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

D-29
작가는 관심 안 가는 게 아니라 관심 가는 것에 대해서만 써도 뭔가 큰 깨달음을 얻는다.
여자는 나이가 들면서 체념하고 하나하나 포기해 간다.
마광수 소설은 하루키 소설과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사장님 역 아이센터에서, 승객이 다가와 뭔가 물어볼 때 ‘사장님’이라고 부른다. “아니, 역무원한테 사장님이라니?” 조금 어이가 없고 황당하단 생각이 들지만 그걸 굳이 입 밖으로 내지는 않는다. 그러나 사장이 아니기 때문에 기분이 썩 좋을 리는 만무하다. 식당에 가서 밥 먹을 때도 직원이 ‘사장님’이라고 말을 건다. 아니 내가 누군 줄 알고 사장이라고 하나. 애들 가르치는 선생일 수도, 국정원 요원일 수도, 소방관일 수도 있는데? 그 말을 들으면서 혼잣말로, “저, 사장 아닌데요” 하고 그냥 말지만, “손님! 하고 부르면 좋을 것을 왜 사장님이라고 할까?” 참 의아하다. 생각해 보면 우선 자영업자가 많아 그런 것일 수도 있고, 주로 사장끼리 악수하며 거래하고 대화를 많이 해 사장이란 말이 입에 붙어 그럴 수도 있다. 그보단, 말엔 자기 바람이 들어가 있다고 보는데, 자기는 지금 사장이며 앞으로도 사장일 거고 일반 직원이라면 사장이 되고 싶어, 그게 특별히 의식하지 않고도 말로 나왔을 것이리라. 카톡에서도 가벼운 인사말이나 축하의 말, 어린 사람에 대한 덕담을 들어도 상대방의 입장이나 바람보단 자기의 희망이 그 말속에 들어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많은 사람이 사업과 장차 사장의 꿈을 품고 있어 그게 입으로 나온 것이리라. 그래서 아무에게나 사장님이란 호칭을 붙이는 것 같다. 말엔 자기 소망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자기가 관심 갖고 있는 것, 장차 하고 싶어 하는 것이 그의 말속에 은연중 들어가 있다. 관심이 없거나 싫은 것은, 하다못해 남에게 해주는 가벼운 덕담에라도 집어넣지 않고 자기가 진심인 것을 굳이 집어넣게 되어 있다. “돈 많이 벌어서 대박 나야지.” “열심히 공부해. 장차 판검사, 의사 돼야지!” 하는 건, 자기 바람이지 상대방 바람이 아니다. “자기가 되고 싶은 것을, 왜 나더러 되라나?” 상대를 알려면 그가 무심히 던지는 말을 들어보면 된다. 그와 잘 지내려면 그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고, 그냥저냥 지내려면 가벼운 반응만 하면 된다. 앞으로 상종도 하기 싫은 사람이라면 그가 가볍게 하는 말을 듣고 “아, 이 인간은 이것에 관심이 많구나!” 하고 그것에 대해 안 좋은, 부정적인 소릴 자꾸 지껄이면 그와 자연히 멀어지게 되어 있다. 한국은 자영업자가 많아 자기가 되고 싶은 ’사장님‘이 입에 붙었다. 너도나도 모두 사장되길 원한다.
사람들이 늘 생각은 하고 있지만 너무 노골적이라 잘 안 표현하는 것을 굳이 표현한다.
