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3세계 지도자들에게 냉전은 식민 체계의 자연스러운 결과물이었다. 유럽인이 다른 나라 문제를 통제하고 지배하려는 시도이자, 어떻게 행동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지시하려는 시도였다. ”
『냉전 - 우리 시대를 만든 냉전의 세계사』 오드 아르네 베스타 지음, 유강은 옮김, 옥창준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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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 알제리의 아흐마드 빈 벨라나, 가나의 콰메 은크루마 같은 지도자는 두 초강대국이 내거는 요구를 후기 식민주의에 비유했다. 미국과 소련은 정치적·외교적으로 통제하고자 하면서, 양국이 제공할 수 있는 틀 안에서의 발전을 추구했다. 비록 미국의 통제 시도가 소련이 발휘할 수 있는 수준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따라서 더 만연하긴 했지만, 양국은 같은 시장에서 활약하는 도둑들이었다. ”
『냉전 - 우리 시대를 만든 냉전의 세계사』 오드 아르네 베스타 지음, 유강은 옮김, 옥창준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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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 1950년대와 1960년대에 그렇게 폭넓은 규모로 탈식민화가 이루어진 데는 두 가지 주요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식민 열강이 사회적·경제적으로 힘을 소진한 것이다. […] 두 번째 이유는 식민지에서 외국 지배에 맞서 반란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
『냉전 - 우리 시대를 만든 냉전의 세계사』 오드 아르네 베스타 지음, 유강은 옮김, 옥창준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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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 점차 미국을 특권적 지위로 올려놓은 전 지구적인 경제 재구조화는 공식 제국들이 붕괴하는 데 중요한 요인이었다. 민족해방운동을 소련이 지원하고, 소련을 본보기로 삼은 몇몇 해방운동이 급진적으로 변화한 것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유럽 내부에서 진행된 냉전, 영국과 프랑스가 미국과 발맞추기 위해 자국 방위를 강화해야 한 사정, 그리고 특히 프랑스 식민지의 장기적 무질서가 본국의 급진적 변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였다. ”
『냉전 - 우리 시대를 만든 냉전의 세계사』 오드 아르네 베스타 지음, 유강은 옮김, 옥창준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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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기누스
10장을 읽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번 장은 1940년대 부터 시작된 탈식민지화가 1960년대 절정을 이룬 것과 이것을 냉전의 맥락에서 설명한 부분이 좋았습니다. 재미있게 보았던 부분은 영국에 맞서 반란을 통해 독립을 쟁취한 미국이 냉전 구도를 유지하기 위해서 서유럽의 식민지배를 어느정도 인정하고 때로는 적극적인 지원까지 하는 바람에 탈식민지화가 늦어졌다는 부분이었습니다.
"유럽의 식민제국이 1940년대에 전부 붕괴하지 않고 20년간 더 지속된 주된 이유는미국이 지웠했기 때문이다. 1945년 이후 유럽 어떤 나라도 자국의 열악한 경제 상황과 유럽 방위의 필요 때문에 재정적으로 식민지를 계속 보유할 수 없었다. 더는 이룰 수 없는 식민주의라는 환상은 미국이 이 나라들의 국내 비용을 떠맡아 주려고 나설 때만 지속될 수 있었다. (pp.378-379.)
