타래
화제 모음
지정된 화제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