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절의 소설_여름] 『연매장』 함께 읽기

D-29
비극적인 사건은 비극적으로 보여주되,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옳다고 손들어주지 않으려는 작가의 태도가 느껴졌어요. 그래서 금서가 되었다는 사실이 중국 사회의 경직성을 더욱 보여주는 것처럼 제게는 느껴졌네요. 와즈디 무아와드의 희곡도 읽어봐야겠어요. 소개 감사합니다!
종일 비가 내리는 날입니다. 축축한 공기 때문인지 책표지의 기운이 더 스산하네요. 두 번째 이 계절의 소설, <연매장> 도 진도를 맞춰가며 읽으려 했는데 읽다보니 어느새 마지막 장이었습니다. 결국 비밀이 되어버린 기억을 묻어버리거나, 품고 묻혀버린 인물들. 어차피 무얼할 수 있었을까, 차라리 잘 되었다 싶으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이 남습니다. 저는 초반에 아래 문장에서 딩쯔타오가 내내 느끼던 (등을) 찌르는 느낌을 (제가) 받았는데요. 위태로운 삶에 찾아온 큰 슬픔에 얹힌 감정이 그제야 찾아온 안도, 편안함이라니. 시작과 동시에 엄청난 비극을 마주 한 것 같았어요. 그리고 역시나. 먼 곳의 누군가에게는 매우 흥미로울 한 편의 소설이, 그 이야기를 ‘아는’ 이에겐 참담한 기록이기도 합니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고 한동안 마음 둘 곳을 찾기 어려웠지만, 결국엔 소설로 그저 이야기로라도 아주 멀리까지 가기를 바라게 되는 경험을 했어요. 이야기가 가진 힘은 상상의 경계를 훌쩍 넘곤 하니까요. 팡팡이 금서의 작가라는 타이틀에도 멈추지 않는 이유를 짐작해보며, 기대를 더해 응원을 보냅니다. 그믐에서 나눠주시는 이야기들이 속도를 내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긴 문장에 익숙해진 벽돌책을 지나, 이번에는 매우 촘촘하게 나뉘어진 구성 덕분에 달리듯 읽었습니다. 이어지는 이야기들 즐겁게 듣겠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종일 내리는 비와 표지의 느낌이 묘하게 어울리는 것 같아요. 수림이라는 단어가 나무가 우거진 숲과 우울하고 긴 장마 두 개를 가리키는 것처럼요. 개인적으로 마지막이 과연 어떻게 될까 궁금했는데, 작가가 마지막을 처리하는 방식을 보니 문체와 구성에서 얼핏 일본 미스터리 소설을 연상하게 하는 면이 있긴 해도 이건 순문학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평가나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말 그대로 두 장르 사이의 차이를 명확히 느끼게 해주는 결말부였어요. 나중에 또 이야기할 기회가 있겠지요!
이후 그녀의 삶은 탁 트이고 고요한 풍경 자체가 되었다. 그녀는 너무도 당혹스러웠다. 왜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 역시 사랑한 그 사람이 가버리자 마음이 오히려 편안해졌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p.32-33
연매장 팡팡 지음, 문현선 옮김
이제 막 9장까지 다 읽었습니다. 늦게 시작했지만 빠르게 읽히는 작품이라 그런지 얼추 금정연 서평가님이 나눠주신 분량에 맞아떨어지네요. 여기까지 읽으면서 떠오른 잡생각들을 좀 정리해보고 싶어서 글을 남깁니다. 1. '연매장' 이미 20년도 넘은 일이지만 티벳을 여행하던 중 ‘천장(天葬)’을 목격한 적이 있습니다. 천장은 말 그대로 하늘의 장례, 즉 새들에게 시신을 내어주는 장례법입니다. 큰 바위와 돌덩어리로 이루어진 거대한 원형 제단에 사후 며칠 지난 시신의 살을 바르고 토막 내어 대머리독수리, 까마귀 등이 먹게 합니다. 이 제단은 티벳 불교 사원에 속해 있고 모든 장례 절차는 승려들이 집례합니다. 새들이 시신을 말끔하게 먹어치울수록 영혼이 귀한 삶을 살았고 영혼이 하늘로 잘 올라가 고귀한 존재로 환생하게 된다고 믿는 믿음이 있었어요(예를들어 술을 좋아해 간이 안 좋은 사람들의 장기는 새들도 먹지 않는다고 합니다). 