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3. <냉전>

D-29
향팔님의 대화: 오, 찰떡같이 이해가 됩니다. 진짜 그랬을 것 같네요. 세상엔 역시 단순한 것이라곤 없네요. 일본 항복은 핵폭탄 투하 때문이 아니라 소련의 참전 때문이라는 얘기도 어디서 읽은 것 같은데… 하나로만 똑 떨어지는 칼답이라는 건 없겠죠. 과거의 사람들이 내린 결정을 지금 기준에서 결과론적으로 판단해서도 안될 것이고, 우연이라는 것이 작용하는 힘도 큰 것 같습니다. 더 읽고, 생각해봐야겠어요. 감사합니다.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의 2차 세계대전에서의 일본 대상 교전 참여가 일본의 항복을 유발하였던 과정 대상 설명: 당시의 일본 행정부는 일본의 무조건 항복보다는 관대한 항복 조건들을 보장받고자 빈번하게 시도하였고 이러한 시도들의 가장 중요한 요청 대상은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이었는데, 이러한 시도들은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이 1946년 4월에 그 시효가 끝나도록 규정하였던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일본 중립조약을 갱신하지 않겠다고 1945년 4월에 일본에게 통보하고 나서도 지속하였음 ↓ 당시의 일본 행정부에서 공유하고 있던 이러한 허망한 기대는 1945년 8월 9일에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이 2차 세계대전에서의 일본 대상 교전 참여를 시작하면서 파탄났고, 그리하여서 관동군 위주로 일본 육군의 붕괴가 전면화하자 일본 행정부는 연합국 진영에게 무조건 항복하겠다고(포츠담 선언의 수용) 결정하였음 https://namu.wiki/w/%EB%A7%8C%EC%A3%BC%20%EC%A0%84%EB%9E%B5%20%EA%B3%B5%EC%84%B8%20%EC%9E%91%EC%A0%84 참조
YG님의 대화: @향팔 그 대목은 좀 더 자세한 맥락을 파악하는 일이 필요해 보입니다. (나중에 @청사죽백 님께서 보충 설명해 주시리라 믿고) 어쭙잖게 덧붙여보겠습니다. 1. 우선 당시 미국의 정치인은 심지어 루스벨트의 서거로 갑작스럽게 대통령이 된 트루먼조차도 핵폭탄의 위력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 심지어 이것이 전쟁에서 어떤 파급력이 생길지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핵폭탄의 위력은 8월 6일(히로시마)과 9일(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되고, 그 결과 8월 15일 일본이 항복하면서 비로소 세상에 그 실체를 드러낸 것이죠. (나중에 트루먼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핵폭탄 피해 보고서를 읽고서야 이 신무기의 위력을 실감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내일 읽을 4장 '재건' 편에 관련한 대목이 나옵니다.) 그러니, 7월 말과 8월 초의 포츠담 회담에 참석한, 국제 관계에 식견이 없었던 트루먼으로서는 얄타 회담에서 루스벨트가 고수해온, 가능한 한 빨리 소련이 동아시아 전선에 개입하기를 원하는 관성적인 입장을 그대로 고수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과학 기술을 중심으로 냉전사를 공부하는 역사학자 최형섭 선생님께 재미있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습니다. 8월 6일과 9일 핵폭탄 투하 후에 왜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기까지 길게는 9일에서 짧게는 6일 정도의 시간이 걸렸을까? 이 대목을 놓고도 요즘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는데, 최 선생님 전언으로는 일본도 도대체 핵폭탄이 투하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 제대로 파악을 하지 못했던 정황이 있다는 겁니다. 2. 