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제, 아프리카, 흑인문화를 따라 - 02.어둠의 심장, 조지프 콘래드

D-29
"우리에게 이 땅은 살아가야 할 곳, 그러니까 보이는 광경과 들리는 소리, 그리고 냄새까지도! 참고 견뎌야만 하는 곳이지. 말하자면 죽은 하마 냄새를 들이마시면서도 더렵혀지진 말아야 하는 곳이란 말일세. 그리고 바로 그때가, 알겠나, 우리의 힘이 필요해지는 순간이고, 썩은 것을 파묻기 위한 수수한 구덩이를 팔 수 있는 자기 능력에 대한 믿음이 필요해지는 순간일세. 자기 자신이 아니라 이해하기 힘들고 허리를 휘게 하는 일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바로 그런 힘 말일세."
어둠의 심장 p.117~118, 조지프 콘래드 지음, 황유원 옮김
나의 친구인 벌목꾼들이 마찬가지로 분개하고 있었는데, 더 그럴듯한 이유로 그러긴 했지. 물론 그 이유 자체는 꽤나 용납할 수 없는 것이긴 했지만. 오, 물론이고말고! 고인이 된 나의 조타수가 먹혀야 한다면 오직 물고기에게만 먹혀야 한다고 나는 결정을 내린 터였어. 그는 살아서는 아주 열등한 이급 조타수였지만, 이제는 죽었으니 일급 유혹물이 되어서 어떤 깜짝 놀랄 만한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었거든.
어둠의 심장 p.122, 조지프 콘래드 지음, 황유원 옮김
'그들이 왜 우리를 공격한 거죠?' 나는 계속 물었지. 그는 망설이다가 부끄러워하며 말했어. '그들은 그분이 떠나길 원치 않거든요.'
어둠의 심장 p.129, 조지프 콘래드 지음, 황유원 옮김
"그의 다채로운 누더기, 그의 궁핍, 그의 고독, 그의 헛된 방황의 본질적 처량함을 젊음의 매혹이 감싸주고 있었어. 몇 달 동안, 몇 년 동안 그의 인생은 하루도 버티기 힘든 성격을 지녔지만, 그는 순전히 젊은 나이와 무분별한 대담성 덕분에 어느 모로 보나 파괴될 수 없는 모습으로 용감하고도 무모하게 생존해 있었지."
어둠의 심장 p.130~131, 조지프 콘래드 지음, 황유원 옮김
"하지만 야생은 일찌감치 그를 발견해서 그의 기상천외한 침입에 대해 끔찍한 복수를 가한 터였어. 내 생각에 야생은 그에게 그가 모르는 자신에 대한 사실, 그가 그 거대한 고독과 상의하기 전까지는 전혀 알지 못한 사실을 속삭여준 것 같아. 그리고 그 속삭임은 거부할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이었던 거지. 그 속삭임은 그의 내면에서 큰 소리로 울려 퍼졌는데, 왜냐하면 그는 속이 텅 비어 있었거든……."
어둠의 심장 p.138, 조지프 콘래드 지음, 황유원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2장은 저번 주에 한 번 읽고 오늘 다시 한 번 훑었습니다. 1장에 대한 물음 중 커츠 씨에 대한 상상에 대해 아직 답을 하지 않았는데 1장에서 상상한 커츠 씨에 대한 이미지와 2장을 읽어가며 간접적으로 접한 커츠 씨의 모습이 많이 달라져 있었어요. 콩고의 강을 따라 상류로, 어둠의 심장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커츠 씨에 대한 정보가 늘어남에 따라 인상이 달라지는 것이 어쩌면 이 작품의 핵심이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3장까지 읽은 뒤에 커츠 씨에 대해 장마닥 제가 생각했던 그의 인상을 비교하는 것도 흥미롭겠다 싶어 해당 질문은 잠시 남겨두려고 해요. 1) 2장에서 흥미롭거나 기억에 남는 부분을 말씀해주세요. 2) 86p~87p에서 말로는 콩고에서 만난 인간들이 원시의 모습과 달리 자신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존재라고 생각했음을 밝힙니다. 왜 말로는 그런 생각을 했다고 보시나요? 3) 117p에서 말로가 말한 "썩은 것을 파묻기 위한 수수한 구덩이를 팔 수 있는 자기 능력에 대한 믿음"과 "이해하기 힘들고 허리를 휘게 하는 일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바로 그런 힘"은 어떤 의미일까요? 4) 말로는 커츠 씨가 쓴 소논문을 읽어보았다고 합니다. 문서의 끝자락에서 그는 '짐승 같은 놈들을 전멸시키라'는 논문의 어조와는 정 반대의 소름끼치는 메모를 발견합니다. 커츠가 왜 그런 생각을 남겼다고 보시나요?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 것 같나요?
