헉 롱기누스님 전 빼주세요^^;; 전 무식한 이과생에다가 유일하게 대학교때 배운 의학사 빼고 역사 공부는 고등학교 이후로 거의 안 해서요.. 지금도 읽으면서 가물가물~한 거의 30년 전 기억들을 더듬어가며 읽고 있습니다^^;;; 지금 말씀하신 이문영 교수님도 처음 들어봐서 이제 와서 찾아보고 있답니다.
저도 얼마전 아이들과 벌거벗은 세계사를 보다가도 스탈린의 만행에 대해 보다가 마음 약한 초등 딸에게 이 부분은 너무 힘들면 보지 말자.. 정말 끔찍한 일들이 벌어졌어..하고 저도 좀 속이 안 좋아지더라구요..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3. <냉전>
D-29

borumis

롱기누스
흔히 그렇듯 우유부단함은 수동적 태도로 이어졌다.
『냉전 - 우리 시대를 만든 냉전의 세계사』 p.163., 오드 아르네 베스타 지음, 유강은 옮김, 옥창준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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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기누스
“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충돌이 세계 차원의 지배적 충돌로 거의 모든 지역에 강요된 것은 전쟁 이후 초기의 격렬한 시기의 일이었다. 생활을 재건하느라 - 살 곳을 마련하고, 아이를 먹이고, 일자리를 찾느라 - 분주한 가운데 사람들은 점차 자기가 냉전이 규정한 틀 안에서 이런 일을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들은 자신 또한 냉전 충돌의 일부라고 느끼지 못했겠지만, 냉전의 영향을 피할 수 없었다. 냉전은 전시에든 평시에든 사람들이 전에는 본 적 없는 여러 제한과 기회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점차 냉전은 과거에는 뚜렷하지 않았던 방식과 목적에 따라 세계의 각기 다른 지역을 연결했다. ”
『냉전 - 우리 시대를 만든 냉전의 세계사』 pp.187-188., 오드 아르네 베스타 지음, 유강은 옮김, 옥창준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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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
“ 여기서는 어디를 걸어 다니든 지붕이나 벽체가 없이 골조만 서 있는 건물이 천지고, 그런 건물에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그냥 벽돌 조각이 깔린 거대한 평지에 뒤틀린 침대와 욕조, 소파, 그림 액자, 여행 가방 등 오만가지 물건이 벽돌 사이로 튀어나온 게토는 예외죠. 어떻게 이렇게 될 수 있었는지 도무지 모르겠어요. … 너무 잔인해서 도저히 믿을 수가 없네요. ”
『냉전 - 우리 시대를 만든 냉전의 세계사』 오드 아르네 베스타 지음, 유강은 옮김, 옥창준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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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
저는 이번 장을 읽으며, YG님 말씀처럼 전쟁의 참상을 목도하는 느낌이... 지금도 여전히 전쟁 중인 나라가 있고, 그 나라에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겪을 고통과 아픔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이번 책은 역사공부를 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네요(하하). 하나하나 외우고, 찾고, 적느라 속도가 더디지만 부지런히 배워가겠습니다. 그래도 익숙한 이름들이 등장하니 복기하는 재미가 있네요. 다들 역사 채널에도 관심이 많으시다는 걸 이번 모임에서 새롭게 느끼는 중입니다(멋지십니다!).

