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시대적 사명과 이데올로기적 명분을 차려입고는 결국 자신들의 욕망(탐욕, 명예, 생존 등)을 좇아 행동하고 있다"는 말씀에 정말 공감하게 됩니다. 이데올로기적 명분을 말할 때조차 자기가 가진 해석의 틀 안에서 저마다 조금씩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요. 어떠한 대의를 주장하더라도 그것의 밑에는 개인의 욕망이 있고, 누구도 자신이 가진 인식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 그것은 인간의 한계라기보다는 인간의 조건이고, 그런 의미에서 팡팡의 이 소설은 인간의 조건에 대해 말하는 소설이라고 하면 너무 거친 정리일까요?
첨부해주신 사진이 정말 이 소설이랑 잘 들어맞아서 감탄했어요. "작가는 우리에게 무엇을 볼지, 어디까지 볼지 질문하고 있는 것 같"다는 말씀에서는, 사회적인 기억과 개인적인 기억이라는 점에서 적지 않은 차이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이미 일어난 사건들 속에서 어떤 것을 볼지 우리는 선택할 수 있고 선택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리베카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의 한 구절이 생각나기도 하네요.
"가끔 멋진 일이 생기고 난 직후에 삶을 되돌아보면, 인생에서 운이 좋았던 일들이 산맥으로 이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끔찍한 일이 생긴 후에 되돌아보면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다. 현재가 과거를 재배치하는 것이다. 삶 하나는 이야기 하나가 아니기 때문에 완성된 이야기를 전하기란 절대 불가능하다. 삶은 온갖 사연으로 가득한 은하수 같은 것이고 우리는 지금 우리가 누구이며 어디에 있는지에 따라 그때그때 몇 개의 성운을 고를 수 있을 뿐이다."

멀고도 가까운 -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관하여저자 리베카 솔닛은 따뜻하고도 객관적인 시선으로 이야기들이 우리의 삶을 만들어내고 관계를 만들어내는 데 어떤 역할을 하는지 세밀하게 관찰한다. 내밀한 회고록이지만 읽기와 쓰기가 지닌 공적인 효과에 대해서도 유려하게 웅변하는 에세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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