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제, 아프리카, 흑인문화를 따라 - 02.어둠의 심장, 조지프 콘래드

D-29
화제로 지정된 대화
2장은 저번 주에 한 번 읽고 오늘 다시 한 번 훑었습니다. 1장에 대한 물음 중 커츠 씨에 대한 상상에 대해 아직 답을 하지 않았는데 1장에서 상상한 커츠 씨에 대한 이미지와 2장을 읽어가며 간접적으로 접한 커츠 씨의 모습이 많이 달라져 있었어요. 콩고의 강을 따라 상류로, 어둠의 심장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커츠 씨에 대한 정보가 늘어남에 따라 인상이 달라지는 것이 어쩌면 이 작품의 핵심이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3장까지 읽은 뒤에 커츠 씨에 대해 장마닥 제가 생각했던 그의 인상을 비교하는 것도 흥미롭겠다 싶어 해당 질문은 잠시 남겨두려고 해요. 1) 2장에서 흥미롭거나 기억에 남는 부분을 말씀해주세요. 2) 86p~87p에서 말로는 콩고에서 만난 인간들이 원시의 모습과 달리 자신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존재라고 생각했음을 밝힙니다. 왜 말로는 그런 생각을 했다고 보시나요? 3) 117p에서 말로가 말한 "썩은 것을 파묻기 위한 수수한 구덩이를 팔 수 있는 자기 능력에 대한 믿음"과 "이해하기 힘들고 허리를 휘게 하는 일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바로 그런 힘"은 어떤 의미일까요? 4) 말로는 커츠 씨가 쓴 소논문을 읽어보았다고 합니다. 문서의 끝자락에서 그는 '짐승 같은 놈들을 전멸시키라'는 논문의 어조와는 정 반대의 소름끼치는 메모를 발견합니다. 커츠가 왜 그런 생각을 남겼다고 보시나요?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 것 같나요?
1) 중간에 증기선이 숲의 원주민 무리를 만나 충돌이 일어나고 그 결과 조타수가 죽는 장면이 나옵니다. 말로는 조타수의 시체를 빠르게 수습해 강으로 밀어넣는데 이를 두고 백인들 그리고 배에 올라 탄 흑인(식인종?)들이 서로 다른 이유로 불만을 갖는 모습이 인상 깊었어요. 조타수가 죽자 말로는 그의 능력이 어떠했건, 그가 얼마나 서툴렀건 상관없이 한 명의 인간으로서 조타수를 마지막까지 기억하며 예를 갖추어 대하는 느낌이었습니다. 반면, 순례자인 백인들과 흑인들에게는 조타수라는 개인이 전혀 다른 수단으로 취급받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어요. 원주민들은 조타수를 식재료이자 고기로 보는 듯한데 비해, 지배인을 비롯한 백인들은 어떤 이유로 말로의 시신 처리를 못마땅해 하는지 직접 묘사되지는 않습니다. 조타수를 땅에 묻거나 제대로 된 장례식을 치르지 않은 것에 대해 화를 내는 것인가 싶지만, 개인적인 추측으로는 조타수를 흑인 선원들에게 넘기지 않았다가 나중에 폭동을 일으키거나 자신들을 잡아먹지 않을까 두려워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문명사회에서 온 백인이던, 깊은 밀림의 원시사회에서 배에 올라탄 흑인이던 누군가의 죽음을 자신의 필요로만 해석하는 모습에서 '다르지만 같은 모습'이 보인다는 생각이 들어 흥미로웠습니다.