연해
“ 전쟁 이후 영국의 생활이 온통 뒤죽박죽이었다면, 적국은 존재 자체가 거의 지워진 상태였다. 독일은 1945년에 난파선과 같았는데, 국민이 히틀러가 남긴 물리적・심리적 폐허에서 빠져나오는 데만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1945년 독일의 산업 생산은 전쟁 전 수준의 20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했지만, 심리적 상처는 물질적 파괴보다 더 심각했다. 1933년 독일인은 재앙과도 같은 정치적 기획에 협력했다. 전쟁이 끝나는 순간까지 그들은 거짓말을 부여잡았고, 따라서 나치스가 붕괴하자 완전히 사기를 잃었다. 죽음과 대대적인 파괴가 대가라면 무엇을 위해 노동해야 하는가? 전후 독일에서 어떤 형태로든 경제 활동을 재개하는 것은 쉽지 않았고, 초기 몇 년간 독일인은 승전국의 적선에 의지했다. 최소한의 생필품 이외의 물품을 손에 넣는 유일한 길은 암시장뿐이었다. ”
『냉전 - 우리 시대를 만든 냉전의 세계사』 오드 아르네 베스타 지음, 유강은 옮김, 옥창준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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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죽백
"전쟁 이후 영국의 생활이 온통 뒤죽박죽이었다면" 관련 설명:
https://namu.wiki/w/%EC%98%81%EA%B5%AD%20%EC%9A%94%EB%A6%AC#s-4.3 참조.
https://namu.wiki/w/%EC%98%81%EA%B5%AD%EC%9D%98%20%EB%B0%B0%EA%B8%89%20%EC%A0%9C%EB%8F%84 참조.

부엌의토토
그럼에도 이미 1930년대를 겪은 서방의 많은 이는 나치의 팽창주의와 유사하다는 데 주목했다. (134쪽)
세계 곳곳의 수많은 나라에서 공산당 제오열이 형성되어 완전히 단합을 이루고, 공산주의 중심부에서 받는 지침에 절대 순종하면서 활동합니다. (136쪽)
미국 집권 진영이 자본주의 독점기업의 지원을 받아 공산주의를 상대로 벌이는 십자군은 논리적 결과로서 미국 노동 대중의 기본 권리와 이익에 대한 공격으로,•••(145쪽)
미 제국주의는 ••• 유럽 각국이 전후에 겪는 어려움, 특히 전쟁의 고통이 가장 큰 연합국의 원료, 연료, 식량 부족 사태를 활용해서 모든 원조에 터무니없는 조건을 강요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146쪽)
1948년 초에 이르러 유럽에서 국가 간 냉전 체계가 확립되었다.여전히 많은 것이 불투명했지만, 주요 특징은 드러났다. 제 2차 세계대전 말에 소련이 점령한 나라는 공산당이 정치를 장악할 것이었다. 미국은 유럽 문제에 여전히 관여할 터였다. 영국의 역할은 영원히 줄어들었다. 서유럽의 대다수 좌파는 공산당과 소련에 맞서 자국 정부 편을 들 태세였다. 소련이나 미국은 유럽에서 전쟁을 벌이려고 하지 않았지만, 군사적 긴장이 높아질 공산이 컸다. 미국 정부는 점차 유럽과 세계 정치를 소련과 공산주의의 봉쇄라는 측면에서 사고했다. 소련 지도자들 - 무엇보다도 스탈린 본인 - 은 미국 및 영국과 제한적으로 협력할 가능성 대신 안보와 이데올로기적 엄정함을 선택했다. 그리고 유럽 정치는 극적인 방식으로 바뀌고 있었지만, 경제와 사회의 구조를 재건하는 것은 누가 예상한 것보다 더 오래 걸렸다. (146~147쪽)
제오^열(第五列)
내부에 있으면서도 외부의 반대 세력에 호응하여 활동하고 있는 집단. 에스파냐 내란 때 네 개 부대를 이끌고 마드리드를 공격한 프랑코 장군이 시내에도 자기들에게 호응하는 또 한 개의 부대가 있다는 말을 퍼뜨린 데서 유래한다.
-표준국어대사전 참고