1) 중간에 증기선이 숲의 원주민 무리를 만나 충돌이 일어나고 그 결과 조타수가 죽는 장면이 나옵니다. 말로는 조타수의 시체를 빠르게 수습해 강으로 밀어넣는데 이를 두고 백인들 그리고 배에 올라 탄 흑인(식인종?)들이 서로 다른 이유로 불만을 갖는 모습이 인상 깊었어요. 조타수가 죽자 말로는 그의 능력이 어떠했건, 그가 얼마나 서툴렀건 상관없이 한 명의 인간으로서 조타수를 마지막까지 기억하며 예를 갖추어 대하는 느낌이었습니다. 반면, 순례자인 백인들과 흑인들에게는 조타수라는 개인이 전혀 다른 수단으로 취급받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어요. 원주민들은 조타수를 식재료이자 고기로 보는 듯한데 비해, 지배인을 비롯한 백인들은 어떤 이유로 말로의 시신 처리를 못마땅해 하는지 직접 묘사되지는 않습니다. 조타수를 땅에 묻거나 제대로 된 장례식을 치르지 않은 것에 대해 화를 내는 것인가 싶지만, 개인적인 추측으로는 조타수를 흑인 선원들에게 넘기지 않았다가 나중에 폭동을 일으키거나 자신들을 잡아먹지 않을까 두려워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문명사회에서 온 백인이던, 깊은 밀림의 원시사회에서 배에 올라탄 흑인이던 누군가의 죽음을 자신의 필요로만 해석하는 모습에서 '다르지만 같은 모습'이 보인다는 생각이 들어 흥미로웠습니다.
2) 소설의 배경이 처음에는 말로가 여정을 떠나고자 무역회사를 찾아갔다가 점점 강을 따라 올라갈수록, 콩고의 내륙에 들어갈수록 문명에서 멀어지는 모습이 나오죠. 말로가 말하고자 한 건 아마도 '문명이라는 껍데기가 얼마나 연약하고 쉽게 벗겨질 수 있는가' 같습니다. 도시에서 살 때는 현대사회가 제공하는 혜택과 가치들이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워서, 그것들이 없어지는 순간을 생각하기가 어렵죠. 당연히 돌아다니는 차와 교통신호, 직장과 공공기관에 드나드는 사람들, 그것들을 떠받치는 각종 상하수도와 전기와 통신망, 누군가가 만들어서 팔거나 돈을 주고 사 먹을 수 있는 각종 음식들, 어느 순간부터 실물 화폐가 없이도 물건과 서비스의 값을 치를 수 있는 결제시스템, 직급과 직책과 직업이 만들어내는 여러 위계질서와 매너, 상호교류의 관계 등등.. 복잡하면서도 서로 조밀하게 얽힌 이 체계 안에서 살아갈 때는 우리가 이 틀을 벗어날 이유도 없고, 필요도 느끼지 못하기에 마치 공기나 물처럼 가치를 체감하기 어렵죠. 그리곤 어딘가에 앉아 TV나 핸드폰, 컴퓨터로 가끔 여행이나 교양 프로그램을 보며 문명의 손길이 깊이 뻗치지 않은 오지나 원시사회를 보고는 우리와 얼마나 다른가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말 말로가 겪었던 경험처럼, 모든 사회와 문명이 지탱해주던 '현대인으로서의 나'의 연결고리가 모두 끊어진다면 과연 그때도 '나'는 그 원시의 자연 속에서 여전히 현대인으로 남아있을까요? '현대인'이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현대적인 의식을 갖고 있다고 현대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자연에서는 찾을 수 없는 인위적이며 물질적인 조건과 혜택과 기반이 더 중요한 요소일까요? 작품을 읽다 보면 강을 따라 들어갈수록 그곳에서 만나는 백인들의 모습에서 '백인' 또는 '유럽사회의 구성원'이라는 배경이 점점 희미해진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무역회사 건물에 있던 사무적인 직원들에서 회계사로, 이후 지배인과 순례자들로, 그러다가 커츠와 광대차림의 남자로 넘어갈수록 그들의 성격이나 행동과 말투에는 불안감과 불안정한 심리가 커져 가는 모습이었거든요. 