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절의 소설_여름] 『연매장』 함께 읽기

D-29
딩쯔타오가 자신의 선택이랑은 관계없이 아픈 기억을 찾고 결국 그 상태로 죽음까지 맞고 지옥으로 들어갔다는 식으로 생각하기엔 그녀한테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해서 그녀의 결말을 안식을 찾은 것으로 생각해보고자 했네요. 칭린의 선택은 어머니에 대한 존중으로 볼 수 있고 그가 쫓는 과거도 엄밀히 말하면 그에게 보다는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속하는 것에 더 가깝게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저는 자유로워졌을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었어요. @호디에 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묻어두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었을 실수'였기에, 그 모든 "비극과 돌이킬 수 없는 죽음들의 시작에 자기가 저지른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직면했다면 그 앞에서 느낄 감정들과 반응의 깊이는 쉽게 털어질 것 같진 않더라고요. 하지만 일말의 해방감 혹은 안도감은 분명히 느꼈을 거라는 생각은 듭니다. 그리고 딩쯔타오의 죽음은 그녀의 선택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실 마지막 기억을 되찾고 그 이후의 전개가 어떻게 될지 너무 궁금했는데 어떻게 보면 허망하게 죽고 말았다는 느낌도 들더라고요. 그래서 생각해보니 딩쯔타오가 오빠와 부모님, 시댁 식구들의 죽음에 자기도 기꺼이 동참한 것은 아닐까, 그녀의 죽음이 허망하게 느껴지는 것이 시댁 식구들의 허망한 연매장 죽음과 닮았다고 느껴지는 이유가 기억을 되찾은 그녀도 같은 선택을 했기 때문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어요. 그랬다면 그녀는 마음의 짐을 확실히 덜고 뒤늦은 사과를 하러 가족들을 만나러 갔을 수도 있겠다는 상상을 해봅니다.
"딩쯔타오의 죽음은 그녀의 선택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도 같은 생각을 했었습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딩쯔타오의 지옥도, 우리의 독서도 어느새 막바지에 이르렀네요. 13장에서 딩쯔타오는 열여섯번째 지옥과 열일곱번째 지옥을 지나 마침내 열여덟번째 지옥을 지나는데요. 그곳에서 그녀는 그토록 그녀가 회피하고자 했던 (이런 표현이 가능하다면) 일종의 ‘원죄’를 마주합니다. 과연 이 지옥을 통과하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기억을 되짚어 올라가는 이 비극적인 여정을 함께 한 독자라면 당연히 품을 만한 의문인데요. 열여덟번째 지옥을 앞둔 딩쯔타오도 비슷한 생각을 합니다. “딩쯔타오는 생각에 잠겼다. 내가 정말 지옥 깊은 곳에서 빠져나온 걸까? 혹은 다른 지옥으로 가는 중일까? 앞쪽의 빛까지 가면 햇빛이 사실을 밝혀줄까? 햇빛이 비치면 나 자신을 볼 수 있을까?” (415쪽) 그리고 마지막 순간, 모든 것의 원점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그녀는 모든 것을 깨닫습니다. “마침내 알 수 있었다. 야생화가 만발한 오솔길은 그녀가 지옥으로 가는 길이었다. 바로 그 길에서 그녀는 명멸하는 유령을 따라 지옥 문을 넘어섰다. 이제 그녀는 문 앞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발을 내디뎠다가 갑작스러운 빛에 거의 쓰러질 뻔했다.” (421쪽) 얼핏 이것은 영원한 도돌이표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하죠. 감당할 수 없는 진실을 잊기 위해 기억을 버린 그녀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진실을 마주하는데, 어쩌면 딩쯔타오(의 영혼)는 여전히 그것을 감당할 수 없어서 다시 잊고, 그래서 또 망각에서 기억으로 가는 그 여정을 반복하는 게 아닌지, 어쩌면 영원히… 그런데 앞서 @하료 님의 말씀을 들으니 “그녀가 끔찍한 기억을 다시 떠올렸다 하더라도 결국 최후엔 찜찜한 구석을 남기지 않고 스스로를 다시 찾아 자유로운 상태로 이 생을 마쳤다는 긍정적인 것으로 봐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이고, 회피와 망각은 그것에 대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닐 테니까요. 진실을 마주한 다음에야, 그 다음이 있을 테니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읽으셨나요?