2) 소설의 배경이 처음에는 말로가 여정을 떠나고자 무역회사를 찾아갔다가 점점 강을 따라 올라갈수록, 콩고의 내륙에 들어갈수록 문명에서 멀어지는 모습이 나오죠. 말로가 말하고자 한 건 아마도 '문명이라는 껍데기가 얼마나 연약하고 쉽게 벗겨질 수 있는가' 같습니다. 도시에서 살 때는 현대사회가 제공하는 혜택과 가치들이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워서, 그것들이 없어지는 순간을 생각하기가 어렵죠. 당연히 돌아다니는 차와 교통신호, 직장과 공공기관에 드나드는 사람들, 그것들을 떠받치는 각종 상하수도와 전기와 통신망, 누군가가 만들어서 팔거나 돈을 주고 사 먹을 수 있는 각종 음식들, 어느 순간부터 실물 화폐가 없이도 물건과 서비스의 값을 치를 수 있는 결제시스템, 직급과 직책과 직업이 만들어내는 여러 위계질서와 매너, 상호교류의 관계 등등.. 복잡하면서도 서로 조밀하게 얽힌 이 체계 안에서 살아갈 때는 우리가 이 틀을 벗어날 이유도 없고, 필요도 느끼지 못하기에 마치 공기나 물처럼 가치를 체감하기 어렵죠. 그리곤 어딘가에 앉아 TV나 핸드폰, 컴퓨터로 가끔 여행이나 교양 프로그램을 보며 문명의 손길이 깊이 뻗치지 않은 오지나 원시사회를 보고는 우리와 얼마나 다른가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말 말로가 겪었던 경험처럼, 모든 사회와 문명이 지탱해주던 '현대인으로서의 나'의 연결고리가 모두 끊어진다면 과연 그때도 '나'는 그 원시의 자연 속에서 여전히 현대인으로 남아있을까요? '현대인'이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현대적인 의식을 갖고 있다고 현대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자연에서는 찾을 수 없는 인위적이며 물질적인 조건과 혜택과 기반이 더 중요한 요소일까요? 작품을 읽다 보면 강을 따라 들어갈수록 그곳에서 만나는 백인들의 모습에서 '백인' 또는 '유럽사회의 구성원'이라는 배경이 점점 희미해진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무역회사 건물에 있던 사무적인 직원들에서 회계사로, 이후 지배인과 순례자들로, 그러다가 커츠와 광대차림의 남자로 넘어갈수록 그들의 성격이나 행동과 말투에는 불안감과 불안정한 심리가 커져 가는 모습이었거든요. 1장의 해안에서는 흔하던 대갈못이 점점 희귀한 물건이 되어가듯, 유럽과 문명의 흔적에서 멀어질수록 이들 백인들의 정체성도 점점 흐릿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말로는 제3자의 입장에서 그 광경들을 보며, 백인을 '백인'으로 지탱해주던 조건들에서 멀어질수록 쉽게 불안해하고, 본능적이며, 파괴적인 존재로 변해가는 사람들을 담담하게 보여줍니다. 지식이나 교양은 점차 뒷전이 되고 각자의 감정과 욕망, 미신에 쉽게 흔들리는 모습은 커츠를 두려워하거나 숭배하는 원주민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어 보여요. 그런 의미에서 문명이라는 껍질이 한 번 벗겨지면 우리도 근본적으로는 원시적인 존재임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3,4) 처음에는 말로의 이 문장이 사명감이나 책임감을 의미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한동안은 읽으면서 상아 밖에 모르고 자신들끼리 뒤에서 서로 험담하고 모략을 꾸미는 사업장 직원들과 달리 커츠 씨는 어떤 목적의식을 갖고 아프리카를 찾아간 비범한 인물일거라고 봤어요. 말로도 이 깊은 내륙까지 찾아들어올 정도의 사람이라면 일반적인 동기만으로는 올리가 없다고 판단했을 겁니다. 야만인들을 교화시키겠다는 생각, 문명의 진보를 퍼뜨리겠다는 강한 내면의 등불이 있는 사람이어야 침묵과 적대심이 가득한 어둠을 뚫고 계속 나아갈 수 있죠. 하지만 2장을 넘어 3장으로 들어가면서 커츠의 사상은 신념이라기보다는 뒤틀린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야만인들을 교화시키기보다는 지배하고 있고, 사람을 감화해서 이끈다기보다는 불안감과 두려움으로 통제한다는 인상이 들거든요. 누구도 가고자 하지 않는 깊은 내륙 속으로 갈 수 있었던 건 커츠가 숲의 어둠만큼이나 깊은 심연을 속에 품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단순히 돈이나 출세를 위해서 이곳에 온 지배인이나 순례자, 회계사는 속물적이고 잔인하며 무정한 사람들이긴 해도 이해할 수 있는 범주의 욕망을 갖고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커츠는 그들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인간으로 느껴져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신념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모습에서 더 위험한 인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배인이나 순례자들도 그를 두려워하고 꺼리는 것 같고요. 광기에 가까운 신념을 품고 오지로 들어갈수록 원시적인 세상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고, 어떤 사회적 제약이나 가책을 받을 필요없이 자신의 광폭한 상상을 실현해 가면서 커츠는 일반적인 인간과는 동떨어진 존재가 된 게 아닐까요. 결국 신념이 있었기에 커츠는 온갖 장애물 속에서 미치지 않고 사명을 이어갈 수 있었지만 동시에 빠져나올 수 없을 정도로 어둠에 물든 것 같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 속하는 것이 아니었고, 그들도…… 아니야, 그들이 인간이 아니라곤 할 수 없었네. 실은 그것이 제일 고약한 일이었네. 그들도 어쩌면 인간일지 모른다는 의심 말일세.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깨닫게 되었지. 그들은 소리소리 지르고, 펄쩍펄쩍 뛰고, 빙빙 돌며 무시무시한 인상을 썼는데, 우리를 전율하게 만든 것은 바로 그들도 자네들과 똑같은 인간이라는 생각, 즉 야성적이고 격렬한 소란이 우리와 아무 관련 없진 않다는 생각이었네.