1장의 해안에서는 흔하던 대갈못이 점점 희귀한 물건이 되어가듯, 유럽과 문명의 흔적에서 멀어질수록 이들 백인들의 정체성도 점점 흐릿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말로는 제3자의 입장에서 그 광경들을 보며, 백인을 '백인'으로 지탱해주던 조건들에서 멀어질수록 쉽게 불안해하고, 본능적이며, 파괴적인 존재로 변해가는 사람들을 담담하게 보여줍니다. 지식이나 교양은 점차 뒷전이 되고 각자의 감정과 욕망, 미신에 쉽게 흔들리는 모습은 커츠를 두려워하거나 숭배하는 원주민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어 보여요. 그런 의미에서 문명이라는 껍질이 한 번 벗겨지면 우리도 근본적으로는 원시적인 존재임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3,4) 처음에는 말로의 이 문장이 사명감이나 책임감을 의미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한동안은 읽으면서 상아 밖에 모르고 자신들끼리 뒤에서 서로 험담하고 모략을 꾸미는 사업장 직원들과 달리 커츠 씨는 어떤 목적의식을 갖고 아프리카를 찾아간 비범한 인물일거라고 봤어요. 말로도 이 깊은 내륙까지 찾아들어올 정도의 사람이라면 일반적인 동기만으로는 올리가 없다고 판단했을 겁니다. 야만인들을 교화시키겠다는 생각, 문명의 진보를 퍼뜨리겠다는 강한 내면의 등불이 있는 사람이어야 침묵과 적대심이 가득한 어둠을 뚫고 계속 나아갈 수 있죠. 하지만 2장을 넘어 3장으로 들어가면서 커츠의 사상은 신념이라기보다는 뒤틀린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야만인들을 교화시키기보다는 지배하고 있고, 사람을 감화해서 이끈다기보다는 불안감과 두려움으로 통제한다는 인상이 들거든요. 누구도 가고자 하지 않는 깊은 내륙 속으로 갈 수 있었던 건 커츠가 숲의 어둠만큼이나 깊은 심연을 속에 품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단순히 돈이나 출세를 위해서 이곳에 온 지배인이나 순례자, 회계사는 속물적이고 잔인하며 무정한 사람들이긴 해도 이해할 수 있는 범주의 욕망을 갖고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커츠는 그들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인간으로 느껴져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신념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모습에서 더 위험한 인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배인이나 순례자들도 그를 두려워하고 꺼리는 것 같고요. 광기에 가까운 신념을 품고 오지로 들어갈수록 원시적인 세상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고, 어떤 사회적 제약이나 가책을 받을 필요없이 자신의 광폭한 상상을 실현해 가면서 커츠는 일반적인 인간과는 동떨어진 존재가 된 게 아닐까요. 결국 신념이 있었기에 커츠는 온갖 장애물 속에서 미치지 않고 사명을 이어갈 수 있었지만 동시에 빠져나올 수 없을 정도로 어둠에 물든 것 같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 속하는 것이 아니었고, 그들도…… 아니야, 그들이 인간이 아니라곤 할 수 없었네. 실은 그것이 제일 고약한 일이었네. 그들도 어쩌면 인간일지 모른다는 의심 말일세.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깨닫게 되었지. 그들은 소리소리 지르고, 펄쩍펄쩍 뛰고, 빙빙 돌며 무시무시한 인상을 썼는데, 우리를 전율하게 만든 것은 바로 그들도 자네들과 똑같은 인간이라는 생각, 즉 야성적이고 격렬한 소란이 우리와 아무 관련 없진 않다는 생각이었네.
