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제, 아프리카, 흑인문화를 따라 - 02.어둠의 심장, 조지프 콘래드

D-29
배짱도 없이 무모했고, 대담함도 없이 탐욕스러웠으며, 용기도 없이 잔인했지. 전체 무리를 통틀어서 선견지명이나 진지한 의도는 티끌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는데, 그들은 이 세상에 어울리는 일을 하려면 이런 것들이 필요하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듯했어. 그들이 욕망하는 것은 대지의 저 깊은 내장에서 보물을 뜯어내는 것일 뿐, 금고를 터는 절도범이 그러하듯 그 욕망의 한구석에는 그 어떤 도덕적 목적도 존재하지 않았지.
어둠의 심장 p.73, 조지프 콘래드 지음, 황유원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퇴근하면서 오늘 1장을 다 읽었습니다. 찰리 말로의 과거 회상이 거의 대부분인데 읽으면서 점점 그의 경험 못지 않게 찰리 말로라는 인물은 과연 어떤 사람인지가 더 궁금해지네요. 아래의 내용들을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1) 1장에서 인상 깊었던 상황 또는 인물이나 책의 부분은 어디었나요. 여러 개여도 괜찮습니다. 2) 1장을 읽으면서 전반적으로 어떤 느낌을 받으셨나요? 3) 아직 1장에서는 '커츠 씨'에 대해 극히 제한적인 정보밖에 알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에 '커츠 씨'는 어떤 사람일 것 같나요? 1장에서 그나마 비슷할 거라고 생각되는 인물이 있었나요. 아니면 전혀 다른 인물로 머리 속에 상상하고 계신가요.
1) 전 1장의 끝 즈음에서 대갈못을 찾는 부분이 눈에 들어왔어요. 찰리 말로가 풀어내는 아프리카에서의 경험은 분명 그의 체험에 기반을 두고 있음에도 펼쳐지는 풍경들이 기괴하다는 느낌을 계속 받았습니다. 지배인의 사업장에서 어딘가 하나씩 나사가 빠진 듯한 직원들의 행동은 그들이 이곳에서 어떤 정신으로 지내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장치겠죠. 자신만의 꿍꿍이가 있는 것 같은 일급 중개상, 횡설수설하고 쉽게 흥분하는 콧수염을 기른 남자, 지팡이를 쥔 채 할 일 없이 마당을 배회하는 직원들, 불을 냈다는 증거가 없는데도 흑인을 두들겨 패는 광경 하나하나가 지배인이 만들어내는 불안의 공포일 겁니다. 찰리 말로는 그런 분위기에 녹아들고 싶지 않아서인지 일부러 그들과 엮이지 않고자 멀리 떨어져 있는 난파선에 자주 가죠. 바닥이 암초에 뚫린 증기선을 고치기 위해서는 대갈못이 필요한데, 대갈못은 말로가 해안에 도착했을 때에도 그리고 첫 사업장에서도 어디서나 볼 수 있던 일상적인 물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 일상적이고 발에 채일 듯 많던 하찮은 물건이 정작 필요한 순간에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죠. 저는 아마도 대갈못이 상식이나 최소한의 합리적 사고를 상징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찰리 말로의 여정을 보면 그가 런던에서 시작하여 내륙으로 들어갈수록 주변 사람들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모습이 정상에서 멀어지죠. 그리고 대갈못도 해안이나 가까운 내륙에서는 흔했지만 더 깊숙이 들어오자 자취를 감춥니다. 지배인이 있는 사업장은 딱히 이렇다 할 작업도, 주의를 돌리고 집중하게 할 만한 일과에 대한 묘사도 없어 보였는데 그 광막함 또는 무료함과 정신의 공백이 사람들을 모두 불안하게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싶네요. 대갈못은 찰리 말로에게는 이 비정상적인 악마들 사이에서 자신을 유지하게 해줄 문명의 흔적이자, 정신을 집중하게 해줄 노동이며, 사업장을 탈출할 수단이니까요. 평소에는 대갈못의 중요성을 느끼지 못하다가 필요한 때가 되어서야 그 중요성을 절감합니다. 이성이나 도덕과 교양의 중요성을 문명 사회에 있을 때는 깨닫지 못하지만, 문명에서 벗어난 깊은 오지에서는 인간의 정신과 인격이 흩어지고 분리되며 선악의 개념에 대해 사람이 무뎌집니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서는 영혼을 붙들 못이 필요했고 그래서 찰리 말로는 대갈못을 계속 찾은 것 같네요.