그들은 무척 차분하게 일하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마치 이전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아무 사건도 들은 적이 없다는 듯, 우리는 그냥 우리 일을 하면 돼. 칭린은 그 말을 몇 번이나 되뇌었다. 그런 생각으로 자신의 끔직한 추측과 상상을 막으려 했다.
연매장 p.426, 팡팡 지음, 문현선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어느덧 3주 간의 함께 읽기 일정도 막바지네요! 그래서 오늘은 마음껏 스포일러를 방출하려고요. 혹시 아직 못 읽으신 분들은 미뤄뒀다가 나중에 읽어주세요. 마지막 14장은 다시 칭린의 시점입니다. '귀신의 집'에서 륭중융과 함께 밤을 보낸 칭린은 날이 밝자 "마치 이전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상시의 그들 자신으로 돌아옵니다. 실은 "자신의 끔찍한 추측과 상상을 막으려"는 칭린의 노력이 있었지만요. 칭린과 륭중융은 장원을 둘러보다가 우연히 은폐된 문을 발견합니다. 과거, 다이윈이 몰래 빠져나온 비밀통로로 이어지는 문이지요. 그것이 '연매장된' 과거의 사건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직감하는 두 친구. 하지만 둘의 생각은 같지 않습니다. 과거의 비밀을 밝혀내야 한다는 륭중융에게 칭린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알고 싶지 않아. 어머니가 이 집과 어떤 관련이 있었든 이제는 알고 싶지 않아. 어머니가 살면서 본능적으로 거부한 기억이야. 어머니는 이제 의식도 없으신데 내가 꼭 알아야 할까?" 륭중융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싼즈탕아, 싼즈탕.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귀신도 알지만, 그도 모르고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구나." 칭린이 말했다. "됐어. 나는 모든 의미란 결국 다 무의미하다, 라는 말이 생각난다."> (429쪽) 결국 칭린은 모든 것을 시간 속에 '연매장' 되도록 내버려두기로 결심합니다. 집으로 돌아온 칭린은 미동도 하지 않는 어머니 곁에 앉아서 눈물을 흘리며 말합니다. <"엄마, 엄마가 기억을 잃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지 않아요. 그저 엄마가 깨어나 편안하게 사셨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엄마 일생도 헛되지 않을 거예요." 예상했던 대로 딩쯔타오는 반응이 없었다.> (431쪽) 우리는 칭린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머니의 뜻을 존중하는 것이기도 하고, 솔직히 이미 다 지나간 일이니 어머니도 정신을 잃으신 지금 그것을 들춰서 뭘 하겠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겠지요. 소설 초반부터 그려진 칭린의 성격을 생각하면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장에서, 마침내 18층의 지옥을 뚫고 환한 빛 아래에서 의식을 찾은 딩쯔타오가 소리칩니다. <"나는 연매장되기 싫어! 연매장되기 싫다고!"> (433쪽) 그리고 그것을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지요. 그 말을 전해 들은 칭린은 마음이 복잡해집니다. 이런 표현에 담을 수 없는 마음이겠지만, 그럼에도 '복잡한'이라고밖에 달리 말할 수 없는 마음의 상태. 칭린은 어머니를 정식으로 매장하고 싶어 하지만 땅을 구할 수가 없습니다. 1950년대 이후,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인구와 부족한 토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화장을 도입한 이후 종래의 풍습을 버리고 거의 모든 사람들이 화장을 하게 된 탓이지요(지난 계절에 읽은 <해가 죽던 날>이 바로 이러한 풍속의 변화와 관련된 이야기였죠). 그렇다고 어머니와 아무 연고도 없는 낯선 시골에 묻을 수도 없는 일이고요. 그래서 칭린은 일반적인 화장 절차와 달리, 어머니를 관에 모셨다가 화장을 하는 방법을 택합니다. 비록 화장일지언정, 관에 모셔서 '연매장' 되지 않게 해드린 거죠. 