나무가 귀한 고지대여서 화장이 어렵기에 천장이라는 풍습이 생겼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그런 신앙이 있음을 알고도 마체테 같은 큼지막한 칼로 시신의 살을 바르고 뼈를 조각내는 승려들의 모습과 새들에게 먹히는 시신을 보는 것은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이후 다른 도시에서 프랑스에서 온 20대 여행자와 이 일을 두고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어요. 그 친구는, “그 사람들에게는 시신을 땅에 묻어서 벌레에게 파먹히게 하는 것이 더 충격적인 일 일 수도 있지 않겠나”는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장례의 방식에 정말 깊은 삶과 죽음에 대한 관점과 태도를 담을 수 있구나’하는 것을 그때 깨달았습니다. 책을 읽기 시작할 때는 ‘연매장’이라는 제목과 그 뜻을 듣고서도 별다른 감흥이 없었는데, 딩쯔타오가 과거를 마주하는 장면에서(가족들이 구덩이를 파고 그 속에 눕고 또 흙을 덮는 장면, 그렇게 연매장 될 수 밖에 없던 그 시대와 사람들의 삶) 이 한 단어에 얼마나 많은 삶과 죽음, 역사가 응축되어 있는지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책 표지의 제목만 봐도 이제는 머릿속에 파노라마가 펼쳐지는 기분이 듭니다. 2. 장르의 변주 소설 초반부는 강물에 떠내려온 기억을 잃은 여인으로 시작하고,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딩쯔타오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생각하게 만드는 ‘미스테리 숏 폼’같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딩쯔타오가 단계적으로(역순으로) 기억을 마주하는 장면과 현재의 칭린이 류진위안과 과거를 더듬어 찾아가는 장면은 전형적인 미스테리 장르의 ‘결정적인 장면을 두고두고 아껴뒀다가 마지막에 공개하는 방식’과는 또 다르더라고요. 오히려 시간 여행 판타지물처럼 현재와 과거를 지속적으로 교차 왕래하며 그림을 완성해 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작가의 구성력에 감탄하게 됩니다. 3. “딩쯔타오는 이제 눈물마저 말라버렸다. 세상에서 제일 쓸모없는 게 눈물이었다” p.257 개인적으로 무기력의 끝이라고 느껴지는 지점에 도달해 본 경험이 있다 보니 이 문장이 유독 마음에 울림을 남겼습니다. 너무나 대문자 T같은 이 문장은 선동된 집단에 의해 개인의 삶이 결정되어 버리는 당시 시대상을 너무나 적절히 담아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작품이 금서로 지정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는 작가의 말에 저도 공감했습니다. 위에서 다른 독자분들이 언급하신 것처럼 작가는 류진위안과 동료들의 말을 빌어 “당시 시대에는 어쩔 수 없었다”는 목소리도 일리가 있다는 입장을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작가가 토지개혁 자체를 비판하고자 이 이야기를 쓴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시대상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 작가의 목소리는 결국 중국 체제 근본에 자리한 어두운 면을 드러내는 결과를 드러냈다고 생각합니다. 고통받고 가난에 신음하는 인민을 위한 개혁인 듯 보이지만, 결국 집단의 폭력을 이용한 개인들의 사리사욕 채우기(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누군가의 아내로 배정되는 일, 과거의 집안사 때문에 투쟁에서 면제되지 못하는 상황, 혁명이라는 명분으로 원한 갚기 등)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토지개혁의 그림자가 이후 중국의 역사에서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있기에 중국 정부가 찔려서 금서로 지정한 것은 아닐까 싶네요. 결국 자신들의 과오를 시인한 셈이죠. 이런 점에서 ‘해가 죽던 날’이 많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워낙 정신없이 읽다보니 생각을 정리하는 것도 쉽지 않네요 ㅎㅎ 이제 책의 후반부로 넘어가는데 작가가 이 이야기를 어떻게 마무리 지을지 너무 궁금합니다.