미국은 자신의 정체성이 담긴 자유주의와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모든 것은 빨갱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억누르고 제거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이란에서 자국민의 지원을 받은 모사데크를 몰아내고 무자비한 독재자 팔라비 왕조의 등장이 전적으로 미국 정부와 CIA의 공작이었다는 사실. 그것은 결국 이란의 석유를 둘러싼 영국 기업과의 소유권 분쟁이었다는 것이 충격적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모사데크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음에도 미국은 자국의 이익에 반하면 얼마든지 냉전의 희생물로 삼을 수 있었다는 것을 드러낸 사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사건으로 책에서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넷플릭스 터닝포인트에서는 과테말라 사태도 다루고 있습니다. )
결국 " (이와 같은 일련의 사건을 통해 탄생한 제3세계 운동은)냉전을 통해 미국과 유럽의 동맹이 얼마나 오만하고 무책임하며 세계의 발전 상황과 동떨어져 있는지가 드러났다는 사고였다. (p.385)
그리고, 수에즈 운하 사건도 꽤나 흥미로운 부분이었습니다. (저는 이 사건에 대해 개략적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 사건은 이집트의 독립을 위해 수에즈 운하권을 가져오려는 이집트 정부에 대항하여 기존에 수에즈 운하 지배권을 가지고 있던 영국과 프랑스와 충돌하자 이를 불쾌하게 여긴 미국이 나서 사건을 정리한 했다고 요약할 수 있는데요, 결국 수에즈 운하 사태로 유럽의 전통 강자였던 영국과 미국은 미국의 심기를 거스리며 대외적이고 독자적인 행동을 할 수 없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국가적 위신이 추락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해석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콩고사태로 본 미국과 소련의 힘의 차이였습니다. 벨기에의 식민지배가 갑자기 끝나자 새로운 지도자로 등장한 루뭄바를 미국은 달갑게 여기지 않았고, 자국의 혼란스러움을 해결하기 위해 소련에 협조를 요청했으나 흐루쇼프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6개월 만에 사망한 사건이었습니다. 이로서 소련은 그 힘(특히 해외파병할 수 있는 군사적 역량)의 한계를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부분이 인상적이었고, 이러한 콩고의 비극은 결국 이와 비슷한 제3세계가 자신의 연약함과 한계를 느끼는 중요한 사건이기도 했다는 해석도 기억에 남습니다.
"식민 지배를 없애고 자민족을 위해 행동하는 국가를 만들면 신속한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게 제3세계 공동의 믿음이었다. 하지만 많은 지도자는 자국이 신속히 발전하는 데 필요한 전문 역량, 특히 새로운 산업을 건설할 역량이 없고, 수출할 수 있는 몇 되지 않는 자원은 다국적 기업과 국제 무역 체제가 정한 조건에 여전히 매여 있음을 깨달았다. (p.402.)
이로써 기존의 강대국이었던 제국들뿐만 아니라 식민지를 벗어난 신생독립국들마져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블랙홀 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는 운명에 처해지는 냉전이라는 구도의 고착화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향팔
“ 유럽의 식민제국이 1940년대에 전부 붕괴하지 않고 20년간(포르투갈은 30년간) 더 지속된 주된 이유는 미국이 지원했기 때문이다. 1945년 이후 유럽 어떤 나라도 자국의 열악한 경제 상황과 유럽 방위의 필요 때문에 재정적으로 식민지를 계속 보유할 수 없었다. 더는 이룰 수 없는 식민주의라는 환상은 미국이 이 나라들의 국내 비용을 떠맡아 주려고 나설 때만 지속될 수 있었다. 물론 식민주의 국가는 모두 이런 사실을 알았고, 따라서 탈식민주의를 피하고자 하는 태도를 공산주의에 맞서는 공동 투쟁의 하나로 내세우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 워싱턴 자체가 반공주의에 몰두한 탓에 반식민주의에 별로 눈길을 주지 않았다. 다만 인도네시아나 인도처럼 탈식민주의 실패가 공산주의 집단을 너무도 노골적으로 자극한 때는 예외였다. ”
『냉전 - 우리 시대를 만든 냉전의 세계사』 오드 아르네 베스타 지음, 유강은 옮김, 옥창준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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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 또한 트루먼 행정부와 아이젠하워 행정부 시절, 미국은 유럽 열강이 식민지를 상실하면 결국 유럽의 위신이 추락할 것이라고 걱정했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면 유럽의 안정이 위협받고 서유럽이 유럽 대륙 또는 전 지구적 차원에서 공산주의와 맞서 싸우는 데 제대로 이바지하지 못할 수 있었다. ”
『냉전 - 우리 시대를 만든 냉전의 세계사』 오드 아르네 베스타 지음, 유강은 옮김, 옥창준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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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
엇! 저는 주말에 여행을 다녀오느라 오늘 새벽에 허겁지겁 진도를 맞춰 읽었는데, 주말은 한 장만 읽는 것이었군요(허허허). 그래도 다행입니다.