그리고 어머니의 유골을 아버지의 무덤에 함께 묻으며(아버지는 과거에 돌아가셔서 무덤에 안치될 수 있었던 거겠죠?) 거기에 아버지의 공책이 담긴 비닐 봉지까지 함께 묻어요. 마치 지난 시간과 잊힌 기억까지 함께 묻는 것처럼. <이제 그들과 그들의 비밀 그리고 영혼까지 모두 돌 아래에 묻혔다. 칭린은 모든 것을 단단히 밀폐했다. 그리고 나직하게 "아버지, 엄마, 안심하세요. 저는 강하고 홀가분하게 살아갈 거예요"라고 말했다. 칭린은 알기 싫은 일을 알려 하지 않는 것도 강함의 또다른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긴 시간이 진실의 모든 것을 연매장했다. 설령 안다고 해도, 그게 진실의 모든 것이라고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436-437쪽) 본문은 이렇게 끝납니다. 굉장히 문제적인 마무리라고 할 수 있는데요. 앞서 말한 것처럼 칭린의 선택은 개인의 차원에서 충분히 내릴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알기 싫은 일을 알려 하지 않는 것도 강함의 또다른 방식"이라는 말도 언뜻 그럴듯하게 들리고요.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하지만 작가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여기에 굳이 '연매장'이라는 단어를 쓴 것만 봐도요. 연매장이라는 게 얼마나 비극적인지 400 페이지가 넘는 긴 시간 동안 다이윈을 따라 우리가 체감했는데, "긴 시간이 진실의 모든 것을 연매장했다"는 표현이 좋게 들릴 수가 없지요. 물론 어떤 기억은 시간 속에 사라집니다. 하지만 '연매장' 된 기억은 어떨까요? 개인의 차원에서라면 살아가기 위해 망각은 필요하고 때론 필수적이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사회적인 차원에서는 어떨까요? 과거의 과오는 시간 속에 묻고 "강하고 홀가분하게" 살아가는 사회가 정말 건강한 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작가는 어쩌자고 소설은 이렇게 끝내는 거람? 하지만 아직 우리에게는 에필로그가 남아 있습니다. "칭린은 정말로 홀가분해지기 시작했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에필로그는, 그러나 잊혀진 과거를 책으로 쓰고 있다는 륭중융의 전화를 받고 난 칭린의 냉소적인 생각으로 끝이 납니다. <륭중융이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누군가는 망각을 선택하고 누군가는 기록을 선택해. 우리는 각자의 선택에 따라 살아가면 되는 거야." 칭린은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몰랐다. 전화를 끊은 뒤 가슴이 먹먹해졌다. 눈앞의 넓고 탁 트인 호수에 바람이 불자 물결이 층층이 일었다. 그는 생각에 잠겼다. 그래, 나는 망각을 선택했고 너는 기록을 선택했어. 하지만 네가 기록하는 이상 내가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 그리고 진실은, 칭린은 냉소를 지었다, 진실이 어떻게 언어와 글로 표현될 수 있겠니? 세상의 어떤 일도 진정한 진실을 가질 수 없는데.> (444쪽) 작품 전체에서 언제나 수더분하고 수용적이며 일면 유약했던 칭린이 처음으로 냉소적이 되는 순간에 소설은 마침표를 찍습니다. 이 소설이 만약 장르소설이라면 마치 시리즈 전체에서 활약하게 되는 빌런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가를 보여주는 프리퀄 같은 느낌까지 주는데요. 물론 그건 아니고, 다만 우리에게 여러 생각을 하게 하네요.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지 않으면서도, 그럼에도 작가로서 자신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말을 하는 팡팡의 목소리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이제 다음주 수요일까지는 '토론' 시간입니다. 지금까지는 아직 덜 읽으신 분들을 위해 스포일러를 자제하셨다면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물론 아직 덜 읽으신 분들은 계속 읽으시면서 느낀 점, 궁금하신 부분이나 좋았던 구절을 마음껏 읽어주시면 되고요. 자, 그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눠보자고요!