천장이라니, 저는 책에서만 봤는데 실제로 목격하게 된다면 무척 충격적일 것 같아요. , “그 사람들에게는 시신을 땅에 묻어서 벌레에게 파먹히게 하는 것이 더 충격적인 일 일 수도 있지 않겠나"는 프랑스 여행자분의 말에는 저의 편견을 돌아보게 되네요. '미스터리 숏폼'이라는 말씀이 전반부에는 정말 딱인 것 같아요. 그런데 말씀해주신 것처럼 읽어나가면서 전형적인 미스테리 장르의 관습과는 다른 부분을 발견하게 되고, 끝까지 읽고 나면 이건 미스터리 장르의 장치들을 사용한 순문학이 맞구나(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장르의 구분으로서)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떤 효과를 노리는지 분명히 알고, 그것을 효과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정확하게 구성했다는 생각도 듭니다. 종종 어떤 일은 감추려고 하기 때문에 더욱 드러나기도 하는데, 이 책을 둘러싼 금서 지정 소동은 분명 지적하신 것처럼 중국 정부가 스스로 자신들의 과오를 시인한 셈이 된 것 같아요. 한편 우리 역사에도 같지는 않더라도 비슷한 일들이 있고, 아직 더 드러내고 밝혀야 할 부분이 많음에도 그런 소설을 찾아보기 힘든 이유는 뭘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건 검열과는 전혀 다른, 또 다른 문제겠지요. 이제 3주 간의 읽기가 반환점을 넘어 후반부로 접어들었는데요. 앞으로도 멋진 감상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미스터리 숏폼'이라는 표현이 정말 어울리네요. ㅎㅎ 저는 완독을 한 상태로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지만, 딩쯔타오가 모든 기억을 닫아버린 결정적인 장면(?)이 마지막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라도 기억을 닫지 않고는 그 죄책감을 안고 살아내지 못할 것 같거든요. 완독 후 @희귀동물 님의 소감이 궁금합니다. :)
18층, 왜 하필 18층일까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
연매장 제5장 21. 111쪽, 팡팡 지음, 문현선 옮김
어떤 인생이든 사실은 소소한 인생이고 누구나 소소한 일상을 제일 많이 살아. 다시 말해 소소한 인생은 소소한 일상과 어울려야먄 가장 자유롭게 즐길 수 있다고.
연매장 팡팡 지음, 문현선 옮김
저도 류사오안의 인생철학이 매우 마음에 들더라구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서울국제도서전이 열리는 주간입니다! 읽을 책이 쌓였는데 이번에 또 새 반려책을 잔뜩 업어왔어요. 집에 돌아와 다시 연매장을 들췄다가 문득 위에 나누신 대화에 18층, 18개 지옥 개수가 눈에 띄어서 조금 찾아봤는데..흥미로운 것을 발견했습니다. 중국에서는 도교나 불교 사상이 결합된 민간 신앙 요소로 죄를 지으면 경중에 따라 18층으로 나눠진 지옥에 떨어진다고 해요. (우리나라는 시왕도라고해서 10명의 지옥왕이 좀 더 보편적임) 1층이 가장 경미한 지옥이고 아래로 내려갈수록 엄벌에 처한다는데 딩쯔타오는 거꾸로 가장 지하인 18층에서 하나씩 위로 올라가는 구조잖아요. 전체적으로 동양의 지옥은 연옥 개념에 가까워서 업보를 다 청산하면 윤회하게 되는 과정으로 생각하면, 딩쯔타오가 계단을 올라가며 지옥을 하나씩 마주하는 것 자체가 그녀에게는 업보를 감당하는 것, 즉 망각하고 살았던 과거를 기억해냄으로 윤회에 가까워지는걸까? 생각해보았습니다. 혹은 딩쯔타오 본인 입장으로는 지옥에 빠지지 않으려 망각을 선택했지만 결국 모든 도피에는 한계가 있고, 진실을 마주함으로써 딩쯔타오는 스스로 견딜 수 없이 괴로운 지옥의 벌을 받지만, 독자들이 한명이라도 더 숨겨진 역사적 진실을 알게 된 것으로 동시에 죄를 탕감하게 된게 아닐까. 이런 다양한 상상을 해보았어요. 18개 지옥에 대한 설명은 문헌마다 조금씩 개념이 다르고 대부분 인체 사지를 고문하고 불지르는...잔인한 형벌이라 딩쯔타오의 모든 지옥과 정확히 들어맞지는 않는데요, 다만 공통적으로 1층은 "발설지옥" 입니다. 거짓말, 이간질 한 자에게 내리는 형벌은 '혀를 뽑는 것' 이고요. 딩쯔타오의 1층 지옥은 13장 65번에 이르러야 읽는 이가 알 수 있는데요, 더 이상은 스포일러가 되기 때문에 참겠습니다...(얼른 얘기하고 싶어요!ㅎㅎ) 여러모로 곱씹을수록 여운이 긴 글이예요.