당시 동아시아 전선을 책임지던 맥아더 같은 군부의 입장과 그들로부터 보고를 받은 트루먼 같은 워싱턴 같은 정치인 사이에 전황을 파악하고 분석하는 인식 차도 또렸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맥아더 같은 군부는 일본을 포함해 동아시아 전쟁을 끝내는 일이 미국의 힘으로 충분히 가능하고 또 소련의 개입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서둘러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던 반면에 트루먼이나 워싱턴의 전략가 사이에서는 그런 군부의 자신만만함을 100퍼센트 신뢰하지 못하고 소련의 힘을 빌려야 하는 상황을 염두에 뒀을 수도 있습니다. 이건 월요일에 읽을 6장에서 슬쩍 그 기류를 볼 수 있고, 한반도도 그런 혼란 속에서 분단으로 가는 길이 차근차근 닦여졌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일단, 제가 대충 답변할 수 있는 건 이 정도입니다. :)
USA 트루먼 연방행정부가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의 2차 세계대전에서의 일본 대상 교전 참여를 계속 유도하도록 작용하였던 동기들 대상 설명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과 USA가 교전을 주도하였던 지리적 범위인 태평양 전구에서의(태평양 전구/Pacific Ocean theater) 전투들은 그 과정들과 결과들이 자주 매우 잔혹하였는데, 이러한 귀결들의 3대 원인들은: 해당 지리적 범위에서 존재하여 오고 있는 험악한 자연환경조건들 그리고 일본의 인명 포함 인권 경시가 자극하였던 USA 위주 연합국 진영 소속 국가들에서의 인종주의적 증오의 분출 그리고 항복을 거부하고 자살공격이나 전멸을 추구하는 일본군 부대들의 행태들이 유발하였던 공포어린 경계심이었음 + 그러므로 당시에 태평양 전구에서 참전하고 있던 연합국 진영 소속 국가들은 일본 본토를 점령하려면 연합국 진영에서도 막대한 손해들을 경험하게 되리라고 예상하면서 일본 본토 상륙작전 시작 이후 일본 국민들의 저항을 분쇄하려면 일본 국민들을 대거 살상하겠다고 준비하였고 또한 예상가능한 손실들을 분산시키고자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의 2차 세계대전에서의 일본 대상 교전 참여를 요구하고서 관철시켰음 + USA 군대가 1945년 8월 6일에 히로시마에 원자폭탄 1발을 투하하여서 폭발시키고 나서도 일본 행정부는 연합국 진영 대상 무조건 항복을(포츠담 선언의 수용) 거부하는 그 내부의 저항 때문에 계속 시간을 끌었으므로, USA 트루먼 연방행정부는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의 2차 세계대전에서의 일본 대상 교전 참여 요구를 유지하였음 + 다만 관동군 위주 일본 육군의 붕괴가 매우 빠르게 진행하자,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 군대의 남진을 경계하기 시작하였던 USA 트루먼 연방행정부는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의 홋카이도 점령 참여 욕구를 좌절시켰고 다만 당시에는 중요하다고 평가하지 않았던 한반도에서의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의 분할점령 참여를 용인하였고 지리적 지식의 부족 때문에 서울을 확보하였을 뿐인 상태로 한반도에서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이 담당할 분할점령의 대상 영역을 관대하게 용인하였음(당연하게도 당시 USA의 외교전략에서는 동북아시아에서 일본과 중국만이 중요하였을 뿐이었기 때문임) https://en.wikipedia.org/wiki/War_Without_Mercy 참조 https://namu.wiki/w/%EB%AA%B0%EB%9D%BD%20%EC%9E%91%EC%A0%84 참조 https://namu.wiki/w/%EC%98%A5%EC%9D%8C%EB%B0%A9%EC%86%A1#s-3 참조