@롱기누스 님과 @향팔 님이 중간중간 올려주시는 의견을 읽으면서 '오, 이 부분은 이런 것이군!'이라고 혼자 끄덕끄덕하고 있는데요. 특히 롱기누스님이 요약정리(?)해주시는 부분은 읽을 때마다 입이 쩍 벌어집니다(감사합니다). 저는 아직 의견을 남길 정도로 이 분야에 해박하지 않아 듬성듬성 따라가는 중인데요. 이번 주도 부지런히 읽고, 열심히 배워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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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G
연해님의 대화: 엇! 저는 주말에 여행을 다녀오느라 오늘 새벽에 허겁지겁 진도를 맞춰 읽었는데, 주말은 한 장만 읽는 것이었군요(허허허). 그래도 다행입니다.
@롱기누스 님과 @향팔 님이 중간중간 올려주시는 의견을 읽으면서 '오, 이 부분은 이런 것이군!'이라고 혼자 끄덕끄덕하고 있는데요. 특히 롱기누스님이 요약정리(?)해주시는 부분은 읽을 때마다 입이 쩍 벌어집니다(감사합니다). 저는 아직 의견을 남길 정도로 이 분야에 해박하지 않아 듬성듬성 따라가는 중인데요. 이번 주도 부지런히 읽고, 열심히 배워가겠습니다:)
@연해 저는 @롱기누스 님 현생에서 하시는 일이 궁금합니다. 주말 에는 처음과 끝만 두 장씩 배치해 뒀어요. (보통 처음에는 초심 때문에, 나중에는 끝이 보여서 열심히 몰아서 읽으시더라고요.) 지난 주말과 이번 주말은 한 장씩만 읽는 일정이랍니다.
저도 주말에는 무협 세계관 웹 소설 하나를 정주행하느라 정신이 없었네요. (제가 10대 때 무협 소설 입문하고 나서, 대학 오고 나서는 딱 끊고 살았는데, 웹 소설 기웃거리다 요즘 다시 가끔 읽어요. 와, 정말 상상력!!! 최고!!! 이러면서. 요즘에는 여성 무협 독자도 많다던데. 제 주변에서는 못 봤습니다만.)
화제로 지정된 대화
YG
오늘 6월 16일은 미국 기준으로 아이젠하워에서 케네디로 넘어갑니다. 네, 그 유명한 케네디가 냉전의 한복판에서 했던 온갖 삽질(?)을 11장 '케네디 시절의 돌발 사건들'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11장을 읽고 나면 케네디가 이미지와 비극적인 최후 때문에 아주 과대평가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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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 1951년 이란의 모사데크가 석유산업을 국유화하자 영국과 미국은 쿠데타를 조직해 모사데크의 민족주의 정부를 전복시켰다.
- 1940년대 말 영국의 미국의 군대는 말라야와 필리핀에서 좌파와 노동자, 농민의 반란에 맞서 전투를 벌였다.
- 1956년 이집트의 나세르가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하자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은 음모를 꾸며 이집트로 쳐들어갔다. 이에 빡친 미국이 개입, 그들을 철수시켰다.
-1954~1962년 알제리의 독립 전쟁. 프랑스는 식민지 알제리를 포기하지 않으려 기를 썼고 초반에는 미국이 프랑스를 지원해주었다. 그러나 알제리민족해방전선이 나라의 상당 부분을 장악하고 전망이 불리해지자 미국은 “알제리 충돌이 계속되는 한 프랑스는 중동뿐만이 아니라, 미국과 아프리카-아시아권의 관계에서도 골칫 거리가 될 것”이라 판단, 프랑스에 압박을 가했고 드골은 마지못해 군대를 철수했다.
- 1960년 콩고의 민족주의자 총리 루뭄바가 소련과 가까워지자 미국은 쿠데타와 암살을 계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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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 1955년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열린 아시아·아프리카회의는 제3세계 이념이 집결하는 중심이 되었다. […] 개막 연설에서 수카르노는 탈식민지 국가가 협력하고 식민주의를 물리치며 핵전쟁을 예방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식민주의는 이미 죽었다’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29개국과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민족주의 정당과 해방운동의 청중에게 말했다.