18개의 지옥에 이런 의미가 있었군요. 처음부터 다시 봐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발설지옥, 등등등이 최근 "천국보다 아름다운"에 나오던데 참 독특한 드라마라고 생각했어요. 반려책이라는 단어도 재미있네요. 저도 반려책이 늘어나네요. ~
18층에 그런 의미가 있었군요! 공통적으로 1층이 '발설지옥'이라는 것도 흥미로운 부분이네요. 과연 작가가 그런 부분들을 모두 고려해서 설계했다는 확신이 듭니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저도 왜 하필 18개일까 생각을 해서 혹시 불교에서 말하는 그게 18지옥이었던가?? 생각을 하긴 했었는데 역시 그렇군요 발설지옥이라...참 적절하게 배치를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류진위안은 책의 상반부에서 창린과 더불이 비중이 큰 화자 중 하나로. 다행히 부상으로 토지개혁에는 참여하지 않았다는 면죄부를 쥐고, 자신의 경험을 추억합니다. 그 추억의 조각들은 중국의 역사와도, 다이윈의 가족과도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는데, 산시 국숫집에서 만난 라오치나, 완저우로 가서 만난 옛 동료 리둥수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디엔가 모르게 삼국지나 수호지 같은 중국의 옛 소설 속 인물 같은 느낌, 이제는 옛사람이 되어 뒤안길로 사라질 것을 당사자도 독자도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이 노래하는 추억은 호메로스의 노래 일리아스를 떠올리게 하는 구석이 있어요. 희생자들은 이름도, 삶의 역사도, 죽어가는 모습도 노래돼지만, 죽인 자는 역사의 뒤에 몸을 숨긴 채 희미하게 존재합니다. 모든 비극은 역사의 짓일까요? 잘못을 바로 잡으려면 선을 넘을 수밖에 없었다던 류진위안의 말 그대로 당시는 상황은 상상이상으로 훨씬 더 복잡했을 것(184p)입이다. 남겨진 저택의 흔적, 유적에서 우리는 부자가 얼마나 부유했는지는 알지만, 가난한 사람이 얼마나 가난했는가는 남지 않는다는 말이 와닿네요(185p). 지금 시선으로 보면 당연히 이것도 틀렸고 저것도 틀렸다고 느낄 느끼겠지만 그때 사회는 음험하고 혼란스러웠다고 ‘그때’를 함께 지나온 마노인도 말합니다.(184p)
화제로 지정된 대화
류진위안의 말처럼 잘못을 바로 잡으려면 선을 넘어야 하는 시점이었을까요? 당시는 중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그랬겠지요. 그래서 책 속의 잔인한 행위들은 개인의 행위가 되지 않고 뭉뚱그려지나 봅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죽어간 자들을 애도하는 마음으로 다이윈의 18개의 지옥을 따로 떼서 읽어보겠습니다. 떠내려온 강물을 거슬러가는 역순이 아니라 다이윈이 겪은 시간 그대로요. 그리고 희생자로서 다이윈의 기록과 애도, 그리고 훗날 과거사를 더듬어가는 칭린과 룽중륭의 태도에 대해서도 조금 더 생각해보고 싶네요. “내가 흥미를 느끼는건 이런 가문이 어떻게 흥성했고 쇠락했느냐야. 그 과정을 이해하면 중국의 건축사를 이해하믄 데 도움이 될 거야. 거꾸로 이런 건축사와 그들의 흥망성쇠 과정을 명확히 알면 중국 역사의 전환점과 진정한 발전 궤적을 파악할 수 있을 거고.”(144p) “많은 사람들이 정권 교체와 정국 안정화는 필연적 과정이었다고 생각하지. 그래도 우리는 꼭 그렇게 잔혹해야 했는지 자문해볼 필요가 있어.”(149p)
개인과 사회의 문제는 늘 어려운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정권 교체와 정국 안정화는 필연적 과정이었다고 생각하지. 그래도 우리는 꼭 그렇게 잔혹해야 했는지 자문해볼 필요가 있어"라는 룽중륭의 말이 저도 내내 가슴에 남더라고요. 모든 부자들이 잔혹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들의 부는 분명 다양한 층위의 착취 위에서만 가능했다는 것, 반대로 대부분의 가난한 사람들은 착취당하는 이들이었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지닌 원한과 욕망이 모두 긍정될 수는 없다는 것. 하지만 모두를 위한 완벽한 사회는 불가능하고,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사회를, 어떤 정의를 추구해야 하는지 묻게 만드는 것 같아요.
