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댓글에 이어서] 개인적 주체와 역사적 주체(편의상 나눈 용어입니다...) 중 '진실'은 어느 편에 있을까요? 우선은 후자쪽에 있다고 생각되어요. 내가 느낀 것보다 내가 실제로 타자와의 관계라는 구조 속에서 어떤 위치에 있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가 '나'를 더 본질적으로 정의하니까요. 하지만 육체를 지니고 이런저런 일상을 감각하는 내가 없다면 역사적 주체로서의 나 또한 존재할 수 없고요. 말하자면 개인으로서 주체는 자신의 본질을 망각하는 한에서만 살아갈 수 있고, 그 주체의 본질을 담보하고 있는 역사적 행위자로서의 주체는 반대로 자신을 망각하는 개인적 주체를 전제조건으로 해서만 존재할 수 있는 것처럼 보여요. <연매장>에서 다루어지는 건 나를 이루는 이 두 종류의 주체성의 화해 불가능성인 것 같기도 해요.
이 책에서 다이윈의 결정적인 과오가 있었다면 다른 어떤 것이라기보다 이 둘의 화해불가능성을 말 그대로 간과했다는 데에 있지 않을까요? 일상의 경제 속에서 진뎬은 아주 친숙하고 서스럼없는 하인이죠. 그렇지만 집안의 역사 속에서 그 둘의 관계는 깊은 원한으로 엮여 있습니다. 이 두 층위를 나누고 있는 경계를 함부로 흩뜨리고 뒤섞어버리는 순간 다이윈에게도, 진뎬에게도 이전과 같은 '삶'은 불가능해지고요.
[이 계절의 소설_여름] 『연매장』 함께 읽기
D-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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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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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보원
그렇다면 개인으로 살면서 자신의 위치성을 잘 고려하면 해결되는 문제일까요? 언뜻 그것이 상식적인 답처럼 보이지만 <연매장>에서는 비교적 그런 노력을 기울인 이들도 똑같이 끔찍한 결과를 맞이하는 모습들이 그려지는 것 같아요. 그에 더해, 얼마 전에 읽은 테리 이글턴의 <문화란 무엇인가>라는 책에 나온 이런 구절들이 더 생각을 복잡해지게 하네요.
"하지만 프로이트의 관점에 따르면, 그런 자기 성찰만으로 구원받는 건 아니다. 단지 자신의 심리를 영리하게 대함으로써 신경증을 치료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정말이지 그건 해결책이라기보다는 문제의 일부일 공산이 크다. 심리의 형성자인 주체의 핵심에는 맹점이 있으며, 그저 단순한 자기 성찰로 주체가 의식 표면에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일은 신고 있는 신발 끈으로 자신을 들어올리려 한다거나, 뭔가를 보는 자기 모습 자체를 보려고 하는 것과 같다."
TerryJ
저는 지난달에 이달의소설로 <연매장>을 이미 완독하였습니다. 이계절의소설로 뽑혔다는 걸 알고 재독하고자 했지만 개인적 사정으로 바빠서 완독은 못하고 일부 발췌독만 다시 하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지난달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 중국풍의 문체와 중국 현대사에 대한 배경지식 부족으로 읽기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문체에 적응하고, 관련 지식을 인터넷으로 간략하게 조사한 후 읽기 시작하니 훨씬 빠르게 이해하고 소설 속에 빠져들 수 있었습니다. 중반부 이후에는 비밀이 하나씩 밝혀지면서 점점 더 흥미롭게 느꼈습니다.
중국의 현대사를 이토록 극적으로 재미있으면서도 의미있게 그린 소설이라서 저도 비교적 높은 점수를 부여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금정연
극적으로 재미있으면서도 의미 있게 그린 소설이라는 말씀에 동감합니다. 이야기가 진행되며 조금씩 비밀이 밝혀지는 구성이 특히 매력적인 소설인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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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연
소설을 읽다 보면 ‘비적’이라는 말이 여러 번 나옵니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무장을 하고 떼를 지어 다니면서 사람들을 해치는 도둑”이라고 하는데요, 굳이 사전을 찾지 않아도 문맥으로 대충 ‘도적’과 비슷한 뜻이라는 걸 알 수 있죠. 근데 도적이 왜 이렇게 많지? 의아하며 읽으셨던 분들도 계실 거 같아요.
하지만 사실 중국 현대사에서 ‘비적’은 단순한 도둑이 아니라고 해요.