2) 1장을 읽을 때 느껴지는 어떤 부자연스러움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는데 51~52p에서 무역상이 주는 불안감에 대한 설명을 읽고 이해가 가더라고요. 장면 하나하나만 놓고 보면 풍경이지만 모아놓으면 부조리와 억압이 아무렇지 일상처럼 펼쳐지고, 그것에 대해 아무도 문제 제기 하는 사람이 없는 모습의 연속.. 이상한 것을 자연스러운 것처럼 넘기려는 작업장의 사람들의 모든 행동과 대사 하나하나가 크든 작든 불안감이 담겨 있었습니다. 처음 도착한 일종의 채석장의 모습은 불교나 기독교에서 볼법한 지옥도의 모습이죠. 끝없이 온갖 노동에 끌려가는 흑인들, 그들을 넋이 나간 채 감시하는 다른 흑인 감독자들, 쓸모를 다하고 나서 여기저기서 나뒹굴며 병으로 또는 허기나 갈증 등 다양한 이유로 죽어가는 사람들. 다양한 고통과 다양한 방법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여기 저기 널부러져 있는 총체적인 죽음의 장인데 그런 광경 속에서도 '기분 전환'을 위해 산책을 하는 세련된 회계사. 모두들 같은 공간에 있음에도 회계사가 풍경에서 보는 것과 말로가 본 것, 그리고 노동자들이 본 그림은 전혀 다르겠죠. 런던에서 채석장으로, 채석장에서 중간사업장으로, 이후 강을 거쳐 상류로 올라갈수록 문명의 흔적이 옅어짐에 따라 사람이 만들어내는 광기에서는 멀어지지만 반대로 숲과 오지의 자연이 인간의 정신을 압박하는 묘사가 흥미로웠어요. 특히 저자가 말로의 설명을 빌어 길고 수려하게 묘사하는 문장들은 빽빽하게 솟은 나무, 어둑한 숲, 불안할 정도의 정적과 겹쳐 정글에서 느끼는 어지러울 정도의 공포감과 긴장감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단순하고 간결한 문장이었다면 오히려 환경과 인물, 분위기의 묘사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전 처음에 한동안은 북아프리카의 사하라와 또는 사바나와 같은 건조하고 드넓은 황량한 공간을 생각했는데 이후 정글에 대한 묘사를 보며 얼마나 깊고 어두운 숲일까 궁금해서 콩고의 숲을 찾아봤어요. 사진을 보다 보니 광대하고 속을 들여다 볼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숲이 주는 압박감이 어떤 것일지 조금은 이해가 됐습니다.
그들은 정복자였고, 정복을 위해 필요한 것은 난폭한 힘뿐이지. 그런 힘은 전혀 자랑거리가 못 되는데, 우리의 힘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의 나약함으로 인해 우연히 생겨난 결과물일 뿐이니까 말이야.
어둠의 심장 조지프 콘래드 지음, 황유원 옮김
지구의 정복이라는 것은 대개 우리와 피부색이 다르거나 코가 우리보다 살짝 낮은 사람들의 소유물을 빼앗는 것을 의미하기에, 너무 자세히 들여다보면 보기 흉하게 마련이야. 우리를 그런 흉함에서 구해주는 것은 이념뿐일세. 그 배후에 자리한 이념, 감상적인 구실이 아닌 이념, 그리고 그 이념에 대한 헌신적인 믿음, 모셔놓고 앞에서 절하며 제물을 바칠 수 있는 대상으로서의 무엇…….
어둠의 심장 조지프 콘래드 지음, 황유원 옮김
그리고 이 생명의 정적은 평화와는 조금도 닮은 구석이 없었어. 그것은 불가해한 의도를 품은 확고한 힘의 정적이었네. 그것은 복수심에 불타는 모습으로 우리를 쳐다보았어.
어둠의 심장 p.81, 조지프 콘래드 지음, 황유원 옮김
그곳의 대지는 이 세상에 속한 것 같지 않았네. 우리는 정복된 괴물이 족쇄를 차고 있는 모습에는 익숙했지만, 그곳, 그곳에서는 괴물 같은 존재가 자유로이 풀려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어. 그곳인 이 세상에 속한 것 같지 않았고, 그곳의 인간들은…… 그래, 그들은 비인간적인 존재가 아니었어. 글쎄, 그게 가장 곤혹스러운 일이었지. 그들은 비인간적인 존재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 말이야.