이 책에서 팡팡이 던지는 문제의식은 아주 보편적이면서도 정말 쉽게 답을 내리기 어려운 것이란 생각이 들어요. "책 속의 잔인한 행위들은 개인의 행위가 되지 않고 뭉뚱그려지나 봅니다"라는 문장을 읽고 생각해보니 그건 또한 한 개인으로서의 주체와 역사적 행위자로서의 주체의 분열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 <연매장>에서 망각은 단지 회피가 아니라 삶의 본질과 관련된 아주 강력한 대안으로 제시되는데요. 다이윈에게도 그렇고, 평생을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살았던 노병에게도 그렇고, 우리는 단순히 살아가기 위해서 무엇인가를 잊고 그 다음으로 나아가야 하죠. 하지만 반대로 역사적 행위자의 층위에서 망각이란 타자에 대한 폭력이면서 그 자신에 대한 배신이고, 어떤 의미에서는 기만을 넘어선 자기-소멸이기도 한 것 같아요. 그래서 <연매장>에서는 개인의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칭린에게는 망각을, 그리고 역사적 주체로서 살아가고자 하는 룽중륭에게는 기억을 선택하도록 하는 것 같아요. 문제는 우리가 단순히 한 개인으로서만 살아갈 수도 없고, 또 언제나 역사적 주체로서 살아갈 수도 없다는 것이죠.
다이윈의 시어머니나 다이윈 역시 연매장하면 환생하지 못하기 때문에 무섭고, 싫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서율님께서 알려주신대로 중국, 한국, 일본 불교에서는 대개 18지옥이 있고, 그 18개의 지옥을 모두 통과하면 죄업이 소멸되었다는 것을 뜻하며 윤회하여 다음 생을 산다고 합니다. 다이윈은 이 지옥을 모두 통과했죠. 그것이 연매장된 자들을 위한 애도였으며, 함께 가지 못했던 본인과, 놓쳐버린 아들에 대한 애도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동시에 토지개혁이라는 시기를 지나온 죽은 자와 산 자, 모두에 대한 애도요. 알츠하이머에 걸린 룽즁융의 아버지가 다오윈을 만나 "그녀의 영혼은 현세에 없다"(101p)고 하며 룽중융은 두 분의 이런 상태가 병이 아니라 두 분의 소망일 수도 있다(101p)고 합니다. 칭린이 성공해서 이사온 다음 날 다이윈의 영혼은 현세를 떠나 죽은 자들을 위해 지옥을 건넙니다. 살아있는 자들을 위한 시간이 끝나고 죽은 자들을 위한 시간인거죠. 저는 사실 칭린이 너무 완벽한, 모두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여서 호감과 동시에 작은 의심을 품고 있었는데, 부모님을 따른 그의 궤적 역시 우리가 역사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한 방법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아직까지 공산당 군에서 간부로 끝까지 남아 퇴역한 류진위안이나 중국 개방시기에 부동산으로 재벌이 된 류사오찬이나, 개발 과정에서 거래가 모두 만족스럽게 끝났다는 칭린의 말을 떠올리면 어쩜 이리 좋은 모습으로만 묘사되었나라는 의문이 남지만, 이거야말로 작가의 영역이고, 찌들고 때가 묻은 저의 탓이겠죠. (저는 다이윈이 망각을 선택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주말 잘 보내셨나요? 저는 도서전에 다녀왔는데요, 간만에 책과 사람들이 가득한 곳에 다녀오니 힘이 생기기도 하고, 동시에 기가 빨리는(?) 기분이 들기도 했네요. 7장에서는 다시 딩쯔타오(다이윈)의 지옥으로 돌아갑니다. 5장에 나왔던 두 번째 지옥에서 다이윈은 어째서 샤오차를 구해주지 않았느냐는 푸퉁의 절규에 "내가 묻지 않으면 달리 뭘 할 수 있는데? 너랑 결혼할 수 있을 것 같니?"라고 쏘아붙이는 바람에 결국 물에 빠지게 되는 모습이 나오는데요. 네 번째 지옥에서 실은 다이윈이 샤오차를 구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집니다. 시간 역순으로 흘러가기에 가능한 구성이죠. 한편 다이윈의 시가인 루씨 집안의 면면이 보여지기도 하는데 그중 작은 우연의 일치가 이곳 '이 계절의 소설'에서 함께 소설을 읽는 우리를(적어도 저를...) 헛웃음 짓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오랫동안 병을 앓았던 시숙 보원은 기력이 달려 깊게 파지 못하고 그냥 누워버렸다. 