병렬읽기가 안 되는 저는 이달의 소설 먼저 끝내고 어제 처음 연매장을 시작했어요 🤣🤣 다른 분들께서 흡인력이 좋다고 하셔서 기대했는데 정말 순식간에 6장까지 읽어버린 거 있죠? 비적이나 토지개혁같은 깨알 정보를 미리 얻어서 보다 수월하게 읽고 있어요. 남은 기간이 별로 없지만 주말 내 충분히 다 읽겠어요. 이달소로 읽은 <동생>에 이어 <연매장>까지, 중화권 작품들이 이렇게 좋은 줄 미처 몰랐어요! 덕분에 알게 되었네요.
반갑습니다! 확실히 가독성이 뛰어난 작품이에요. 동시에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들고요. 중화권 소설들의 독특한 매력이 분명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요, 이제 본격적으로 마저 읽고 대화에 동참해보려구요 😆
드디어 마지막 '자유 토론' 주간입니다! 스포일러도, 감탄과 경악과 의문과 기타 등등도 모두 환영이에요! 오늘은 이런 질문들을 던져볼게요: 1. 작가의 말과 편집자의 말까지 읽고 1장을 다시 보면, 처음과는 어떤 점이 달라졌나요? 2. 어머니의 과거를 끝까지 파헤치기보다, 기억에서 흘려보내기로 한 칭린의 결정을 여러분은 어떻게 보셨나요? 기억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용기일까요, 회피일까요? 3. 이 소설, ‘새로운 고전’이 될 수 있을까요?
1. 처음 읽어내려갈 때는 딩쯔타오의 남편이 흑막(?)이 아닌가 의심하면서 읽어나갔는데 단지 그녀와 비슷한 경험을 했을 뿐인 좋은 사람이었다는 걸 알고두번째 감상에선 남편의 말 하나 하나가 괜히 마음아프게 느껴지더라구요 .매번 추리소설들 읽을 때마다 유명한이 됐었는데 이 소설을 읽을 때도 그랬습니다. ㅋㅋ.. 2. 기억을 덮어두는 행위 역시 용기있는 선택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칭린이 회피를 선택한 것도 분명 깊은 헤아림과 용기가 들어간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우리는 각자가 내리는 선택에 책임을 져야할 뿐이겠죠 3. 사실 고전에 들어갈만한 책이 과연 어떤 것일까 아직도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후세에도 계속해서 읽힐 수 있는 가치와 힘을 가지고 있다면 고전이 되는 걸까요? 그럼 그 가치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 거고 그 힘은 어떻게 나오는 걸까요? 아무튼 현재의 저는 '울림'을 줄 수 있는 지의 여부가 고전이 될 수 있는 가장 필수적인 요건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 울림은 과연 어떤 것이며 어떻게 끌어내어지는지 명확하게 설명하기 힘들지만 우리들이 특정 책을 읽었을 때 느끼는 붕뜨는 듯한 고양감과 여운이 가장 비슷한 느낌 아닐까 싶어요. 🤔 아름답다고 일컬어지는 것들을 볼 때 느낄 수 있는 것 말이죠. 이 책은 그렇다면 그런 울림을 줄 수 있느냐 한다면 솔직히 전 아직까지 확신을 못하겠다는 게 제 심정이에요. 다만 언젠가 시간이 지나고 다시 읽을 때, 다른 분들과 함께 읽을 때 전에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생각을 할 수 있을 부분들을 분명 건드리는 작품인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저희 고전 지수 기준으로 본다면 주제의 보편성과 해석의 다양성은 확실히 갖추고 있지 않나 싶네요.