비적은 공산당 정권이 등장한 뒤, 지주 계급, 국민당 잔당, 무장 반대 세력 등을 통칭하던 용어였는데요. 실제로 무장 산적 무리가 있었던 경우도 있지만, 그보다는 정치적 반대파를 지칭하는 공식적인 표현으로 쓰인 경우가 더 많았다고 해요. (반대로 국민당 측에서는 공산당을 가리켜 비적이라고 불렀다네요. 그게 바로 우리에게도 익숙한 ‘ 공비’죠.)
따라서 ‘비적을 소탕했다’는 무용담은 단순히 범죄자를 쫓아내서 치안을 유지했다, 같은 의미가 아니라 정치적 사상적으로 반대편에 있는 이들을 몰아냈다는 뜻이 되겠죠. 따라서 비적을 얼마나 소탕했는지가 그 사람이 얼마나 혁명에 진심인지, 당에 열성분자인지 보여주는 일종의 지표였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료
아..비적이 단순히 중국 군벌 같은 그런 느낌이 아니라 각 진영에서 상대편을 싸잡아 부르는 그런 것이기도 했던 거군요..알고 나니 확실히 더 먹먹하게 만드는 게 있네요

최가은
“ 그랬다. 딩쯔타오는 자신이 이제 다섯번째 층에 올랐다는 걸 알았다. 자신이 살아온 길을 거슬러올라가는 중이라는 것도 이미 알아차렸다. 그녀는 갈수록 점점 더 많은 것을 보았다. 사건들의 세세한 부분, 그때그때 상황의 분위기, 한 사람 한 사람의 표정 그리고 사람들의 목소리가 전부 분명하게 느껴졌다.
언젠가 시아버지 루쯔차오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사람은 풍성한 혼백을 가지고 태어났다가 살면서 차츰 잃어간다. 그러나 다 잃어버리면 혼이 사라지지. 옆에서는 그 사람이 죽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사라진 거다. 그 사람은 다시 몸을 돌려 조금씩 자기가 뿌려놓은 혼백을 줍기 시작하지. 도로 다 회수하면 득도할 수 있다. 그러면 좋은 집에서 다시 태어날 수도 있어. 다 회수하지 못하면, 잘은 모르지만 내세 에 돼지나 개로 태어날지도 모른다.
그녀는 내 혼을 조금씩 모두 회수해야 해, 다음 생에는 좋은 삶을 살 거야, 더는 생고생하기 싫어, 하고 생각했다. ”
『연매장』 197, 팡팡 지음, 문현선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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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동물
“거대한 역사적 흐름 속에서 일어난 사회적 사건이지만, 정작 거기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개개인의 사적인 관계라는 부분도 흥미로운 지점인 것 같아요.”
@금정연
@강보원
두 분의 담론이 제가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부분들과 맛닿아 있어서 그 맥락에서 느낀점을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저는 오늘 책을 다 읽었지만 아직 못 읽으신분들이 계실 것 같아 최대한 스포없이 적어볼게요 ㅎㅎ
글을 다 읽고 나면 왜 저 사진을 첨부했는지도 조금 이해가 가실 거예요. ^^;
“작가는 중국의 역사와 이데올로기, 건국 이념들이 모두 그저 개인들의 삶이 엮어낸 결과물이라고 생각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좋아하는 인용구가 하나 있는데요,
"I’m not interested in how people move; I’m interested in what makes them move."
(나는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이는가에는 관심이 없다. 무엇이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가에 관심이 있다.)
독특한 움직임과 드라마로 명성을 얻었던 독일 안무가 피나 바우쉬가 한 말입니다. 사람들이 그만의 독특한 창작 방식에 질문을 던졌을 때 한 말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보통의 안무가들은 특정 동작이나 움직임을 지시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만드는데, 피나 바우쉬는 독특한 질문과 워크샵을 통해서 무용수들이 내면의 충동에 반응하여 스스로 움직임을 찾아 표현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만들었거든요.
제가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팡팡’역시 이 작품에서 거대하고 충격적인 역사 속에서 개인들이 특정한 삶을 선택하게 된 동기를 강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시대적 사명과 이데올로기적 명분을 차려입고는 결국 자신들의 욕망(탐욕, 명예, 생존 등)을 좇아 행동하고 있다는 생각을 거듭하게 되더라고요.