어둠의 심장 pp.79~80, <어둠의 심장>, 조지프 콘래드 지음, 황유원 옮김
태몽과 야만 최근 지인을 통해 태몽 이야기를 들었다. 아내가 임신하기 전, 꿈에 커다란 참돔이 품 안으로 들어오는 생생한 장면을 보았다는 것이다. 처음엔 이상한 꿈이라 여겼지만 곧 아이 소식을 접하게 되었고, 그는 그것을 태몽이라 믿었다. 주변 사람들은 축하의 말을 건넸고, 나 역시 그 소식을 반갑게 들었다. 그러면서 문득 생각했다. 태몽이라는 문화는 과연 우리만의 것일까? 세계 곳곳에도 비슷한 상징과 꿈 해석의 문화가 있을까? 혹은 이건 우리에게만 익숙하고, 외부에서는 낯설거나 심지어 ‘야만적’이라 여겨질 수도 있는 걸까? 문명이 서로를 만나면, 처음엔 충돌하지만 결국엔 교류를 통해 이해로 나아간다. 그러나 그 이해의 시작점은 언제나 낯설고, 때로는 차별과 지배의 형태로 나타났다. 초기 인류는 자신과 다른 문명을 ‘인간’으로 받아들이지 못했고, 그렇게 노예제와 식민 지배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런 생각은 자연스럽게 조지프 콘라드의 소설 <어둠의 심장> 을 떠올리게 했다. 콩고강을 거슬러 오르며 주인공이 마주한 정글과 ‘야만인’들은 그에게 충격을 안긴다. 그것은 이 세상에 속하는 것이 아니었고, 그들도…… 아니야, 그들이 인간이 아니라곤 할 수 없었네. 실은 그것이 제일 고약한 일이었네. 그들도 어쩌면 인간일지 모른다는 의심 말일세.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깨닫게 되었지. 그들은 소리소리 지르고, 펄쩍펄쩍 뛰고, 빙빙 돌며 무시무시한 인상을 썼는데, 우리를 전율하게 만든 것은 바로 그들도 자네들과 똑같은 인간이라는 생각, 즉 야성적이고 격렬한 소란이 우리와 아무 관련 없진 않다는 생각이었네. pp.79~80, <어둠의 심장> 가장 무서운 건, 그들이 우리와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이었다. 문명인은 야만인을 무서워한 게 아니라, 그들과 우리가 그렇게 다르지 않다는 가능성을 두려워한 것이었다. 실제로 역사 속에는 이러한 인식 충돌이 반복되어 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16세기 스페인에서 벌어진 비아야돌리드 논쟁이다. 이 논쟁의 핵심은 “신대륙의 인디오들을 인간으로 볼 수 있는가?”였다. 어떤 이는 그들을 가르치고 개종시켜야 한다고 했고, 다른 이는 그들이 본래 열등하므로 지배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논쟁은 결국 야만의 기준이 얼마나 모호하고, 얼마나 자의적인가를 드러냈다. 그리고 나는 이런 질문을 오늘날에도 다시 던지고 싶어진다. 지금 이 시대에도 ‘야만’이라 불리는 문화가 존재할까? 혹시 태몽처럼,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것이 누군가에게는 미신처럼 보이고, 이해할 수 없는 ‘낡은 신념’처럼 여겨질 수 있는 건 아닐까? 결국 중요한 건 서로를 같은 인간으로서 인정하려는 태도일 것이다. 차이를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려는 노력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태몽을 이야기하던 그 지인의 표정, 그리고 축하를 건네는 우리의 마음은 의심 없는 인간의 감정이었다. 나는 그것이 문명의 기준보다 더 중요한 어떤 보편성일 수 있다고 믿는다.