“그런 말에 속거나 마음을 놓지 맙시다. 여러분께 말하지만, 식민주의는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광대한 지역이 자유롭지 못하는 한 어떻게 식민주의가 죽었다고 말 할 수 있습니까. … 또한 식민주의는 현대적 의상을 입고 있어서 경제적 통제, 지적 통제라는 형태를 띱니다.” ”
『냉전 - 우리 시대를 만든 냉전의 세계사』 오드 아르네 베스타 지음, 유강은 옮김, 옥창준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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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 아이젠하워의 보좌진은 이집트 공격을 계기로 장래에 소련이 중동에서 발판을 확보하는 게 더 쉬워질까 우려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 한 우려는 유럽 열강이 단기적이고 협소한 일국의 이익을 얻으려고, 냉전의 원대한 이익을 기꺼이 희생했다는 점이다. 아이젠하워가 볼 때, 이는 치명적인 죄악이었다. ”
『냉전 - 우리 시대를 만든 냉전의 세계사』 오드 아르네 베스타 지음, 유강은 옮김, 옥창준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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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G
향팔님의 대화: - 1951년 이란의 모사데크가 석유산업을 국유화하자 영국과 미국은 쿠데타를 조직해 모사데크의 민족주의 정부를 전복시켰다.
- 1940년대 말 영국의 미국의 군대는 말라야와 필리핀에서 좌파와 노동자, 농민의 반란에 맞서 전투를 벌였다.
- 1956년 이집트의 나세르가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하자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은 음모를 꾸며 이집트로 쳐들어갔다. 이에 빡친 미국이 개입, 그들을 철수시켰다.
-1954~1962년 알제리의 독립 전쟁. 프랑스는 식민지 알제리를 포기하지 않으려 기를 썼고 초반에는 미국이 프랑스를 지원해주었다. 그러나 알제리민족해방전선이 나라의 상당 부분을 장악하고 전망이 불리해지자 미국은 “알제리 충돌이 계속되는 한 프랑스는 중동뿐만이 아니라, 미국과 아프리카-아시아권의 관계에서도 골칫거리가 될 것”이라 판단, 프랑스에 압박을 가했고 드골은 마지못해 군대를 철수했다.
- 1960년 콩고의 민족주의자 총리 루뭄바가 소련과 가까워지자 미국은 쿠데타와 암살을 계획했다.
주말에 이스라엘의 이란 폭격과 반격과 중동 전쟁으로 확전 가능성을 보면서 10장 '부서지는 제국들'이 남 다르게 읽힌 분들도 있으셨겠어요.
저는 이란이라는 나라를 보면, 양가 감정을 가지게 됩니다. @향팔 님께서 요약 정리하신 영국과 미국의 개입 때문에 이란에는 대표적인 친미 국가가 세워졌죠(팔레비 왕조).
팔레비 왕조 시절에 독재 국가였지만, 마치 우리 1980년대가 그랬듯이, 이란의 개인 시민은 지금의 이란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자유를 누렸습니다. 이란의 테헤란에서 여성이 미니스커트를 입고 다니고, 10대는 미국과 영국의 팝을 들으면서 서구화되었으니까요.
그러다 1979년에 이슬람 혁명으로 근본주의에 기반을 둔 신정 일치 국가 통치를 시작하면서, 오히려 팔레비 왕조 때보다 훨씬 더 이란 시민(특히, 여성)은 억압적인 상황에서 지금까지 살고 있거든요. 중동의 분쟁 가능성도 더 높아졌고요.
애초 영국과 미국이 이란의 석유를 노리고 준식민지처럼 영향력을 행사한 데에서부터 문제가 생겼지만, 그 이후에 그걸 교정하는 과정에서 훨씬 더 나쁜 결과가 생긴 상황.ㅠ.
