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차 세계대전의 결과로 미국은 세계 패권을 확보했고 소련과 그에 고무된 각국 공산당이 대규모 도전 세력으로 유일하게 남았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냉전의 국제체계를 창조하는 데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세계대전을 다가올 미래를 위한 서곡만으로 축소하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73쪽)
양국은 공동의 적이 일으킨 세계적 전쟁에서 우연히 연합국이 되었다. 1941년 6월 독일이 소련을 공격했고, 그해 12월 일본이 미국을 공격했다. 대부분의 성공한 연합과 달리, 소련과 미국, 영국이 이룬 대연합( Grand Alliance ) '은 공동의 목표를 위해 오랫동안 협력한 바탕에서 형성되지 않았다. 이 연합은 각국이 당면한 위협을 물리치기 위해 도움을 찾아야 하는 순간에 현실적인 필요로 생겨난 일종의 강제 결혼( shotgun marriage )이었다. (74쪽)
하지만 외국 지도자들은 미국이 참전하지 않는 한 영국이 전쟁에서 살아남을 유일한 기회는 소련이 최대한 오랫동안 독일군에 저항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기 위해서 영국과 미국이 소련에 지원하고 원조해야 했다. (75쪽)
미국이 전쟁에 뛰어들었는데도 스탈린은 자본주의 연합국이 어느 시점에 나치 독일과 독자적으로 평화를 이루어 공산주의 소련을 저버리려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스탈린의 붉은군대가 인적 · 물적으로 막대한 희생을 치르면서 서서히 독일군 사단을 밀어내는 가운데, 소련 지도자는 연합국에 독일에 맞서 유럽 북서부에 제 2의 전선을 만들라고 끊임없이 요구했다. 소련 군인 900만 명이 전사 한 뒤에도 1944년 6월까지 그런 제 2의 전선이 형성되지 않은 사실은 스탈린에게 영국과 미국의 배신과 적대감을 보여 주는 증거였다. (80쪽)
연합국은 런던에 있는 폴란드 망명 정부가 아니라 붉은군대의 점령 이후 바르샤바에 이미 만들어진 공산당 중심의 폴란드 정부를 세우는 데 합의했다. 소련은 혁명 전에 중국 북동부(만주)에 가진 권리 일부를 돌려받는 식으로 아시아에서 기울인 노력을 보상받을 터였다. 이 문제에 대해 중국의 견해를 물어본 열강은 없었다.(84쪽)
제 1차 세계대전이 유럽의 세계 지배에 종말을 알리는 사건이었다면, 제 2차 세계대전은 특히 유럽인에게 이 지배의 폐지를 필연으로 만들었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유럽 젊은이는 자국의 식민지에서 벌어진 사태보다 자국 내의 복지에 훨씬 몰두했다.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수많은 젊은이는 그들 자신의 소득과 지위가 이제 더는 해외 식민 지배를 유지하는 데 좌우된 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와 동시에 특히 아시아에서 반식민주의 저항이 고조되었다. (89~90쪽)
미국의 관점에서 제 2차 세계대전은 개인의 자유와 헌법 질서, 생활방식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었다. (91쪽)
제 2차 세계대전은 세계 경제의 전면적인 전환으로 이어졌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미국이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 부상한 것은 일찍이 20세기 초부터였고, 전간기에 그 속도가 빨라졌다. 장기적 변화가 급속히 전환되게 한 계기는 바로 제 2차 세계대전이었다. 미국의 경제 규모는 전쟁 중에 2배 가까이 커졌다. 이와 대조적으로, 세계의 다른 지역은 거의 전부 황폐해졌다.
전쟁 중에 루스벨트 행정부는 미국을 위해 더 잘 작동할 전후 세계를 이룩하려면, 미국의 독특한 지위를 활용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루스벨트의 핵심 구상은 독일과 일본에 맞선 전시 연합을 영속화하는 한편, 모든 나라가 속할 수 있는 세계 기구를 창설하는 것이었다. (104쪽)
새로 만들어진 세계 기구의 주요 임무 가운데 하나는 전 지구적 경제 문제를 다루는 것이었다. 경제가 가장 강한 미국은 자유무역과 해외시장 진출을 원했다. (105쪽)
하지만 유럽과 아시아에서 정치적 분단선이 그어진 것처럼, 이 협정도 전쟁으로 이미 생겨난 결과물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장기적으로 보면 미국은 브레턴우즈에서 기회나 안정성 어느 것도 얻지 못했다. 하지만 이 협정은 어쨌든 미국이 세계 경제 대국으로 등장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체계를 마련해 주었다.(106쪽)
한편 미국은 국제 문제에서 미국의 우세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 소련에 인내심을 보이지 않았다. 트루먼 대통령은 루스벨트 같은 정치적 기민함과 개인적 매력이 없었고, 소련에 대해 오래전부터 강경 노선을 주장한 트루먼의 핵심 보좌진은 소련을 통합하기보다 오히려 봉쇄하는 쪽으로 결정하게 했다. 앞으로 살펴볼 것처럼, 전후의 충돌을 냉전으로 뒤바꾼 것은 바로 이 봉쇄였다.(107~108쪽)
1945년에 이르러 스탈린은 유럽의 심장부와 중국과 이란에서도 동유럽에서 보인 행동과 비슷한 행보를 취했다. 이 지역에서 소련이 벌인 행동 때문에 미국의 정책이 급변했고, 멀찍이서 지켜보는 다른 나라도 공포를 느꼈다. 이런 행동이 그 자체로 냉전을 재촉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전후 소련을 겨냥한 봉쇄 가능성을 한층 높인 것은 확실하다.(108쪽)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3. <냉전>
D-29