YG님의 대화: @향팔 그 대목은 좀 더 자세한 맥락을 파악하는 일이 필요해 보입니다. (나중에 @청사죽백 님께서 보충 설명해 주시리라 믿고) 어쭙잖게 덧붙여보겠습니다. 1. 우선 당시 미국의 정치인은 심지어 루스벨트의 서거로 갑작스럽게 대통령이 된 트루먼조차도 핵폭탄의 위력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 심지어 이것이 전쟁에서 어떤 파급력이 생길지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핵폭탄의 위력은 8월 6일(히로시마)과 9일(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되고, 그 결과 8월 15일 일본이 항복하면서 비로소 세상에 그 실체를 드러낸 것이죠. (나중에 트루먼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핵폭탄 피해 보고서를 읽고서야 이 신무기의 위력을 실감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내일 읽을 4장 '재건' 편에 관련한 대목이 나옵니다.) 그러니, 7월 말과 8월 초의 포츠담 회담에 참석한, 국제 관계에 식견이 없었던 트루먼으로서는 얄타 회담에서 루스벨트가 고수해온, 가능한 한 빨리 소련이 동아시아 전선에 개입하기를 원하는 관성적인 입장을 그대로 고수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과학 기술을 중심으로 냉전사를 공부하는 역사학자 최형섭 선생님께 재미있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습니다. 8월 6일과 9일 핵폭탄 투하 후에 왜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기까지 길게는 9일에서 짧게는 6일 정도의 시간이 걸렸을까? 이 대목을 놓고도 요즘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는데, 최 선생님 전언으로는 일본도 도대체 핵폭탄이 투하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 제대로 파악을 하지 못했던 정황이 있다는 겁니다. 2. 당시 동아시아 전선을 책임지던 맥아더 같은 군부의 입장과 그들로부터 보고를 받은 트루먼 같은 워싱턴 같은 정치인 사이에 전황을 파악하고 분석하는 인식 차도 또렸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맥아더 같은 군부는 일본을 포함해 동아시아 전쟁을 끝내는 일이 미국의 힘으로 충분히 가능하고 또 소련의 개입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서둘러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던 반면에 트루먼이나 워싱턴의 전략가 사이에서는 그런 군부의 자신만만함을 100퍼센트 신뢰하지 못하고 소련의 힘을 빌려야 하는 상황을 염두에 뒀을 수도 있습니다. 이건 월요일에 읽을 6장에서 슬쩍 그 기류를 볼 수 있고, 한반도도 그런 혼란 속에서 분단으로 가는 길이 차근차근 닦여졌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일단, 제가 대충 답변할 수 있는 건 이 정도입니다. :)
'서거': 귄위주의적 사고방식에 근거하는 단어이므로, 되도록 사용하지 않아야 바람직하겠음.
향팔님의 대화: 아 진짜 어려운 대목이네요. 안그래도 친구랑 술마시면 이런 얘기 가끔 했었습니다. 독일은 전범국이라 분단이 됐다 치자! 우리는 왜 애꿎은 우리가 쪼개지냐? 쪼갤라믄 일본을 쪼개는 게 이치가 맞지! - 근데 그럴 때마다 결론은 항상, 지정학적 위치상 그렇게 된것 같다 우리가 자리운이 없었다, 이러고 막걸리 먹고 집에 가고 그랬지요 흙흙
외스터라이히도(오스트리아) 연합국 진영에서 1943년에 나치즘 체제의 피해국이라고 규정받았지만,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에 1945년~1955년에 분할점령과 주권 행사에서의 제약을 경험하였다는 사실을 지적가능합니다. https://namu.wiki/w/%EC%97%B0%ED%95%A9%EA%B5%B0%20%EC%A0%90%EB%A0%B9%ED%95%98%20%EC%98%A4%EC%8A%A4%ED%8A%B8%EB%A6%AC%EC%95%84 참조.