어둠의 심장 p.86, 조지프 콘래드 지음, 황유원 옮김
"터무니없다니!" 그가 외쳤다. "이런 게 이야기를 들려줄 때 가장 힘든 점이야……. 이곳의 자네들은 각자 두 개의 닻을 내린 폐선처럼 두 개의 좋은 주소지를 지닌 채 정박해 있고, 한쪽 모퉁이에는 정육점 주인이 있고 다른 쪽 모퉁이에는 경찰관이 있는 데다가, 자네들은 식성도 아주 좋고 체온도 정상이지. 알겠나, 1년 내내 정상이란 말이야. (중략)"
어둠의 심장 p.113, 조지프 콘래드 지음, 황유원 옮김
"우리에게 이 땅은 살아가야 할 곳, 그러니까 보이는 광경과 들리는 소리, 그리고 냄새까지도! 참고 견뎌야만 하는 곳이지. 말하자면 죽은 하마 냄새를 들이마시면서도 더렵혀지진 말아야 하는 곳이란 말일세. 그리고 바로 그때가, 알겠나, 우리의 힘이 필요해지는 순간이고, 썩은 것을 파묻기 위한 수수한 구덩이를 팔 수 있는 자기 능력에 대한 믿음이 필요해지는 순간일세. 자기 자신이 아니라 이해하기 힘들고 허리를 휘게 하는 일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바로 그런 힘 말일세."
어둠의 심장 p.117~118, 조지프 콘래드 지음, 황유원 옮김
나의 친구인 벌목꾼들이 마찬가지로 분개하고 있었는데, 더 그럴듯한 이유로 그러긴 했지. 물론 그 이유 자체는 꽤나 용납할 수 없는 것이긴 했지만. 오, 물론이고말고! 고인이 된 나의 조타수가 먹혀야 한다면 오직 물고기에게만 먹혀야 한다고 나는 결정을 내린 터였어. 그는 살아서는 아주 열등한 이급 조타수였지만, 이제는 죽었으니 일급 유혹물이 되어서 어떤 깜짝 놀랄 만한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었거든.
어둠의 심장 p.122, 조지프 콘래드 지음, 황유원 옮김
'그들이 왜 우리를 공격한 거죠?' 나는 계속 물었지. 그는 망설이다가 부끄러워하며 말했어. '그들은 그분이 떠나길 원치 않거든요.'
어둠의 심장 p.129, 조지프 콘래드 지음, 황유원 옮김
"그의 다채로운 누더기, 그의 궁핍, 그의 고독, 그의 헛된 방황의 본질적 처량함을 젊음의 매혹이 감싸주고 있었어. 몇 달 동안, 몇 년 동안 그의 인생은 하루도 버티기 힘든 성격을 지녔지만, 그는 순전히 젊은 나이와 무분별한 대담성 덕분에 어느 모로 보나 파괴될 수 없는 모습으로 용감하고도 무모하게 생존해 있었지."
어둠의 심장 p.130~131, 조지프 콘래드 지음, 황유원 옮김
"하지만 야생은 일찌감치 그를 발견해서 그의 기상천외한 침입에 대해 끔찍한 복수를 가한 터였어. 내 생각에 야생은 그에게 그가 모르는 자신에 대한 사실, 그가 그 거대한 고독과 상의하기 전까지는 전혀 알지 못한 사실을 속삭여준 것 같아. 그리고 그 속삭임은 거부할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이었던 거지. 그 속삭임은 그의 내면에서 큰 소리로 울려 퍼졌는데, 왜냐하면 그는 속이 텅 비어 있었거든……."
어둠의 심장 p.138, 조지프 콘래드 지음, 황유원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2장은 저번 주에 한 번 읽고 오늘 다시 한 번 훑었습니다. 1장에 대한 물음 중 커츠 씨에 대한 상상에 대해 아직 답을 하지 않았는데 1장에서 상상한 커츠 씨에 대한 이미지와 2장을 읽어가며 간접적으로 접한 커츠 씨의 모습이 많이 달라져 있었어요. 콩고의 강을 따라 상류로, 어둠의 심장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커츠 씨에 대한 정보가 늘어남에 따라 인상이 달라지는 것이 어쩌면 이 작품의 핵심이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3장까지 읽은 뒤에 커츠 씨에 대해 장마닥 제가 생각했던 그의 인상을 비교하는 것도 흥미롭겠다 싶어 해당 질문은 잠시 남겨두려고 해요. 1) 2장에서 흥미롭거나 기억에 남는 부분을 말씀해주세요. 2) 86p~87p에서 말로는 콩고에서 만난 인간들이 원시의 모습과 달리 자신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존재라고 생각했음을 밝힙니다. 왜 말로는 그런 생각을 했다고 보시나요? 3) 117p에서 말로가 말한 "썩은 것을 파묻기 위한 수수한 구덩이를 팔 수 있는 자기 능력에 대한 믿음"과 "이해하기 힘들고 허리를 휘게 하는 일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바로 그런 힘"은 어떤 의미일까요? 4) 말로는 커츠 씨가 쓴 소논문을 읽어보았다고 합니다. 문서의 끝자락에서 그는 '짐승 같은 놈들을 전멸시키라'는 논문의 어조와는 정 반대의 소름끼치는 메모를 발견합니다. 커츠가 왜 그런 생각을 남겼다고 보시나요?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 것 같나요?
