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2. <어머니의 탄생>

D-29
본성(nature)은 양육(nurture)와 완전히 분리될 수 없다. 하지만, 인간 상상력의 어떤 부분이 세계를 그런 식으로 양분해서 보게 하는 경향이 있다. 본성 대 양육, 본유적인 것 또는 획득된 것. 존재하지도 않는 이런 이분법이 수십 년에 걸쳐 지속되는 까닭은 참 모호하다. 특정 유전자가 없는 어미 생쥐는 새끼를 돌볼 수 없다는 사실이 최근 발견되었다. 이 발견은 ‘어미 역할의 핵심적인 본질’을 담당하는 유전자(마치 그러한 유전자가 있다면 있고 없다면 없을 것이라는 식으로)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들을 이끌어 냈다. “양육 본성”(헤드라인의 표현을 빌리면)은 본유적이지는 않을지 몰라도, 본성 대 양육과 같은 말끔한 이항 대립으로 정보를 조직하려는 욕구는 본유적일 수 있다.
어머니의 탄생 - 모성, 여성, 그리고 가족의 기원과 진화 7장 247쪽, 세라 블래퍼 허디 지음, 황희선 옮김
그렇지 않다. 한 개의 유전자가 할 수 있는 것은 특정 단백질을 암호화하는 것이 전부다. 분자로부터 복합적인 행동으로 가는 과정은 훨씬 복잡하고 역동적이다. 포유류에서는 그 과정이 사회, 환경 조건이나 외부 자극(새끼의 존재 등)에 달려 있는 반응에 민감하고 어미 자신의 과거 경험에 의해 변경된다. 이는 포스B 유전자가 어미에게 어미 노릇을 유발한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포스B 유전자의 부재는 호르몬에 의해 자극된 암컷에게 모성 행동을 유발하는 일련의 반응들 속에서 필수적인 사건 하나가 일어나지 않았음을 의미할 뿐이다. 보물찾기에 나섰는데 단 한 개의 단서가 부족한 것과 마찬가지다.
어머니의 탄생 - 모성, 여성, 그리고 가족의 기원과 진화 7장 249쪽, 세라 블래퍼 허디 지음, 황희선 옮김
이탈리아 사회 생물학자인 스테파노 파르미지아니(Stefano Parmigiani)는 다른 설명을 제안했다. 젖을 빠는 새끼를 데리고 있는 어미는 지켜 내기 위해 맞서야 할 특별한 적이 있다. 동종, 특히 그 자신의 종에 속하는 영아 살해자 수컷들(infanticidal males)이다.
어머니의 탄생 - 모성, 여성, 그리고 가족의 기원과 진화 7장 253쪽, 세라 블래퍼 허디 지음, 황희선 옮김
전 세계 사람들은 시카고의 브룩필드 동물원(Brookfield Zoo)에 있는 고릴라 어미인 빈티 주아(Binti Zua)가 우리로 떨어진 작은 소년을 부드럽게 감싸 올려 주며 이타성에 매혹되며 경이감을 느꼈다. (…) 이 선한 영장류 사마리아인은 (분명히 사실이 아니지만) “인간적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간이어야만 하는가?”라는 표제 아래 열띤 철학 논쟁의 불꽃을 피웠다.
어머니의 탄생 - 모성, 여성, 그리고 가족의 기원과 진화 7장 260쪽, 세라 블래퍼 허디 지음, 황희선 옮김
260쪽 고릴라 빈티 주아 일화는 이번에 처음 들으신 분들도 있으실 텐데요. 당시 뉴스 영상을 링크로 보여드립니다. (저도 다른 책 읽으면서 이 사례 접하고 곧바로 글 쓰면서 한 번 써먹었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puFCuMac0Vk
빈티 주아는 여전히 생존해 있는 듯하고, 고릴라가 구한 소년은 당연히 당시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 채 성장했다고 합니다. :)
와, 소름 돋네요. 고릴라라서 가능했을까요? 지능이 높으니. 근데 왜 소년은 자신이 고릴라가 구해 준 걸 기억하지 못하고 성장한 걸까요? 나중에라도 알아야 하는 거 아닌가? 누구에 의해서라도...만일 저라면 수의사가 됐을 것 같아요.
예전에 보았던 영상인데, 다시봐도 감동입니다...
와아 감사합니다. 이런 귀한 자료를..
이 사실 때문에 나는 (산후 우울증에 대한) 세 번째 진화적 가설을 고려하게 된다. 이 가설은 이탈리아의 정신과 의사 I. 마스트로디아코모(I. Mastrodiacomo)와 그의 동료들이 처음으로 제안했다. 이들의 설명은 인간이 진화했던 과거 10만 년에 반드시 기원을 둘 필요가 없는, 보다 오래된 포유류 반응에 의존한다. 이 가설은 보다 넓은 층의 어머니들(‘새로운’ 뇌뿐만 아니라 ‘오래된’ 뇌 역시 지니고 있는)에게 적용된다. “수유 공격성 흔적” 가설이라는 말로 부를 수 있는 이 세 번째 가설에 따르면, 산후 우울증은 같은 종에 속하는 동종 구성원들이나 포식자들로부터 갓난이를 보호할 필요가 있는 어머니들에게 적응적이었던 특성, 즉 타인에 대한 강한 과민성(intolerance)의 내분비적 부산물이나 잔존물이다.