1. 저도 처음엔 딩쯔타오의 남편이 흑막이 아닐까 의심했고, 류진위안이 과거에 딩쯔와 가족들에게 직접적이고 커다란 죄를 저지른 게 아니었을까 의심했어요.. ㅋㅋ 2. 기억을 덮어두는 행위 역시 용기 있는 선택이라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3. 고전에 들어갈만한 책이 어떤 것일지 저 역시 새삼 생각하게 됩니다. 당대에 작품성을 인정 받으며 널리 읽혔던 작품도 불과 두어 세대 만에 잊히기도 하고, 철저하게 무시 당했던 작품이 훗날 고전으로 인정받으며 재발견되기도 하니까요.
저도 드디어 다 읽었습니다. 후반부에 뭔가 좀더 극적인 전개를 기대하기도 했지만 사실은 이 정도의 결말이 가장 자연스럽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문제적 마무리라고 한 시간에 연매장하는 방법을 택한 칭린에 대해서는 저도 조금 비겁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어머니를 생각하는 아들 입장에서는 망각을 택했지만 제 3자인 친구 륭중융이 기록을 택한 것을 보면 그 차이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알기 싫은 일을 알려 하지 않는 것은 강함일 수는 있지만 누구를 위한 것일까 싶었어요. 제가 당사자라면 내가 모르는 과거가 있다는 것은 계속 뭔가 불완전한것 같은 느낌을 주었을 것 같거든요. 하지만 무엇이 진실인지 잘 모른다면 굳이 진실을 밝힐 필요가 있는지를 계속 강조하는 군요. 하늘이 덮은 일이라는 표현까지.. 결론은 각자가 편한 방식을 취하고 각자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일까요
후반부에 극적인 전개가 없다는 것--그것이 어떻게 보면 '평범한' 문체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을 '장르 소설'이 아닌 '순문학'으로 분류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는 단어들을 쓸 수밖에 없음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달리 표현하기가 어려워서요... 다만 여기에 어떤 위계를 두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꼭 덧붙이고 싶네요.) 망각이라는 것도 개인의 차원과 사회의 차원으로 나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당사자의 후손으로서 칭린의 선택은 그 자체로 용기 있고 존중 받아야 하지만 이것이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기에 누군가는--사회적으로는--이것을 기록해야 한다... 라는 결말이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개인으로서의 잊혀질 권리 또는 덮을 권리도 존중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네요. 가끔은 저희가 진실을 밝힌다는 명목 하에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기도 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사회의 차원에서 이러한 비극이 잊혀지거나 반복되지 않도록 기록이 필요하다는 것이었군요.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진실이 어떻게 언어와 글로 표현될 수 있겠니? 세상의 어떤 일도 진정한 진실을 가질 수 없는데
연매장 팡팡 지음, 문현선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연매장>을 읽고 기억과 망각이라는 문제와 관련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았는데요.. 저는 우선 팡팡이 <연매장>이라는 소설을 쓴 것은 철저하게 기억과 삶의 양립 불가능성이라는 전제 위에서였다고 생각합니다. 이 기억이란 개인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더 거시적이고, 구조적이고, 역사적이고, 또 공동체적인 기억이고요. 개인의 삶은 그러한 기억에 대한 망각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처럼 보입니다. 