많은 사람에게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재건은 또한, 세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에 익숙해짐을 의미했다. 냉전은 물론 20세기 초반에 그 기원이 있었고, 하나의 이데올로기적 분열로서 그 그림자가 유럽과 지구 전체의 많은 역사에 오래전부터 드리워져 있었다. 하지만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충돌이 세계 차원의 지배적 충돌로 거의 모든 지역에 강요된 것은 전쟁 이후 초기의 격렬한 시기의 일이었다. 생활을 재건하느라-살 곳을 마련하고, 아이를 먹이고, 일자리를 찾느라- 분주한 가운데 사람들은 점차 자기가 냉전이 규정한 틀 안에서 이런 일을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냉전 - 우리 시대를 만든 냉전의 세계사 오드 아르네 베스타 지음, 유강은 옮김, 옥창준 해제
청사죽백님의 대화: https://www.youtube.com/watch?v=9BjIYKq4CVk 참조(한국어 자막 기능을 제공).
인류 역사의 이런 엄청난 비극을 이번 독서로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청사죽백 님이 올려주신 영상을 보는데 가슴이 턱턱 막힙니다. 충격적이네요. 이래서 이때 바르샤바에서 무려 25만 명이 살해되고, 책 3장 초입에서 미국의 구호활동가가 목격한 대로 폐허만 남은 것이로군요… 한강의 <흰>에서도 바르샤바 학살의 벽 이야기를 읽었는데, 구체적인 맥락과 과정은 몰랐습니다. Extra History 영상 참 좋네요, 저도 구독해야겠어요. 감사합니다.
연해님의 문장 수집: " 전쟁 이후 영국의 생활이 온통 뒤죽박죽이었다면, 적국은 존재 자체가 거의 지워진 상태였다. 독일은 1945년에 난파선과 같았는데, 국민이 히틀러가 남긴 물리적・심리적 폐허에서 빠져나오는 데만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1945년 독일의 산업 생산은 전쟁 전 수준의 20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했지만, 심리적 상처는 물질적 파괴보다 더 심각했다. 1933년 독일인은 재앙과도 같은 정치적 기획에 협력했다. 전쟁이 끝나는 순간까지 그들은 거짓말을 부여잡았고, 따라서 나치스가 붕괴하자 완전히 사기를 잃었다. 죽음과 대대적인 파괴가 대가라면 무엇을 위해 노동해야 하는가? 전후 독일에서 어떤 형태로든 경제 활동을 재개하는 것은 쉽지 않았고, 초기 몇 년간 독일인은 승전국의 적선에 의지했다. 최소한의 생필품 이외의 물품을 손에 넣는 유일한 길은 암시장뿐이었다."
오늘 5장 '새로운 아시아'를 읽었습니다. 전후 미국과 소련이 아시아에서 어떤 전략으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체계를 공고히 하려고 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특히 미국의 스탠스가 인상적이었는데요, 동맹국들의 식민지를 해방시키는데 적극적이었던 이유는 그렇지 않을 경우 공산주의에 넘어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었습니다. 아울러 전쟁이 끝나기 전부터 전후 일본의 통치에 대해서는 어느 동맹국과도 함께 할 생각이 없다는 강경한 자세를 보였고, 일본을 침몰하지 않는 동아시아 지역의 항공모함으로서 활용하려는 계획도 알 수 있었습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어찌보면 조급하고 서두른 미군정 지도자들은 일본 전범들을 그대로 지도층에 재고용하는 비극(?)을 저질렀는데요,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같은 전범국인 독일과는 왜 그렇게 반대의 입장을 보였을까 하는 부분입니다. 만약 독일도 4개국이 나눠서 관리하지 않고, 미국 혼자 관리했다면, 나치 전범을 그대로 독일 지도층으로 기용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나치에 워낙 심하게 당한 3개국이 전범을 그대로 둘 수 없어 전범에 대한 단죄를 끝까지 주장했던 3국의 주장을 미국이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인지, 아니면 다른 스토리가 있다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장에서는 베트남, 인도, 중국 및 중동 지역에서의 냉전의 산물에 대해서도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다만 너무 많은 지역을 다루다 보니, 배경지식이 얕은 저로서는 아.. 그런가보다 하고 그냥 넘어가는 부분이 많았던 장이기도 합니다. 다음 장은 한반도를 다루는 장이니 큰 기대와 함께 진입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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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아시아에 접근하는 문제에서 미국도 소련만큼 주저했지만, 유럽의 과거 식민주의와 연계된 탓에 운신의 폭이 한결 좁았다.