향팔
“ 동부전선의 교착 상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곳은 일본이었다. 소련이 무너지거나 자국 군대의 손쉬운 공격 대상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잃은 도쿄 당국은 공격 전략을 남쪽과 동쪽으로 바꿨다. 대중국 전쟁은 4년째 질질 끄는 중이었다. 일본 지도자들은 이제 아시아에서 유럽의 이해관계에 괴멸적인 타격을 가하고, 동남아시아의 중요한 원료에 접근하는 통로를 확보하기로 했다. ”
『냉전 - 우리 시대를 만든 냉전의 세계사』 오드 아르네 베스타 지음, 유강은 옮김, 옥창준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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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 테헤란에서의 논의를 통해 스탈린은 의제를 정하려고 했다. 미국이 그에게서 무언가를 얻어 내려고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소련이 일본을 공격하면 일본 본토 침공 이후 벌어질 전투는 말할 것도 없고 태평양에서 미군 병사 수십만 명을 구할 수 있었다. ”
『냉전 - 우리 시대를 만든 냉전의 세계사』 오드 아르네 베스타 지음, 유강은 옮김, 옥창준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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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 미국 대통령은 독일을 희생하면서 폴란드 국경을 200마일(약 322킬로미터) 서쪽으로 옮기고, 스탈린과 히틀러가 1939년에 합의한 폴란드 동부 국경을 유지하는 데 동의했다. 루스벨트는 또한 발트3국을 소련에 편입하는 데도 동의했다. […] 루스벨트는 독일이 패배한 뒤 소련이 대일본 전쟁에 참전한다는 스탈린의 합의를 끌어냈다.
[…] 소련은 혁명 전에 중국 북동부(만주)에 가진 권리 일부를 돌려받는 식으로 아시아에서 기울인 노력을 보상받을 터였다. 이 문제에 대해 중국의 견해를 물어본 열강은 없었다. ”
『냉전 - 우리 시대를 만든 냉전의 세계사』 오드 아르네 베스타 지음, 유강은 옮김, 옥창준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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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p.85 카틴 숲의 학살, 그후…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europe/415554.html
폴란드 ‘카틴숲 비극’에 3번 울다

향팔
“ 1944년 여름 바르샤바에서 폴란드인이 독일에 맞서 반란을 일으켰을 때, 붉은군대는 폴란드 수도 외곽에서 진행하던 공세를 일부러 중단해 나치가 폴란드 국내군(Home Army, 1942년 창설된 폴란드 저항 운동 조직)을 괴멸하도록 했다. 스탈린은 살아남은 폴란드 장교의 수가 적을수록 소련이 이 나라를 장악하기에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붉은군대가 마침내 바르샤바를 접수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이미 폴란드인 25만 명이 독일 국방군과 나치스 친위대에 살해되고 도시 대부분이 완전히 파괴된 뒤였다. ”
『냉전 - 우리 시대를 만든 냉전의 세계사』 오드 아르네 베스타 지음, 유강은 옮김, 옥창준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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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죽백
https://www.youtube.com/watch?v=9BjIYKq4CVk 참조(한국어 자막 기능을 제공).

향팔
인류 역사의 이런 엄청난 비극을 이번 독서로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청사죽백 님이 올려주신 영상을 보는데 가슴이 턱턱 막힙니다. 충격적이네요. 이래서 이때 바르샤바에서 무려 25만 명이 살해되고, 책 3장 초입에서 미국의 구호활동가가 목격한 대로 폐허만 남은 것이로군요… 한강의 <흰>에서도 바르샤바 학살의 벽 이야기를 읽었는데, 구체적인 맥락과 과정은 몰랐습니다. Extra History 영상 참 좋네요, 저도 구독해야겠어요. 감사합니다.

향팔
2장에서 루스벨트가 스탈린에게 대일본전쟁 참전을 종용하는 대목이 서너 번은 나오는 것 같습니다. 소련이 참전하면 동아시아에 소련의 지분이 생기니 미국으로선 좋을 것이 없지만, 일본 본토 상륙 등 예상되는 전장에서 미군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소련의 지원이 절실했던 것이고요.
이때는 미국이 원폭을 갖기 전이었기 때문에 소련의 동참에 그렇게 목을 맸던 것이겠죠?
그렇다면 트루먼은 왜 포츠담에서 원폭 개발 소식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소련을 대일본 전쟁에 끌어들이려고 안달이 나 있었”(p.95)던 것일까요? 미국이 소련 참전 이전에 일본의 항복을 받아내려고 원폭 투하를 더욱 서둘렀다는 썰도 있던데, 그럴 거면 그 전에 먼저 소련의 참전을 막으려는 시도를 해 보는 게 맞지 않았나 싶어서요. 한반도 분단과 직접 이어지는 일이라 더 관심이 갑니다.