어둠의 심장 pp.79~80, <어둠의 심장>, 조지프 콘래드 지음, 황유원 옮김
태몽과 야만 최근 지인을 통해 태몽 이야기를 들었다. 아내가 임신하기 전, 꿈에 커다란 참돔이 품 안으로 들어오는 생생한 장면을 보았다는 것이다. 처음엔 이상한 꿈이라 여겼지만 곧 아이 소식을 접하게 되었고, 그는 그것을 태몽이라 믿었다. 주변 사람들은 축하의 말을 건넸고, 나 역시 그 소식을 반갑게 들었다. 그러면서 문득 생각했다. 태몽이라는 문화는 과연 우리만의 것일까? 세계 곳곳에도 비슷한 상징과 꿈 해석의 문화가 있을까? 혹은 이건 우리에게만 익숙하고, 외부에서는 낯설거나 심지어 ‘야만적’이라 여겨질 수도 있는 걸까? 문명이 서로를 만나면, 처음엔 충돌하지만 결국엔 교류를 통해 이해로 나아간다. 그러나 그 이해의 시작점은 언제나 낯설고, 때로는 차별과 지배의 형태로 나타났다. 초기 인류는 자신과 다른 문명을 ‘인간’으로 받아들이지 못했고, 그렇게 노예제와 식민 지배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런 생각은 자연스럽게 조지프 콘라드의 소설 <어둠의 심장> 을 떠올리게 했다. 콩고강을 거슬러 오르며 주인공이 마주한 정글과 ‘야만인’들은 그에게 충격을 안긴다. 그것은 이 세상에 속하는 것이 아니었고, 그들도…… 아니야, 그들이 인간이 아니라곤 할 수 없었네. 실은 그것이 제일 고약한 일이었네. 그들도 어쩌면 인간일지 모른다는 의심 말일세.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깨닫게 되었지. 그들은 소리소리 지르고, 펄쩍펄쩍 뛰고, 빙빙 돌며 무시무시한 인상을 썼는데, 우리를 전율하게 만든 것은 바로 그들도 자네들과 똑같은 인간이라는 생각, 즉 야성적이고 격렬한 소란이 우리와 아무 관련 없진 않다는 생각이었네. pp.79~80, <어둠의 심장> 가장 무서운 건, 그들이 우리와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이었다. 문명인은 야만인을 무서워한 게 아니라, 그들과 우리가 그렇게 다르지 않다는 가능성을 두려워한 것이었다. 실제로 역사 속에는 이러한 인식 충돌이 반복되어 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16세기 스페인에서 벌어진 비아야돌리드 논쟁이다. 이 논쟁의 핵심은 “신대륙의 인디오들을 인간으로 볼 수 있는가?”였다. 어떤 이는 그들을 가르치고 개종시켜야 한다고 했고, 다른 이는 그들이 본래 열등하므로 지배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논쟁은 결국 야만의 기준이 얼마나 모호하고, 얼마나 자의적인가를 드러냈다. 그리고 나는 이런 질문을 오늘날에도 다시 던지고 싶어진다. 지금 이 시대에도 ‘야만’이라 불리는 문화가 존재할까? 혹시 태몽처럼,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것이 누군가에게는 미신처럼 보이고, 이해할 수 없는 ‘낡은 신념’처럼 여겨질 수 있는 건 아닐까? 결국 중요한 건 서로를 같은 인간으로서 인정하려는 태도일 것이다. 차이를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려는 노력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태몽을 이야기하던 그 지인의 표정, 그리고 축하를 건네는 우리의 마음은 의심 없는 인간의 감정이었다. 나는 그것이 문명의 기준보다 더 중요한 어떤 보편성일 수 있다고 믿는다.