냉전 - 우리 시대를 만든 냉전의 세계사 p.227., 오드 아르네 베스타 지음, 유강은 옮김, 옥창준 해제
인도네시아가 주권을 찾은 서사시는 냉전과 빠르게 탈식민지화한 세계의 중요한 연결고리 두 개를 보여준다. 첫째 중국 및 인접 나라 바깥의 대부분 지역에서 공산당은 인기가 많고 조직력이 강한 민족주의자의 맞수가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중국 자체가 예외일 수 있었던 건 단지 일본이 공산당의 적수, 즉 장세스가 이끄는 국민당에 이미 큰 타격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둘째 미국은 대체로 서유럽 동맹국이 예전 식민지를 되찾는 것을 지원하는 것 보다 공산주의의 세력 확대를 막는 데 몰두했다는 것이다.
냉전 - 우리 시대를 만든 냉전의 세계사 p.216., 오드 아르네 베스타 지음, 유강은 옮김, 옥창준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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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기누스님의 문장 수집: "인도네시아가 주권을 찾은 서사시는 냉전과 빠르게 탈식민지화한 세계의 중요한 연결고리 두 개를 보여준다. 첫째 중국 및 인접 나라 바깥의 대부분 지역에서 공산당은 인기가 많고 조직력이 강한 민족주의자의 맞수가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중국 자체가 예외일 수 있었던 건 단지 일본이 공산당의 적수, 즉 장세스가 이끄는 국민당에 이미 큰 타격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둘째 미국은 대체로 서유럽 동맹국이 예전 식민지를 되찾는 것을 지원하는 것 보다 공산주의의 세력 확대를 막는 데 몰두했다는 것이다. "
여기서도, 중국의 국민당이 공산당에게 밀린 주된 이유가 일본 때문이라고 언급하는 부분이 재미있었습니다. 그동안 제가 알고 있던 바로는 국민당 패배의 가장 큰 특징으로는 공산당의 단합과 중국 농민의 민심을 얻은 것, 그리고 국민당의 부정부패로 알고 있었는데, 이미 국민당이 일본군에게 큰 타격을 받아 약해졌었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습니다.
청사죽백님의 대화: 외스터라이히도(오스트리아) 연합국 진영에서 1943년에 나치즘 체제의 피해국이라고 규정받았지만,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에 1945년~1955년에 분할점령과 주권 행사에서의 제약을 경험하였다는 사실을 지적가능합니다. https://namu.wiki/w/%EC%97%B0%ED%95%A9%EA%B5%B0%20%EC%A0%90%EB%A0%B9%ED%95%98%20%EC%98%A4%EC%8A%A4%ED%8A%B8%EB%A6%AC%EC%95%84 참조.
히틀러가 오스트리아를 합병했을 때 오스트리아인들은 오히려 환영했다고 하고 또 히틀러가 오스트리아 출신이기도 해서 2차대전 당시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그냥 한몸이었다, 라고 인식하고 있었는데 또 그렇게 단순하게만 볼 일은 아니군요. 그래도 얘네들은 10년 군정으로 끝났지만 우리는…
롱기누스님의 대화: 여기서도, 중국의 국민당이 공산당에게 밀린 주된 이유가 일본 때문이라고 언급하는 부분이 재미있었습니다. 그동안 제가 알고 있던 바로는 국민당 패배의 가장 큰 특징으로는 공산당의 단합과 중국 농민의 민심을 얻은 것, 그리고 국민당의 부정부패로 알고 있었는데, 이미 국민당이 일본군에게 큰 타격을 받아 약해졌었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습니다.