부엌의토토
청사죽백
'이란에서도' 대상 설명:
1) https://en.wikipedia.org/wiki/Anglo-Soviet_invasion_of_Iran 참조.
2) https://en.wikipedia.org/wiki/Iran_crisis_of_1946 참조.
청사죽백
'북동부':
1)→동북부.
2) 한자 사용권에서 방위들 언급 의 기본적 순서는 동서남북이고 중화권에서 해당 지역을 동북3성이라고 지칭한다는 사실까지 고려한다면 해당 번역 표현이 부적절하다고 확인가능함.

부엌의토토
고맙습니다^^ 문장 수집에 급급해서 실질적인 데 놓치네요. 오늘도 많이 배우니 즐겁습니다~

오도니안
전 책을 읽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참여해두고 눈팅만 하겠습니다. ^^
청사죽백
Opt-in and opt-out matter.

롱기누스
오늘은 3장 '유럽의 불균형'을 읽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의 마지막을 지나면서 국가사회주의와 파시즘이 완전히 붕괴되었고, 히틀러를 제거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소련은 동유럽에서 활동하고 있는 공산당과 붉은 군대의 무력에 힘입어 공산주의 세력이 정권을 불법(?)으로 획득하는데 노력을 기울였음을 보았습니다. 아울러 미국은 서유럽을 중심으로 마셜플랜을 가동하였으나 다만 초기부터 미국이 서유럽과 일부 동유럽 - 폴란드, 불가리아 등 - 에 더욱 적극적인 경제원조를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마셜플랜이 본격적으로 가동되는 것을 보면서 소련은 그것이 자본주의의 덫임을 일찌감치 감지하고 자국을 비롯한 여러 위성국가들을 단속하는 모습도 꽤나 인상적이었습니다. 최근에 일어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초기에 독일을 비롯한 여러 유럽국가들이 단호하고 신속한 결단을 내리지 못한 것이 러시아가 설치했던 '노르트스트림' 이라는 덫 때문이라면 이와 같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또 있을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에 읽은 '노르트스트림의 덫'을 소개합니다.
aida
저는 이제 2장을 읽었는데 막바지에 트루먼의 핵심 보좌진의 실수 "소련을 통합하기보다 오히려 봉쇄하는 쪽으로 결정하게 했다. ... 전후의 충돌을 냉전으로 뒤바꾼 것이 바로 이 봉쇄였다.." 이 부분 때문에 매우 궁금해하며서 3장으로 넘어가려구요~