말씀해주신 바야돌리드 회의는 처음 알게 된 내용이라 찾아봤는데 인디오의 권리를 인정하는 대가로 빈 노동의 공백을 흑인으로 보충했다는 게 기가 막히면서도 착잡하네요. 그 당시의 스페인이 보기에는 인디오는 최소한의 문명이라도 존재하는 인간이었지만 흑인은 인간으로도 보지 않았다는 뜻이겠죠. 그래서 더더욱 아프리카 대륙과 흑인의 착취에 전념하고, 이를 정당화하고자 백인과 흑인은 같지 않다는 데 집착했나 봅니다. 하지만 백인들도, 영국이나 네덜란드도 과거 머나먼 때에는 말로의 말처럼 로마의 발길조차 닿지 않던 야만의 시대가 있었죠. 그 과거를 잊기 위해서라도 더욱 더 계몽사상에 매달려 자신들이 아프리카를 개척하고 올바르게 인도해야 한다는 그릇된 사명에 빠져든 것 같습니다.
말씀처럼 야만의 새다를 지난 백인들이 아프리카에서 다시 만난 야만은 과거를 떠올리지 않으려는 계몽사상을 강요하게 만든 것 같습니다. 또한, 작가는 식민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진보된 생각을 말로의 입을 통해 하였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과거를 잊은 시대에 사람들 사이에서 저자는 어떻게 현명함을 소설 속에 녹여낼 수 있었을지가 궁금합니다.
아마도 작가가 영국 태생이 아니기 때문에 당시의 식민지 경쟁의 시대를 객관적으로 보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책에 대한 후기나 정보들을 찾아보면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다고 하지만 저는 시대적인 배경보다는 '문명과 원시의 기준이 무엇이며, 그 둘이 근본적으로 무엇이 다른가'를 고민하는 작품이라고 느꼈습니다. 왜냐면 이 책 전반에 걸쳐 묘사되는 대부분의 서구권 인물들이 하나 같이 어딘가 결함이 있는 듯 묘사되거든요. 말로가 이야기를 하다가 자신의 경험담이 터무니없다는 주변인의 지적에 대해 '모든 것이 다 갖춰져 있고, 안락한 도시에서 사는 당신들이 뭘 알겠나' 식으로 말하기도 하고, 도시의 풍경도 굉장히 삭막하게 표현하고 있고요. 겉으로 보기엔 다들 옷을 갖춰 입고, 음식을 해 먹고, 직업이 있으며 돈을 벌지만 그 온갖 사회의 틀과 상호작용을 벗겨내면 근본은 정글 속 원주민과 다를 게 없다고 말하는 취지로 느껴졌습니다. 콘래드 본인도 콩고를 직접 다녀오고 똑같은 물음을 가졌을 것 같습니다. 왜 콩고의 사람들은 식민지가 되어 억압받는 삶이 당연한 것이고, 또 마찬가지로 서구권은 남으로부터 착취하는 구조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백인도 문명사회를 어느 순간 하루아침에 이룩한 것이 아니고 똑같이 야만의 시대가 있었다면 흑인과 백인이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무엇인가. 누군가가 다른 이를 단지 조금 더 기술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앞서 있다고 하여 위에 올라서는 것이 당연한 일인가. 모두가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는 사회의 가치가 머나먼 땅에서는 실제로 어떤 모습으로 실다가오는지를 경험해 보았고, 그 간극을 글로써 풀어낸 게 이 작품 아닐까요. 그리고 그런 질문과 물음은 조지프 콘래드가 영국이나 프랑스, 네덜란드와 같은 제국주의 국가 태생이 아닌 외부인의 입장이었기에 가질 수 있던 생각 같습니다.