1) 중간에 증기선이 숲의 원주민 무리를 만나 충돌이 일어나고 그 결과 조타수가 죽는 장면이 나옵니다. 말로는 조타수의 시체를 빠르게 수습해 강으로 밀어넣는데 이를 두고 백인들 그리고 배에 올라 탄 흑인(식인종?)들이 서로 다른 이유로 불만을 갖는 모습이 인상 깊었어요. 조타수가 죽자 말로는 그의 능력이 어떠했건, 그가 얼마나 서툴렀건 상관없이 한 명의 인간으로서 조타수를 마지막까지 기억하며 예를 갖추어 대하는 느낌이었습니다. 반면, 순례자인 백인들과 흑인들에게는 조타수라는 개인이 전혀 다른 수단으로 취급받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어요. 원주민들은 조타수를 식재료이자 고기로 보는 듯한데 비해, 지배인을 비롯한 백인들은 어떤 이유로 말로의 시신 처리를 못마땅해 하는지 직접 묘사되지는 않습니다. 조타수를 땅에 묻거나 제대로 된 장례식을 치르지 않은 것에 대해 화를 내는 것인가 싶지만, 개인적인 추측으로는 조타수를 흑인 선원들에게 넘기지 않았다가 나중에 폭동을 일으키거나 자신들을 잡아먹지 않을까 두려워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문명사회에서 온 백인이던, 깊은 밀림의 원시사회에서 배에 올라탄 흑인이던 누군가의 죽음을 자신의 필요로만 해석하는 모습에서 '다르지만 같은 모습'이 보인다는 생각이 들어 흥미로웠습니다.
2) 소설의 배경이 처음에는 말로가 여정을 떠나고자 무역회사를 찾아갔다가 점점 강을 따라 올라갈수록, 콩고의 내륙에 들어갈수록 문명에서 멀어지는 모습이 나오죠. 말로가 말하고자 한 건 아마도 '문명이라는 껍데기가 얼마나 연약하고 쉽게 벗겨질 수 있는가' 같습니다. 도시에서 살 때는 현대사회가 제공하는 혜택과 가치들이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워서, 그것들이 없어지는 순간을 생각하기가 어렵죠. 당연히 돌아다니는 차와 교통신호, 직장과 공공기관에 드나드는 사람들, 그것들을 떠받치는 각종 상하수도와 전기와 통신망, 누군가가 만들어서 팔거나 돈을 주고 사 먹을 수 있는 각종 음식들, 어느 순간부터 실물 화폐가 없이도 물건과 서비스의 값을 치를 수 있는 결제시스템, 직급과 직책과 직업이 만들어내는 여러 위계질서와 매너, 상호교류의 관계 등등.. 복잡하면서도 서로 조밀하게 얽힌 이 체계 안에서 살아갈 때는 우리가 이 틀을 벗어날 이유도 없고, 필요도 느끼지 못하기에 마치 공기나 물처럼 가치를 체감하기 어렵죠. 그리곤 어딘가에 앉아 TV나 핸드폰, 컴퓨터로 가끔 여행이나 교양 프로그램을 보며 문명의 손길이 깊이 뻗치지 않은 오지나 원시사회를 보고는 우리와 얼마나 다른가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말 말로가 겪었던 경험처럼, 모든 사회와 문명이 지탱해주던 '현대인으로서의 나'의 연결고리가 모두 끊어진다면 과연 그때도 '나'는 그 원시의 자연 속에서 여전히 현대인으로 남아있을까요? '현대인'이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현대적인 의식을 갖고 있다고 현대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자연에서는 찾을 수 없는 인위적이며 물질적인 조건과 혜택과 기반이 더 중요한 요소일까요? 작품을 읽다 보면 강을 따라 들어갈수록 그곳에서 만나는 백인들의 모습에서 '백인' 또는 '유럽사회의 구성원'이라는 배경이 점점 희미해진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무역회사 건물에 있던 사무적인 직원들에서 회계사로, 이후 지배인과 순례자들로, 그러다가 커츠와 광대차림의 남자로 넘어갈수록 그들의 성격이나 행동과 말투에는 불안감과 불안정한 심리가 커져 가는 모습이었거든요. 