실존 실존주의(實存主義),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이런 말이 있는데 여기 의자에서 의자는 본질이고, 나무나 못 등은 실존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형태로 바뀌어도 그 본래가 가지고 있는 고유하고 유일한 속성을 말한다고도 할 수 있다. 인류를 논할 때, 나는 그 인류의 개체(Component) 중 하나에 불과하지만 동시에 나는,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으로서 이 세상에서 딱 하나 존재하는, 나와 같은 존재는 절대로 유비쿼터스(Ubiquitous)로 또 있을 수 없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실존(Existence)은 이제 이전보다 더 자주 그리고 쉽게 일상에서 쓰이기도 한다. 실존이란 말이 처음 탄생했을 때보다도 더 흔하게 쓰여 그럴 것이다. 언어는 본래 의미에서 더 확장되어 쓰이는 경우도 많으니까. 실생활에서 실존이 쓰일 땐 고독한 실존이나 허무한 실존, 뭐 이런 식으로 쓰이는 것 같기도 하다. 이땐 ‘있는 그대로의 나’나 ‘객관적인 위치의 나’를 의미하는 것 같다. 못났어도 나이고, 잘났어도 나인 것이다. 나는 어디 안 간다. 내가 나를 아니라고 우기거나 버릴 수는 없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 나를 껴안고 가야 할 운명이다. 잘난 사람 잘난 대로 살고, 못난 사람 못난 대로 사는 것이다. 그러니까 요즘 말로 팩폭(팩트 폭력)을 제대로 직면하는 것이다. 학수고대(鶴首苦待)하던 시험에 당당히 합격해 날아갈 듯이 기뻐, 지금 이 기분이라면 못할 것이 없을 것 같다. 연예인으로서 톱스타 반열에 올라 세상이 다 우습게 보일 때 결국 사람은 반드시 정상에서 내려올 때가 있는 법,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듯이 좀 더 세상에 겸허해야 한다는 의미의 실존을 의미한다고도 할 수 있다. 결국 그래봐야 인간인 이상, 태어나고 자라고 병들고 고생하다 결국 죽는 건 다 매한가지라는, 누구나 별수 없다는 것을 알면, 인간과 그 삶이 덧없고 부질없는, 인간 실존을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 반드시 오고야 만다는 것. 인간으로서 가질 수밖에 없는 허무로서의 실존이다. 뛰어보았자 결국 부처님 손바닥이다. 인간은 존재 자체가 근원적 허무(虛無)로서 알고 보면 모두가 불쌍한 존재다. 그렇지만 서도, 그 나름의 묘미(妙味)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알고 보면, 아무 의미 없이 존재하는 것은 없다. 실존은 한 인간이 유일무이(唯一無二)하면서 동시에 별것 아니라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주체적이지만 한편 찰나적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하나의 생명이 여기에 잠시 있었노라며 힘차게 외치는 것. 유일체(唯一體)는 이상이지만 보잘것없는 건 현실이다. 이처럼 인간은 현실이라는 땅을 짚고, 이상(理想)의 하늘을 우러러야 한다. 허무를 부여잡고 희미한 불꽃을 향해 나아가야만 하는 하잘것없는 존엄한 존재다. 이래야 인간의 실존(實存)이 완성된다. 실존 나를 대신할 건 없다. (이상) 그래봐야 일순간의 반짝임에 불과하다. (현실)
나는 뼈대 있고 잘나가는 집안에 안 태어난 게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그 안에 갇혀 갇힌 줄도 모르고 말도 맘대로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현실이 지옥의 삶일 것이다.
술집 여자가 대학생처럼 청순하게 다니고 대학생들이 술집 여자처럼 하고 다닌다.
글쓰기에 안성맞춤 나는 공기업 직장에 다닌다. 그리고 마누라도 있고 아이들도 있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성격이 모났다. 예사 성격은 아니다. 그런대로 보통 환경에서지만 삐뚤어지고 배배 꼬인 성정(性情)을 타고나 글을 쓰는 것 같다. 내가 보기엔 글쓰기에 완벽한 조합이다. 글쓰기에, 현실이 받쳐주고, 꼬인 성격을 가져 이상적이다.
마치 마약을 먹은 것처럼 글이 써질 때가 있다.
6.25는 별 날이 아니었다 나는 박정희한테서 세뇌당해 6.25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중요한 날인 줄 알았다. 광복절보다 더 중요한 날인 줄 알았다. 그날을 잊을 수가 없고 그 노래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어릴 적 받은 영향은 이렇게 무섭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그날은 창피한 날이다. 같은 민족, 같은 형제끼리 서로 죽인 아주 수치스러운 날이었다. 빨리 잊을수록 좋다. 그러나 잊지 못하게 박정희는 우릴 세뇌시키고 안가에서 술을 마시다 심복의 총에 맞아 죽었다.
분위기에 맞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도 중요하다.