오, 작년에 성북문화원 시민강좌에서 성균관대 최자명 선생님이 2차대전 동아시아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그분도 같은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당시 일본이 중국에서 장제스만 집중해서 후려패는 전략을 썼고 (장제스는 일본보단 공산당을 패고 싶어했지만.) 그게 국민당이 약화되어 국공내전에서 지게 된 주요 요인이라고.. 저도 그 대목이 흥미로웠어요.
청사죽백님의 대화: USA 트루먼 연방행정부가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의 2차 세계대전에서의 일본 대상 교전 참여를 계속 유도하도록 작용하였던 동기들 대상 설명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과 USA가 교전을 주도하였던 지리적 범위인 태평양 전구에서의(태평양 전구/Pacific Ocean theater) 전투들은 그 과정들과 결과들이 자주 매우 잔혹하였는데, 이러한 귀결들의 3대 원인들은: 해당 지리적 범위에서 존재하여 오고 있는 험악한 자연환경조건들 그리고 일본의 인명 포함 인권 경시가 자극하였던 USA 위주 연합국 진영 소속 국가들에서의 인종주의적 증오의 분출 그리고 항복을 거부하고 자살공격이나 전멸을 추구하는 일본군 부대들의 행태들이 유발하였던 공포어린 경계심이었음 + 그러므로 당시에 태평양 전구에서 참전하고 있던 연합국 진영 소속 국가들은 일본 본토를 점령하려면 연합국 진영에서도 막대한 손해들을 경험하게 되리라고 예상하면서 일본 본토 상륙작전 시작 이후 일본 국민들의 저항을 분쇄하려면 일본 국민들을 대거 살상하겠다고 준비하였고 또한 예상가능한 손실들을 분산시키고자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의 2차 세계대전에서의 일본 대상 교전 참여를 요구하고서 관철시켰음 + USA 군대가 1945년 8월 6일에 히로시마에 원자폭탄 1발을 투하하여서 폭발시키고 나서도 일본 행정부는 연합국 진영 대상 무조건 항복을(포츠담 선언의 수용) 거부하는 그 내부의 저항 때문에 계속 시간을 끌었으므로, USA 트루먼 연방행정부는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의 2차 세계대전에서의 일본 대상 교전 참여 요구를 유지하였음 + 다만 관동군 위주 일본 육군의 붕괴가 매우 빠르게 진행하자,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 군대의 남진을 경계하기 시작하였던 USA 트루먼 연방행정부는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의 홋카이도 점령 참여 욕구를 좌절시켰고 다만 당시에는 중요하다고 평가하지 않았던 한반도에서의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의 분할점령 참여를 용인하였고 지리적 지식의 부족 때문에 서울을 확보하였을 뿐인 상태로 한반도에서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이 담당할 분할점령의 대상 영역을 관대하게 용인하였음(당연하게도 당시 USA의 외교전략에서는 동북아시아에서 일본과 중국만이 중요하였을 뿐이었기 때문임) https://en.wikipedia.org/wiki/War_Without_Mercy 참조 https://namu.wiki/w/%EB%AA%B0%EB%9D%BD%20%EC%9E%91%EC%A0%84 참조 https://namu.wiki/w/%EC%98%A5%EC%9D%8C%EB%B0%A9%EC%86%A1#s-3 참조
상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궁금하고 답답했던 부분이 해소가 되었어요. 분할된 약소국민으로서 조금 안타깝고 슬퍼지기도 했지만.. 태평양 전투들의 잔혹함을 말씀하시니 또 한 권의 만화책이 연상됩니다. 두 번 반복해서 읽은 작품이에요.
전원 옥쇄하라!일본 만화계의 현인이었던 미즈키 시게루가 세인트조지곶의 비극을 자신의 전쟁 경험을 바탕으로 생생하게 그려낸다. 섬세하면서도 박진감 넘치는 묘사로 전쟁의 무의미함과 비참함을 절절히, 뜨겁게 호소하는 작가의 자전적 체험담을 담고 있다.