어머니의 탄생 - 모성, 여성, 그리고 가족의 기원과 진화 7장 281쪽, 세라 블래퍼 허디 지음, 황희선 옮김
신기하게도 프로락틴은 영아를 방어할 때의 공격성이나 새들이 포식자를 따돌리기 위해 허위 정보를 퍼트리는 전술을 사용할 때와 같이, 양육적인 행동보다는 공격적이고 방어적인 형태에 가까운 행동의 맥락에서 비정상적으로 높게 나타난다.
어머니의 탄생 - 모성, 여성, 그리고 가족의 기원과 진화 세라 블래퍼 허디 지음, 황희선 옮김
높은 프로락틴 수치는 어미가 젖을 분비할 때, 그리고 대행 부모가 그저 돕는 행동을 할 때 어떻게든 개입하고 있다. 프로락틴은 다른 호르몬과 상호 작용하는 방식으로 개입하며 주모자보다는 공범자 역할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양육 행동의 개입은 그 다음 차례로 뇌하수체가 더 많은 프로락틴을 분비하게 하는 것처럼 보인다(엘리엇의 표현을 빌리면 “우리가 우리의 행동을 결정하는 만큼, 우리의 행동이 우리 자신을 결정한다.”).
어머니의 탄생 - 모성, 여성, 그리고 가족의 기원과 진화 세라 블래퍼 허디 지음, 황희선 옮김
좋은 아이디어 중에 정말로 새로운 것은 별로 없다. 새로운 분자는 훨씬 더 적다. 자연선택은 정확한 돌연변이를 위해 수이온(eon, 10억 년에 해당하는 긴 시간. — 옮긴이)을 필요로 하는 새롭고 팔팔한 생산물에 의지하기보다는 이미 저장고에 있어 사용 가능한 것에 기댄다. 하지만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 작용하는 수억 년 이상의 선택 이후에는 포유류 어미가 생산하는 조제물은 마치 설계된 것처럼 양자 모두에게 완벽하게 들어맞는다. 본래의 수유 조리법은 남겨진 음식을 마구 뒤섞은 것이라는 사실을 잊기 쉽다.
어머니의 탄생 - 모성, 여성, 그리고 가족의 기원과 진화 세라 블래퍼 허디 지음, 황희선 옮김
“행동을 야기하는” 것은 신경 회로다. 호르몬은 “하나의 행동 특질이 적절한 상황 속에서 발현되는 비율에 영향을” 줄 뿐이다.
어머니의 탄생 - 모성, 여성, 그리고 가족의 기원과 진화 세라 블래퍼 허디 지음, 황희선 옮김
@stella15 세라 허디의 중요한 주장 가운데 하나가 깨물면 아픈 손가락 있다는 거잖아요. 실제로도 그런 것 같기도 하고요.ㅠ. 특히 아버지 남매들, 어머니 남매들에게 할아버지-할머니들이 하셨던 걸 생각해보면, 저도 허디 얘기가 맞는 것 같습니다.
ㅎㅎ 그러니까. 솔직히 저는 울엄마의 좋게 말하면 감정의 소통창구. 나쁘게 말하면 오물통이죠. ㅋ 아, 맞나? 그 말이 그 말이죠? ㅎㅎ
@stella15 제가 어머니와의 깊은 사연을 알지 못해서 말씀드리기 주저가 됩니다만, 그래도 어머니께서 애틋함과 고마움을 분명히 가지고 계실 겁니다. 괜히 생각나는 다른 얘기를 덧붙이면, 며칠 전에 『2025 제16회 젊은작가상 수상 작품집』(문학동네)을 뒤적이다가 백온유 작가님의 단편을 읽었어요. 그때도 괜히 읽고서 마음이 안 좋았습니다. 자기한테 마음 쓰는 딸과 손녀한테는 냉담하고 "엄마, 엄마" 하면서 살랑거리는 젊은 요양 보호사한테는 정 주다가 뒤통수 맞는 할머니의 씁쓸한 사연이었는데요;;;
2025 제16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한국문학의 새로운 미래를 함께하고자 2010년 제정된 젊은작가상이 올해로 어느덧 16회를 맞이했다. 데뷔 십 년 이내의 젊은 작가들이 한 해 동안 발표한 소설 가운데, 지금 여기에서 창발하는 문제의식을 가장 예리한 시선으로 포착해낸 작품에 주목하고자 한다.
요즘 안그래도 고령화 사회에 저희 부모님들이 다 연세가 들어가시고 저도 얼마전 남편도 부모님도 멀리 있어서 한달 입원하면서 간병인 서비스의 도움을 받아서 이런 돌봄노동에 대해 관심이 늘었어요. 가족의 의미와 돌봄노동에 대한 더 사회적 논의와 제도적 지원이 더 필요해지는 것 같아요.
엇! 저도 지난 주말에 이 책 읽었는데(찌찌뽕...), '반의반의 반' 결말이 그렇게 되는군요. 뭔가 찜찜한 결말이라 기분이 썩 유쾌하지 않았는데 역시 젊은 요양 보호사가... 근데 제가 좀 순진했나봐요. 혼자 계속 '그래서 범인은 누구지?'싶었거든요.
이번달에 젊작상 단편 하나씩 읽을 예정이었는데. 백온유 작가님 것을 먼저 읽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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