TV 조선에서 한창 밝게 자라야 할 5살 어린이에게 인생의 고달픔이 담긴 트로트를 부르게 하는 게 말이 되나. 그걸 들으면 늙은 것들은 또 감탄을 해요.
일년 농사 지은 걸 여자에게 빠져 그 여자한테 다 바치는 경우도 있다.
요즘 이대남들은 생각은 없고 헬스만 해서 몸이 꼭 짐승처럼 우람하기만 하고 둔해 더 생각이 없는 짐승처럼 보인다. 저런 것들은 저울로 달아 몸무게가 오버면 돈을 더 받아야 한다. 면적을 너무 많이 차지한다.
남자에게 토끼라며 놀리는, 아무렇지 않게 성희롱하는 여자들이 많다. 드라마에서도 많이 볼 수 있다. 뭔가 제재를 가해야 한다.
감칠맛 자주 듣고 쓰는 말인데도 그 뜻을 정확히 모르는 단어가 있는데, ‘감칠맛’이 그렇다. 맛의 진가를 처음엔 모르겠다가 나중에 입안에 서서히 감도는 그런 맛을 말하는 건가. 아니면 금방 사라지는 맛이 아니라 그 여운이 입안에 오래 남는 그런 맛인가. 생전 처음 만난 맛인데도, 절대 잊을 수 없는 그런 맛을 말하는 건가. 그래서 기어이 찾아가 다시 맛보는 그런 맛. 직접 앞에 없지만 먹방에서 그 음식을 보고 당장 나도 해 먹고 싶은 그런 맛인가. 땀 뻘뻘 흘려가며 “아, 이러면 살찌는데.” 하면서도 숟갈이 자꾸 가는, 보글보글 끓는 곱창전골 같은 칼칼한 맛. 아니면 얕지 않고, 오래 삭힌 홍어나 묵은지처럼 은은하면서도 톡 쏘는, 깊이 있는 그런 맛인가. 뱉거나 빨리 삼켜버리고 싶은 그런 맛이 아니라 입안에 음식을 오래도록 머무르게 해 더 음미하고 싶은 그런 맛인가. 입에 착 달라붙는 맛. 탕에 들어가 “어, 시원하다!” 소리가 절로 나올 나이가 된, 애들은 모르는 진정한 어른의 맛. 고춧가루 팍팍 넣어 속이 확 풀리는, 황태 콩나물해장국 같이 구수하고 시원한 맛. 나와 세월을 같이한 그 맛. 간고등어 냄비 바닥에 붙어 조금 탄 짭조름한 감자, 송송 썬 풋고추가 들어가 매콤한 된장찌개와 밥에 찐 가지를 넣은 보리 비빔밥, 금방 해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큼지막하게 썰어놓은 고소한 부두. 감방 생활하고 나온 건 아니지만, 나는 앉은 자리에서 이런 두부, 세 모를 먹을 수 있다. 이런 게 내겐, 감칠맛 당기게 하는 한국 음식들이다. 자극적이지 않지만, 맛이 풍부해 이젠 인(燐)이 박혀 도저히 끊을 수 없는 맛. 아니면 어머니가 늘 해주던 맛이라 외국에 나가 그 맛이 그리운 그런 맛이나 식욕이 안 생기다가 다시 식욕을 당기게 하는 그런 맛을 말하는 건가. 먹으면서 보고 싶은, 아끼는 사람이 생각나는 그런 맛. 격하게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고, 그리하여 “이 감칠맛 나는 음식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며 갑자기 코끝이 찡해오고 눈물이 핑 도는 그런 맛. ‘감칠맛’의 진짜 의미가 지금 말한 맛 중에 하나라도 있으면 좋겠다. 아니, 다였으면 좋겠다.
작가가 어떤 상황에서 느낀 것을 그냥 죽 나열만 해도 공감을 얻어 많이 팔리기도 한다. 이렇게 책을 파는 작가도 있다.
마광수는 아무리 어렵게 살아도 공부를 안 하면 대우를 안 해준다. 노숙자라도 공부를 많이 하고 배우려고 하는 사람만 대우해 준다.
전쟁 때문에 신경증에 안 걸리기도 한다. 그럴 여유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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