향팔
“ 수에즈 위기로 탈식민지 세계의 여론이 중요하며, 헝가리 경우처럼 노골적으로 힘을 과시하다가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네루는 인도 의회에서 다음과 같이 연설했다. “대국이 군사력을 사용해 어떠한 성과를 얻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실은 상황을 다룰 능력이 없음을 보여 줄 뿐입니다. 결국 약함이 드러나는 거지요.” 특유의 위풍당당한 어조로 네루는 말했다. “오늘날 세계가 겪는 최대의 위험이 바로 이런 냉전 사업입니다. 냉전은 철의 장막이나 높다란 장벽, 그 어떤 감옥보다 더 큰 정신적 장벽을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냉전은 상대방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 정신의 장벽을 만들어 세계를 악마와 천사로 나눕니다.” ”
『냉전 - 우리 시대를 만든 냉전의 세계사』 오드 아르네 베스타 지음, 유강은 옮김, 옥창준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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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G
YG님의 대화: 주말에 이스라엘의 이란 폭격과 반격과 중동 전쟁으로 확전 가능성을 보면서 10장 '부서지는 제국들'이 남 다르게 읽힌 분들도 있으셨겠어요.
저는 이란이라는 나라를 보면, 양가 감정을 가지게 됩니다. @향팔 님께서 요약 정리하신 영국과 미국의 개입 때문에 이란에는 대표적인 친미 국가가 세워졌죠(팔레비 왕조).
팔레비 왕조 시절에 독재 국가였지만, 마치 우리 1980년대가 그랬듯이, 이란의 개인 시민은 지금의 이란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자유를 누렸습니다. 이란의 테헤란에서 여성이 미니스커트를 입고 다니고, 10대는 미국과 영국의 팝을 들으면서 서구화되었으니까요.
그러다 1979년에 이슬람 혁명으로 근본주의에 기반을 둔 신정 일치 국가 통치를 시작하면서, 오히려 팔레비 왕조 때보다 훨씬 더 이란 시민(특히, 여성)은 억압적인 상황에서 지금까지 살고 있거든요. 중동의 분쟁 가능성도 더 높아졌고요.
애초 영국과 미국이 이란의 석유를 노리고 준식민지처럼 영향력을 행사한 데에서부터 문제가 생겼지만, 그 이후에 그걸 교정하는 과정에서 훨씬 더 나쁜 결과가 생긴 상황.ㅠ.
이란 내부인의 시각으로 이런 상황을 리얼하게 그린 그래픽 노블이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페르세폴리스』입니다. 아직 안 읽으신 분들은 꼭 챙겨서 읽으시길!
페르세폴리스이란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고 오스트 리아에서 유학한 후 다시 이란으로 돌아와 결혼과 이혼을 한 작가 마르잔 사트라피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그래픽노블. 혼란스러운 정치 상황과 전쟁을 겪고 이란과 유럽 사회에서 방황하면서도 유머와 존엄을 잃지 않으며 성장하는 주인공 마르지의 모습은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큰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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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 수에즈 이후 탈식민화가 가속화했다. 영국과 프랑스의 약세가 더욱 드러나기도 했고, 양국의 미래가 아프리카나 아시아가 아니라 유럽과 대서양 동맹에 있음이 점차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1954년에 이미 인도차이나에서 쫓겨났고, 알제리에서 벌이는 식민 전쟁이 악화하면서 달갑지 않은 미국의 비판을 받았다. 프랑스는 다른 곳에서도 마지못해 철수했다. 제4공화국 역대 정부는 먼저 처리해야 할 일이 앞을 다투는 상황에 휘말렸다. 반공 태세를 유지하고(동시에 급진적으로 보이려 하고), 미국의 지배에 분개하며(동시에 미국이 포기할까 우려하고), 유럽 통합을 받아들였다(동시에 프랑스의 독자적 힘과 위신이 조금이라도 줄어들까 우려했다). 역대 프랑스 정부는 미국의 지원을 받고자 했으며, 따라서 세네갈부터 마다가스카르와 타히티의 독립 운동에 공산주의의 위협이 존재한다고 보고했다. 또한 미국이 옛 식민지를 차지할까 우려했다. 프랑스 지식인은 미 제국주의를 비난했지만, 일부는 프랑스가 식민주의를 포기하는 것이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냉전 - 우리 시대를 만든 냉전의 세계사』 오드 아르네 베스타 지음, 유강은 옮김, 옥창준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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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G
YG님의 대화: 주말에 이스라엘의 이란 폭격과 반격과 중동 전쟁으로 확전 가능성을 보면서 10장 '부서지는 제국들'이 남 다르게 읽힌 분들도 있으셨겠어요.