이건 당시 중국, 구체적으로는 토지개혁과 관련된 비극들이라는 특정한 상황과 조건 속에서 그런 것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보편적인 함의 역시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가령 예전에 마약을 팔아 돈을 벌었다는 과거가 작은 문으로 표현되는 그런 방식들을 통해서요. 일차적으로 그러한 망각으로 지탱되는 개인의 삶이 일종의 기만일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다이윈의 입장에서 <연매장>은 그녀가 삶-망각(기만)의 쌍으로부터 죽음-기억(진실)이라는 장소까지 이동하는 여정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고요. 팡팡은 이 두 극단 사이의 중간지대를 거의 남겨놓지 않음으로써 이것을 어떤 해소할 수 없는 딜레마로 바라보는데요, 재미있는 것은 두 극단 중 어느 쪽에 더 높은 가치를 둘 것이냐고 했을 때 뭔가 자연스럽게 그래도 기만이 아니라 진실의 방향으로 가는 게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수 있는데 팡팡의 구도가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거예요. 가령 어느 방향으로 가는 것이 더 '용기'있냐고만 보았을 때, 저는 망각 속에서 남편, 아들과 함께 살아갔던 다이윈과 지옥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며 진실에 다가서던 다이윈 중 어느 한쪽이 더 용기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것처럼 느껴져요. 용기는 양쪽에 다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추상적인 가치만 놓고 보면 기만과 망각이 진실과 기억에 비해 안 좋은 것은 깊이 생각할 필요도 없지만, 막상 삶이라는 것 자체가 기만과 망각 위에서만 가능하다고 못박아놓은 상태에서는 그 두 조건도 무작정 나쁘게만 볼 수가 없게 되는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우리가 삶이라는 것에 대해 가지고 있는 어떤 감각, 말하자면 삶 그 자체는 어떤 기준으로 평가받을 수 있지만 또 그 이전에 하나의 절대적인 기준이기도 하다는 점이 작용을 하는 것 같고요.
개인의 기억과 집단, 공동체로서의 기억이라는 대립구조가 흥미롭습니다. 연매장을 읽고 동아시아 현대 소설에 관심이 생겨서 소전독서단 책 신청을 주로 아시아 작가로 택하게 되는데요, 6월에 읽은 홍콩의 소설가 찬와이의 '동생' 본문에 비슷한 내용이 나오더라고요. "그즈음 '집단 기억'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나는 무척 서글픈 느낌이 들었다. 기억마저 집단의 이름에 기대야만 뿌리를 내리고 언급될 수 있다니 안타까웠다. 내 기억은 누구도 빼앗거나 점유할 수 없는 나만의 것이었다. 나는 커러가 나중에 스타페리 부두와 관련해 다른 사람과의 집단 기억이 아니라 자신만의 기억을 가졌으면 했다." 78쪽 (찬와이, 동생) '동생'은 2000년대 이후 홍콩 독립 시위를 겪으며 좌절하고 삶의 양상이 변화하는 청년들의 이야기이고, 스타페리 부두 시위를 따로 찾아보니 굉장히 격한 반중 시위로 기록되었더라고요. 연매장 이후 연달아 읽게 되어서 두 권을 계속 나란히 놓고 생각하게 되었는데, 어쩌면 급속한 서구화와 현대화의 사회 구조 변혁 속에서 아시아 국가들의 개인은 반강제적으로 너무 강력한 '공동체적 기억'에 '개인의 기억'이 좌지우지 되었던...그런 삶의 양태를 가진건 아닐까 싶었어요. 다이윈이 공동체적 기억을 전부 망각해버리는 극단적인 장치를 통해서만 개인의 기억으로 삶을 유지하는 것이 다행이었다면, 역설적으로 동시대를 경험한 많은 개인들에게 해당 집단 기억 자체가 트라우마로 존재한다는 뜻 아닐까 싶어요. 우리나라 역시 트라우마에 가까운 다양한 공동체 기억이 과잉 생산..되는 사회라고 생각해보면 다이윈의 삶을 좀 더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그래서 이것이 딜레마가 되는데, 물론 팡팡이 설정해둔 이 구도가 중간지대를 너무 축소시켜둔 나머지 극단적인 측면만 보이게 된 것이라고 접근하면서 이 딜레마를 해소할 수도 있겠지만요. 저는 이 삶과 기억의 이 극단적인 대립이 어느 정도 공감이 되는게, 우리가 진정으로 얽혀 있는 모든 문제를 짊어져야한다면 사는 것은 불가능한 것 같거든요. 지나간 시간들도 너무 겹겹이 쌓여있고, 또 동시대만 해도 너무 많은 연결성 속에서만 삶이 지탱되기 때문에 이것을 '정산'하면 개인으로서는 절대로 감당 불가능한 책임의 무게가 지워질 수밖에 없어보여서요. 