작가는 인간의 역사와 이데올로기가 결국 개인들의 삶과 그 생명의 역동성이 씨줄과 날줄이 되어 짜인 거대한 카펫(다른 층위의 큰 그림을 가진)과 같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우리가 지금의 틀 안에서 보게 되는 큰 그림은 결국 누군가의 의도에 따른 편집을 거친 결과물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첨부한 사진에서 각각의 개별 사진이 한 개인의 삶이라면, 큰 그림을 우리가 흔히 단순화 한 역사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건 사람이 기억을 저장할 때의 과정과도 같은데요. 우리가 ‘사실’이라고 믿고 있는 기억들도 결국은 우리 뇌의 처리 과정을 거쳐서 감정을 덧입힌 가공물이니까요. 그런 점에서 작가가 ‘기억’과 ‘망각’이라는 장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은 더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작가는 우리에게 무엇을 볼지, 어디까지 볼지 질문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엉뚱하게도 류진위안이 북한에 가서 활약한 것처럼 묘사되는 부분에서 한국전쟁의 형세를 떠올렸습니다. 류진위안 같은 중국의 ‘전쟁 영웅’들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분단국가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혹은 그 반대의 상황이 펼쳐졌을 수도 있었을까? 하는 이런 생각이요.
작가의 질문은 작년 12월에 대한민국에 일어난 정세에 대한 우리의 반응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토지개혁에 대한 증언과 그 시대상에 대해 입장이 엇갈리는 것처럼 우리는 12월의 사태에 대해 엇갈린 입장의 목소리들을 듣고 있으니까요. 그저 스스로에 대한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내가 옳다’는 확신에 갇혀 사람들과 그들의 삶을 보지 못하는 일은 없기를 바랍니다. 생명보다 명분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알맹
저도 류진위안이 북한에 갔다는 이야기를 보며 이 때 중국에도 많은 문제가 있었던 것인데 어째서 한국전쟁까지 참견(!)을 했단 말인가 하는 분노와 함께 류진위안은 이 책에서 가장 운 좋고 행복한 삶을 누린 인물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은 전투를 치르면서 다친 곳도 없이 살아남고 그 공을 인정받아 자식들이 편하게 살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에요.

금정연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시대적 사명과 이데올로기적 명분을 차려입고는 결국 자신들의 욕망(탐욕, 명예, 생존 등)을 좇아 행동하고 있다"는 말씀에 정말 공감하게 됩니다. 이데올로기적 명분을 말할 때조차 자기가 가진 해석의 틀 안에서 저마다 조금씩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요. 어떠한 대의를 주장하더라도 그것의 밑에는 개인의 욕망이 있고, 누구도 자신이 가진 인식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 그것은 인간의 한계라기보다는 인간의 조건이고, 그런 의미에서 팡팡의 이 소설은 인간의 조건에 대해 말하는 소설이라고 하면 너무 거친 정리일까요?
첨부해주신 사진이 정말 이 소설이랑 잘 들어맞아서 감탄했어요. "작가는 우리에게 무엇을 볼지, 어디까지 볼지 질문하고 있는 것 같"다는 말씀에서는, 사회적인 기억과 개인적인 기억이라는 점에서 적지 않은 차이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이미 일어난 사건들 속에서 어떤 것을 볼지 우리는 선택할 수 있고 선택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리베카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의 한 구절이 생각나기도 하네요.
"가끔 멋진 일이 생기고 난 직후에 삶을 되돌아보면, 인생에서 운이 좋았던 일들이 산맥으로 이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끔찍한 일이 생긴 후에 되돌아보면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다. 현재가 과거를 재배치하는 것이다. 삶 하나는 이야기 하나가 아니기 때문에 완성된 이야기를 전하기란 절대 불가능하다. 삶은 온갖 사연으로 가득한 은하수 같은 것이고 우리는 지금 우리가 누구이며 어디에 있는지에 따라 그때그때 몇 개의 성운을 고를 수 있을 뿐이다."