저는 이란이라는 나라를 보면, 양가 감정을 가지게 됩니다. @향팔 님께서 요약 정리하신 영국과 미국의 개입 때문에 이란에는 대표적인 친미 국가가 세워졌죠(팔레비 왕조).
팔레비 왕조 시절에 독재 국가였지만, 마치 우리 1980년대가 그랬듯이, 이란의 개인 시민은 지금의 이란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자유를 누렸습니다. 이란의 테헤란에서 여성이 미니스커트를 입고 다니고, 10대는 미국과 영국의 팝을 들으면서 서구화되었으니까요.
그러다 1979년에 이슬람 혁명으로 근본주의에 기반을 둔 신정 일치 국가 통치를 시작하면서, 오히려 팔레비 왕조 때보다 훨씬 더 이란 시민(특히, 여성)은 억압적인 상황에서 지금까지 살고 있거든요. 중동의 분쟁 가능성도 더 높아졌고요.
애초 영국과 미국이 이란의 석유를 노리고 준식민지처럼 영향력을 행사한 데에서부터 문제가 생겼지만, 그 이후에 그걸 교정하는 과정에서 훨씬 더 나쁜 결과가 생긴 상황.ㅠ.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21세기 초까지 이란에 서 일어난 주요 사건을 정리한 내용을 올려드리니 참고하세요.
stella15
@향팔, @YG 님 정말 열심이시네요. 지금 오전 10시도 안된 시각인데. 이건 거의 주경조독인데요? 아침 조자 써서. ㅎㅎ 보기 좋아 저도 이 시각 댓글 남겨 봅니다. 점점 더워지고 있습니다. 이번 한 주도 쉬엄쉬엄 즐겁게 책 읽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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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G
YG님의 대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21세기 초까지 이란에서 일어난 주요 사건을 정리한 내용을 올려드리니 참고하세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이란의 주요 사건 연대기
1. 1951년: 석유 산업 국유화
개요: 민족주의 성향의 모하마드 모사데크 총리는 당시 영국의 '앵글로-이라니안 석유 회사(AIOC)'가 독점하던 이란의 석유 산업을 국유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이는 이란의 석유 자원에 대한 주권을 되찾으려는 시도였습니다.
파장: 이 조치는 이란 국민들의 폭넓은 지지를 받았으나, 영국은 이에 강력히 반발하여 이란산 석유에 대한 국제적인 금수 조치를 주도했습니다. 이로 인해 이란 경제는 심각한 타격을 입었고, 영국 및 미국과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2. 1953년: 쿠데타 (아약스 작전)
개요: 미국 CIA와 영국 MI6는 '아약스 작전(Operation Ajax)'이라는 암호명 아래 쿠데타를 기획하고 지원했습니다. 결국 민주적으로 선출된 모사데크 총리 정부는 전복되었고, 독재적인 통치를 선호했던 팔레비 왕조의 샤(왕) 모하마드 레자 팔레비가 절대 권력을 되찾았습니다.
파장: 이란의 민주주의 발전이 좌절되었으며, 샤는 미국의 핵심 동맹국으로서 친서방 정책을 강화했습니다. 이 사건은 이란인들에게 깊은 반미 감정을 심어주었고, 훗날 1979년 이슬람 혁명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로 작용했습니다.
3. 1963년: 백색 혁명 (White Revolution)
개요: 샤는 '백색 혁명'이라 불리는 일련의 근대화 및 서구화 개혁을 추진했습니다. 토지 개혁, 여성 참정권 부여, 문맹 퇴치 운동 등 긍정적인 목표를 내세웠습니다.