사실은 그래서 칭린과 룽중융으로 나누어서 망각과 기억을 동시에 <연매장>이라는 책 안에 담아내고자 했던 팡팡의 선택이 탁월하게 느껴졌어요. 그러니까 그 선택이라는 것이 꼭 한 개인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할 필요는 없는 거죠. 각각의 사람이 놓인 상황과 여러 조건들에 따라서, 누군가는 기억을 추구하고 누군가는 삶을 추구하며 이어지는 것이 인류라는 공동체의 더 큰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 둘은 대립하는 것처럼 보여도 한 쪽이 없으면 다른 한 쪽이 존재할 수가 없기 때문에, 어쩌면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함으로써 이 대립을 해소한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야말로 이데올로기적인 기만이 아닐까 싶기도 한 거죠.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망각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기억이 똑같이 각자의 의무로서 주어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칭린은 더이상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어머니가 발병하기 전에 보였던 이상한 모습이 차례차례 눈앞에 떠올랐다. 대문, 사조의 시, 귀곡자가 하산하는 그림이 그려진 화병 그리고 당신 아버지가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는 어머니의 말, 보라색 비단 이불 등등. 어머니가 무의식적으로 드러냈던 그 단편적인 단어들 뒤에 무엇이 있을까? 맞다. 어머니는 무척 두려워했어. 누가 재산을 빼앗아간다고 했는데 설마 무슨 일을 겪은 건가? 공교롭게도 체런루라는 집이 정말로 있었어. 무엇보다 어머니 어투가 이곳 방언과 비슷하고.
연매장 177, 팡팡 지음, 문현선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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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그믐달 찾아요 🌜
자 다시 그믐달 사냥을 시작해 볼까? <오징어 게임> x <그믐달 사냥 게임> o <전생에 그믐달>
8월 22일은 그믐밤입니다~ 함께 읽어요!
[그믐밤] 38. 달밤에 낭독, 셰익스피어 4탄 <오셀로>[그믐밤] 37. 달밤에 낭독, 셰익스피어 3탄 <리어 왕> [그믐밤] 36. 달밤에 낭독, 셰익스피어 2탄 <맥베스> [그믐밤] 35. 달밤에 낭독, 셰익스피어 1탄 <햄릿>
이디스 워튼의 책들, 지금 읽고 있습니다.
[그믐클래식 2025] 8월, 순수의 시대[휴머니스트 세계문학전집 읽기] 3. 석류의 씨
문화 좀 아는 건달의 단상들
설마 신이 이렇게 살라고 한거라고?그믐달자연의 일부일 뿐이라는 생각
퇴근의 맛은 두리안 ?!
[도서 증정] 소설집『퇴근의 맛』작가와 함께 읽기[📚수북플러스] 1. 두리안의 맛_수림문학상 작가와 함께 읽어요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여기가 아닌 저 너머를 향해...
[함께 읽는 SF소설] 07.화성 연대기 - 레이 브래드버리[함께 읽는 SF소설] 06.앨저넌에게 꽃을 - 대니얼 키스[함께 읽는 SF소설] 05.생명창조자의 율법 - 제임스 P. 호건[함께 읽는 SF소설] 04.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 - 케이트 윌헬름
이렇게 더워도 되는 건가요?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5. <일인 분의 안락함>기후위기 얘기 좀 해요![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11. <화석 자본>무룡,한여름의 책읽기ㅡ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독서 모임에서 유튜브 이야기도 할 수 있어요
[팟캐스트/유튜브] 《AI시대의 다가올 15년, 우리는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같이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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