멀고도 가까운 -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관하여저자 리베카 솔닛은 따뜻하고도 객관적인 시선으로 이야기들이 우리의 삶을 만들어내고 관계를 만들어내는 데 어떤 역할을 하는지 세밀하게 관찰한다. 내밀한 회고록이지만 읽기와 쓰기가 지닌 공적인 효과에 대해서도 유려하게 웅변하는 에세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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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가은
안녕하세요. 일주일만에 돌아왔더니 엄청 많은 토론이 있었네요. 다들 재미있게 읽고 계신 것 같아요. 두 번째 읽기 구간에서는 크게 두 갈래의 서사가 진행되고 있어요. 하나는 칭린이 이런저런 단서들을 모으며 부모님의 비밀을 발견해가는 과정이고, 또 하나는 계단을 오르며 망각을 거부당하는 딩쯔타오의 이야기가 있어요. @서율 님이 상세히 지적해주셔서 이 계단 지옥의 의미가 완전히 다르게 다가온 것이 이번 읽기의 가장 큰 수확인 것 같습니다. 저는 사실 처음 읽었을 땐, 이 소설의 가장 중요한 '비밀'을 작가가 이런 식으로 당연하다는듯? 제시해주는 것이 서사적으로 매력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약간 의심했었거든요. 그러니까... 독자가 소설 속 인물과 그 인물의 행적을 그저 따라 감으로써, 어떤 노력이나 모험을 거치지 않고서도 소설의 비밀을 보여주는대로 보게 되는 구성이 흥미가 떨어진다고 생각했어요. 아 일단 이유는 모르겠지만 딩쯔타오가 18개의 계단을 앞에 두고 있고, 하나씩 오를 때마다 과거가 드러나는 것이구나... 한쪽에선 칭린이 그것을 알아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우리는 그저 페이지만 넘기면 그가 알고자 하는 것을 알 수 있는 거구나...그런 느낌?
그런데 서율님의 말씀으로 18지옥의 '18'의 의미에 대해, 특히 1층(13장 65번!)이 '발설지옥'이라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며 이 소설의 설계를 보니 확실히 달리 보이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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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가은
한편 서사적 장치로서 '계단 지옥'의 의미 또는 효과와는 조금 관계 없는 이야기, 즉 '죽음'과 '기억', 그리고 '주체'에 대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게 되기도 했어요. 앞서 강보원 평론가가 개인적 주체와 역사적 주체의 화해불가능성, 그 사이에 놓인 '망각'과 '기억'의 문제를 짚어주셔서 더 그런 것 같기도 한데요.
딩쯔타오가 계단을 오르며 무언가를 목격하는 순간이 만약 내게도 일어날 일이라면 어떨까, 그런 뜬금 없는 생각을 하면서 좀 센치(?)해지기도 하더라고요. ㅎㅎ 요즘 개인으로서 저에게 역사란 게 가능한가 그런 이상한 생각을 자주 하고 있어서 더 그런 것 같아요. 대단히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하루하루가 어떤 체험이나 분명한 사실로서보다는 일종의 환상처럼 느껴질 때가 많아요. 여러분은 어떠실지... 아무래도 일상이란건 반복의 축적이고, 나이가 들수록 그런 일상에 반하는 놀랍거나 대단한 '사건'을 겪는 일도 흔치 않고, 그러다보면 '기억하기'라는 행위 자체가 아예 불가능한 것처럼 생각될 때도 있거든요. 단순히 '어제 일도 기억이 안 난다...' 같은 푸념으로 정리할 수도 있겠지만.
최근 가까운 사람들의 갑작스런 부고를 듣는 일도 있었는데, 그들의 죽음을 생각하면 더 그런 느낌이 들기도 해요. 삶이란 게 다 환상이라는 생각. 그런데 딩쯔타오의 계단 지옥을 따라 읽으며, 만약 죽음을 앞두고 있을 때 내게 남겨진 일이 내 지난 삶의 계단을 하나하나 오르는 일이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더라고요. 층층에서 비어져 나오는 어떤 느닷 없는 장면들을 축적해가다보면 내가 비로소 한 명의 '개인'이었음을 실감하게 될까요?
어쨌거나 딩쯔타오의 시아버지 말씀처럼 죽은 이들도 "다시 몸을 돌려 조금씩 자기가 뿌려놓은 혼백을 줍"고 있는 거라면, 그리고 그 계단을 오르는 시간이 우리의 셈법과 다른 거라면, 가까운 이들의 죽음 앞에서 느꼈던 황망함 같은 것이 조금 덜어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금정연
“ 일주일 뒤 류진위안은 숨을 거두었다.
모든 게 너무 갑작스러워 세 남매는 슬픔을 참기 힘들었다. 그들은 류진위안이 무척 건강해 백 살까지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특히 류샤오안은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손주들은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사람이 죽는 건 당연한 일이고 늙으면 가야 하는 길인데 왜 그러는지 의아해했다. ”
『연매장』 p.243-244, 팡팡 지음, 문현선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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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연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되었어요. 제가 사는 곳에는 아직 많은 비가 내리지는 않았지만, 온종일 눅눅하고 꿉꿉하고. 아침부터 장마철 특유의 우울함이 온몸을 누르는 것 같더라고요.