"원주민들의 야영지가 그의 처소를 둘러싸고 있었고, 추장들은 매일 그를 보러 왔다지. 그들은 기어서 왔다는데……. '저는 그들이 커츠 씨에게 다가갈 때 갖춘 예법에 대해서는 전혀 궁금하지 않습니다.' 내가 외쳤어. 흥미롭기도 하지, 커츠 씨의 창문 아래 말뚝에서 말라가는 머리통들보다 그런 상세한 설명이 더 참을 수 없게 느껴졌다니 말이야."
어둠의 심장 p.139, 조지프 콘래드 지음, 황유원 옮김
"그의 (선홍색) 주머니는 탄약통으로 불룩했고, 다른 쪽 (남색) 주머니에서는 타우슨의 《선박 조종술의 몇몇 요점에 관한 연구》등등이 살짝 튀어나와 있었지. 그는 자신이 야생과 새로이 마주칠 채비를 아주 훌륭히 갖추었다고 생각하는 듯했어."
어둠의 심장 p.152, 조지프 콘래드 지음, 황유원 옮김
"나는 그 마력을 깨뜨려보려 애썼어. 망각된 난폭한 본능을 일깨우고 충족된 괴물 같은 열정의 기억을 되살림으로써 그를 그 냉혹한 가슴으로 끌어들이는 듯한 그 마력을 말일세. 그를 숲의 가장자리로, 덤불로, 어슴푸레 빛나는 모닥불로, 고동치는 북소리로, 기이한 주문의 웅얼거림으로 내몬 것은 오직 그 마력이었다고 나는 확신했지."
어둠의 심장 p.157, 조지프 콘래드 지음, 황유원 옮김
'당신에게 정말로 이익이 될 만한 무언가가 있음을 그들에게 보여주시오. 그러면 당신의 능력은 무한히 인정받게 될 거요' 하고 그는 말하곤 했어. '물론 동기에도 신경을 써야만 하오. 그것은 늘 옳은 동기여야만 하지.'
어둠의 심장 p.163, 조지프 콘래드 지음, 황유원 옮김
"작은 파리 떼가 램프 위로, 식탁보 위로, 우리의 손과 얼굴 위로 끊임없이 쏟아지듯 날아들었어. 갑자기 지배인의 사환이 무례한 검은 머리를 문간에서 들이밀더니 신랄한 경멸이 담긴 어조로 말했지. '미스터 커츠, 죽었어요.' 순례자들은 모두 그 광경을 보러 밖으로 뛰쳐나갔어. 나는 자리에 남아 식사를 계속했지."
어둠의 심장 p.166, 조지프 콘래드 지음, 황유원 옮김
아무리 쫒아내도 탐욕스럽게 달려드는 파리 떼를, 커츠 씨의 사망 소식을 듣자 좋은 구경거리라도 생겼다는 듯 달려가는 지배인과 순례인 무리와 겹쳐 보이게 표현한 것이 흥미롭네요. 다른 무리들은 오히려 식사를 계속 하는 말로를 냉혈한이라고 보았을지 몰라도 오히려 커츠의 죽음을 누구보다 반기며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하는 사업장의 인간 군상이 더 추잡하게 보였습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 아직 읽고 계신 분들이 있을지 몰라 스포일러 기능으로 올립니다. 전 오늘부로 3부 끝까지 완독했습니다. 1,2부에 비해 3부는 개인적으로 뒤로 가면 갈수록 수수께끼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다가왔어요. 시간을 내서 내일 한 번 더 읽어봐야겠습니다. 1) 말로는 자고 있는 줄 알았던 커츠 씨가 한밤에 빠져나와 어딘가로 향하고 있던 걸 찾아냅니다. 커츠의 의도나 계획은 독자의 상상에 맡긴 채 구체적인 묘사나 설명은 나오지 않지요. 여러분은 커츠가 그날 밤 어떤 일을 계획한 것 같나요? 커츠가 말한 자신의 원대한 계획 또는 그의 목표는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2) 왜 말로는 커츠 씨의 부인에게 남편이 말한 마지막 말을 솔직하게 말하지 않고 거짓말을 했을까요? 3) 책을 읽은 뒤의 느낌은 어떠셨나요? 핵심 키워드로 얘기하셔도 되고, 한 문장으로 요약하거나, 감상을 자유롭게 써주시면 됩니다.