말씀해주신 바야돌리드 회의는 처음 알게 된 내용이라 찾아봤는데 인디오의 권리를 인정하는 대가로 빈 노동의 공백을 흑인으로 보충했다는 게 기가 막히면서도 착잡하네요. 그 당시의 스페인이 보기에는 인디오는 최소한의 문명이라도 존재하는 인간이었지만 흑인은 인간으로도 보지 않았다는 뜻이겠죠. 그래서 더더욱 아프리카 대륙과 흑인의 착취에 전념하고, 이를 정당화하고자 백인과 흑인은 같지 않다는 데 집착했나 봅니다. 하지만 백인들도, 영국이나 네덜란드도 과거 머나먼 때에는 말로의 말처럼 로마의 발길조차 닿지 않던 야만의 시대가 있었죠. 그 과거를 잊기 위해서라도 더욱 더 계몽사상에 매달려 자신들이 아프리카를 개척하고 올바르게 인도해야 한다는 그릇된 사명에 빠져든 것 같습니다.
말씀처럼 야만의 새다를 지난 백인들이 아프리카에서 다시 만난 야만은 과거를 떠올리지 않으려는 계몽사상을 강요하게 만든 것 같습니다. 또한, 작가는 식민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진보된 생각을 말로의 입을 통해 하였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과거를 잊은 시대에 사람들 사이에서 저자는 어떻게 현명함을 소설 속에 녹여낼 수 있었을지가 궁금합니다.
아마도 작가가 영국 태생이 아니기 때문에 당시의 식민지 경쟁의 시대를 객관적으로 보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책에 대한 후기나 정보들을 찾아보면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다고 하지만 저는 시대적인 배경보다는 '문명과 원시의 기준이 무엇이며, 그 둘이 근본적으로 무엇이 다른가'를 고민하는 작품이라고 느꼈습니다. 왜냐면 이 책 전반에 걸쳐 묘사되는 대부분의 서구권 인물들이 하나 같이 어딘가 결함이 있는 듯 묘사되거든요. 말로가 이야기를 하다가 자신의 경험담이 터무니없다는 주변인의 지적에 대해 '모든 것이 다 갖춰져 있고, 안락한 도시에서 사는 당신들이 뭘 알겠나' 식으로 말하기도 하고, 도시의 풍경도 굉장히 삭막하게 표현하고 있고요. 겉으로 보기엔 다들 옷을 갖춰 입고, 음식을 해 먹고, 직업이 있으며 돈을 벌지만 그 온갖 사회의 틀과 상호작용을 벗겨내면 근본은 정글 속 원주민과 다를 게 없다고 말하는 취지로 느껴졌습니다. 콘래드 본인도 콩고를 직접 다녀오고 똑같은 물음을 가졌을 것 같습니다. 왜 콩고의 사람들은 식민지가 되어 억압받는 삶이 당연한 것이고, 또 마찬가지로 서구권은 남으로부터 착취하는 구조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백인도 문명사회를 어느 순간 하루아침에 이룩한 것이 아니고 똑같이 야만의 시대가 있었다면 흑인과 백인이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무엇인가. 누군가가 다른 이를 단지 조금 더 기술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앞서 있다고 하여 위에 올라서는 것이 당연한 일인가. 모두가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는 사회의 가치가 머나먼 땅에서는 실제로 어떤 모습으로 실다가오는지를 경험해 보았고, 그 간극을 글로써 풀어낸 게 이 작품 아닐까요. 그리고 그런 질문과 물음은 조지프 콘래드가 영국이나 프랑스, 네덜란드와 같은 제국주의 국가 태생이 아닌 외부인의 입장이었기에 가질 수 있던 생각 같습니다.
"원주민들의 야영지가 그의 처소를 둘러싸고 있었고, 추장들은 매일 그를 보러 왔다지. 그들은 기어서 왔다는데……. '저는 그들이 커츠 씨에게 다가갈 때 갖춘 예법에 대해서는 전혀 궁금하지 않습니다.' 내가 외쳤어. 흥미롭기도 하지, 커츠 씨의 창문 아래 말뚝에서 말라가는 머리통들보다 그런 상세한 설명이 더 참을 수 없게 느껴졌다니 말이야."
