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하지 못하는 세계, 이해하고 싶은 마음
역사책을 펼칠 때면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친다.
‘그 시대 사람들과 나는 얼마나 다를까.’
그들의 생각은 머리로는 이해되지만, 가슴으로는 좀처럼 와닿지 않는다. 신이 인간 위에 군림하던 시대의 가치관, 한 사람의 혈통이 곧 권력으로 작동하던 세상. 그런 세계를 나는 낯설게만 느낀다. 민주주의가 일상인 나에게, 한 사람이 나라의 운명을 쥐는 절대 권력은 도저히 감각되지 않는다.
그들이 가진 세계관과 내가 가진 세계관은 다르다. 그 차이를 가장 선명하게 표현한 말이 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곧 세계이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나오는 이 문장은,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존재가 과거를 탈피하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한다. 알을 깨야만 새가 나올 수 있듯, 인간 또한 세계관의 전환을 겪으며 시대를 넘어선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란 ‘깨져버린 알’들의 연속이다. 나는 과거라는 깨진 세계를 바라보며, 그들과 내가 얼마나 다른 세계를 살고 있는지 깨닫는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딛고 서 있는 이 세계는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아마도 지난 100년, 냉전이라는 단어가 세상을 갈랐던 시기부터 일 것이다.
오드 아르네 베스타는 책 <냉전>을 통해 이 시대의 세계관을 촘촘히 보여준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동쪽과 서쪽, 우파와 좌파. 세계는 이념에 따라 양분되었고, 각자의 ‘정의’를 내세우며 경쟁과 갈등의 시간을 지나왔다. 이 충돌은 더 이상 나와 먼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도 나는 그 연장선에 서 있다.
한반도를 덮친 전쟁의 화마, 헝가리에서 일어난 혁명, 베트남에서 벌어진 피의 대립, 쿠바 미사일 위기. 책 속에서 펼쳐지는 역사적 순간들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다. 그 시대의 인간들이 어떤 갈등 속에서 결정을 내렸는지 상상할 수 있을 때, 나는 비로소 공감이라는 문턱에 선다. 그리고 깨닫는다. 이해할 수 있다는 건, 같은 세계관 안에 있다는 증거라는 것을.
하지만 여전히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세계가 존재한다. 그리고 앞으로는 내가 이해받지 못할 세계가 도래할지도 모른다. 지금 내가 자연스럽다고 믿는 생각들, 투표, 평등, 경쟁, 성공 같은 가치들이 먼 미래에는 유치하고 낡은 개념으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그 세계에서 나는 지금의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과거의 사람처럼 여겨질 것이다.
인도의 총리였던 네루는 냉전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냉전은 철의 장막이나 높다란 장벽, 그 어떤 감옥보다 더 큰 정신적 장벽을 만들어 냅니다. 냉전은 상대방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 정신의 장벽을 만들어 세계를 악마와 천사로 나눕니다.”
<냉전>, 10장 '부서지는 제국들
새로운 세계란 어쩌면 이 ‘정신적 장벽’을 허무는 것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세계는 다시금 깨어지고, 나는 그 경계선에서 오래된 세계를 애써 이해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바란다. 미래의 사람들이 나와 같은 노력을 기울여, 과거의 나를 이해해 주기를. 공감하지 못하는 세계를 지나, 더 이상 세계를 악마와 천사로 나누지 않기를.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3. <냉전>
D-29
RAMO

borumis
주말에 쓰러지고 좀 얼굴을 다쳐서 이제서야 10장으로 넘어가네요.. 그래도 안그래도 요즘 우려가 되는 중동을 다루기 시작하는 장이어서 재미있게 읽고 천천히 따라가겠습니다! 과거의 씨앗이 현재의 사태로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리고 있네요..ㅜㅜ
aida
@borumis 에고 괜찮으시길 바래요...

향팔
아이고 무슨 일이래요. 병원엔 다녀오신 거죠? 빨리 나으셔야 할텐데요..

borumis
아.. 괜찮습니다. 원래 저혋압이 좀 심한데 늙으니 더 맛이 갔는지 기립성저혈압으로 아주 잠시 의식을 잃고 앞으로 고꾸라진 거에요. 얼굴에 멍이 좀 흉하게 났지만 뼈가 부러지진 않았어요. ^^;; 주말 내내 푹 쉬며 짠 음식과 수 분 보충 많이 했습니다..

향팔
아이고 큰일날 뻔했네요, 많이 아프셨겠어요. 일어설 때 핑 도는 그런 증상 맞죠? 말씀하신 것처럼 푹 쉬시고 잘 챙겨드셔요. 요즘 날씨도 덥고 비도 많이 오고 해서 더 조심하셔야 해요. 멍도 얼렁 풀리고 싹 나으시길!

YG
@borumis 아, 정말 큰 일 날뻔했네요. 나이 들수록 제일 조심해야 하는 게 넘어지는 거라잖아요. 앞이든, 뒤든, 옆이든. 앞으로도 혈압 관리 각별히 신경 쓰셔야겠어요. 아무튼 다행입니다!!!