1) 아마도 커츠는 원주민들을 시켜 한밤중에 말로를 포함한 지배인과 순례자들을 전부 제거하려던 게 아닌가 생각했어요. 증기선을 타고 사업장에 도착하기 전에 원주민들과의 충돌 사건도 결국 커츠가 뒤에서 지시한 일이었다는 걸 보면 커츠는 어떤 식으로든 돌아가거나 또는 붙잡혀 끌려가고 싶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소란과 난장판을 피하기 위해 자신은 오두막에서 몰래 빠져나온 것 같고요. 하지만 커츠가 무슨 이유로 그런 생각이나 음모를 꾸밀 만큼 아프리카에 또는 상아에 집착하는지는 여전히 수수께끼네요. 정말로 원주민 또는 아프리카 대륙을 교화하고 개척하기 위한 집착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납득이 되지는 않거든요. 3장의 끝을 읽다 보면 그의 출신이나 배경이 그렇게 유복하거나 부유하지는 않은 듯한 묘사가 있습니다. 어쩌면 이렇다 할 권력도, 재물도, 명성도 없던 커츠는 아프리카라면 자신의 욕망을 전부 채우면서도 왕이나 신 취급을 받을 수 있는 기회의 땅이라고 생각해 더 광적으로 매달리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보다 깊숙이 아프리카로 들어갈수록, 자신의 개인적 욕망 그리고 그걸 합리화하던 명분들은 점점 희미해지고 그 빈자리에는 보다 원시적이고 폭력적인 심연이 들어찼다고 봅니다. 심연을 너무 오래 바라보면 심연도 당신을 바라본다는 말이 아마 커츠에게 가장 적절한 설명이 아닐까 싶네요.
2) 아마 말로는 부인을 위한 배려의 차원에서 커츠의 마지막 말을 전하지 않았겠죠. 부인이 평생 알고 있던 커츠 씨에 대한 기대와 환상이 무너지지 않도록 자신만의 비밀로 간직했다고 봅니다. 사실 2부를 읽을 때까지는 커츠가 작성한 '야만 풍습 억제' 보고서의 메모가 아프리카로 여행을 떠나기 전, 또는 보고서를 쓰고 얼마 안 있어서 본심을 적은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3부에서 감질나기는 하지만 조금씩 풀리는 정보로 추측해보건대 아마도 커츠는 그 보고서를 쓴 뒤 아프리카로 넘어가 한동안 자신의 야망과 계획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가치관이 흔들리면서 메모를 남기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말로는 커츠의 사상이, 그의 신념이 바뀌었다는 진실까지 굳이 부인에게 알려주고 싶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를 존경하고 사모하던 사람에게 공유하기에는 너무나 어두운 진실이기 때문이죠.