향팔님의 대화: 오, 작년에 성북문화원 시민강좌에서 성균관대 최자명 선생님이 2차대전 동아시아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그분도 같은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당시 일본이 중국에서 장제스만 집중해서 후려패는 전략을 썼고 (장제스는 일본보단 공산당을 패고 싶어했지만.) 그게 국민당이 약화되어 국공내전에서 지게 된 주요 요인이라고.. 저도 그 대목이 흥미로웠어요.
향팔님의 대화: 오, 작년에 성북문화원 시민강좌에서 성균관대 최자명 선생님이 2차대전 동아시아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그분도 같은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당시 일본이 중국에서 장제스만 집중해서 후려패는 전략을 썼고 (장제스는 일본보단 공산당을 패고 싶어했지만.) 그게 국민당이 약화되어 국공내전에서 지게 된 주요 요인이라고.. 저도 그 대목이 흥미로웠어요.
추가 근거 제시
모택동 인민의 배신자 - 모택동은 왜 일본군의 進攻에 감사했나모택동이 일본군과 무슨 공모를 했고 어떻게 일본을 이용했는지를 중심으로, 인간 모택동 묘사를 통해서 중국 역사 속 또 하나의 제왕, 황제 권력을 추구했고 결국 중국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잔악한 제왕의 권력을 갖기까지 그의 집념과 야망의 원류를 밝힌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미국과 소련의 냉전은 유럽의 재앙과 딱 맞아떨어졌다. 전쟁의 군사적 결과로 미국과 소련이 유럽 대륙의 지휘권을 넘겨받았을 뿐만 아니라, 기적에 굶주린, 아니 그냥 굶주린 유럽인은 워싱턴이나 모스크바에서 답을 구하려고 했다.
냉전 - 우리 시대를 만든 냉전의 세계사 오드 아르네 베스타 지음, 유강은 옮김, 옥창준 해제
소련이 유럽의 절반에 대한 지배권을 강요하는 듯 보였다. 스탈린은 이미 붉은군대의 수중에 들어간 나라에서만 행동했지만, 대다수 유럽인이나 미국인의 마음속에는 “동유럽”에 대한 어떤 뚜렷한 한계도 존재하지 않았다. 핀란드나 노르웨이는 체코슬로바키아와 근본적으로 달랐을까? 그리스나 튀르키예는 불가리아나 유고슬라비아와 달랐을까? 오늘날 멀리 떨어진 시점에서 보면, 실제로 달라 보일 테고, 따라서 소련이 추구한 목표도 제한적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한결 다른 유럽을 보면서 자라난 이들로서는 그런 경계를 알아보기 어려웠다. 그들에게 동구와 서구의 경계선은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냉전 - 우리 시대를 만든 냉전의 세계사 오드 아르네 베스타 지음, 유강은 옮김, 옥창준 해제
발트해의 슈테틴부터 아드리아해의 트리에스테까지 대륙 전체에 철의 장막이 드리워집니다. 중유럽과 동유럽에서 오래된 국가의 수도가 전부 그 경계선 뒤에 있습니다.
냉전 - 우리 시대를 만든 냉전의 세계사 오드 아르네 베스타 지음, 유강은 옮김, 옥창준 해제
“전쟁 중에 모스크바에서 근무한, 젊고 재능 있는 미국 외교관 조지 F. 케넌이 처칠의 경고를 메아리처럼 되풀이했다. 알려진 바와 같이, 1946년 2월 22일 모스크바에서 국무부에 보낸 케넌의 ‘긴 전문(Long Telegram)’은 행정부에 큰 영향을 미치면서 널리 배포된 문서가 되었다. 여기서 케넌은 모스크바의 정책이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데올로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침략적이고 팽창주의적이라고 설명했다.”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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