연해
에고, 지난번에 교통사고도 있으셨는데, 이번에는 기립성저혈압 으로 넘어지셨다니, 얼굴에 흉이 남지 않으실까 걱정이네요. @borumis 님 안부가 궁금했는데, 이렇게 소식(비록 좋은 소식은 아니었지만ㅠㅠ)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저혈압이 심한 편인데요. 이번 기수는 아니고, 전에 벽돌 책 모임 중에 그 말을 했다가 YG님이 추천해주셨던 책 한 권이 떠오르네요. 『숫자, 의학을 지배하다』라고(정작 저는 읽지 않고, 다른 분에게 추천하는 뻔뻔함을 보이고 있습니다...). 차근차근 회복하시고 이 공간에서도 신나게 또 이야기 나누어요:)

숫자, 의학을 지배하다 - 고혈압, 당뇨, 콜레스테롤과 제약산업의 사회사세 가지 ‘기적의 약’에 얽힌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약을 통한 예방’이라는 현대의학의 교의에 밑바탕이 된 마케팅과 의학의 융합을 탐구한다. 이 세 가지 이야기는 그 특성과 관계자가 서로 엮여 있으며, 지난 반세기 동안 치료 지식과 실천에서 일어난 상전벽해와 같은 변화와 일련의 구조적 발전을 설명한다.
책장 바로가기

borumis
다행히 멍만 시퍼렇게 들었어요..^^;;; 가정폭력 피해자라고 광고하고 다니기 싫어서 화장을 떡칠했습니다. 이 책도 재미있어 보이네요! 안그래도 저는 저혈압인데 나머지 가족들은 당뇨 또는 고지혈증이 있어서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꽃의요정
어! 저도 예전에 자는데 갑자기 눈에 노란 별이 보이길래 뭐지? 하고 깼는데, 아들내미가 발뒤꿈치로 제 눈을 가격한 거였어요....진짜 눈에 시퍼런 멍이 들어....회사를 어찌 다녔었는지...저야말로 가정폭력의 희생자였네요!!
근데 올해 여러 차례 액땜하셨으니 좋은 일이 있을 거예요~~(복권을 사 보시는 건?!)

stella15
이거 원... 어떤 분이 자기 태어난 얘기를 하는데, 자기 위 형이 6살인데 과자 사 먹겠다고 엄마한테 돈 달라고 조르다 결국 실패하고 화가 나 엄마 배를 냅다 걷어차는 바람에 3일 동안 태동이 없어서 죽은 줄 알았답니다. 그러고 태어난 게 자기라고 하던데, 아들 키우는 거 정말 장난 아니네요. 존경합니다!

꽃의요정
어쩌겠어요~ 그 녀석도 자다가 그런 걸요~ 운명으로 받아들여야죠. 그래서 자다 또 맞을까 봐 잠이 부족해 제가 항상 화가 나 있나 봅니다~ ㅎㅎ

borumis
헉.. 저도 잠버릇 험한 딸내미와 같이 여러번 잔 적 있는데.. 분명히 자기 시작할 땐 나란히 옆에 잤는데 숨쉬기 힘들어서 깨어나고 보니 발꿈치가 제 목 위에 있더라구요..;; ㅋㅋㅋㅋ 남편이 아니라 애들에게 맞고 사는 뇨자;;

부엌의토토
@borumis 아이코 많이 고생하셨을 텐데... 날도 점점 더 더워져서 물 많이 드시고 쉬엄쉬엄 책 읽고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borumis
넵 감사합니다. 매년 여름마다 컨디션이 좀 안 좋은데 최대한 무리 안하려고 해요^^ 그래도 책이 너무너무 재미있네요~

stella15
아고, 저도 안 보이셔서 궁금했는데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조심하소서!

YG
@롱기누스 님, 그런데 최근에 약간 엉뚱한 맥락에서(제가 보기에는 견강부회) 리센코를 재조명하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요즘 생명과학계에서 우주 중요하게 다뤄지는 후생유전학의 맥락에서요. 리센코주의(소비에트 유전학)의 역사와 그 유산을 비판적으로 다뤄본 책이 한 권 생각나서 추천합니다.

리센코의 망령 - 소비에트 유전학의 굴곡진 역사‘리센코는 옳았을까?’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당시 러시아 생물학계의 상황, 후성유전학의 전통, 리센코의 이론, 소비에트 과학계의 모순, 현재 러시아의 실상을 폭넓게 조망한다.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을 곁들이며 리센코 현상에 숨어 있는 디테일을 하나하나 소개하고 우리의 이해를 돕는다.
책장 바로가기

향팔
와, 이 책 너무 재밌을거 같아요.