1장의 해안에서는 흔하던 대갈못이 점점 희귀한 물건이 되어가듯, 유럽과 문명의 흔적에서 멀어질수록 이들 백인들의 정체성도 점점 흐릿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말로는 제3자의 입장에서 그 광경들을 보며, 백인을 '백인'으로 지탱해주던 조건들에서 멀어질수록 쉽게 불안해하고, 본능적이며, 파괴적인 존재로 변해가는 사람들을 담담하게 보여줍니다. 지식이나 교양은 점차 뒷전이 되고 각자의 감정과 욕망, 미신에 쉽게 흔들리는 모습은 커츠를 두려워하거나 숭배하는 원주민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어 보여요. 그런 의미에서 문명이라는 껍질이 한 번 벗겨지면 우리도 근본적으로는 원시적인 존재임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3,4) 처음에는 말로의 이 문장이 사명감이나 책임감을 의미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한동안은 읽으면서 상아 밖에 모르고 자신들끼리 뒤에서 서로 험담하고 모략을 꾸미는 사업장 직원들과 달리 커츠 씨는 어떤 목적의식을 갖고 아프리카를 찾아간 비범한 인물일거라고 봤어요. 말로도 이 깊은 내륙까지 찾아들어올 정도의 사람이라면 일반적인 동기만으로는 올리가 없다고 판단했을 겁니다. 야만인들을 교화시키겠다는 생각, 문명의 진보를 퍼뜨리겠다는 강한 내면의 등불이 있는 사람이어야 침묵과 적대심이 가득한 어둠을 뚫고 계속 나아갈 수 있죠. 하지만 2장을 넘어 3장으로 들어가면서 커츠의 사상은 신념이라기보다는 뒤틀린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야만인들을 교화시키기보다는 지배하고 있고, 사람을 감화해서 이끈다기보다는 불안감과 두려움으로 통제한다는 인상이 들거든요. 누구도 가고자 하지 않는 깊은 내륙 속으로 갈 수 있었던 건 커츠가 숲의 어둠만큼이나 깊은 심연을 속에 품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단순히 돈이나 출세를 위해서 이곳에 온 지배인이나 순례자, 회계사는 속물적이고 잔인하며 무정한 사람들이긴 해도 이해할 수 있는 범주의 욕망을 갖고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커츠는 그들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인간으로 느껴져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신념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모습에서 더 위험한 인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배인이나 순례자들도 그를 두려워하고 꺼리는 것 같고요. 광기에 가까운 신념을 품고 오지로 들어갈수록 원시적인 세상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고, 어떤 사회적 제약이나 가책을 받을 필요없이 자신의 광폭한 상상을 실현해 가면서 커츠는 일반적인 인간과는 동떨어진 존재가 된 게 아닐까요. 결국 신념이 있었기에 커츠는 온갖 장애물 속에서 미치지 않고 사명을 이어갈 수 있었지만 동시에 빠져나올 수 없을 정도로 어둠에 물든 것 같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 속하는 것이 아니었고, 그들도…… 아니야, 그들이 인간이 아니라곤 할 수 없었네. 실은 그것이 제일 고약한 일이었네. 그들도 어쩌면 인간일지 모른다는 의심 말일세.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깨닫게 되었지. 그들은 소리소리 지르고, 펄쩍펄쩍 뛰고, 빙빙 돌며 무시무시한 인상을 썼는데, 우리를 전율하게 만든 것은 바로 그들도 자네들과 똑같은 인간이라는 생각, 즉 야성적이고 격렬한 소란이 우리와 아무 관련 없진 않다는 생각이었네.
