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의 이미지에 대한 자발적 복종. 우리는 그 이미지와 일치하지 않지만 그것을 실현하려 애쓴다.
『나르시시즘의 고통 - 우리는 왜 경쟁적인 사회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는가』 p.53, 이졸데 카림 지음, 신동화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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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시즘'에 대한 설명으로 당연하게 프로이트와 라캉의 정신분석학이 바탕이 된다. 이해하기로는 거울에 비친 자신은, 실제로 '나'가 아닌 나를 담은 외부 이미지인 동시에 자신에 대한 사랑의 대상이 된다. 현실의 자아가 아닌 사회적으로 규정된 이상적인 기준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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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키소스는 스스로가 이상이거나 이상이 되는 대신에 이상을 가지고 싶어 해서 파멸에 이른다.
『나르시시즘의 고통 - 우리는 왜 경쟁적인 사회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는가』 p.58, 이졸데 카림 지음, 신동화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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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이상이 되어라!
『나르시시즘의 고통 - 우리는 왜 경쟁적인 사회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는가』 이졸데 카림 지음, 신동화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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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에서 사람들은 개별적인 사업가가 되도록 추구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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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권위의 목소리와 말을 통해서. 이것은 말 그대로 부름이다. 반면 자아이상 호명은 앞서 보았듯이 주체에게 이미지를 제시한다.
『나르시시즘의 고통 - 우리는 왜 경쟁적인 사회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는가』 p.65, 이졸데 카림 지음, 신동화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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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자아의 개념은 이전의 질서 전체주의, 가부장 제도를 생각하면 쉽다. 이때 개인은 권위에 의해 제한 받았다.
그와 달리 자아이상은 '더 나은 나'라는 개인의 비대화를 추구한다. 남이 아니라 과거의 나와 경쟁하고, 인스타에 충분히 잔시될 수 있는 갓생을 살며 소진되는 청년의 삶과 연결된다.
폭력의 위상학폭력의 구조, 역사, 정치, 심리, 가해자를 특정하기 어려운 시스템의 폭력까지, 오늘의 세계를 지배하는 폭력에 관한 분석을 담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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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신자유주의 관점에서 개인은 거대한 경제 기계에 매이는 대신 오히려 자신을 활용해야 한다. 자기 인적 자본의 기업가로서.
『나르시시즘의 고통 - 우리는 왜 경쟁적인 사회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는가』 이졸데 카림 지음, 신동화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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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동력은 자기 이익의 계산 이상을 필요로 한다. 자기 동력은 오히려 부름을 필요로 하며, 신자유주의는 이 부름을 이기심의 냉철함 속에 숨기려 한다.
『나르시시즘의 고통 - 우리는 왜 경쟁적인 사회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는가』 p.116, 이졸데 카림 지음, 신동화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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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경쟁은 '고유가치(이제부터 따옴표가 붙는다)' 속에서 말하자면 자신을 위장한다.
『나르시시즘의 고통 - 우리는 왜 경쟁적인 사회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는가』 p.145, 이졸데 카림 지음, 신동화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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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 정말 고유한 가치는 유일무이해서 비교가 불가한 것이다. 그러나 차별점, 그러니까 특수함은 상대와의 비교를 통해 드러난다. 경쟁을 통해 더 낫거나 혹은 최고이거나. 이런 경쟁에서 승리한 후 독점적인 지위를 가지게 되면, 고유한 가치가 있어 비교가 불가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신화가 되고, 세속이 닿을 수 없는 성스러운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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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에서 벗어나는 것, 고유 가치가 되는 것, 이것이 경쟁의 정점이다.
『나르시시즘의 고통 - 우리는 왜 경쟁적인 사회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는가』 p.147, 이졸데 카림 지음, 신동화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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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무이함은 우리가 이 교환 가능성을 살아가는 방식이다.
『나르시시즘의 고통 - 우리는 왜 경쟁적인 사회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는가』 p.148, 이졸데 카림 지음, 신동화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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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쉽게 대체되는, 경쟁적인 사회에서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나는 특별하다고 다독여야 한다. 취향이니까 존중해달라고 경쟁에서 벗어날 숨 구멍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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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 관심은 따라서 우리가 이상에 '부합'한다는 외적 승인이다.
『나르시시즘의 고통 - 우리는 왜 경쟁적인 사회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는가』 p.174, 이졸데 카림 지음, 신동화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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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시즘에서 핵심은 어떤 종류의 자아실현도 아니며 자기를-넘어-가기이다.
『나르시시즘의 고통 - 우리는 왜 경쟁적인 사회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는가』 p.177, 이졸데 카림 지음, 신동화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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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주의'의 면모도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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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은 이상자아에 도달했다는 것에 대한 인정, 인정은 타자(관객)을 통해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타자는 실제 타자가 아니라 자신과 관계된 외부일뿐이다. 타자의 확장성을 이야기했던 <사물의 소멸>이 또 한번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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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 논리들을 따라가는 게 무척 철학적이었다면, 셀카라는 예시를 통해 나르시시즘이 확실히 이해된다.
인생샷 뒤의 여자들 - 피드 안팎에서 마주한 얼굴언제 어디서든 핸드폰을 들고 셀카를 찍고 피드를 확인하는 여성들. 그들을 향한 날 선 비난에 의문을 품고, 열두 명의 여성과 함께 사진 안팎에 얽힌 솔직한 이야기를 풀어낸 책이다.
빈틈없이 자연스럽게 - 좋아서 찍는 내 사진의 즐거움과 불안, 욕망‘나’를 찍는 동시대 여성들과의 심층 인터뷰를 바탕으로 여성과 사진 기술의 관계를 탐색하는 문화비평서이자, 촬영과 재현의 대상에서 주체로 변모한 여성들의 위치를 보다 거시적인 맥락 속에서 포착하고자 한 시도의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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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의 박수를 받으며 내가 이 무대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렇게 본래의 나르시시즘, 외부가 외부임을 인지하지 못해 충만한 자아만이 있던 그 순긴을 회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