YG
@향팔 그 대목은 좀 더 자세한 맥락을 파악하는 일이 필요해 보입니다. (나중에 @청사죽백 님께서 보충 설명해 주시리라 믿고) 어쭙잖게 덧붙여보겠습니다.
1. 우선 당시 미국의 정치인은 심지어 루스벨트의 서거로 갑작스럽게 대통령이 된 트루먼조차도 핵폭탄의 위력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 심지어 이것이 전쟁에서 어떤 파급력이 생길지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핵폭탄의 위력은 8월 6일(히로시마)과 9일(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되고, 그 결과 8월 15일 일본이 항복하면서 비로소 세상에 그 실체를 드러낸 것이죠. (나중에 트루먼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핵폭탄 피해 보고서를 읽고서야 이 신무기의 위력을 실감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내일 읽을 4장 '재건' 편에 관련한 대목이 나옵니다.)
그러니, 7월 말과 8월 초의 포츠담 회담에 참석한, 국제 관계에 식견이 없었던 트루먼으로서는 얄타 회담에서 루스벨트가 고수해온, 가능한 한 빨리 소련이 동아시아 전선에 개입하기를 원하는 관성적인 입장을 그대로 고수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과학 기술을 중심으로 냉전사를 공부하는 역사학자 최형섭 선생님께 재미있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습니다. 8월 6일과 9일 핵폭탄 투하 후에 왜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기까지 길게는 9일에서 짧게는 6일 정도의 시간이 걸렸을까? 이 대목을 놓고도 요즘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는데, 최 선생님 전언으로는 일본도 도대체 핵폭탄이 투하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 제대로 파악을 하지 못했던 정황이 있다는 겁니다.
2. 당시 동아시아 전선을 책임지던 맥아더 같은 군부의 입장과 그들로부터 보고를 받은 트루먼 같은 워싱턴 같은 정치인 사이에 전황을 파악하고 분석하는 인식 차도 또렸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맥아더 같은 군부는 일본을 포함해 동아시아 전쟁을 끝내는 일이 미국의 힘으로 충분히 가능하고 또 소련의 개입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서둘러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던 반면에 트루먼이나 워싱턴의 전략가 사이에서는 그런 군부의 자신만만함을 100퍼센트 신뢰하지 못하고 소련의 힘을 빌려야 하는 상황을 염두에 뒀을 수도 있습니다. 이건 월요일에 읽을 6장에서 슬쩍 그 기류를 볼 수 있고, 한반도도 그런 혼란 속에서 분단으로 가는 길이 차근차근 닦여졌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일단, 제가 대충 답변할 수 있는 건 이 정도입니다. :)

향팔
오, 찰떡같이 이해가 됩니다. 진짜 그랬을 것 같네요. 세상엔 역시 단순한 것이라곤 없네요. 일본 항복은 핵폭탄 투하 때문이 아니라 소련의 참전 때문이라는 얘기도 어디서 읽은 것 같은데… 하나로만 똑 떨어지는 칼답이라는 건 없겠죠. 과거의 사람들이 내린 결정을 지금 기준에서 결과론적으로 판단해서도 안될 것이고, 우연이라는 것이 작용하는 힘도 큰 것 같습니다. 더 읽고, 생각해봐야겠어요. 감사합니다.

YG
@향팔 맞습니다. 일본의 항복은 핵폭탄 투하의 결과가 아니라 소련군의 동아시아 개입이 촉발했다는 주장도 있었지요. 일본의 항복을 둘러싼 다양한 맥락을 연구한 책이나 논문의 출처는 제가 확인이 되는 대로 다시 언급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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