롱기누스
아... 이런 책이 나오는군요... 참... 계속 느끼는 것이지만, 배움에는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어떤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다양한 과점에서 해석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부분에 불과하다는 것. 그렇기에 항상 겸손해야 한다는 것도 다시한번 생각해봅니다. @YG 님 추천 감사드립니다. ^^

부엌의토토
07 동구권(동유럽)
모든 곳에서 노동자가 항의하면서
공산당을 변장한 나치스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273쪽)
스탈린 치하에서 경제는 죄수 노동에 완전히 의존한 바 있었다. 수십만 명의 죄수-정치범, 좀도둑, 외국 군인, "그릇된" 민족에 속한 자, 애당초 자기가 왜 체포됐는지 알지 못하는 많은 이-가 수용소에서 풀려났고, 살 집을 구하거나 사회에서 새로운 자리를 찾으려고 분투했다. 그들은 러시아 노벨상 수상자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이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통해 영구히 전해질 사람들이었고 당시 상황은 일리야 예렌부르크가 "해빙"이라고 부른 과정이었다. 하지만 흐루쇼프는 나중에 새로운 지도자들이 "겁이 났다-정말로 겁을 먹었다"라고 인정했다. (281쪽)
동유럽 지도자들에게 자기가 추구하는 새로운 경로가 진심 어린 지지받지 못했음에도, 아니 어쩌면 그 때문에 흐루쇼프를 비롯한 소련 지도자들은 동구권의 통합 과정을 확대하기로 했다. (283쪽)
그 결과 1955년 바르샤바조약기구를 나토의 대항 수단으로 만들었고 동유럽경제상호원조회의로 경제 협력을 끌어올렸다. (284쪽)
그는 자정 직후에 연설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개인숭배의 그 해로운 결과에 관해 이미 많은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286쪽)
청중 가운데 일부는 까무러쳤지만, 대다수는 거센 환호를 보냈다. 폴란드 당 지도자 볼레스와프 비에루트는 연설문을 읽다가 심장마비를 일으켜 사망했다. (287쪽)
1956년 여름 공산주의 지도자들에게 최악의 공포가 확인되었다. (288쪽)
하지만 1956년 10월 말 소련 지도자들은 폴란드 사태보다 헝가리의 상황이 훨씬 엄중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289쪽)
헝가리 혁명을 진압한 후과는 유럽인에게 짙은 암운을 드리웠다. 혁명을 통해 유럽 대륙이 두 세력권으로 나뉜 현실이 여전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295쪽)
니키타 흐루쇼프는 폴란드와 헝가리 사태에서 간신히 살아남았다. (296쪽)
흐루쇼프는 붉은광장의 영묘靈廟에서 레닌 바로 옆에 누워 있던 스탈린의 시신을 서둘러 크렘린 담장을 따라 조성된 공동묘지에 이장했는데, 이는 그의 경력에서 가장 상징적인 행동이다.
흐루쇼프는 농업•과학•기술을 위한 소련의 계획을 확대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297쪽)
처녀지 활동, 그리고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 캅카스, 동유럽에서 소련이 벌인 비슷한 활동들이 남긴 것은 민족과 문화의 혼합뿐이다. 스탈린이 추방으로 소련 전역에 만들어 낸, 참으로 다문화적인 장소가 더욱 많아졌다. 1970 년 카자흐스탄에는 카자흐인보다 러시아인이 더 많았다. 투르크메니스탄과 에스토니아는 인구의 3분의 2 정도만이 투르크멘이거나 에스토니아 사람이었다. 나머지는 소련 각지에서 온 인구 집단이었는데, 이주민의 주축은 러시아인이었다. (298쪽)
하지만 처녀지에서 이익을 얻으려고 한 것은 농업만이 아니었다. 흐루쇼프의 원대한 구상 가운데 하나는 시베리아에 아카뎀고로도크 Akademgorodok 라는 과학기술 신도시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 우리는 모스크바의 오래된 기관에서 신만이 답을 아는 오랜 시간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대신, 처녀지에 오면 맨 처음부터 모든 걸 시작할 수 있다고 큰 기대를 했다." 1961 년 아카뎀고로도크에 도착한 한 젊은 물리학자의 말이다. " 우리는 서방을 따라잡고 싶었다." 그리고 소련 핵 과학이 이미 입증했듯이, 적어도 일부 분야는 실제로 따라잡았다. 1950 년대 말에 이르러 소련의 전자기학, 유체역학, 양자전자공학 등은 다른 어떤 나라에도 뒤지지 않았고, 우주탐사 같은 일부 분야는 소련이 훌쩍 앞서갔다. 1957년 소련은 최초의 위성 스푸트니크를 발사했는데, 위성은 96분마다 한 번 지구 궤도를 돌아 총 1500회를 회전했다. 이런 위업을 이루자 소련 지도자들은 의기양양했고, 미국과 서유럽은 겁에 질렸다. 공산주의자들이 위성을 무기화해서 냉전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소련 인구 대부분이 빵 배급 줄을 섰을 때나 버려진 집단농장에서, 위성이 하늘에 기다란 자국을 내는 것을 지켜볼 수 있을 뿐임을 쉽게 잊었다. (299쪽)
작성
게시판
글타래
화제 모음
지정된 화제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