어둠의 심장 p.139, 조지프 콘래드 지음, 황유원 옮김
"그의 (선홍색) 주머니는 탄약통으로 불룩했고, 다른 쪽 (남색) 주머니에서는 타우슨의 《선박 조종술의 몇몇 요점에 관한 연구》등등이 살짝 튀어나와 있었지. 그는 자신이 야생과 새로이 마주칠 채비를 아주 훌륭히 갖추었다고 생각하는 듯했어."
어둠의 심장 p.152, 조지프 콘래드 지음, 황유원 옮김
"나는 그 마력을 깨뜨려보려 애썼어. 망각된 난폭한 본능을 일깨우고 충족된 괴물 같은 열정의 기억을 되살림으로써 그를 그 냉혹한 가슴으로 끌어들이는 듯한 그 마력을 말일세. 그를 숲의 가장자리로, 덤불로, 어슴푸레 빛나는 모닥불로, 고동치는 북소리로, 기이한 주문의 웅얼거림으로 내몬 것은 오직 그 마력이었다고 나는 확신했지."
어둠의 심장 p.157, 조지프 콘래드 지음, 황유원 옮김
'당신에게 정말로 이익이 될 만한 무언가가 있음을 그들에게 보여주시오. 그러면 당신의 능력은 무한히 인정받게 될 거요' 하고 그는 말하곤 했어. '물론 동기에도 신경을 써야만 하오. 그것은 늘 옳은 동기여야만 하지.'
어둠의 심장 p.163, 조지프 콘래드 지음, 황유원 옮김
"작은 파리 떼가 램프 위로, 식탁보 위로, 우리의 손과 얼굴 위로 끊임없이 쏟아지듯 날아들었어. 갑자기 지배인의 사환이 무례한 검은 머리를 문간에서 들이밀더니 신랄한 경멸이 담긴 어조로 말했지. '미스터 커츠, 죽었어요.' 순례자들은 모두 그 광경을 보러 밖으로 뛰쳐나갔어. 나는 자리에 남아 식사를 계속했지."
어둠의 심장 p.166, 조지프 콘래드 지음, 황유원 옮김
아무리 쫒아내도 탐욕스럽게 달려드는 파리 떼를, 커츠 씨의 사망 소식을 듣자 좋은 구경거리라도 생겼다는 듯 달려가는 지배인과 순례인 무리와 겹쳐 보이게 표현한 것이 흥미롭네요. 다른 무리들은 오히려 식사를 계속 하는 말로를 냉혈한이라고 보았을지 몰라도 오히려 커츠의 죽음을 누구보다 반기며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하는 사업장의 인간 군상이 더 추잡하게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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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그믐달 찾아요 🌜
자 다시 그믐달 사냥을 시작해 볼까? <오징어 게임> x <그믐달 사냥 게임> o <전생에 그믐달>
[그믐클래식] 1월부터 꾸준히 진행중입니다. 함께 해요!
[그믐클래식 2025] 한해 동안 12권 고전 읽기에 도전해요! [그믐클래식 2025] 1월, 일리아스 [그믐클래식 2025] 2월, 소크라테스의 변명·크리톤·파이돈·향연[그믐클래식 2025] 3월, 군주론 [그믐클래식 2025] 4월, 프랑켄슈타인 [그믐클래식 2025] 5월, 월든[그믐클래식 2025] 6월, 마담 보바리 [그믐클래식 2025] 7월,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8월에도 셰익스피어의 작품 이어 낭독합니다
[그믐밤] 38. 달밤에 낭독, 셰익스피어 4탄 <오셀로>[그믐밤] 37. 달밤에 낭독, 셰익스피어 3탄 <리어 왕> [그믐밤] 36. 달밤에 낭독, 셰익스피어 2탄 <맥베스> [그믐밤] 35. 달밤에 낭독, 셰익스피어 1탄 <햄릿>
우리가 몰랐던 냉전의 시대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4. <소련 붕괴의 순간>[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3. <냉전>[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16. <마오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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