롱기누스

노르트스트림의 덫 - 러시아는 어떻게 유럽을 장악하려 했나노르트스트림의 생애를 다방면으로 따라가며, 과대망상에 가까운 푸틴의 제국주의 야욕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디서 힘을 얻었으며 왜 아직도 꺾일 줄 모르는지, 여기에 서방 국가들은 어떻게 동조했는지 추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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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기누스
“ 제2차 세계대전 말에 소련이 점령한 나라는 공산당이 정치를 장악할 것이었다. 미국은 유럽 문제에 여전히 관여할 터였다. 영국의 역할은 영원히 줄어들었다. (중략) 소련 지도자들 - 무엇보다도 스탈린 본인 - 은 미국 및 영국과 제한적으로 협력할 가능성 대신 안보와 이데올로기적 엄정함을 선택했다. ”
『냉전 - 우리 시대를 만든 냉전의 세계사』 p.147., 오드 아르네 베스타 지음, 유강은 옮김, 옥창준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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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da
“ 1941년 보수주의자만이 아니라 자유주의자와 사민주의자도 히틀러와 스탈린을 같은 시장에서 활개 치는 두 도둑, 잔인한 체제를 이끄는 두 독재라라고 여길만한 이유가 풍분했다. 두 체제는 자유시장 자본주의 뿐만 아니라 독립적인 노동자조직과 대의민주주의의 치명적인 적이이었다.
하지만, 외국 지도자들은 미국이 참전하지 않는 한 영국이 전쟁에서 살아남을 유일한 기회는 소련이 최대한 오랫동안 독일군에 저항하는 것임을 깨달랐다. ”
『냉전 - 우리 시대를 만든 냉전의 세계사』 오드 아르네 베스타 지음, 유강은 옮김, 옥창준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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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da
“ 공산주의 자기 홍보에서 “혁명”이라는 단어가 “민족”으로 대체되었다. 러시아인이 지금도 제2차 세계대전을 대조국전쟁으로 알고 있는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스탈린 자신의 견해가 크게 바뀐 것인지는 판단하기 쉽지 않다. 다만 과대망상증은 확실히 심해졌다.
….
평범한 소련인에게 대조국전쟁은 스탈린과 공산당이 조국 방위의 상징이 되었음을 의미했다.
..
동유럽에서 많은 이는 붉은 군대를 독일의 인종 억압에서 자기를 해방하는 슬라브 군대로 바라보았다. ”
『냉전 - 우리 시대를 만든 냉전의 세계사』 오드 아르네 베스타 지음, 유강은 옮김, 옥창준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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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da
2장은. 독일이 소련을 침공함으로써 4년만에 두 도둑에서 한 도둑은 끝이나고, 한 도둑은 조국방위의 상징, 동유럽의 해방자가 되었다는 내용이 2장에서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전쟁의 원인 중 하나가 독소불가침조약으로 시작되었고 소련이 동유럽의 영토를 일부 장악했던 과거는 4년만에 묻힐 정도로 절멸의 위기가 있었던 전쟁 경험 때문이겠죠..
2차세계대전 영화 몇 개가 생각나고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조금 다르게 보일까도 싶고.
화제로 지정된 대화

YG
이번 주말 6월 7일과 8일에는 3장 '유럽의 불균형'과 4장 '재건'을 읽습니다.
3장과 4장에서는 전후 동유럽을 병합하지 않되 자기의 영향력 하에 두려는 소련의 전략과 이에 대한 미국의 반응으로 오늘날 우리가 냉전이라고 이해하는 틀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장의 제목처럼 특히 유럽을 중심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쟁 후 유럽의 끔찍한 상황을 보면, 전쟁이 남긴 상흔이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는데요. 전후 세대인 우리는 가끔 종전 선언이 되면 모든 게 깔끔하게 원상태로 돌아가는 그림을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 과정이 얼마나 길고 지난하고 수많은 희생의 과정인지를 3장~4장을 읽으면 알 수 있지요.

YG
제2차 세계 대전 직후 유럽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소설 한 편을 소개합니다.
『이것이 인간인가』, 『주기율표』 등으로 유명한 프리모 레비의 『휴전』. 이 책은 수용소에서 죽기 직전에 살아남은 레비가 아우슈비츠에서 고향(이탈리아 토리노)으로 귀환하는 과정을 그린 소설입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즈음, 소련이 통제하는 지역의 풍경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특히 2장, 3장과 함께 살펴보면 그 시대를 좀 더 생생하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휴전프리모 레비의 두 번째 작품이자 <이것이 인간인가>의 속편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다. 전작에서 저자가 아우슈비츠에 수용되어 해방되기까지의 10개월간의 체험을 다루고 있다면, 이 책은 수용소에서 해방된 저자가 고향 토리노로 돌아가기까지 9개월 동안의 고난에 찬 귀환의 여정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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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umis
오 프리모 레비의 이 책은 처음 들어봐요. '이것이 인간인가'의 속편이라고 소개되네요. 추천 감사합니다.

부엌의토토
책 장바구니에 담아놓은 지 꽤 되었는데 이 참에 읽어야겠네요. <이것이 인간인가> 읽고 나서 임레 케르테스 <운명> 읽었는데 같은 장소에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슬픔과 절망을 느꼈죠. 삶은 대체 무언가 하고 ......
청사죽백
임레 케르테스→케르테스 임레.

부엌의토토
민음사 표지대로 표현했는데, 헝가리는 성씨를 앞에 쓴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어요. 고맙습니다.
청사죽백
It is my pleas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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