파장: 급진적인 개혁은 이란 사회를 빠르게 변화시켰으나, 전통적인 이슬람 성직자 계층과 토지 소유자들의 격렬한 반발을 샀습니다. 특히,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는 이 개혁을 비판하다가 국외로 추방당했습니다. 이는 샤 정권과 종교 세력 간의 갈등을 심화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4. 1979년: 이슬람 혁명
개요: 샤의 독재, 인권 탄압, 사회적 불평등, 그리고 서구화 정책에 대한 반감이 폭발하면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이란 전역을 휩쓸었습니다. 결국 샤는 망명길에 올랐고,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15년 만에 귀국하여 이슬람 공화국을 선포했습니다.
파장: 수천 년간 이어진 군주제가 막을 내리고, 이슬람 율법학자가 최고 지도자로서 통치하는 신정일치 체제가 수립되었습니다. 이는 20세기 가장 중대한 지정학적 변화 중 하나로, 중동 지역의 질서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미국과의 관계를 적대적으로 만들었습니다.
5. 1979년 ~ 1981년: 이란 주재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
개요: 이슬람 혁명 지지 학생들이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을 점거하고 52명의 미국 외교관과 직원들을 444일 동안 인질로 잡았습니다. 그들은 미국이 망명한 샤를 이란으로 송환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파장: 이 사건으로 미국과 이란의 외교 관계는 완전히 단절되었습니다. 국제 사회에서 이란의 고립은 심화되었고, 이란 내부적으로는 혁명 정권의 입지를 강화하는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6. 1980년 ~ 1988년: 이란-이라크 전쟁
개요: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이 혁명의 혼란을 틈타 이란을 침공하면서 8년간의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국경 분쟁과 석유 자원, 그리고 아랍 세계에 대한 주도권 다툼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습니다.
파장: 양국 모두에게 막대한 인명 피해(약 100만 명 사망)와 경제적 손실을 안겨주었습니다. 전쟁은 이란 국민들을 외부의 적에 맞서 단결시켰고, 이슬람 혁명 수호라는 명분 아래 혁명수비대(IRGC)의 역할과 권력을 크게 강화시키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7. 2009년: 녹색 운동
개요: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의 재선이 확정된 대통령 선거 결과에 대해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되면서, 개혁파 후보 미르호세인 무사비를 지지하는 수백만 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였습니다. 시위대는 녹색을 상징색으로 사용했습니다.
파장: 1979년 혁명 이후 최대 규모의 반정부 시위였으나, 정부의 강경한 진압으로 좌절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이란 사회 내부의 개혁에 대한 열망과 보수 기득권층 사이의 깊은 균열을 명확히 보여주었습니다.
8. 2015년: 이란 핵 합의 (JCPOA)
개요: 이란은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독일(P5+1)과 역사적인 핵 합의(포괄적 공동행동계획, JCPOA)를 체결했습니다. 이란은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대폭 축소 및 동결하는 대가로, 국제 사회로부터 부과되었던 경제 제재를 해제받기로 했습니다.
파장: 합의 이후 이란 경제는 잠시 회복의 기미를 보였고 국제 사회와의 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습니다. 그러나 2018년 미국이 일방적으로 핵 합의에서 탈퇴하고 대이란 제재를 복원하면서 합의는 사실상 붕괴 위기에 처했고, 이란과 서방의 긴장은 다시 고조되었습니다.
9. 2022년: 마흐사 아미니 사망 항의 시위
개요: 22세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도 순찰대(도덕 경찰)에 체포된 후 의문사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사건은 "여성, 생명, 자유(Woman, Life, Freedom)"라는 구호 아래 전국적인 반정부 시위를 촉발시켰습니다.
파장: 이 시위는 여성의 권리와 사회적 자유에 대한 억압을 정면으로 겨냥했으며, 젊은 세대가 주도했습니다. 정부는 강경 진압으로 대응했지만, 이 시위는 이란 사회, 특히 여성들의 저항 의식에 큰 영향을 미쳤고, 히잡 강제 착용에 대한 공개적인 불복종이 확산되는 등 사회적 변화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