3) 이 책은 오지에서 겪은 경험담을 말로라는 타자의 입을 빌려 건너건너 전달받는 느낌으로 진행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말이 어디까지가 과연 진실일지 불분명한 느낌을 계속 받았어요. 하지만 직접 그 자리에 있지 않았기에, 이야기를 듣는 '나'와 다른 뱃사람들도 그리고 책을 읽는 독자 모두 말로의 말에만 의지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이 구조가 흥미로운 건 말로와 커츠와의 관계에도 적용되기 때문이라고 봐요. 말로는 강을 타고 올라가면서 커츠에게 가까워질수록 커츠에 대해 추측할 수 있는 여러 정보나 사건, 대화를 전달받죠. 하지만 커츠가 어떤 일을 그곳에서 겪었는지, 어떤 과거사가 있었는지는 정확하게 알지 못합니다. 결국 말로도 타인들의 말을 통해서만 커츠를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을 뿐 커츠라는 개인을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죠. 그래서인지 커츠에 대한 느낌이나 생각이 1부, 2부, 3부를 지날 때마다 바뀌었습니다. 1부까지는 다른 지배인이나 순례자들처럼 이기적이고 탐욕스럽되 좀 더 사업수완이 좋은 사업가라고 생각했어요. 상아라는 단어 때문인지 한동안 커츠가 어느 정도 건장한 체격에 총과 각종 도구를 두르고 있는 음흉한 사냥꾼의 모습이 머리에 계속 떠올랐습니다. 2부로 넘어오면서 그가 남기고 간 그림, 장대한 보고서, 그를 동경하고 흠모하는 인물들을 보며 단순한 사업가를 넘어 목적의식이 분명한 개척가의 이미지가 다가왔습니다. 잘못된 사상과 주의를 가지고 오지로 향하는 제국주의적인 관료의 느낌도 났고요. 이후 3부를 읽으면서 생각이 또 바뀌었는데, 어쩌면 커츠는 정말로 자신의 여정에 깊은 의미와 사명을 두고 아프리카로 향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입니다. 커츠가 아프리카에 처음 도착해서 사업장을 따라 올라가던 여정은 아마 말로가 보고 겪은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겠죠. 여기저기서 당연하다는 듯이 죽어가는 사람들, 그런 죽음에 무감각한 주변인들, 자기 탐욕과 이익 말고는 관심이 없는 사업장의 벡인들,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문명의 쾌적함과 익숙함, 적대적이고 속을 알 수 없는 자연과 원주민들의 위협. 이런 일들이 어느 날 하루 아침에 생겨난 것들이 아닐테고, 말로가 오기 전부터도 꽤 오랫동안 반복되어 왔을 겁니다. 커츠는 사명을 위해서, 또 한편으로는 재산을 모을 기대를 갖고 그 모든 어두운 광경을 애써 무시하며 계속 강을 따라 올라갔겠죠. 하지만 그러든 말든 그를 둘러싼 모든 자연과 사업장의 환경은 그에게 무정하다 못해 적대적이고, 자신의 의지와 뜻대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을 겁니다. 그런 날이 하루, 이틀, 일주일, 한 달을 넘어 몇 년이 된다면 사람의 생각이 변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겠죠. 커츠가 구체적으로 어떤 사건을 겪었는지 작가는 알려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추정컨대 커츠는 이 사업에서 자신의 존재의의를 증명하기 위해 악착같이 버티다 그 과정에서 원시와 문명 양쪽 모두의 야만성에 자신의 신념이 뒤틀려버린 게 아닐까요. 숲 저 너머에는 이해할 수도 없고, 대화도 할 수 없는 어둠이 있고 반대편에는 비록 서구사회에서 왔다고 하지만 무력과 기술을 이용해 착취하는 것밖에 모르는 사회가 기다리고 있죠. 아마도 커츠는 자신의 의지와 믿음 만으로 극복하고 개척할 수 있다고 믿었지만 고난을 맞이하면서 결국 자신과 다른 '짐승'들을 전멸시키라는 가장 쉬우면서도 비극적인 방향으로 타락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커츠가 가장 상품의 좋은 상아들을 끊임없이 공급한다는 사실(마치 사람의 뼈를 무덤에서 파내듯 화석을 발굴한다는 점), 그를 신처럼 숭배하고 두려워 하는 주변 족장과 부족들, 사람들의 머리를 말뚝에 박아 놓은 악마적인 사업장은 이 책에서 직접적인 연결고리가 묘사되지는 않지만 어떤 불길한 암시를 줍니다. 어쩌면 커츠는 회사로부터 점점 상아 수급에 압박감을 느끼다가 자신의 신념이 변질된 순간부터 부정한 방식에 눈을 떠 원주민들을 지배하고, 그들을 이용해 상아를 긁어모으지 않았을까 상상해봅니다.
3) 야만과 문명의 경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그 구분선은 과거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적용되고 있는지 되묻게 되었습니다. 이주노동자, 탈북민, 성소수자 등 현대 사회의 소수자들도 차별의 이름 아래 구분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과 주류 사회 사이의 차이를 ‘말로’의 말처럼 명확하게 나눌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좋은 책을 함께 읽을 수 있어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무거운 주제를 함께 고민할 수 있어 더욱 뜻깊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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