어느새 우리의 읽기도 2주차를 지났습니다. 9장에서는 여덜번째 지옥에서 열번째 지옥이 나오는데요, 짧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굳이 이렇게 세세하게 나눌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장이었어요. 아마 @서율 님이 말씀해주신 '18개 지옥'을 맞추려고 한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달리 생각하면 짧게 나눈 장들이 이어지면서 더 슬프고 강력한 느낌을 준 것 같기도 하고요.
10장은 반대로 가장 긴 장입니다. 칭린이 드디어 아버지의 일기를 읽고, 아버지의 비밀을 알게 되는데요. 독자들 입장에서도 우('둥')의사의 과거와 그의 시점으로 서술되는 딩쯔타오의 삶을 처음으로 듣게 되는 부분이죠. 역시 가장 크게 느껴지는 것은 안타까움인데요. 부부의 사연도 그렇지만, 아버지 어머니와 누구보다 가까웠던 류진위안을 옆에 두고도 그가 세상을 떠난 다음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안타까움이 제일 큰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사촌 동생 '샤오치'라는 이름을 보며 또 다른 기대를 품게 만들기도 하지만요. 칭린이 비로소 어머니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리스트까지 적어가며 행동에 나서려 한다는 부분도 그렇고요.
과연 칭린은 어머니의 비밀을 알아낼 수 있을까? 진실과 마주한 칭린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18개의 지옥을 모두 통과한 딩쯔타오(다이윈)은 어떻게 될까? 같은 질문을 남기며 이야기는 후반으로 접어듭니다. 저는 이 부분을 읽고 나서 이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이것이 만약 '장르소설'이라면 모든 비밀이 드러날 것이다. 아니라면, 드러날 수도 있고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겠지. 그런데 드러나지 않고도 이 소설을 마무리하는 게 가능할까? 과연 작가의 선택은 무엇이었을지 생각하며 남은 부분을 읽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 될 것 같습니다.

호디에
아직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독자는 모든 비밀을 알게 되잖아요. 나중에 칭린의 선택(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 쓸 수는 없지만)이 결국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대다수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후대의 의지가 개입이 되든 되지 않든, 역사라고 불리는 시간 안에서 알려지지 않은 많은 사건과 비극들이 있을테고 우리는 그 모든 것을 일일이 알 수 없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칭린의 선택을 한편으로는 존중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안타까웠습니다. 딩쯔타오가 아들의 선택을 알았다면 다행으로 여겼을까,라는 생각도 잠시 했었고요.

금정연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대다수의 모습"이라는 말씀이 정말 공감됩니다. 소설을 '읽는' 입장에서는 칭린의 선택에 대해서 여러가지 생각을 할 수 있지만, 막상 제가 칭린의 입장이 된다면 비슷한 선택을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딩쯔타오는, 글쎄요, 아마 다행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18층의 지옥을 거치고 난 후라 더더욱...

Alice2023
10장까지 읽었더니 드디어 딩쯔타오의 과거와 칭린, 그리고 류진위안이 연결되네요.
조금 예상을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연결되는 것을 보니 동양에서 많이 언급하는 인연이나 윤회
이런 생각들이 떠오르네요. 칭린이 우연히 취업한 회사가 류진위안의 아들이 하는 회사라는 것이
작위적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만날수 밖에 없는 인연이었나 싶고
가족을 한번에 잃은 딩쯔타오가 죽을 고비를 넘기고 비슷한 아픔을 가진 우자밍을 만난 것도
우연과 인연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금정연
말씀하신 것처럼 작위적이라 볼 수도 있겠지만, 현실을 돌아보면 그보다 더한 우연과 인연도 있으니까요. 언제나 현실은 소설을 초월하고, 다만 소설은 그것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혹은 위화감 없이 그리느냐가 관건일텐데, <연매장>은 그런 의미에서 성공한 소설 같아요.

Alice2023
과거를 잊는 건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기능이다.
『연매장』 팡팡 지음, 문현선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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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연
“ 그때 딩쯔타오는 극히 냉정한 상태가 되어 생각에 잠겼다. 아버지, 어머니는 어떤 인생을 사셨을까? 어떻게 그토록 단순하게 생각했을까? 훨씬 잘 이별할 수 있었는데 그 어리석은 고육책 때문에 본인들 목숨도 구하지 못하고 오빠까지 죽음으로 몰아넣었잖아. 나도 목숨만 건졌을 뿐 스스로를 견딜 수 없이 증오하게 되었고. 내 손까지도 그 죄를 기억하고 있잖아. ”
『연매장』 p.339, 팡팡 지음, 문현선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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