어둠의 심장 pp.79~80, <어둠의 심장>, 조지프 콘래드 지음, 황유원 옮김
태몽과 야만 최근 지인을 통해 태몽 이야기를 들었다. 아내가 임신하기 전, 꿈에 커다란 참돔이 품 안으로 들어오는 생생한 장면을 보았다는 것이다. 처음엔 이상한 꿈이라 여겼지만 곧 아이 소식을 접하게 되었고, 그는 그것을 태몽이라 믿었다. 주변 사람들은 축하의 말을 건넸고, 나 역시 그 소식을 반갑게 들었다. 그러면서 문득 생각했다. 태몽이라는 문화는 과연 우리만의 것일까? 세계 곳곳에도 비슷한 상징과 꿈 해석의 문화가 있을까? 혹은 이건 우리에게만 익숙하고, 외부에서는 낯설거나 심지어 ‘야만적’이라 여겨질 수도 있는 걸까? 문명이 서로를 만나면, 처음엔 충돌하지만 결국엔 교류를 통해 이해로 나아간다. 그러나 그 이해의 시작점은 언제나 낯설고, 때로는 차별과 지배의 형태로 나타났다. 초기 인류는 자신과 다른 문명을 ‘인간’으로 받아들이지 못했고, 그렇게 노예제와 식민 지배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런 생각은 자연스럽게 조지프 콘라드의 소설 <어둠의 심장> 을 떠올리게 했다. 콩고강을 거슬러 오르며 주인공이 마주한 정글과 ‘야만인’들은 그에게 충격을 안긴다. 그것은 이 세상에 속하는 것이 아니었고, 그들도…… 아니야, 그들이 인간이 아니라곤 할 수 없었네. 실은 그것이 제일 고약한 일이었네. 그들도 어쩌면 인간일지 모른다는 의심 말일세.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깨닫게 되었지. 그들은 소리소리 지르고, 펄쩍펄쩍 뛰고, 빙빙 돌며 무시무시한 인상을 썼는데, 우리를 전율하게 만든 것은 바로 그들도 자네들과 똑같은 인간이라는 생각, 즉 야성적이고 격렬한 소란이 우리와 아무 관련 없진 않다는 생각이었네. pp.79~80, <어둠의 심장> 가장 무서운 건, 그들이 우리와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이었다. 문명인은 야만인을 무서워한 게 아니라, 그들과 우리가 그렇게 다르지 않다는 가능성을 두려워한 것이었다. 실제로 역사 속에는 이러한 인식 충돌이 반복되어 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16세기 스페인에서 벌어진 비아야돌리드 논쟁이다. 이 논쟁의 핵심은 “신대륙의 인디오들을 인간으로 볼 수 있는가?”였다. 어떤 이는 그들을 가르치고 개종시켜야 한다고 했고, 다른 이는 그들이 본래 열등하므로 지배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논쟁은 결국 야만의 기준이 얼마나 모호하고, 얼마나 자의적인가를 드러냈다. 그리고 나는 이런 질문을 오늘날에도 다시 던지고 싶어진다. 지금 이 시대에도 ‘야만’이라 불리는 문화가 존재할까? 혹시 태몽처럼,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것이 누군가에게는 미신처럼 보이고, 이해할 수 없는 ‘낡은 신념’처럼 여겨질 수 있는 건 아닐까? 결국 중요한 건 서로를 같은 인간으로서 인정하려는 태도일 것이다. 차이를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려는 노력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태몽을 이야기하던 그 지인의 표정, 그리고 축하를 건네는 우리의 마음은 의심 없는 인간의 감정이었다. 나는 그것이 문명의 기준보다 더 중요한 어떤 보편성일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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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가을엔 산에 가야지 머리는 차갑게 좋아하는 것들을 찾기
극과 극은 통한다!
[도서증정][김세진 일러스트레이터+박숭현 과학자와 함께 읽는]<극지로 온 엉뚱한 질문들>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19. <호라이즌>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서리북 아시나요?
<서리북 클럽> 두 번째_편집자와 함께 읽는 서리북 여름호(18호) 혼돈 그리고 그 너머서울리뷰오브북스 북클럽 파일럿 1_편집자와 함께 읽는 서리북 봄호(17호) 헌법의 시간 <서울리뷰오브북스> 7호 함께 읽기
문풍북클럽의 뒷북읽기
[문풍북클럽] 뒷BOOK읽기 : 7월의 책 <혼모노>, 성해나, 창비[문풍북클럽] 6월 : 한 달간 시집 한 권 읽기 [문풍북클럽] 뒷BOOK읽기 : 5월의 책 <죽이고 싶은 아이 1,2권>[문풍북클럽] 뒷BOOK읽기 : 4월의 책 <예술도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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