그러면서 관은 없어도 대나무가 곁에 있으니 우아한 죽음이라고 말했다." (198쪽) 물론 우리와 함께 읽는 강보원 평론가는 오랫동안 병을 앓고 있지는 않고 무척 건강하지만, 어쩐지 나도 모르게 겹쳐 보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네요... 거대한 역사적 흐름 속에서 일어난 사회적 사건이지만, 정작 거기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개개인의 사적인 관계라는 부분도 흥미로운 지점인 것 같아요. 앞서 언급했던 다이윈이 물에 빠지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는 그녀의 말투와 태도였고, 마을 사람들에게 평판이 좋았던 루씨 집안이 피해갈 수 없었던 건 '왕씨 집안'과 관련된 일이었다는 것 같은 부분들이요. 8장은 다시 류진위안의 시점인데요. 칭린에게 묘한 친밀감과 기시감을 느끼던 그가 조금씩 진실에 접근하는 장입니다. 과연 류진위안이 칭린이 우의사의 아들임을 알아볼지, 알아본 후에는 과연 소설이 어떻게 진행이 될지 긴장하며 읽었는데 그 끝은... (아직 덜 읽으신 분들을 위해 언급을 자제하겠습니다.) 개인적으로 라오치의 이런 말이 기억에 남더라고요. "그때가 어떤 사회였습니까? 또 우리가 살았던 사회는 어떻거요? 예쩐에 아버지, 어머니가 걱정하실 때는 편지 오가는 데도 한 달이 더 걸렸는데, 지금은 일 초면 되지요. 휴대폰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마을 어디에도 전화가 없었지만, 지금은 젊은이들 모두 휴대폰이 있지 않습니까? 과거에는 상상도 못했지요. 형님 아들은 차가 있다고 하셨지요. 우리 사위도 몇 년 뒤에 산다더군요. 저는 생각할수록 겁이 납니다. 옛날에는 지주도 이렇게 살지 못했잖아요. 아닙니까?" (236쪽) '옛날에는 지주도 이렇게 살지 못했잖아요'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것이 긍정적인 마음이 아니라 두려움이라는 부분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읽고 계신가요? 이번주도 다양한 감상, 의문, 밑줄 기다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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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살 차이를 극복하는 연상연하 로맨스🫧 『남의 타임슬립』같이 읽어요💓
매달 다른 시인의 릴레이가 어느덧 12달을 채웠어요.
[날 수를 세는 책 읽기ㅡ 12월] '오늘부터 일일'[날 수를 세는 책 읽기ㅡ11월] '물끄러미' 〔날 수를 세는 책 읽기- 10월 ‘핸드백에 술을 숨긴 적이 있다’〕
독서모임에 이어 북토크까지
[책증정][1938 타이완 여행기] 12월 11일 오프라인 북토크 예정!스토리 수련회 : 첫번째 수련회 <호러의 모든 것> (with 김봉석)[책증정] 저자와 함께 읽기 <브루클린 책방은 커피를 팔지 않는다> +오프라인북토크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AI 에 관한 다양한 시선들
[AI는 인간을 먹고 자란다] 결과물과 가치중립성의 이면[도서 증정]《미래는 생성되지 않는다》 저자, 편집자와 함께 읽어요![김영사/책증정] <AI 메이커스> 편집자와 함께 읽기 /제프리 힌턴 '노벨상' 수상 기념[도서 증정] <먼저 온 미래>(장강명) 저자, 편집자와 함께 읽어요!AI 이후의 세계 함께 읽기 모임
독자에게 “위로와 질문”을 동시에 던지는 이희영
[도서 증정] 『안의 크기』의 저자 이희영 작가님, 편집자와 함께 읽어요![책 증정] 이희영 장편소설 『BU 케어 보험』 함께 읽어요![선착순 마감 완료] 이희영 작가와 함께 신간 장편소설 《테스터》 읽기
한 해의 마지막 달에 만나는 철학자들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9. <미셸 푸코, 1926~1984>[책걸상 함께 읽기] #52. <어떻게 살 것인가: 삶의 철학자 몽테뉴에게 인생을 묻다>[도서 증정] 순수이성비판 길잡이 <괘씸한 철학 번역> 함께 읽어요![다산북스/책증정]《너를 위해 사는 것이 인생이라고 니체가 말했다》 저자&편집자와 읽어요!
<피프티 피플> 인물 탐구
피프티피플-이기윤피프티피플-권혜정피프티피플-송수정
모집중밤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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